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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 2020.12.11.. 하늘 백성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1 조회수1,174 추천수0 반대(0) 신고

 

도란도란 2020.12.11..

하늘 백성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게 아니야. 완성하러 왔다 하셨을 때, 율법을 예수님이 완성하면 그게 가 된다는 그런 말이거든요.

()이라는 게 뭐예요? 이 세상에서의 그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한 것, 그들의 성경해석에 관한 열정이 그러한 점에 이르러 점으로 결국 되어졌다, 라는 것은 그들의 성경 해석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 보이지 않는 묵시의 세계, 진리에 복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게 아니라, 그들은 문자 그 훌륭한 문자 그 원어를 갖고 인간들의 길흉화복 그리고 인간들의 자기가치 주장 내가 하느님이야!” 이런 거자기 가치 주장 그리고 자기 자존감 향상에 초점이 있었다, 라는 증거에요. 그것이요.

아무리 어마어마한 학식을 갖고 성경을 공부한다고 해도 그게 인간에게 집중이 되거나 나에게로 집중이 되면 그게 바로 타로 점으로 머물러 버리는 까발라 같은 이단이 되는 거예요. 근데 오늘날 원어 연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 학습 내용이 대부분 그 까발라들의 그것에서 흘러나왔어요. 그리고 고작 그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그러니까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지 않고 진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상태에서 문자나 원어를 접하게 되면 또 다른 이상한 괴물 같은 신학이 만들어지고 마는 거예요.

하느님이 원래 주신 그 문자의 의미를 안다는 거는 이런 어마어마한 특권이란 말이에요. 근데 마귀는 항상 진짜 가치 옆에 비슷한 가짜 가치를 갖다 놓음으로 해서 진짜 가치를 소용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방법을 쓰는 아주 선수란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 문자 연구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결심을 한 거예요. 그래서 죽~ 찾았죠. ‘내 백성은 내가 지킨다!’라는 심정으로그래서 고대 히브리어 자음 22자를 한 자 한 자 써 놓고 그 자음이 들어간 단어들을 제가 모조리 찾았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 알레프(א)거든요. 거기서 헬라어 알파((א)가 들어가 버려요. 그런 모양으로 성경이 이제 시작되거든요. 제가 그 알레프가 들어간 단어들을 전부 하나하나 다 나열해 봤어요. 스트롱 코드 1, 히브리어 1번이 아브(אב)에요. 아버지부터 시작해요. 하느님의 집, 성전.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죽~ 한 자 한 자 찾아보는데아 정말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저는한 자 한 자 한 단어 한 단어에 성경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문자가 기록될 당시에 그 의미 값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집중하여 보면서 한 자 한 자의 그 자음 값을 재정립 해 봤는데, 문득 그 알레프라는 단어가 맨 앞에 들어가 있는 단어들만 쭉 찾았더니 한 870개 이상이에요. 그리고 저한테는 히브리어 헬라어 그 신약 성경을 히브리어로 바꾸어 놓은 성경이 있어요. 히브리어 신약 성경이죠. 원래는 그렇게 봐야 해요. 왜냐하면 헬라어가 여기서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아가페라든지 파테르라(pathvr)든지 이러한 단어 사랑, 아버지 이러한 단어를 헬라어만 갖고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요. 근데 히브리어로 찾아 올라가면 은 정확히 그 뜻이 나와요. 뭔지가그래서 신약 성경도 히브리어로 찾아보면 굉장히 이해가 쉬어요. 근데 그것까지 다 찾아서 알레프라는 문자가 제일 먼저 들어간 단어들을 전부 찾았더니 수천 개에요.

거기다가 알레프가 중간에 그리고 맨 마지막에 들어가는 단어들은 다 찾았더니 새까맣게 종이가내가 그걸 하나하나 다 읽어 봤어요. 그리고서는 그 자음 값 하나를 제가 나름대로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정립해 놓은 신학이 있잖아요. 그동안에 공부 해 놓은 게 설교해 놓은 것이그랬더니 이건 뭐성경이 정말 이건 하느님이 쓰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큐가 높은 학자들 만 명이 아니라 일억 명을 모아다 놓고 이렇게 쓰라고 해도 못 써요. 너무 과학적이고 너무 논리적이고 진짜 면도칼 하나 들어 갈 틈이 없어요. 단어 하나가 그 문장 전체를 설명하고 있고요. 그 문장이 그 책 전체를 설명하고 있고 그 책은 성경 전체를 하나로 설명하고 있어요. 근데 그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글자 하나하나의 생성 과정이나 변천 과정이 또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씀을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 문자라는 게 처음 쓰인 곳이 BC 3000년경에 애굽이에요. 이집트. 그때가 이집트의 3왕조 때였는데, 그 때 이미 이집트의 문자는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어요. 보편적으로 그 백성들이 통용하면서 쓰인 문자는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자를 몰랐던 때에요. 그때는요……여러분, 그전에도 문자 비슷한 것들이 있었고 동시대에도 수메르어나 아카디아어가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그건 문자라기보다는 기호, 표 정도에 불과한 쐐기 문자였어요. 이렇게, 이렇게 무슨 체크 같은 그런 글자들 보셨죠? 그게 쐐기 문자에요. 이건 곧 없어졌어요. 그리고 그림 문자만 남아서 거기에서 알파벳까지 온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성경으로 읽고 있는 히브리어를 비롯해서 그 그림 문자에서 문자가 온 거란 말이죠.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을 이제 계시하기 위해 아담 하와에게는 소리로 주셨는데 소리는 저장이 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걸 저장하여 전달할 수 없으니까 이제 그 소리를 저장하려면 소리를 그리면 되죠? 그걸 문자라 그래요.

