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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사제에게 -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1 조회수1,294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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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오늘은 내가 사도들에게 가르친 기도 중 하나의 덕목, 즉 나의 '뜻'에 대해서 네게 말해 주고 싶다.

누구나 아는 하느님의 '뜻'이 있으니, 아무도 그것을 모를 수 없으며, 비그리스도인들까지 알고 있다. 이 뜻은 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이를 따르려고 마음을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 나의 뜻은 일반적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다만 선을 원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을 요구하시며, 따라서 어떤 이유로도 악을 원하시지 않는다. 악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목적이나 근거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덜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알고 있는 나의 뜻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기를 원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존중하며 축일을 거룩하게 지내기를 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축일을 모독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또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존중하며 정부나 관(官)의 법규 등에 복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의 이 뜻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또 한 가지 있는데, 이는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뜻에 따라 가정이나 교회나 일반 사회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너희가 기도에 매달릴 때에 알 수 있는 뜻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빛과 특별한 도움을 주시어, 각 사람이 올바르게 그 자신의 위치에 있도록 하신다. 그것은 말하자면 각자의 소명을 따르는 것이다.


끝으로 허용적인 뜻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나의 '선함'과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뜻이다.

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재앙이나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인 너희가 타락하여 하느님의 법과 자연법에 반항함으로써 그것을 자초할 따름이다. 나로서는 자비롭고 정의로운 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허락한다. 거기에서 영혼들을 위한 영적 선익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흔히, 고통과 불행으로 시험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들면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무자비한 분이라고 비난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행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고 있는데다, 내가 그 모든 고통을 월등 능가하는 선익을 거기에서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제 탓으로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하물며, 내게 봉헌한 영혼들이 인간 구원에 꼭 필요한 이 문제에 대해서 빛을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을 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중대한 잘못이다. 하느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앉히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은총의 충동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흔한 죄인데 이는 하느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 자신의 소명과 다른 사람의 소명을 거부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하느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죄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 시민 사회에서 각 구성원이 질서 있는 삶을 영위하여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십계명과 다른 규정들을 주었고,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인 하느님께 사람들이 날마다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 것이다.


기묘한 종합


'주님의 기도'에는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세상의 어떤 선생도 흉내낼 수 없는 기묘하고 단순한 종합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들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정은 어떠하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던 시대(창세 11,1-9 참조 - 역주)에도 이 정도로 심한 혼란은 없었다. 어둠이 땅을 내리덮었고, 사람들은 이제 서로 말귀를 알아듣지도 못하게 되었다.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자만이 오늘날처럼 한정없이 커진 것은 지난 어느 세기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가소롭고 유치한 교만으로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이혼, 낙태, 비정상적인 동거, 사실상의 일부다처 등의 범죄를 합법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악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려고 든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모르기에 그 자신을 모르고 부정하기도 한다. 인간을 이렇게 이끌어 온 것은 온 세상에 만연한 이론적 실천적 무신론이다.

인간은 그 자신의 파괴를 위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자만과 교만, 하느님 거부가 인간 자신을 휩쓸어 갈 붕괴를 초래하는 것이다.

아들아, 너는 누구에게든지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12월 3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기도는 어둠을 꿰뚫어 쪼개는 번개이다


오늘 아침에는 특히 기도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다.

기도는 하느님께로부터 무엇이든지 얻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그지없이 약한 사람들마저 원수들이 가하는 모든 공격에 끄덕없을 정도로 강하게 만드는 놀라운 무기이다. 지혜롭게 사용하면 언제나 원수를 능가하는 전투원이 되게 하는 무기인 것이다.

이는 성인들이 항구하게 사용한 무기이며, 이 무기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인 나도 '복음'에서 충분히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기도는 내가 "안전과 보호의 보증"으로 교회에 맡긴 무기이다. 이를 겸손과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사용한다면, 즉 영적으로 온전히 건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사용한다면, 불패의 확실한 무기인 것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온전히 건강한 상태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은총은 '우정의 계약"에 의하여 사람을 하느님과 결합시키고, 개별적인 승리와 최종적인 승리를 얻는데에 필수적인 효과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 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허다한 그늘과 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찬란한 광선 - 멈춰 세울 수 없는 화살처럼, 그 어둠을 꿰뚫어 쪼개는 번개이다. 원수의 건방진 콧대를 꺾어 달아나게 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멸망할 것이다!


