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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3주간 월요일] 권한(權限) (마태21,23-2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4 조회수1,06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권한(權限(마태21,23-27)

2013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1독서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민수24,2-7.15-17)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야곱아너의 천막들이이스라엘아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나는 그를 바라본다그러나 가깝지는 않다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王笏지팡이)이 일어난다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화답송 시편 25(24),4-5ㄱㄴ.6과 7ㄴㄷ.8-9(◎ 4)

◎ 주님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 주님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주님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주님당신의 자애에 따라당신의 어지심으로 저를 기억하소서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마태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하늘에서냐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민수24,2-7 15-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17)

 

'나는 그를 바라본다'에서 '그'는 곧 야곱에게서 나온 한 별이며,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난 왕홀이다. 즉 임금 중의 임금이신 메시야를 발라암이 지금 보고, 또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지금'으로 번역된 '앗타'(atha)는 '이제'(now)라는 뜻의 부사로 현재 시간을 의미하는 말이고, '가깝지는'에 해당하는 '카로브'(qarob; near)는 말 그대로 가까운 미래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본문은 신, 구약에 나타난 '계시(예언)의 시간성'이란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표현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보여준 예언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예언들에까지도 모두 적용되는 '성취의 시간성'이라는 측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예언이나 계시는 지금 당장 성취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또 당대의 역사 안에서 실현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그 성취의 시간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 뿐이다.

 

'별 하나'

 

별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약에서 여기처럼 '별'에 해당하는 '코카브'(kokab; a star)가 단수로 쓰일 때에는 '임금'(왕)을 상징했음이 분명하다(이사14,12; 다니8,10).

 

더욱이 여기서는 뒤에 나오는 '왕홀'과 평행적인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여기서  '별'은 '임금'을 상징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약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이 별은 단순한 한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온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만왕의 왕 메시야임을 알 수 있다(마태2,2; 묵시22,16).

 

'야곱에게서 ~솟고'

 

'솟고'로 번역된 '따라크'(darak)는 '밟다'(신명1,36), '(활을)당기다' (1역대5,18)라는 뜻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지는 동사이다.

하지만 '(활을)당기다'는 뜻과 같이 '밟는다'는 것도 곧 '소유'(신명11,24), '정복'(판관20,43), '통치'(신명33,29)라는 이면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따라크'의 기본 개념은 '전쟁'과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원문은 '별 하나'(한 별)가 마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행진하듯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묘사이기는 하지만, 별이 땅을 밟고 전진하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기이한 모습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발라암은 환시 중에 환히 빛나는 별 하나가 악한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야곱의 진영 가운데서 행진하여 나오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예언은 하느님을 적대하는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임금, 곧 메시야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왕홀'로 번역된 '셰베트'(shebet)는 원래 '막대기'(레위27,32), '지팡이'(판관5,14)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발전하여 '지파'(창세49,28)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는 특히 임금의 지위를 나타내는 지팡이인 '왕홀'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과거 야곱의 유다에 대한 예언에 나타난 '홀'과 연관되어 있으며 (창세49,10), 본문과 대구를 이루는 '별'과 관계되어 메시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시편45,7; 아모스1,5.8).

 

한편 '일어난다'에 해당하는 '웨캄'(weqam)의 기본형 '쿰'(qum)은 특별히 발라암의 이야기 가운데서 암사자의 '일어남'('쿰'; qum)을 묘사할 때도 쓰인 동사이다(민수23,24).

즉 이 단어는 암사자가 사냥감을 공격할 때 일어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이런 의미가 여기서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말하자면, 별 하나가 악한 세력과의 전쟁을 위해 행진하여 나오고, 홀이 '일어나'(쿰) 그 세력을 치려는 모습을 발라암이 환시 중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별과 홀에 의해 모암, 에돔, 아말렉 등의 나라와 아시리아까지 멸망하게 될 것임이 이어지는 예언에서 밝혀지고 있다.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여기서 '모압'은 단순히 당시에 있었던 근동의 한 나라 '모압'만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모압'이라는 나라의 멸망과 '별'과 '왕홀'로 상징된 메시야의 출현과는 실제 역사 안에서 특별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한 민족을 말한다기보다는 모압으로 대표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적대하는 세상의 세력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셋'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셋'('셰트'; sett; 창세4,25)이 아니고, 노아의 셋째 아들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모압 족속의 기원과 깊은 연관을 지닌 인물이거나 부족으로 보고 있다.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복음(마태21,23~27)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25)

 

'어디에서'라고 번역된 '포텐'(pothen; where)은 '기원', '원인'을 물어보는 의문사이기에, 본문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권세)이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하늘'로 번역된 '우라누'(uranu; heaven)는 '우라노스'(uranos)의 탈격으로서 '하늘로부터'라는 기원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라는 명칭을 거룩하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예수님께서도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사람'으로 번역된 '안트로폰'(anthropon; men) 역시 '안트로포스'(anthropos)의 탈격으로서 기원 및 출처를 나타낸다.

여기서 '사람'은 '하느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불완전하고 거짓된 계시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한의 출처에 대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문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 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의 출처가 하늘이라고 하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를  질시하여 결국 죽게 하였다는 점에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출처가 사람이라고 하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겼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틀려서 반발을 사게 되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으로써 그들의 위선과 간교하고 사악함을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질문은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한을 입증하려고 하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께로 보내신 예언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널리 인정받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야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요한1,32~36).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 당신의 권위의 출처와  관련해서 질문해오자, 오히려 요한의 세례의 출처에 대한 역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자신이 세례자 요한의 참된 증거에 근거한 메시야임을 증명하려 하셨던 것이다.

 

 

2019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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