그 하느님이 당신의 말씀... 당신의 마음 당신의 뜻 그 진리를 ...그 언약을 저장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하느님이 문자를 줘야 되는데 그때 당시에 하느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 문자 그걸 갖고 있는 곳이 애급밖에 없었다고요. 왜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을 애굽으로 집어 넣으셨는지 아시겠죠? 말씀을 주기 위함이에요. 당신의 백성들에게그래서 아브라함도 그렇게 수시로 애굽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모세가 그 문자를 받는다니까요. 모세가 물에서 건져 낼 자에요. 건져낸 자, 물이 낸 자라는 이런 뜻도 있어요. 근데 그 당신에 모세 엄마가 그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니라, 그땐 이름이 없었어요. 그런데 애굽의 공주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네요. 여러분 애굽에 그 건축물 같은 걸 보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애굽의 목욕탕 시설이 근사하게 되어 있었던 때에요. 근데 왜 강에 나와서 목욕을 하고 있었을까요? 시원해서? 아니에요. 자식이 없는 공주가 하나 있었는데 신에게 정결 예식을 드린 거예요. 자식 달라고애굽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게 정결 예식을 하며 깨끗이 몸을 닦고 있는데 애기가 바구니에서 동동 떠내려 오네요. 기도의 응답이죠? 그래서 날름 잡은 거예요. 그리고는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어요. ? 그때 당신에 애굽의 18왕조 때의 모든 왕자들의 이름이 모세에요. 그리고 그가 왕이 되면 그 앞에 신의 이름을 붙여서 투투 모세, 무슨 모세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에요. 얘는그 공주가 붙여 준 이름이죠.

그런데 모세는 물이 낸 자죠? 그런데 모세가 나중에 애굽으로 들어가서 누구와 상대를 하게 돼요? 애굽의 모세.

애굽의 모세는 아래의 물이 낸 자 아래의 말이 낸 모세에요. 파라오라는 자체가 태양신 라아의 아들이란 뜻이잖아요. 파라오. 아랫물, 우상의 모세, 가짜 말, 비 진리가 낸 모세와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내 준 내가 내 말을 너에게 보내 줄게라고 보냈잖아요. 그 위의 물이 낸 모세가 두 모세가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모세가 이기는 거예요. 이게 역사 전체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 전에 이미 모세에게 광야에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셨는데 인간들이 어떻게 이 문자를 쓰냐 하면, 내가 뭘 열심히 해서 나의 유익에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그걸 장사한다.’그러잖아요. 물물교환이 아니라 그 화폐무역을 위해서 교역을 위해서 만든 게 문자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니까요. 이게 율법주의에요. 내가 뭔가 내어 놓을 테니까 당신도 거기에 상응하는 물을 줘. 이거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그러는 거죠. 내 집은 프로슈코마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왜 장사하는 집을 만들어놨냐? 거기에서 뭐 양 팔고 비둘기 팔고 그래서가 아니라그것은 원래 거기서 팔아야 됐던 거예요. 왜냐하면 저기 먼 데서 재물을 가져오면 얘가 오면서 털도 빠지고 점도 있고 흠도 있는 게 되니까그걸 뭐라 그런 게 아니라, 왜 하느님의 말씀을 이 땅에 모형으로 준 성전 안에서 너희들의 유익... 거기서 진리를 알아먹으려고 애쓴 게 아니라 너희들의 유익을 위해서 이걸 사용하니? 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왜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어. 이렇게 이야기했단 말입니다. 이 안에는 진리 말씀이 담긴 건데...., 왜 너희는 이거를 장사()를 해?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그 장사지 뭐예요? 신에게 내가 뭔가 섭섭지 않게 해 드리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고 싶다 하는 게 종교 아닙니까? 심지어 천주교도 그렇게 되어 버렸잖아요. 장사하는 거예요. 그건 하느님께 야단맞을 일이라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하느님이 그렇게 모세에게 준단 말이에요. 그 문자로... 그리고 그게 뭔지를 하느님이 가르쳐 주세요. "사실은 너희들이 이렇게 문자를 만들어서 이 뜻으로 쓰고 있지만 이거는 이렇게 써야 되는 거야. 여기에는 그런 내용이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내용이 있는 거야" 라고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게 이 세상이고 그게 율법이고 그게 성경이고 그래요.

