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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와 신자에게 - 기도에 대한 권고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0 조회수1,141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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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기도에 대한 권고


내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걸으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내 성직자들이 심히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몸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기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쇠약해진 몸으로는 그 몸에 타격을 가하여 조만간에 죽이려고 드는 원수와 맞붙어 싸울 수가 없다.

기름이 떨어진 등불은 꺼지고 만다. 믿음이라는 등불도 기름이 공급되지 않으면 꺼지고 만다. 그러면 영혼 속에 어둠이, 밤이 엄습한다.

가느다란 풀잎 하나, 꽃 한 송이도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내 죽어 버린다. 시든 풀이란 어떤 것이냐? 싱그럽고 향기로운 꽃도 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누렇게 말라 버린 잎사귀들과 가늘고 부서지기 쉬운 줄기만 남을 뿐이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기도를 하지 않는 사제의 영혼은? 이는 더없이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영혼일 따름이니, 어둠 속에 잠겨 길을 잃고 정신적 사욕이나 육욕에, 혹은 흔히 그 둘 모두에 가차없이 휩쓸려 가고 만다.

내적 생활의 결여로 신앙 위기를 겪는 사제의 영혼은 어떠하겠느냐? 사탄의 비웃음과 놀림감이 아니겠느냐? 사탄은 그 영혼에 증오와 질투를 퍼부으면서도 온갖 역겨운 것을 더덕더덕 칠하여 노예로 삼는다. 사탄이 독한 거품을 부글거리며 필사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 영혼이 내가 마음대로 쓰라고 준 효과적인 방어 수단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산소


첫째 방어 수단은 기도이다.

- 기도는 영혼을 하느님께까지 올라가게 한다.

-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 기도는 영혼의 산소이다.

- 기도는 영혼을 친밀하고 심오하게 하느님과 결합시킨다.


영혼이 나와 결합해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영혼이 내게 굳건히 붙어 있다면, 누가 그 영혼을 내 성심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느냐?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상한 과일과 같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결국 땅에 떨어지고, 거름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아들인 나는 곡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밤낮으로 기도하였다. 가르치는 것보다 모범을 보여 주기를 앞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및 사제들에게는 나의 그 모범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먹기를 거부하면 육체적인 기력이 감소하기 마련이니, 그것을 하느님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기도하기를 거부하여 영적인 활기가 소진되고 마는 것도 하느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세속의 요란한 파도 속에서 배가 난파한 사람과 같다. 헤엄쳐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겠느냐?

나의 기도 권고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매우 많은 사제들 -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열에 들뜬 듯한 그들의 활동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지 않고 따라서 아무 결실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실은 고사하고 흔히 정반대의 결과를 내곤하는데 말이다.

그들은 이제 준성사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언제나 그렇듯이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준성사를 활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악마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살아 있는 영적 실제의 바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불을 붙여야 한다!


아들아, 그들이 믿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신문잡지를 신뢰하면서 이 샘에서 솟는 물을 게걸스럽게 들이킨다.

교회 생활을 조용히 되돌아보면, 단지 한 번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다. 순교자들 (게다가 순교자는 수없이 많다) 역시 기도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충실과 신앙에 대한 충실을 피로써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사제들은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얼마나 심한 맹목이냐! 얼마나 캄캄한 밤이냐! 그들은 '빛'과 '생명'을 거부했고 지금도 거부하고 있다. 이 빛과 생명을 영혼들에게 가져다주게 하려고 내가 뽑은 사람들이건만!


아들아, 나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거부한다. 나는 '생명'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꺼버린다.

나는 '불'이다. 그러나 단지 타오르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그래서 마을이건 도시건 사람들이 붙인 숱한 불빛이 빛나기를 바란다. 이러한 내 '뜻'을 거역하는 목자들은 불행하다!


예컨데, 네게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예수 성체의 벗들'을 원한다.

내가 너를 뽑은 것은 큰일을 시키기 위함이니, 그것은 내 말을 사도들의 후계자들과 사제들 및 신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이는 자기 자신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그들은 나를 믿지 않았고, 내 어머니도 믿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다수는 그들의 맹목을 고집할 것이다. 그러나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1975년 11월 20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경건함이라는 덕행


지상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독특한 표징과 수단을 활용하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창조주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 이것이 '하느님 섭리'의 명령이다.

그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수단이나 동일한 목적에 응한다.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그런 표징이 없어도 너희와 관계를 맺으실 수 있다.