아들아, 교회는 현재 불안정한 처지에 있다. 멸망 전야의 대제국의 처지와 흡사하다. 그런데 더욱 괴이한 것은 인류가 현 시기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미 진행 중인 패배를 차단하면서 전반적인 파멸에서 목숨을 건지게 할 확실한 무기를 움켜쥐고 정신 차려 분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들아, 한 번 더 기억을 더듬어 보아라. 교회는 라살레트와 루르드와 파티마 및 다른 여러 곳에 발현하신 내 어머니의 다정하면서도 권위있는 호소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께서는 교회와 세상을 준비시켜 정화의 가공할 재앙에서 건져 주시려고 묵주를 가리키면서 단순하게 이렇게 호소하셨던 것이다 : "회개하여라. 기도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멸망할 것이다!"

내 어머니의 거듭된 호소에 대해서 세상은 어떻게 응답했느냐? 또 내 교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서 소수만이, 극소수만이 이 하늘의 호소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과 이 불행한 세대의 사람들은 교만과 오만으로 말미암아 음흉한 지옥 세력의 함정에 떨어져서, 모두의 어머니이신 분의 말씀을 믿으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과 '자비'가 가득한 이 '천상 엄마'의 말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니 간절히 기대한 응답을, 즉 회개와 기도와 통회의 응답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줄곧 하느님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리 떼어놓고, 교회를 갈수록 더 깊이 물질주의에 빠져들게 해서 그리스도교회답지 않게 변질시키며, 교회의 위대한 신적 사명을 망각하게 하려고 온갖 짓을 다했을 뿐이다.


오, 개인이건 집단이건 하느님의 자비로 여러 번 구함을 받고서도 사람은 얼마나 번번히 그것을 잊고 마는 경향이 있는지!

예컨데, 레판토 해전(1571년 10월 7일; 교황 성 비오 5세는 이 승리 기념일을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로 제정하였다. - 역주)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교 문명과 더불어 이슬람교 세력(인 터키군)의 손에서 구출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언제나 오로지 기도의 힘에서 온 것이다!


믿는 사람은 노아처럼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계에는 '거룩한 묵주 기도'와 일반적인 기도의 능력을 기억하게 하는 기묘한 성지와 훌륭한 성당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는 물질주의란 것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잊게 하고, 언제나 갖가지 모양으로 위장하여 사람 안에 있는 신앙을 말살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찬 호소에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게 하려고 기를 써 왔다.

이 20세기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현실에 잠겨서 모든 현실의 근본이요 기초인 오직 하나의 위대한 '실재' 곧 하느님을 잊게 되었다. 이 정도에 이를 만큼 사탄이 끈덕지게 술수를 부린 것이다.


아들아, 그러나 교회는 죽지 않을 것이다. 존속할 것이다. 바로 소수의 착한 사람들의 기도의 힘, 지옥의 해로운 간교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바치는 겸손한 기도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이미 표시가 되어 있고, 노아가 아들딸과 함께 방주에서 구원된 것처럼 구원을 얻을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분별이 없고 눈이 어두워 방주를 놀림감으로 삼았지만 말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살아 있는 믿음과 겸손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당신께 기도를 바쳐 올리는 이들을 절대로 멀리하지 않으신다.

아들아, 지금은 이쯤 해 두고, 곧 다시 시작하자. 이제, 네게 강복한다. 너와 함께 내 메시지 전파에 협력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한다.

(1978년 11월 2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기도에 대한 권고


내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걸으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내 성직자들이 심히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몸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기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쇠약해진 몸으로는 그 몸에 타격을 가하여 조만간에 죽이려고 드는 원수와 맞붙어 싸울 수가 없다.

기름이 떨어진 등불은 꺼지고 만다. 믿음이라는 등불도 기름이 공급되지 않으면 꺼지고 만다. 그러면 영혼 속에 어둠이, 밤이 엄습한다.

가느다란 풀잎 하나, 꽃 한 송이도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내 죽어 버린다. 시든 풀이란 어떤 것이냐? 싱그럽고 향기로운 꽃도 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누렇게 말라 버린 잎사귀들과 가늘고 부서지기 쉬운 줄기만 남을 뿐이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기도를 하지 않는 사제의 영혼은? 이는 더없이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영혼일 따름이니, 어둠 속에 잠겨 길을 잃고 정신적 사욕이나 육욕에, 혹은 흔히 그 둘 모두에 가차없이 휩쓸려 가고 만다.