하느님은 그렇게 모세에게 당시의 말씀을 언약을 진리를 어떤 방식으로 주시냐 하면 당시의 이집트 사람 애굽 사람들은 왕족이나 제사장은 전부 사제(司祭)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이 그 문자를 갖고 무슨 뭐 의사소통을 한 게 아니라 성전이나 제단의 돌에다가 새겨서 신을 섬기는 행위로 사용했다 그랬잖아요.

하느님이 똑같이 그 모양 그대로 하느님이 돌에다 써서 인간에게 주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요? "~ 애굽, 아래 물, 너희들은 세상. 너희들은 신을 섬기겠다고 나에게 너희들이 그 문자, 법을 갖고 와서 나에게 올려 주네. 진리는 그게 아니라 하느님인 내가 피조물인 너희를 사랑으로 섬기는 거야. 그게 하느님 나라야. 그게 진리야", 그 안에다가 함축시켜 그림으로 보여 준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모양으로 확 뒤집어서 준 거예요..

여태까지 모세는 왕궁에서 어떤 신, 태양신, 라아신,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그 신을 섬기기 위해 돌에다 항상 뭘 새기는 그런 일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신에게 올려 드리고 신을 섬겼는데 시내 산에 올라갔더니 자기들을 건져 낸 그 하느님, 그 진짜 신은 당신이 자기 백성을 섬기기 위해 글을 써서 그들에게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법을 갖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그게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하느님이 당시의 말씀을 갖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 내려오는 게 그리스도교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느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고 하잖아요. 섬기는 게.... '말을 주다,' 라는 말이란 말이에요. 그게 디아코노스가 "나는 너에게 생명을 주러 온 거야. 말을 주러 온 거야. 너희들이 그걸 법으로 해석해서 오해해서 나를 섬기려고 그래? "성경 전체가 그 이야기란 말입니다.

 

하느님이 십계명에서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 같은 거 새기지 마라그랬죠? 근데 문자들이 당시에 다 뭐였어요? 그것들을 새겨 놓은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그걸 그 상을 버리기 시작한 거예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문자가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리고는 그 알레프(a)라는 문자가 이렇게 되어 버려요. 하늘로 뿔이 향해 있는 그런 모습.

그 소는 힘의 상징, 생존의 수단, 운송 에너지, 이런 거를 상징하는 거예요.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생명의 원동력. 오죽하면 이집트 사람들의 그 태양신 라아의 땅 적 현현(顯現)''였어요. 그들에게 소는 그러한 의미였단 말이에요. 우리를 살게 하는 거 생명의 근원. 이런 거. 그래서 맴피스에다가 살아있는 소를 이렇게 하나 갖다 놓고 튼실한 소 그리고는 금으로 그 소를 치장을 해서 그 앞에서 제사 지냈어요. 우리에게 풍요를 달라고 그러니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400년 넘게 애굽에서 본 신이 그거였거든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내가 너희를 끌고 나왔는데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아니?" 이랬더니 "그럼"요 그랬어요. "우리는 하느님을 섬깁니다. 무슨 소리예요."  "그거 한 번 만들어봐." 그랬더니 소를 만들었어요.

성경엔 금송아지라 되어 있지만 히브리 원어로 보면 금소에요. 그것도 살아있는 소, 그 살아있는 소에다가 귀걸이에 금을 뽑아서 그거로만 치장을 해 놓은 거예요. 그리고는 하느님이다, 라고 이렇게 불렀어요. 귀걸이로 그걸 만들었다는 건 당시 고대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귀걸이. 귀를 뚫는다, 라는 건 "나는 당신 것입니다. 난 당신에게 순종하겠습니다. 난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 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이걸 귀를 뚫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뭘 주냐면 성전, 세상이라는 것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베이트라는 게 성전, , 빌딩 이런 게 다 B로 시작하죠? 그 성전을 내가 너희에게 주고 그것에 나를 담아서 설명을 해 줄게. 너희들의 수준에 맞게... 그래서 성경이 베레쉬트, 베이트부터 시작해요. 그래 놓고 창세기 11절이 타우(ת완성)로 끝난다고요. 베이트()부터 시작해서 시작부터 타우(ת) 이게 끝이거든요.