너희는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일컬어 "경건한 행위"라고 한다. 경건함은 아주 중요한 덕행이다. 이 덕행으로 영혼들이 창조주께로 올라가서 그분께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며, 모든 사람과 일체 만물이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지당한 찬미가 안에서 모든 피조물의 목소리와 하나 되고,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우주적인 합창과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건함은 모든 영혼의 덕행이 되어야 한다. 자기 내면의 경건함을 파괴하는 자들은 불행하다! 그런 이들은 자신 속의 신적인 빛을 모조리 꺼버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쉽사리 사탄의 먹이가 되고 만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누구에게 줄 수 없고 받을 수도 없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과 같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앗기고 사탄의 종살이를 하도록 선고받은 사람이니, 사탄의 손아귀 안에서 멸망의 도구가 되고 만다.


기도를 하지 않게 된 사제


여기에 이 근본적인 덕행의 중요성이 있다. 그래서 무신론은 수없이 많은 영혼들 속에서 이 덕행을 파괴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신론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 속에서, 심지어 많은 사제와 남녀 수도자들의 영혼 속에서 이 덕행을 파괴했다고 자랑하게 되었는데, 딴은 자랑할 만도 하다. 그들은 부조리한 물질 문명으로 눈이 멀어서, 사목 활동 전체의 핵심인 내적 생활에 양식을 대는 원천을 바싹 말려 버렸으니 말이다. 경건하지 않은 영혼들은 메마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교회가 정원에서 사막으로 바뀌고 만다.


기도를 하지 않게 된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무일도도 묵주 기도도 바치지 않고, 묵상도 하지 않는다. 묵주기도는 "옛 시대에나 맞는 터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은 하지 않고 그 대신에 라디오, 텔레비전, 노래, (신문 잡지) 읽기, 혹은 입에 담지 않는 편이 나은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불이 꺼져 버렸으니, 붕괴 과정이 거의 완료된 상태에 있는 셈이다.

영혼에서 하느님을 배제하면, 하느님 자리에 허무맹랑한 사회 진보나 수상쩍은 사회 정의라는 것을 대신 앉히게 되는데, 이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진보는, 하물며 사회 정의는 참된 자유와 하느님의 도움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눈을 떠야 한다


아들아, 내 지상 대리자는 내 신비체의 윤리적 붕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으며,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영적인 풍성함의 원천인 살아있는 믿음, 진정한 경건함을 촉구하는 그의 수많은 호소에 대해 상당수의 사제들이, 또 일부 주교들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교황을 무시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요, 교황을 따르지 않는 것은 나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무감각 상태를 흔들어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 서둘러 눈을 뜨고 너희를 위협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자코 있다가 잿더미에 깔려 묻힐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하여라!

(1975년 12월 12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의 복음


내 말은 생명의 말이다. 내가 영원한 것처럼 영원한 말이다. 내 말은 진리이기에 변할 수가 없다. 진리는 나와 마찬가지로 불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사제들은 나의 '복음'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내 말을 직접 길러 목마름을 풀지 않고, 더러워진 개울물을 긷기를 더 좋아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 깊은 데를 부식(腐蝕)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신앙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고 마음의 내적 파괴가 초래된다.

신자들도 물론 책임이 있지만, 내게 자기를 봉헌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그들 때문에 더럽혀진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그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교적 완성에로 인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헤아릴 수 없는 영적 가치를 지닌 보물이며 비할 데 없는 신적 권능의 보물인 나의 '복음'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확신하려 들지 않았다!

무엇 때문이냐고? 그들은 악마의 유혹에, 그 오래된 '뱀'(묵시 12,9 - 역주)의 거듭된 공격에 넘어가서,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영혼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


현대 사목의 여러 부정적인 면 가운데 하나는 인쇄된 지면에서 독을 내뿜는 책이나 신문잡지로 인한 감염이다. 많은 사제들이 그런 것으로부터 오염된 양식을 수거하여 사람들이 먹도록 차려 주고 있다.

그들의 책임은 아주 무겁다. 병이 만성화되고 있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전되었다. 그것은 전염성이 강한 양성 나병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그런 성직자들은, 항상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지옥 세력은 결코 기가 꺾여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이 세력은 암벽에 부딪쳐 철썩대며 부서지는 파도와 같이 왕복운동을 거듭하고 있건마는!

그런 사제들은 사랑과 총애의 보증인 그들의 소명이 얼마나 고상한 것인지를, 그리고 그 소명에 결부되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이는 영혼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즉, 영혼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느냐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떨어지느냐 하는 것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정의의 문제


아들아, 너는 그들이 나를 완강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여기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 사제들에게 말해 주어라.