내적 생활의 결여로 신앙 위기를 겪는 사제의 영혼은 어떠하겠느냐? 사탄의 비웃음과 놀림감이 아니겠느냐? 사탄은 그 영혼에 증오와 질투를 퍼부으면서도 온갖 역겨운 것을 더덕더덕 칠하여 노예로 삼는다. 사탄이 독한 거품을 부글거리며 필사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 영혼이 내가 마음대로 쓰라고 준 효과적인 방어 수단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산소


첫째 방어 수단은 기도이다.

- 기도는 영혼을 하느님께까지 올라가게 한다.

-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 기도는 영혼의 산소이다.

- 기도는 영혼을 친밀하고 심오하게 하느님과 결합시킨다.


영혼이 나와 결합해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영혼이 내게 굳건히 붙어 있다면, 누가 그 영혼을 내 성심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느냐?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상한 과일과 같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결국 땅에 떨어지고, 거름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아들인 나는 곡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밤낮으로 기도하였다. 가르치는 것보다 모범을 보여 주기를 앞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및 사제들에게는 나의 그 모범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먹기를 거부하면 육체적인 기력이 감소하기 마련이니, 그것을 하느님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기도하기를 거부하여 영적인 활기가 소진되고 마는 것도 하느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세속의 요란한 파도 속에서 배가 난파한 사람과 같다. 헤엄쳐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겠느냐?

나의 기도 권고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매우 많은 사제들 -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열에 들뜬 듯한 그들의 활동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지 않고 따라서 아무 결실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실은 고사하고 흔히 정반대의 결과를 내곤하는데 말이다.

그들은 이제 준성사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언제나 그렇듯이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준성사를 활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악마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살아 있는 영적 실제의 바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불을 붙여야 한다!


아들아, 그들이 믿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신문잡지를 신뢰하면서 이 샘에서 솟는 물을 게걸스럽게 들이킨다.

교회 생활을 조용히 되돌아보면, 단지 한 번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다. 순교자들 (게다가 순교자는 수없이 많다) 역시 기도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충실과 신앙에 대한 충실을 피로써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사제들은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얼마나 심한 맹목이냐! 얼마나 캄캄한 밤이냐! 그들은 '빛'과 '생명'을 거부했고 지금도 거부하고 있다. 이 빛과 생명을 영혼들에게 가져다주게 하려고 내가 뽑은 사람들이건만!


아들아, 나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거부한다. 나는 '생명'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꺼버린다.

나는 '불'이다. 그러나 단지 타오르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그래서 마을이건 도시건 사람들이 붙인 숱한 불빛이 빛나기를 바란다. 이러한 내 '뜻'을 거역하는 목자들은 불행하다!


예컨데, 네게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예수 성체의 벗들'을 원한다.

내가 너를 뽑은 것은 큰일을 시키기 위함이니, 그것은 내 말을 사도들의 후계자들과 사제들 및 신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이는 자기 자신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그들은 나를 믿지 않았고, 내 어머니도 믿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다수는 그들의 맹목을 고집할 것이다. 그러나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1975년 11월 20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경건함이라는 덕행


지상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독특한 표징과 수단을 활용하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창조주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 이것이 '하느님 섭리'의 명령이다.

그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수단이나 동일한 목적에 응한다.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그런 표징이 없어도 너희와 관계를 맺으실 수 있다.


너희는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일컬어 "경건한 행위"라고 한다. 경건함은 아주 중요한 덕행이다. 이 덕행으로 영혼들이 창조주께로 올라가서 그분께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며, 모든 사람과 일체 만물이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지당한 찬미가 안에서 모든 피조물의 목소리와 하나 되고,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우주적인 합창과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건함은 모든 영혼의 덕행이 되어야 한다. 자기 내면의 경건함을 파괴하는 자들은 불행하다! 그런 이들은 자신 속의 신적인 빛을 모조리 꺼버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쉽사리 사탄의 먹이가 되고 만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누구에게 줄 수 없고 받을 수도 없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과 같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앗기고 사탄의 종살이를 하도록 선고받은 사람이니, 사탄의 손아귀 안에서 멸망의 도구가 되고 만다.


기도를 하지 않게 된 사제


여기에 이 근본적인 덕행의 중요성이 있다. 그래서 무신론은 수없이 많은 영혼들 속에서 이 덕행을 파괴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신론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 속에서, 심지어 많은 사제와 남녀 수도자들의 영혼 속에서 이 덕행을 파괴했다고 자랑하게 되었는데, 딴은 자랑할 만도 하다. 그들은 부조리한 물질 문명으로 눈이 멀어서, 사목 활동 전체의 핵심인 내적 생활에 양식을 대는 원천을 바싹 말려 버렸으니 말이다. 경건하지 않은 영혼들은 메마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교회가 정원에서 사막으로 바뀌고 만다.