문자로도 갇힐 수도 없는 그 하느님은 이 피조세계가 못 알아먹으니까 이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수준의 `그 하느님 엘로힘으로 무얼 창조했냐 하면.. ‘하아레츠 브에트 핫솨마임 에트 엘로힘 바라 베레쉬트’ ‘하늘과 땅을 세상을 위의 것과 아래 것으로 창조하여 이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가 창세기 11절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하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세상을 알고 세상을 통하여 성경을 알 수 있다니까요. 둘은 똑같이 다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이 세상 모든 게 다 성경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씨방이 생기고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익어나무가 열매가 익으면 나무가 놔 주죠. 바람에 떨어진 거 못 먹어요. 열매가 익으면 나무가 놔줘요.. 그러면 그 나무가 놔준 그것이 씨가 되어 또 다른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이렇게 된다니까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그들이 잉태를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그 아이를 갖고 있는 어머니의 몸이 변화되고 하는 이런 모습들이 전부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거예요.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교회가 만나서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예수라는 아들을 낳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어미의 변화를 통하여 보여준다니까요. 그러면 그게 말씀인 거예요. 아 저게 성경이구나. 나무와 꽃, 하늘과 바람, 물과 불, 바다, , 모든 게 다 진리를 성경을 말씀을 담고 있네요. 그래서 요한도 모든 건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거야라고 이야기 한 거예요.

아니 모세에게 문자를 줬는데 문자를 아는 이가 하나도 없네. 모세가 죽을 때까지 가르쳤는데 사람들이 그걸 못 알아먹었어요. 그러면 문자를 줬는데 못 알아먹으면 글을 모르면 어떻게 설명해 줘야 돼요? 얘들한테? 그려줘야 줘. 그려준 게 뭐에요? 진리를 그려준 게 성막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하느님이 "이리로 와 이거 그대로 가서 만들어줘." 보고 알아 라고... 말을 줬는데 모르니까 보고 알아라고 이거 만들어 줘. 그게 진리잖아요. 그죠? 영 단번에 드리는 제물로 드려지는 예수그리스도

그 제사를 상징하는 번제단부터 시작해서 차서 있게 티데미(배치, 진열하다) 하나하나 세워 주는 게 성전이잖아요. 설명해 주는 거예요. 그 나중에 휘장은 찢어지고 이 법궤는 뭐고 나중에는 이 법궤, 이 법궤가 갖고 있는 내용대로 시은좌. 이것이 여기에서 펼쳐질 것이고, 그건 예수의 육체의 찢어짐으로 될 것이고, 이걸 다 설명하는 게 성전이었잖아요. 근데 못 알아먹죠? 그렇게 성전으로 하느의 말씀을 줬는데 못 알아먹을 때 그림으로 주는 게 성전이죠?

하느님이 태초에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을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그걸 못 알아먹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준 게 뭐라고요? 천지 세상이란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성전이나 성경이나 이 세상이나 다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내용으로 갖고 있는 게 진리라는 거라니까요. 그것이 그 진리가 어떻게 줬다 구요? "하느님이 우리를 섬겨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줘야 내가 존재가 되고 그때 비로소 나는 하늘 적 존재가 되어 참 안식, 행복에 들어갈 수 있어 가 진리라는 거예요."

 

사서삼경, 주역이 64궤로 되어있는 그림이죠? 태극기에 '8' 이거 있잖아요. 건곤이감. 그게 뭐냐 하면 당시의 진리를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진리는 우리가 얘기하는 진리 아닙니다. 하여튼 모든 이들이 진리를 아는자들을 군자라고 신선이라고도 불러요. 산신령 이런 게 신선 아닙니다. 그 신선놀음이라고도 하는 거고 군자는 대로행 이다. 뭐 사군이충 이럴 때가 이게 신과 그 진리를 안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건데... 진리가 뭔지를 설명하는 경전은 아무것도 없어요. 성경 이외에는... 아무튼 그들의 수준에서 진리를 알았다고 하는 이들이 이것을 설명해 주려고 하는데... 글자를 아는 이들이 없네. 오죽하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겠어요.

그때 뭐로 설명해 줘야 돼요? 그 진리를 자기가 알았다고 하는 것들... 사서삼경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 게 주역이에요. 그래서 그거... 두 개 끊고 하나는 연결시키고, 두 개 끊고 아니면 여기 하나 여긴 두 개 여긴 하나... 이런 걸 갖고 그림으로 "이게 뭔 줄 알아? 이게 그거야. 이게 저거야." 이렇게 설명해 준 거예요..

그러니까 진리와 성전, 진리와 세상, 복음과 율법 이 관계 이게 주역과 그들이 갖고 있는 진리의 그 내용이었단 말이에요. 그것으로도 안 되면 직접 손에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해 줘요. . 도개걸윷모 뒷도? . 던져서 경우의 수가 나오면 "봤지? 이게 이거야." 라고 설명해 주는 거예요. 자기들이 아는 진리를 설명해 주기 위해 눈으로 보게 해 준거... 그래서 그걸 알게 되면 또 거둬들이는 거예요. 다시... 그냥 그대로 박아 두는 게 아니라...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요.

