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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강론] 새 추기경 서임 공개 추기경회의 강론[2020. 11월 28일 토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2 조회수1,140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3.index.html#homilies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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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1128일 토요일(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요한 묵시록 22,1-7

화답송 : 시편 95(94),1-2.3-5.6-7ㄱㄴㄷ(◎ 1코린 16,22ㄴ과 묵시 22,20)

복음 : 루카 복음 21,34-36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2421&gomonth=2020-11-28&missatype=DA

                                    * 당일 추기경회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 복음 10,32-4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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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추기경 서임 공개 추기경회의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0 1128일 토요일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은 바로 마르코 복음 사가에 이야기 된 장면을 위한 배경입니다(마르코 복음 10,32-45). 그것이 항상 교회의 여정을 위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인생과 역사의 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여행되어 지고 그분의 파스카 신비로 이어지는 그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역사의 부분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오늘이지만 또한 언제나 우리 여정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 구절은 자주 새 추기경들의 탄생을 위한 추기경회의에 함께 해 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한 도로 표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힘이시고 그 힘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선교 임무에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방금 들은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르코는 길 위에서 제자들이 놀라워하고” “두려워하였(마르코 복음 10, 32)고 강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그들 앞에 닥칠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앞에 닥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몇 번이나 그것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그들에게 말씀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셨고 또한 그분께서는 그것에 무관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친구들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그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십니다. 열두 사도들의 구체적인 경우에도 그분께서는 다가올 시련에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지금과 특히 나중에 그분께서 더 이상 그들 가운에 계시지 않을 때에 그들이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들이 항상 그분의 길 위해서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당신 제자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 힘드셨는데, 예수님께서는 몇 번이고열두 사도들을 부르셨고 그리고 당신께 닥칠 일들을”(마르코 복음 10, 32)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방금 직접 그렇게 들었습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알리심. 이것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가시는 입니다. 주님의 종이 가는 길. 그분 당신 자신이 이신 만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 길과 동일시하십니다. “나는 길이요”(요한 복음 14,6),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그러나 사실은 모든 사도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들에게 닥칠 운명을 계시하실 수 있게 합니다 그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예루살렘에서 그분께 일어날 일을 다시 한번 설명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십니다, 마치 이것이 분명하냐?”라고 말씀하시는 듯이.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그들을 앞서 걸으시면서 당신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십니다. 두 명의 그분 제자들이 다른 이들에서 떨어져 다가옵니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와 그분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코 복음 10, 37). 그들은 다른 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길이 아닌 다른 길. 어쩌면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그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는사람들의 길. 성 바오로가 말한 대로 그들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고 그리스도의 것은 추구하지 않습니다.   (필리피서 2, 21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목자들에 대한 그의 훌륭한 설교에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No.46). 우리가 항상 성무일도 독서기도에서 유익함을 얻는 설교.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속상해 하시거나 화내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인내는 정말로 무한합니다, 또한 우리에 대한 인내도 그러합니다. 그분께서는 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마르코 복음 10,38). 어떤 면에서 그분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한편으로 동시에 그들을 이렇게 나무라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길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바로 이 직후에 다른 열 제자가 제베대오의 아들들에 대한 화난 반응으로 그들 전체가 길에서 벗어 나는 유혹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보여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 위에 머물러 있도록 깊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멀리 떨어져 헤맬 수 있고 그리고 그래서 우리를 길에서 벗어나게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제의 삶에서 너무나 많은 종류의 부패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추기경 옷의 진홍색, 그것은 피의 색깔인데 세속적인 영에게는 세상 명성의 색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여러분은 더 이상 그분의 백성과 가까운 목자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당신을  예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단 한번 그런 방식으로 느끼면 여러분은 이미 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복음의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그분 제자들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인상 깊게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시고 그리고 그분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 에 계십니다, 반면 그들은 길 밖에 있습니다. 만날 수 없는 두 길. 오로지 주님만이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길 잃을 위험을 안고 길에서 벗어난 당신의 친구들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 중에 계신 것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이 쪼개어지고 그분의 피가 흘려지도록 놓아두실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에서 부활하실 것이고 성령의 선물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변모시킬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결국 그들을 당신의 길 위로 되돌려 놓으실 것입니다.

 

성 마르코 마태오와 루카처럼 는 이 이야기를 그의 복음에 포함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시대에서 교회에게 꼭 필요한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 사도들이 나쁘게 떨어져 나갔지만 이 구절은 성경의 정전에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그리고 우리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또한 우리 시대에도 그것은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교황과 추기경들도 항상 이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진 우리 자신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날카롭게 갈린 칼입니다. 그것은 베고, 그것은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우리를 치유하고 해방시키고 회심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회심은 바로 이것-우리가 길에서 벗어난 있는 상태에서 하느님 길 위의 여정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이 은총을 주소서, 이제와 영원히.  

 

 (번역 2020. 12. 12. 토요일 12:40)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1128_omelia-concistoro.html

강론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11/28/concistoro-nuovicardinal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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