기도를 하지 않게 된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무일도도 묵주 기도도 바치지 않고, 묵상도 하지 않는다. 묵주기도는 "옛 시대에나 맞는 터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은 하지 않고 그 대신에 라디오, 텔레비전, 노래, (신문 잡지) 읽기, 혹은 입에 담지 않는 편이 나은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불이 꺼져 버렸으니, 붕괴 과정이 거의 완료된 상태에 있는 셈이다.

영혼에서 하느님을 배제하면, 하느님 자리에 허무맹랑한 사회 진보나 수상쩍은 사회 정의라는 것을 대신 앉히게 되는데, 이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진보는, 하물며 사회 정의는 참된 자유와 하느님의 도움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눈을 떠야 한다


아들아, 내 지상 대리자는 내 신비체의 윤리적 붕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으며,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영적인 풍성함의 원천인 살아있는 믿음, 진정한 경건함을 촉구하는 그의 수많은 호소에 대해 상당수의 사제들이, 또 일부 주교들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교황을 무시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요, 교황을 따르지 않는 것은 나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무감각 상태를 흔들어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 서둘러 눈을 뜨고 너희를 위협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자코 있다가 잿더미에 깔려 묻힐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하여라!

(1975년 12월 12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의 복음


내 말은 생명의 말이다. 내가 영원한 것처럼 영원한 말이다. 내 말은 진리이기에 변할 수가 없다. 진리는 나와 마찬가지로 불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사제들은 나의 '복음'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내 말을 직접 길러 목마름을 풀지 않고, 더러워진 개울물을 긷기를 더 좋아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 깊은 데를 부식(腐蝕)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신앙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고 마음의 내적 파괴가 초래된다.

신자들도 물론 책임이 있지만, 내게 자기를 봉헌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그들 때문에 더럽혀진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그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교적 완성에로 인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헤아릴 수 없는 영적 가치를 지닌 보물이며 비할 데 없는 신적 권능의 보물인 나의 '복음'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확신하려 들지 않았다!

무엇 때문이냐고? 그들은 악마의 유혹에, 그 오래된 '뱀'(묵시 12,9 - 역주)의 거듭된 공격에 넘어가서,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영혼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


현대 사목의 여러 부정적인 면 가운데 하나는 인쇄된 지면에서 독을 내뿜는 책이나 신문잡지로 인한 감염이다. 많은 사제들이 그런 것으로부터 오염된 양식을 수거하여 사람들이 먹도록 차려 주고 있다.

그들의 책임은 아주 무겁다. 병이 만성화되고 있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전되었다. 그것은 전염성이 강한 양성 나병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그런 성직자들은, 항상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지옥 세력은 결코 기가 꺾여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이 세력은 암벽에 부딪쳐 철썩대며 부서지는 파도와 같이 왕복운동을 거듭하고 있건마는!

그런 사제들은 사랑과 총애의 보증인 그들의 소명이 얼마나 고상한 것인지를, 그리고 그 소명에 결부되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이는 영혼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즉, 영혼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느냐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떨어지느냐 하는 것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정의의 문제


아들아, 너는 그들이 나를 완강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여기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 사제들에게 말해 주어라.

나의 완강함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내 교회 안에 있는 무질서가 문제이다. 평상시에는 사랑으로 성취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일이 너희가 내적 위기 속에 있을 때에는 견딜 수 없도록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게다가, 아들아, 내 성직자들이 복음을 묵상한다면 중요한 이유인 달란트의 비유(마태 15,14-30 - 역주)를 이해했을 터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책임지고 다섯 달란트를 더 벌어 돌려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벌어 돌려주어야 한다.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더 벌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그러나 받은 달란트를 포도밭을 가꾸는 일에 쓰지 않고 오히려 포도밭을 황폐하게 만든 결과 원금을 월등 상회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면 그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니 이는 내 완강함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인 나는 정의이다. 그것도 완전한 정의이다.


많은 사제들은 잘못된 성사 집전과 유해한 학교 교육, 줄곧 자행되는 악한 표양이 영혼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해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성찰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인 내 말을 묵상하지도 않는다. 아들아, 얼마나 가당찮은 어둠이며 큰 잘못이냐!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1976년 7월 1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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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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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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