그렇게 하느님이 진리를 주어 성전을...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성전도 주고 성경도 주고 예수도 줬더니... 세상이 그걸 그것을 그 껍데기 그대로만 보고 섬겨버리는 거죠. 성전을 주고 진리를 알아 라고 제사 희생제사 같은 것들을 율법으로 줬더니 그걸로 예수의 영 단번의 제사로 가는 이는 하나도 없고 죽어라고 짐승만 잡아서 희생제사만 드리는 거예요. 예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 그 진리가 뭔지를 깨달으라고 줬더니... 그 예수의 하신 일만 그리워하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이렇게... 주역으로 진리를 알아 라고 줬더니 그걸로 점을 치고 있네. 이렇게 산통에 넣어 다 놓고... 그래서 이 산통 깨지면 큰일 나는 거예요.아 예수로 진리를 가르쳐 줄라고 그걸 줬더니 '놀이'를 하고 있네. 때 되면... 그러니까 진리에 대해선 인간들이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불교에도 그런 말이 있는 거예요. 불경을 만나면 네가 진리를 알았다면 그 진리를 찾고 있니? 진리를 알았다면 불경을 만나면 태우고 부처를 만나면 죽여라.” 이런 말이 있어요. 뭘 알고 한 말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불경의 가장 핵심적인 경전이 금강경하고 반야심경인데 금강경은 진리, 진리, 진리진리를 계속 얘기하는데, 진리가 돼야 돼. 진리를 알아야 돼. 진리가 중요해. 그러는데 진리가 뭔지 설명은 안 해주고 그냥 끝! 반야심경으로 넘어가면 뭐 진리, 진리 맨 나중에 건너가라 저기에 진리가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가 그거잖아요. 그리고 끝이에요. 어떻게 넘어가라는 거냐고

부처를 섬기라고 줬니? 네가 부처가 된 거잖아. 그러니까 그 부처 네가 그 부처가 됐으면 네가 만난 그 부처는 죽여. 네가 됐으면더 이상 네가 섬김의 대상으로 갖고 있는 그 부처는 그 부처 아니잖아.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현상계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문자적인 그 성경에만 갇혀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도덕과 윤리 이런 것들로 막 행해 보는 거예요. 잘 되지도 않으면서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경이나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이 세상 성전 이런 것을 통해서 진리를 알게 되면... 더 이상 우리는 그걸 섬기는 자가 아니라 ! 하느님이 나를 말씀으로 생명으로 섬기신 거구나.” 라고 깨닫게 되고 이렇게 하느님의 섬김을 받은 로 누리며 사는 거예요. 그냥그걸 찬양이라 하고 예배라고 그러는 거예요. 너무 좋아서 도대체 내가 뭔데하느님이 그렇게 나를 향하여 당신의 생명을 쏟아 부으셨을까이렇게요.

 

여러분, 십자가 예수 피 그것이 모든 것을 이룬 것 맞아요. 십자가가 이루었고 언약을 성취했고 예수가 율법을 완성하셨고 그 피가 우리를 덮어 우리를 구원한 게 맞아요. 그런데 그게 내 밖에서 그것들이 그렇게 해 놨으니까 그러면 이제 상관없이 지옥 보내든 천국 보내든 말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냥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이건 그걸 섬기는 거예요. 그게 했다니까 나는 상관없이 그냥 살아야지”. 이거요즘 십자가, 십자가!’ 하는 사람들이 다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죠. 천만의 말씀. 그게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내가 하느님과 하나 되는데 때까지 가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찬양이 나와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육체를 따라 걷지 않고이걸 자꾸 행하고이렇게 번역을 해 놔 갖고 뭘 열심히 행하여야 되나 보다고 이렇게 되는데육신을 따라 걷다이런 말이에요. ‘그 길을 가다이런 말이에요. ‘육신을 따라 그 길을 가지 않고 영을 따라 그 길을 가는 이들은 율법이 의로 완성이 된 거야.’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육신을 따라가는 이들이 내놓는 게 전부 육신의 열심, 육신의 행위 밖에 없죠.

그런데 육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영은 곧 생명이요. 말이라 그랬으니까하느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내 마음으로 갖게 되어 그 영을 따라 걷는 이들은 그 율법이 인간의 행함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율법이 로 완성된 자들이야.’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플레로오(확증, 완성하다), 라는 단어를 거기다 쓰는 거예요. ‘그들을 義人이라 그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율법과 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하여 아! 이게 하느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한 거구나.’ 라고 알게 되면 그 율법이 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오로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 이 율법을 통하여 의를 알게 되면 이 율법으로서의 율법은 법으로서 노모스(율법)로서의 율법은 폐해지는 거예요. 어떤 곳에서는 폐해졌다 없어졌다 그러고, 어떤 곳에서는 폐해지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도 하는 거란 말입니다.

