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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제에게 - 사랑의 길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3 조회수1,187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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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사랑의 길


형제여, 나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입니다.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요. 형제는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를 암시했고, 하느님께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 즉 사랑의 길을 발견한 공로를 내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 길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 것입니다. 사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가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그길이 내게는 가장 힘든 길이라기보다는 특히 가장 기묘한 길로 여겨졌습니다. 사랑이신 분과 사랑의 경쟁을 하는 길이니까요.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는 이 확언을 말 그대로가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의지의 현동(現動)이니) 형제가 온전히 신실한 뜻을 기울인다면 형제와 형제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분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일을 그래도 좀 표현해 보려니, 쉽지가 않군요. 사랑이 형제의 마음에서 그분의 성심을 향해 올라가면 - 형제가 분명히 그렇게 하고 있듯이 - 그분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데, 이 사랑은 형제의 마음을 감싸며 이 마음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형제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로우신 성심 안으로 들어가서 사라집니다. 그분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이 서로 섞여 오직 하나의 큰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성냥불을 용광로의 큰 불길에 던져 넣으면 오직 하나의 큰 불길이 되는 것과 흡사합니다.


인간의 지상 여정은 하나의 시련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가 인간의 지상 여정은 아무도 모면할 수 없는 하나의 시련이라는 생각과 누구든지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으려면 이 시련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장하고 또 널리 퍼뜨리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이 시련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의 시련이지만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믿음의 시련입니다. (이 지상 여정은) 믿음을 시험 받는 시험대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계시된 진리와 신비를 믿는 것이고, 그것도 굳건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뭇 민족의 '스승'이요 '지도자'요 '빛'으로 세우신 교회를 '구원의 성사'로 믿고, 계시된 하느님의 권위를 믿으며, 스스로 그르칠 수도 없고 우리를 속이실 수도 없는 '하느님의 말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고, 불변적이고 절대로 바뀔 수 없는 하느님의 '영원한 법'을 믿어야 합니다. 이 법을 손상시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분노를 끌어당기니까요.


둘째 시련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만물과 만인의 지고한 주님이며 주재자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 따라서 그분의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시련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니, 바로 사랑에 대한 시련입니다.

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의 생각에는 이 시련 안에 위의 두 시련이 포함합니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사랑이신 분의 사랑에 가장 일치하는 사랑을 증거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증거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렇게 이해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세례 때에 우리는 사랑이신 분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앞의 두 시련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니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때에 성화 은총을 받습니다. 이 은총은 서로 불가분적인 덕행인 믿음과 바람과 사랑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빛나는 현실입니다. 세례 때에 우리는 사랑이신 분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사랑의 길이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깝고 안전한 길입니다.


옷타비오 형제여, 사랑이신 그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세상의 위선과 허영과 유혹과 계략의 암시에 걸려 들지 마십시오! 나는 어릴 적에도 인생은 밤 동안 피었다가 한낮에 시들어 떨어지는 꽃과 같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습니다.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십시오! 현세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지금,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가장 완전하고 더할 나위 없는 기쁨 속에서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이신 분을 그대에게 모셔 오듯이 그대를 그분께로 데려갑니다. 그러한 만남에서 그대와 그대들과 영혼들을 위해 기묘하고 찬란한 결과들이 솟아납니다. 그분께서 그대를 위해 당신 자신을 소진시키신 것과 같이 형제도 그분을 위해 형제 자신을 온전히 태울 때까지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인가 우리의 진정하고 기묘한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에 의하여,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이신 그분 안에 하나 되어 있습시다.

하느님께서 이제와 영원히 형제에게 강복하시고, 형제와 함께 형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1978년 6월 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깨어 기도하시오"


옷타비오 형제여, 나는 가브리엘 대천사요. 하느님께서 그대를 돌보는 일을 나에게 맡기셨소.

지금까지 천상에서 말을 건넨 모든 이는 그대에게 신중을, 크나큰 신중을 권고한 바 있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온전히 의탁할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소.


그대는 현재 싸움의 몇 가지 면모만 보고 있지만 - 그 전모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 보게 될 것이오 - 복잡하게 뒤얽힌 이 싸움의 와중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용의주도한 신중함이오. 교활하고 간악한 원수가 그대의 무경험과 다른 이들의 미숙을 이용하려고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오.

