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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2.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1 조회수1,697 추천수4 반대(0) 신고

(수원교구 순교사적지, 은이 성지)

20201211

대림 제2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애초에 완전한

동그라미는 없으며,

있다고 한다면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라캉의 말입니다.

많은 이가 자신의 삶이

완전한 동그라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판타지,

즉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을 완전한

동그라미처럼 만들겠다고

불철주야 일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60대에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이제 그의 가정은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없어서

은퇴 후 함께 하는 것을

서로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이 형제님께서

종합검진을 통해 커다란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 가족과

더 함께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 형제님처럼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려나가서 완성하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완전한

동그라미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완전하지 않은 동그라미라도

서로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약간 찌그러진 동그라미도,

때로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각진 네모 같아도 이 역시

그 사람의 고유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무조건 부정하고

본 것이 아니었을까요?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 완벽하지 않은 동그라미라면서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와서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며 살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말했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면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동그라미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동그라미도 틀렸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면서

부정한다면, 그만큼

자기 곁에 계신 주님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완전한 동그라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는 가운데, 완전한

주님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완전한 주님만이 완전한

동그라미를 만드십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가 인생에서 기대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것이었다,

(빅터 프랑클).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됩니다.

어느 신자분이 자신의 본당

보좌신부님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보좌신부님은 정말로

대단한 분 같아요.

우리 주임신부님이

쉬운 분이 아니어서,

그 밑에서 함께 생활하기

힘들 텐데 언제나 웃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늘 주임신부님

칭찬을 해요.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운다면서 너무 감사한

분이라고 말이지요.” 말씀을 들어보니

이 보좌신부의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있다면 주임신부님 칭찬하기?)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신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보좌신부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종종 상대가 올라가면

내가 내려가고, 상대가 내려가야

내가 올라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폭로하곤 합니다.

그러나 큰 착각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를 칭찬하는

사람을 오히려 더 높이 봅니다.

누군가의 단점 폭로에 온 힘을

쏟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달라지고,

나 자신이 다른 이들로부터

올라가게 됩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주님의 말씀은 진짜였습니다.

(수원교구 순교사적지, 골배마실 성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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