말씀을 그저 소리로만 보고 표피적으로만 보고 문자적으로만 그렇게 보게 되면 전부 그 문자 율법에 갇히게 돼요. 그게 아래에 갇히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땅에 갇히는 사람들. 여러분이 성경이 그렇게 소리로 쓰였어요. 뜻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의미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너희들은 몰라. 야 모세에게 내가 30일 가르쳐서 너희들에게 평생 가르치려는데 아무도 못 알아들었잖아. 그럼 내가 성막 성전까지도 줘야 됐었다. 근데 끝까지 못 알아들어서 ....율법의 모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죽었잖아.” 이야기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는 자를 함께 보낼게. 내가 진리를 주며 가르치는 자를 함께 보낼게.”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 율법은 성경은 여러분에게 의 차원으로 읽혀져야 되는 거지. 여전히 구약 신약 다 마찬가지예요..

여전히 그게 여러분에게 어떤 법이 되고 도덕, 윤리의 요구 사항이 되어 버리면 여러분은 그 예수를 예수의 죽음을 안 믿는 분들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율법이 의가 안 된 거라니까요. 그들을 의인이라 안 그래요. 의인이 아니면 뭐에요? 죄인이에요. 그게진짜 죽을죄인.

 

성경에서 가장 빈번히 대조되는 게 영과 육이죠 영은 생명, 육은 사망이에요. 죄와 사망. 육이라는 것 자체가.... 죄라는 거 사망이라는 거 이걸 본질로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이 육이 뭘 하던 안 하던 얘는 사망, 죄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이 육이 우리에게서 만들어져서 당신에게 올려드리는 걸 절대 안 받으세요. 가치 있게 여기지를 않으세요. 우리 세상 속에서는 가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도 세상을 사는 이들이니까 그 여기서 잘 살려면 해야 돼요. 사람답게 살려면근데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목적지가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그 진리로 해석되지 않는 표피적인 성경만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그게 하느님의 요구사항인 것 마냥 이해를 하여 그걸 열심히 행하면 그게 自己義 라고 그래요. 심판의 근거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변화무쌍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그 외모지상주의의 이 세상 속에서 외모지상주의라는 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인 것인 양 모든 이들이 살잖아요. 그곳에서 내면 내적인 것 진리 지상주의로 바뀌어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진짜 내용이니까표피적인 세상의 변화나 세상의 가치라고 우기는 것들과는 무관하게 그 속에 담긴 진리로 기뻐하고 진리만을 가치 삼아 사는 게 성도인 거예요.

그러면 현상계를 자연인들과 다르게 볼 수 있어요. 꽃이 지는 게 왜 슬퍼요. 이 땅에 꽃을 도저히 피울 수 없는 무화과 같은 그런 저주받은 나무에 샤론의 꽃이 오셔서 붙어서 그 꽃이 떨어지므로 우리에게 씨가 생겼는데 ....안 그러면 씨가 생길 수 없어요. 무화과 때문에꺾꽂이로만 번식이 가능하거든요. 근데 그 꽃이 떨어짐으로 내가 하느님의 씨를 가진 아들이 되었다.‘ 라는 것을 아는, 읽을 수 있는 그들이 꽃을 떨어진 것을 보면 찬송을 하지. ~ 슬퍼 이렇게 되겠냐고.

마찬가지에요. 간단한 였지만 모든 진리 속에서 모든 이 현상계 속에서 그런 진리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들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니까요. 사람들이 다 이건 슬픔이요 고통이요 합의한 거라고 해서 나도 그걸 슬픔으로 고통으로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이에요. 잘 안 되지만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또 들려주시오. 하는 거예요. 자꾸 잊어버리니까아니지. 아니지. 여기에 속으면 안 되지 이 현상계는 그냥 헛것이지 이렇게현상계라는 것 자체가 허공이라니까요. 그냥빈 거라니까요.