그대는, 아니 그대들은 여러 해 전부터 싸워 왔소. 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탓으로 그토록 여러 차례 불행과 패배를 기록했던 것이오! 말을 아껴야 하오. 단련을 통해 믿음이 확고해진 사람들과 더불어서만 말하시오.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말이오. 악마는 그대들의 과오에서 언제나 이득을 끌어내오.

그대들이 말을 해야 할 때에는 초소에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오. 훌륭한 전략가는 적을 조심하기 마련이오. 따라서 그가 자기 참모들을 불러 모을 때면, 무엇보다도 먼저 보초들을 세우는 조심성부터 보이는 것이오. 이런 이유로 (바오로) 사도와 다른 많은 이들이 거듭거듭 "조심하십시오."(사도 13,40; 갈라 5,15 - 역주)하고 말했던 것이오.

그리고 이 조심성에 매우 큰 겸손의 덕행을 더하시오. 겸손은 그대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주님만을 온전히,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는 것이오. 주님께서는 무한하신 자비로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한층 더 많은 것을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장차도 주실 것이오. 이는 그대들이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와 완전한 맡김의 정신으로 나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오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사랑하시고, 그것도 이만저만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의심할 이유가 없소. 그대들을 택하신 분은 주님이시고, 그대들이 충실히 따라야 할 분도 주님이시며, (그대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니 말이오. 그러니 그대들의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오.


하느님께서 아무리 크고 힘있고 중요한 것도 아무것도 아니니....


옷타비오 형제여, 그대가 확신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소. 그것은 예수님께서 강생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 신비로 교회에 생명을 주신 이후 어느 날, 그분께서 택하신 사람들, 즉 사도들에게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킬 위대한 사명을 맡기시고 이 사명 수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이오 : "너희는 가서 세례를 베풀고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마르 16,15-18 참조 - 역주) 사도들이 없어서는 안될 선물과 수단들을 풍성히 받고 빈틈없이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 위대하고 숭고한 사명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었겠소? 구원자이시며 거룩한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오. 지금도 그대들이 해야 할 것은 황폐해진 교회를 재건하는 일이오. 사도들 앞에는 온 세상이 대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소.


형제여, 나는 그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소. 그대들이 받은 사명과 이를 수행할 자격이 없는 부당한 도구들 사이에 엄청난 불균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소? 이는 그대들에 관한 한 과연 사실이지만, 하느님에 관한 한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시간과 공간을, 즉 끝이 있고 한계가 있는 일체를 초월하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안에 시공을 지니고 계시니, 하느님께는 천 년도 한 시간만 못하고, 아무리 크고 힘있고 중요한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니 말이오. 그분께서는 원하시는 사람을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대로 택하시오. 그리고 사람에게서 오직 한 가지만을 기다리실 뿐이오.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예" 혹은 "아니오"로 응답하는 것 말이오. 그분께서는 사람을 , 당신 손으로 지음하신 이 작품을 존중하시기에,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며 기다리신다오. 사람의 응답이 "예"일 때에는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 시작되고, 이를 통하여 그분께서 당신 사랑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오.


구속의 목적은 영혼들을 사탄의 종살이와 그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것


옷타비오 형제여, 그대들은 아낌없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끊임없이 "예" 라고 대답하시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늘 그렇게 하신 것과 같이, "예",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이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그분께서는 사실 그것만을 요구하실 뿐이오. 그 나머지는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책임져 주시오. 그분의 거룩한 뜻에 온전히 맡기는 것 - 여기에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있는 것이오.


옷타비오 형제여, 그대들이 알다시피, 생각은 행동보다 앞서는 것이 보통이오. 그러므로 그대들은 단순하고 분명한 지니고 있어야 하고, 이 생각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하오. 따라서 나는 그대들이 D.P.와 더불어 이미 전해 받은 생각들과 앞으로 받게 될 생각들을 종이에 기록하고, 그 생각들에 의해서 그대들의 행동 계획을 발전시키며 수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대들의 계획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하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시오. 그러면 그 나머지는 곁들여 받게 될 것이오(마태 6,33 참조 - 역주). 그대들은 인간의 세상살이는 싸움이라는 것, 구속의 목적은 영혼들을 사탄의 종살이와 그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등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하오.

이 생각들을 정리하고, 이를 말과 모범으로 삶에 옮기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황폐해진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될 것이오.

옷타비오 신부, 용기를 내시오! 신뢰와 조심과 맡김의 정신으로 정진하시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그대들에게 강복하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비오!