나의 완강함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내 교회 안에 있는 무질서가 문제이다. 평상시에는 사랑으로 성취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일이 너희가 내적 위기 속에 있을 때에는 견딜 수 없도록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게다가, 아들아, 내 성직자들이 복음을 묵상한다면 중요한 이유인 달란트의 비유(마태 15,14-30 - 역주)를 이해했을 터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책임지고 다섯 달란트를 더 벌어 돌려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벌어 돌려주어야 한다.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더 벌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그러나 받은 달란트를 포도밭을 가꾸는 일에 쓰지 않고 오히려 포도밭을 황폐하게 만든 결과 원금을 월등 상회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면 그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니 이는 내 완강함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인 나는 정의이다. 그것도 완전한 정의이다.


많은 사제들은 잘못된 성사 집전과 유해한 학교 교육, 줄곧 자행되는 악한 표양이 영혼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해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성찰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인 내 말을 묵상하지도 않는다. 아들아, 얼마나 가당찮은 어둠이며 큰 잘못이냐!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1976년 7월 1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성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것이니, 이 백성을 비추어 원죄의 어둠에서 끌어낸다


써라, 아들아, 나다. 나 예수가 성서에 대하여 OOO가 너에게 말한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자 한다.

아들아, 내가 여러 번 말해 주었기 때문에 너도 알고 있거니와, 삼위일체 하느님인 나는 본성상 무한히 단순하고, 따라서 나의 언행 전체가 그 본성을 반영한다. 이는 모든 책, 모든 예술 작품이 저자의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성향을 반영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나의 성서는 이를 기록하기 위한 도구로 뽑힌 사람들의 예술적, 시적, 문학적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성서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의 무한한 단순성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엿보게 한다.


그리고 성서는 성삼위의 '뜻'이 지극히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원하신 것이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말씀'을 선택된 백성에게 전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낳음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아버지께서 맡기신 신성한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온 일이었고, 이 사명은 나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 신비를 통한 '재창조'에 의해서 사탄과 원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먼저 성서가 다음에는 복음이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마련되었으니, 이는 원죄를 범한 이후 어둠 속에 잠겨 있었던 인류를 비추어 그 어둠에서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빛'과 '지혜'로 이루어진 성경의 내용은 지옥의 연기에 마비되거나 중독되지 않은 영혼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기는 바로 사탄이 인류에게 토해 내는 교만이니, 사탄은 인류를 악으로 정복하여 손아귀에 넣었다고 믿고 생각하고 또 그러기를 바라며, '빛'과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와는 정반대로 그 자신의 어둠의 나라를 인류 위에 펼치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내 나라에서 차지할 몫이 없다."


'하느님의 말씀' 곧 '계시'를 해석할 권한은 하느님께서 그 일을 맡기신 교회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권한이고, 교회에서도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은 내 대리자 베드로만이, 그리고 베드로와 일치해 있는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만이 지닌 권한이다.


교만하고 주제넘는 숱한 신학자들의 사사로운 해석은 제멋대로 한 것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하느님 백성의 스승으로 내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스승'은 오직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인 나뿐이고, 이 나의 지상 대리자, 눈으로 볼 수 있는 대리자가 로마 주교인 교황이다. 그러니 신학자건 목자이건 사제이건 교회의 '교도권'을 원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은 모두 이단자요 파문된 자들이다. 그들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리는 명성이나 관록이나 직책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내 나라에서 차지할 몫이 없다." 그런 사람의 몫은 사탄의 나라에 있을 뿐이다.


아들아, 오늘날은 교계의 고위층에서 하위층에 걸쳐 그렇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많고, 그 중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사람들(곧 추기경)도 있다. 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나아가는데, 한 번 더 말하지만, 사뭇 인자한 듯한 번지레하고 위선적인 겸손의 탈을 쓰고 있다. 많은 주교들이 낭떠러지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는 판이니, 교회에 충실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거짓의 선생이요 창시자인 사탄의 공모자가 되었고, 사탄이 곳곳에, 특히 신학교와 가톨릭 대학과 수도회에 침투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손상하고 오류와 이단 속으로 끌어 넣도록 허용한다. 그 영혼들은 내 '섭리'의 성스러운 계획 안에서 장차 수확할 열매를 맺을 소중하고 풍성한 싹이 되도록 택함을 받은 이들이었건만, 멸망의 도구가 되고 만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변경 날조하여 손상을 입히는 자는 불행하다


그러한 손상과 파괴에 책임이 있는 저 목자들에게 내가 어떻게 자비로울 수 있겠느냐?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을 몰라서 그토록 엄청난 악에 대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더란 말이냐?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냐?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그토록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사목에 대하여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통탄해 하겠느냐?