근데 하느님이 어떤 법칙에 의해서 색깔도 띄고 딱딱하기도 하고 물렁하기도 하고 이런 걸 갖는 거 아니에요. 근데 그 말씀, 법칙이라는 게 빠지면 헛것이라니까요. 이게 다이 헛것들을 찢고 세우고 다듬고 이러면서 이왕이면 예쁘게 사세요. 근데 아니 근데 한번 생각을 해 보시란 말이에요. 뭐냐고 그게

그렇게 사도 요한의 말처럼 그 어떤 것도 말씀과 관계없이 지어진 게 없다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거라면 세상을 진리로 읽어내는 사람에게 그 껍데기 그 껍데기가 가진 가치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거기에 속지 마세요. 여러분, 그 이야기를 요한이 다른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3요한1, 1-4) 1 원로인 나는 친애하는 가이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2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3 교우 몇 사람이 와서 그대의 진실한 생활 곧 그대가 진리를 쫓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해 주어서 나는 무척 기뻤습니다. 4 내 자녀들이 진리를 쫓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이오! 너는 안 될 줄 알았는데 네가 됐다네. 어떤 이가 와서 너에 대해서 얘기하는 데 네가 가진 진리가 진짜라는 걸 내가 알았다. 그것보다 기쁜 게 어디 있니. 그 씨를 전해 준 아비로서 아들이 그 길을 간다는 데 그 진리 안에서 그렇게 간다는데 그것보다 기쁜 게 더 어디 있어. 가이오야. 고맙다. 내가 참 기쁘다.” 라고 편지를 쓴 게 요한 3서에요. 근데 거기에 네 영혼이 잘 된 것. 그렇게 잘 된 것처럼 그래 범사도 잘 되고 건강하기까지 해야 된다. 내가 원하는 거다.”이 말을 썼겠어요? 진리 얘기하는 그 사도가? 이게 3박자 축복이냐 구요. 이게여기에 영혼이 잘 됨, 凡事가 잘 됨, 康健 이거 세 개 중에 헬라어 원어의 젤 앞에 나온 건 범사가 잘 됨이에요.

헬라어는 가장 중요한 걸 맨 앞에 둔다, 그랬죠? 범사가 잘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들이 다 잘 되기를 바라는 거구나. 그래 갖고 그렇게 해 갖고 이거 뭐 카드나 이런 데 잘 써 주잖아요. 그렇게 이해를 하는 데 여기서 범사는 그런 말이 아니에요.

 

히브리어 코르(모든)’를 번역한 단어인데, 코르라는 단어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묵시 세계 것을 설명하기 위해 보이는 것으로 이 세상에 준 모든 것들 있죠? ‘이 모든이게 코르에요.

역사 하늘과 땅 이런 거 다, 호 코스모스 세상 이 모든 게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되다이게 성공, 일취월장, 승승장구 이런 말이 아니라 유도[G2137]라는 게 유[좋은] 라는 부정사에 호도스[] 길이에요. 호도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는 좋은, Good ‘네가 진짜 이 모든 그런 것이 너에게 그 좋은 진리로 읽혀졌으면 참 좋겠다. 내가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게 현상계가 다 진리로 읽혀지게 되면 유 호도스 그것으로 그 참 길, 참 진리로 읽혀지게 되면 그걸 강건이라고 하는 거야.’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읽혀지면 어떻게 돼요? 이게 푸쉬케가 영혼이라고 되어 있는데 육신이에요. 푸쉬케 氣息하는 푸쉬케. “이 푸쉬케가 역시 유도 좋은 그 진리의 길로 들어서면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경이 여러분 안에서 일 안 합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일하지.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짐처럼한다니까요. 그런 거 아니에요. 성경 말씀이 일 안 해요. 진리가 일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일을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만물 속에서 진리를 읽어내는 이들이 진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석가성불 산천초목 동시성불이네. 어디에나 진리가 있네. 이렇게

그래서 하느님도 다윗을 통해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주께는 흑암과 빛이 하나야. 일반이야 그러죠? 흑암과 빛이 어떻게 일반이에요? 그런데 다윗이 알았어요.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서 죄가 뭔지를 알고 나니까 에휴 이게 바로 아들의, 무죄한 아들의 죽음으로 살아나는 영생의 내용이었구나. 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는 다윗이 이야기하죠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당신에게는 빛도 어둠도 구별이 없습니다.’(시편 13912)

그냥 하나네요. 그걸 통하여 이걸 알면 그게 바로 선이네요. 선악과를 통하여 그게 뭔지 알면 그게 생명나무 열매네요. 다윗이그걸 알았다니까요. 그래서 성도는 律法을 먹고 하느님의 를 마음으로 낳는 이들인 거예요. 죄를 먹고 생명을 잉태하는 자들이 성도인 거예요. 그래서 모든 성도가 죄인으로 먼저 나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죄를 먹고 그걸 깨달아 생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그 죄가 그게 뭐가 나빠요. 선과 악. 이건 또 뭐에요? 선은 뭐고 악은 뭡니까? 우리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규정해 놓은 거 말고, 성경이 하느님이 이야기하는 선과 악이 뭐에요? 악이라는 걸 통해 선을 알게 되면 여러분 그걸 생명이라 그래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생명을 가르쳐 주기 위한 도구요 수단으로 우리에게 던져 준 게 선과 악이라는 선악과 열매라는 거에요. 그럼 그걸 알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은 거라 했으니까 거기에 얼마든지 안 묶일 수 있다 구요. 물론 그걸 모르고 그 악한 지경에 계속 머무르면 그걸로 지옥 갑니다.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걸로 선을 안 이들에게 있어서 악이 뭐 그렇게 나쁘냐고