(1978년 6월 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내적인 용기


육신의 모든 지체가 다 중요한 것과 같이, 모든 덕행도 다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하면 덜 중요한 것도 있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내적인 용기라는 덕행이다. 이는 한 평생 악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덕행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진리를 교회의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소홀히, 피상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오히려 특별한 연구 주제로 삼아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를 널리 알리고 원수의 온갖 계략으로부터 지켜야 할 일이다.


어린이가 착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인 하느님께 충실히 남아 있고자 할 때에 영적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 자각에 따라 그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용기와 덕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실제적인 전투관을 기르도록 그를 도와줌으로써 지상 생활의 주된 목적인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싸움에 필수적인 무기들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무기들을 써야 효과적인지도 일러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병사들에게 무기 사용법을 한층 더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 무기들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병사들을 훈련한다. 내 교회에도 여기에 필요한 조직이 없지 않지만, 사목의 중심인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 중심 문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부차적인 배경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이 결국 제 영혼을 잃고 만다면, 여타 모든 것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구원을 좌우하는 싸움


인생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어려움을 만나게 된 어린이들을 기르며 가르치기 위해서는 마땅히 구세사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창조와 타락,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 개입한 하느님의 '말씀'인 나의 강생과 수난과 죽음, 구속, 그리고 창으로 찔린 내 성심에서 나온 신비체이다.

인류의 척추를 이루는 이 사건들을 내가 이토록 강조하는 까닭이 무었이겠느냐? 그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이 이 역사적 실재들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싸움을 면할 수 없으니,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서 구원을 얻거나 영벌을 받게 된다.


세상의 그 누구도 본성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우세한 원수와 과감히 맞설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려면 너희가 잘 아는 대가를 치르고 내가 마음을 써서 얻어 준 적절한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가 세상에 교회를 세우고자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교회의 목적은 하느님께 자녀들을 낳아 드릴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닌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그들을 기르고 양육하며 보호하는데 있다. 교회는 교계 제도에 속하는 성직자들과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들로 구성되기에, 부모와 교육자와 사제들은 사람들에게 일생 동안 언제나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무기를 사용하여 악의 화신인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듣게 해야 하고, 그런 의미의 이 사목에 만전을 기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이 싸움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다른 것들은 너희 삶의 궁극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쓰이는 정도에 따라서만 그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을 병사로, 전투원으로 삼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굳건한 믿음과 힘찬 바람과 강렬한 사랑으로 무장이 잘되어 있다면, 마치 골리앗을 쳐 이긴 다윗처럼 승리를 확신하면서 원수와 과감히 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릇된 교육


아들아, 말해 보아라.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이른바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견해라는 것이 네가 보기에 올바른 것으로 생각되느냐?

그들은 자녀들을 처음에는 꼭두각시로 만들고, 나중에는 우상으로, 결국은 건방진 폭군으로 만든다.

자녀의 요구라면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부모들이니, 아주 어릴 때부터 보채는 대로 다 들어주고, 원하는 대로 다 채워 준다. 그래서 자녀들의 욕구가 나날이 커진다. 그들은 말이나 행동이나 내키는 대로 하고,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경험한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학생 가운데도 벌써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이 있다.

그렇듯 아이들에게 포기나 희생을 요구한 적이 결코 없었으니, 꽃봉오리들이 삶의 꽃을 미처 피우기도 전에 이미 악습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해도 경악할 건더기도 없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들 가운데는 스스로를 착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끔씩 고해하고, 그러면 내 사제들은 부드럽기 짝이 없는 친절을 베풀면서 죄를 용서해 준다. 그런데도 주교들은 계속 수면 상태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시각을 상실한 것이다.

많은 일들에 대해 끝없이 토론하면서도, 사목 전반에 걸쳐서 가장 큰 문제에 대하여 공동 전략을 세우려고 목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일은 없다. 흔히 보이는 무슨 약으로 정신병을 고칠 수 없듯이, 아무 알약이나 종양에 듣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의 최고선에 관한 문제일 때는 얼마나 겁을 집어먹고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는지! 우물쭈물 망설이고 걱정하면서 적절한 해결을 끝없이 미루는 것이다.


주교와 사제들의 그런 나약과 망설임이야말로 오늘날의 교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악의 주된 원인들 중 하나이다. 필요한 시기에,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게 개입했더라면, 틀림없이 그 숱한 악을 피할 수 있었으련만! 그러지를 못했으니 영혼들에게 헤아릴 수 없도록 큰 손상을 입힌 것이다!