아들아, 이는 단 하나의 메시지로 온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네게 말해 주어야 할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쇄신되어 다시 태어날 내 교회에서는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타협을 모르는 확고함 속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혜아릴 수 없도록 귀중한 내 계시의 유산이 교만에 의해 이토록 중대한 손상을 입지 않게 할 수 있고, 교회에 맡긴 나의 계시를 어떤 독사도 들어올 수 없는 "금단의 동산"처럼 보존할 수 있다!

내 말은 내가 내 예언자들을 통하여 항상 순수하고 단순하게 나타낸 것과 같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변경 날조하여 손상을 입히는 자는 불행하다. 이 불행한 자들은 목에 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태 18,6 참조 - 역주)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보상하고 기도하여라!

(1978년 3월 8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하느님의 뜻


아들아, 내 주교들과 내 사제들과 내 신자들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내가 원하는 바를 받아 써라.


이 세대 사람들이 내가 오래 전부터 간절히 바란 대로 생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필수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나 자신이 조처하겠다.

내게는 수단이 없지 않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지만, 나로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겠다.

너희는 성서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사제들과 학자들의 마음이 단단이 굳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너희도 그들보다 덜하지 않다. 그토록 무디고 굳어 있는 마음으로 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이미 여러 징표를 주었건만 아직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냐?

나는 내 교회가 쇄신되기를, 현재 묻어 있는 더러운 얼룩들을 씻고 깨끗해지기를 바란다.


착각은 금물이다. 너희에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 자비를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다만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이해하려고 들지 않느냐? 아무리 듣고 싶지 않아도 지옥을 파괴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내 정의를 파괴할 능력도 없는 것이 너희이다.

정의에 의하여 악인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내 '아버지의 집'에서 쫓아내지 않을 수 없다면, 그때에는 내가 더 이상 자비의 하느님이 아니란 말이냐? 게다가, 선인이건 악인이건 같은 자(尺)를 써서 잰다면 나는 어떤 심판자이겠느냐?

그러니 너희의 그릇된 생각대로 일단 정의를 제거하고 나면, 공심판도 사심판도 제거해야 할 것이고, 지상 생활은 귀양살이의 땅에서 시련을 겪는 기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모든 것이 현 상태대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좋은 알곡과 가라지를 따로 떼어놓을 필요도 없고, 악인과 선인 사이의 구분도 없어질 것이며, 나의 가르침은 오류로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하느님의 뜻


아니다. 아들아, 나는 틀릴 수가 없다. 너희는 나의 가르침과 모범과는 대조적인 생활 양식을 지어내었다.

나는 '길'이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교나 사제나 신자거나 모두 내 모범을 따라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따랐다. 그러나 오늘날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내 목자와 사제와 신자들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내 복음보다 명괘하고 분명한 것은 달리 없건만, 그들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혹은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사욕으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를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내 천사들은 그 소식을 알리려고 세상의 유력자나 부자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순결한 사람들이며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인 목자들에게 갔다.

목자들은 내게 와서 경배하며 그들의 사랑을 바쳤다. 무한한 겸손하게 태어난 나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기를 바랐다. 내 주교와 사제와 신자들도 마땅히 그런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이니, 정화를 치룬 교회에서는 그들도 과연 그렇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사람인 요셉을 나의 양부로 주셨다. 의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거룩한 사람, 겸손한 사람, 순결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교와 내 사제들이 좀이라도 깊이 생각하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단순함과 거룩함


말할 것도 없이 내 어머니는 모든 덕행의 모후이시고, 모든 여인 가운데서 유일한 분, 모든 여인 가운데서 복된 분으로서 내 사제직에 참여하셨다. 따라서 내 어머니는 모든 덕행에 있어서 주교와 사제들의 모범이시다.

내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듯이, 내 모든 주교와 사제들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는 묵상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 내 사도들 중에서 내가 특히 사랑한 사람은 요한이었다. 요한은 내 자비로운 성심의 속내 이야기를 들었다. 요한의 겸손과 단순함과 깨끗함이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했던 것이다.


내 사도들 중 또 한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고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내 자비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빠져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런 이들은 내 사랑과 자비의 충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더없이 수치로운 격정의 음흉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다음, 어떤 사람들이 나의 참된 벗들이겠느냐? 성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그 사례(事例)들이 연속적으로 네 기억에 떠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너의 고통을 봉헌하여 내 고통과 하나 되게하여라. 그렇게 하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비추는 빛이 된다.

(1975년 11월 2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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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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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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