아니 창세기에도 나오잖아요. 어둠을 나타내기 위해 빛이 나왔어요. 그는 어둠을 나타내게 빛이라는 빛의 내용이 어둠이네? 그럼 어둠과 빛은 하나네요. 그걸 알았으면 근데 그걸 모르고 어둠은 나쁜 거 빛은 좋은 거라고 이걸 노미조 해 가지고, 열심히 이걸 여러분의 육신으로 행해서 하다 보면 여러분이 그게 어둠 속에 있는 거예요. 그걸로 죽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그러는 거예요. 율법은 의로 아들에게서 완성됐어.’ 근데 그 아들은 아들 안에는 우리도 들어가 있잖아요. 우리 안에도 율법은 의로 완성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용서고 그게 자유지 뭐에요.

그리스도교의 핵심사항 은총, 그렇지그러니까 너는 내가 너에게 섬김을, 생명을 부어주지 않으면 너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럼 너는 누구를 의지해야 돼? ‘그럼 그걸 뭐라 그래? 사랑이라 그래.” 그러는 거예요. 하느님이우리에게 그거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근데 이 인간들이 자꾸 자기 것을 그냥 자기들이 합의해 놓은 가치 있는 거라는 것을 갖고, 그분이라고 할 수 없는 그분에게 갖다 들이대면서 이걸로 상을 달라고 하네. 자꾸그리고, 나를 가치 있는 존재로 취급해 달라고 그러네? 그게 종교 아닙니까? 그것이요. 그리스도교는 이런 거 아니란 말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불가능한 우리에게 그 사랑을 쏟아 부어 하늘 적 존재, 하느님과 연합시킨 하늘 적 존재로 만들어 내신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 사랑을 마음으로 가져 그 아버지 진짜 내 아버지 그 아버지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게 아버지가 제일 기뻐하는 거예요.

희생제사 아무리 드려봐야 하느님이 그거 안 받는다 그랬잖아요. 아니 예언자들이 이 땅에 와 갖고 왜 죽었어요. 전부 성전에 가서 막아서고 뭐라 그랬어요?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예레7:4-5) 라고 말하면서 덧붙인 말이 언제 하느님이 이런 제물, 이런 제사드리라 그랬니?” 그랬다니까요.

아니 근데 율법에 보면 제사드리라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예언자들은 와 갖고 그게 그 말이냐? 아니 예수님이 와서 그랬다니까요. “희생제사 드리지 말라 그랬잖아.” 언제? “엔 아르케. 태초에그래요.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이 희생제사 드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셨다는 건데언제 그랬냐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낸 거예요. 가르치는 자들을. 그게 그 말이 아니었어. 사실은이 제사를 통하여 예수라는 그분의 그 제사를 알아먹으라는 거였어.” 라고 하면서 이 제사 드리라고 한 거 아니잖아라고 했더니 다 죽여 버렸다니까요.

신약도 마찬가지에요. 하느님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행하고 독려하고 원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이며 집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는 거고 적어도 남자는 남편을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며그렇게 사는 사람 여기 하나라도 있어요? 여기요? 근데 그걸 전부 그냥 소리로 읽어 가지고 그걸 부담으로 갖게 되니까 그분이 미운 거예요. 무서운 거에요. 안 되는 걸 자꾸 하라 그러니까애써 해 보는 걸 하느님이 기특하게 여기실 것 같으세요? 아니라니까요. 그걸 통해 너는 나를 알라는 거에요. 진리가 뭔지를 알아 ,율법을 통하여 의가 뭔지를 알아, 그걸 예수가 완성했잖아. 그거 보고 그걸 깨달으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힘든 거 알아 그러나 내가 왜 너희들에게 이렇게 너희들의 인식 밖에서 너희를 쫓아가는 줄 알아? 너희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너희를 놔두는 거야. 그러나 내가 이렇게 너희를 쫓아가고 있다니까 아들아 내 백성아 너희는 내가 지킨다 하고 쫓아오고 있는 거예요. 하느님이 우리를

그걸 여러분은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하느님 안 쫓아왔으면 내가 어떻게 될뻔했나.. 세상 속에서 그거 겪으면서 그 하느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어 가면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거 모르고 그냥 뭘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들 하니까 아버지가 그거 원하지 않는다니까요. 그 아버지의 사랑, 그 하느님의 사랑 그게 내 마음에 들어와 나와 연합이 되면 내가 하늘 백성이 되는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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