기도하여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너의 작은 고통들도 내게 바침으로써 내 자비로운 성심의 무한한 슬픔을 달래 다오!

네게 강복한다. 앞으로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마음쓰지 말아라! 너는 내 사랑만 있으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네가 내 마음 안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넉넉하다는 말이다.

(1975년 12월 1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내 형제 옷타비오 신부여, 쓰시오. 나는 성 요셉 콧토렝고(이탈리아 토리노 부근 브라에서 출생. 1934년 시성. 주된 사목 활동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 각종 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일이었고, 이 목적을 위해서 토리노에 '작은 집'(Piccoa Casa)이라는 의료 시설을 세웠음. 축일은 4월 30일. - 역주)이오.

인간은 원죄와 거의 무한정 불어나는 각자의 본죄로 말미암아 분별을 잃은 채, 거의 전적인 어둠 속에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태어나 자라며 살아가다가 사라지는 존재이오. 인간을 에워싼 어둠 속에 희미하나마 가까스로 빛이 보인다면 그것은 계시된 근원의 진리에서 나오는 빛이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인 천상의 크나큰 실재들을 환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식견이 높은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오.

첫째가고 하나뿐인 큰 실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온 우주에, 큰 깊은 바다 속과 땅 위와 공기 속 어디에나 설레며 고동치는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오. 우주에 생명이 충만하고, 곳곳에서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


오! 어리석고 눈먼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당신 영광을 위하여, 또한 그대들을 그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생명의 기적을 행하시건만, 그대들은 이 기묘하고 놀라운 하느님 사랑의 열매로 살고 존재하며 또 그것을 누리면서도 이 기적을 보려고 하지 않는구려!

우주창조는 사랑의 행위였고, 모든 생물의 창조도 사랑의 행위였소. 지상 모든 생물 가운데서 인간의 창조는 사랑의, 특별한 사랑의 행위였소. 사람만이 그의 창조주 주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사람만이 다른 모든 생물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오. 홀로 사람만이 지상 모든 생물의 왕이요 지배자로서 우주적인 사명을 띠고 창조되었고, 사람만이 하고자만 한다면 지상 모든 생물의 감사를 하느님께 전해 드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소.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모든 생물의 존속 원리이고 일차적인 원인이시라면, 모든 피조물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일체를 마련해 주시고 그들을 보존하며 이끌어 가시는 것도 그분이 아니겠소? 과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고 계시오. 복음서에 보면 하느님께서 들꽃에게 입을 것을 마련해 주시고 들백합을 화려하게 차려 입히시며 공중의 새들을 먹여 주신다는 말씀이 있소(마태 6,26*29 참조 - 역주). 하물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반영하는 존재인 그대들에게야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지 않겠소?


어디에나 생명이 풍성하오. 이 생명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만인의 존중을 받아야 하오. 인간 이성의 선용과 신앙이, 그리고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가 이를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오. 그러나 이 어둡고 야만적인 물질주의의 세기만큼 인간의 생명과 인간보다 열등한 생물들의 생명이 이처럼 심한 모욕을 당하고 짓밟힘과 죽임을 당한 적은 일찍이 없었음이 사실이오. 인간은 마치 광기(狂氣)에 사로잡힌 듯이 하느님께 대항하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에 대항하며 스스로를 높이 세우고, 강한 본능으로, 야만적인 반항 본능으로 하느님의 법을 어기면서 사람을 죽이고,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법에 의거하여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거하고, 종류가 수없이 많은 폭력을 휘둘러 생명을 죽이고, 피조물의 왕이요 우주의 제관인 인간 자신의 위치를 짐승보다 못한 상태로 격하시키고, 더없이 악한 그 본능에 있어서는 기이하게도 짐승을 뺨칠 지경이 되었소. 이 모든 짓을 자행하면서 인간의 '권리'와 '법'과 '자유'의 이름으로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오.

사탄의 속임수가 그대들을 여기까지 데려왔소. 죄 문명의 어두운 혼돈 상태가 그대들을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몰고 온 것이오.


생명의 창조주를 끌어당길 만큼 강력한 자석인 믿음


돈 옷타비오 형제여, 나는 그대에게 '사랑'의 놀라운 선물인 생명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사랑은 본성상 생명을 보존하여 생명이 그 자체의 궁극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오. 하느님 섭리의 신비 안에 작용하는 초자연적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고, 여기에서 믿음은 강력한 자석이 되오. 어찌나 강력한지 생명의 창조주를 끌어당길 수 있는 자석이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소?) : "너희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태 21,21 참조 - 역주)


여기에서는 행위가 말보다 더 가치가 있소. 토리노에 있는 "콧토렝고의 작은 집"을 찾아간다면, 이 곳은 소외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이거니와, 사지가 멀쩡하건 그렇지 못하건 모든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분명히 볼 수 있고, 그 모든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얼마나 끊임없는 기적으로 개입하시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사랑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시지만, 특히 누구보다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오. 하느님 섭리의 신비여! 살아있는 신비여! 과거나 현재나 성인들 중에서 하느님 섭리의 '능력'과 '자비'를 체험한 적이 없는 성인이 과연 있겠소?


형제여, 이 주제에 대해서 내게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소.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듯 하니 말이오....  이제 기도하리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은총을 주시기를, 그대에게 강복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신뢰를 잃지 마시오! 그대와 또 그대들은 하느님의 사업과 하느님 섭리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오.

(1978년 6월 2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오늘은 내가 사도들에게 가르친 기도 중 하나의 덕목, 즉 나의 '뜻'에 대해서 네게 말해 주고 싶다.

누구나 아는 하느님의 '뜻'이 있으니, 아무도 그것을 모를 수 없으며, 비그리스도인들까지 알고 있다. 이 뜻은 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이를 따르려고 마음을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 나의 뜻은 일반적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다만 선을 원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을 요구하시며, 따라서 어떤 이유로도 악을 원하시지 않는다. 악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목적이나 근거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덜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알고 있는 나의 뜻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기를 원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존중하며 축일을 거룩하게 지내기를 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축일을 모독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또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존중하며 정부나 관(官)의 법규 등에 복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의 이 뜻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또 한 가지 있는데, 이는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뜻에 따라 가정이나 교회나 일반 사회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너희가 기도에 매달릴 때에 알 수 있는 뜻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빛과 특별한 도움을 주시어, 각 사람이 올바르게 그 자신의 위치에 있도록 하신다. 그것은 말하자면 각자의 소명을 따르는 것이다.


끝으로 허용적인 뜻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나의 '선함'과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뜻이다.

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재앙이나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인 너희가 타락하여 하느님의 법과 자연법에 반항함으로써 그것을 자초할 따름이다. 나로서는 자비롭고 정의로운 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허락한다. 거기에서 영혼들을 위한 영적 선익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흔히, 고통과 불행으로 시험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들면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무자비한 분이라고 비난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행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고 있는데다, 내가 그 모든 고통을 월등 능가하는 선익을 거기에서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제 탓으로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하물며, 내게 봉헌한 영혼들이 인간 구원에 꼭 필요한 이 문제에 대해서 빛을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을 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중대한 잘못이다. 하느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앉히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은총의 충동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흔한 죄인데 이는 하느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 자신의 소명과 다른 사람의 소명을 거부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하느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죄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 시민 사회에서 각 구성원이 질서 있는 삶을 영위하여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십계명과 다른 규정들을 주었고,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인 하느님께 사람들이 날마다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 것이다.


기묘한 종합


'주님의 기도'에는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세상의 어떤 선생도 흉내낼 수 없는 기묘하고 단순한 종합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들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정은 어떠하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던 시대(창세 11,1-9 참조 - 역주)에도 이 정도로 심한 혼란은 없었다. 어둠이 땅을 내리덮었고, 사람들은 이제 서로 말귀를 알아듣지도 못하게 되었다.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자만이 오늘날처럼 한정없이 커진 것은 지난 어느 세기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가소롭고 유치한 교만으로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이혼, 낙태, 비정상적인 동거, 사실상의 일부다처 등의 범죄를 합법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악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려고 든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모르기에 그 자신을 모르고 부정하기도 한다. 인간을 이렇게 이끌어 온 것은 온 세상에 만연한 이론적 실천적 무신론이다.

인간은 그 자신의 파괴를 위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자만과 교만, 하느님 거부가 인간 자신을 휩쓸어 갈 붕괴를 초래하는 것이다.

아들아, 너는 누구에게든지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12월 3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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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2월 12-14일, 12월 17-19일, 2021.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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