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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글방/ 마음의 할례 (히브리11:2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4 조회수1,236 추천수0 반대(0) 신고

도란도란글방 2020. 12. 14.

(공동번역성경)

 마음의 할례 

(히브리11:29)

29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에집트 사람들도 그렇게 건너려고 했으나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아멘

 

자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이 누구죠?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넜다' 동의가 되세요? 그럼 출애굽기 14장으로 한번 가보세요

(출애굽기 14:8-12) 8 야훼께서 에집트 왕 파라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셨으므로, 그는 의기양양하게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되었다. 9 이리하여 파라오의 병거와 기마, 기병, 보병 등 에집트인들은 그들을 뒤쫓아 비하히롯 근처 바알스본 앞 해변에 진을 친 그들을 따라 잡았다. 10 파라오가 다가 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니 에집트인들이 덮칠 듯이 뒤따라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은 질겁을 하고 야훼께 부르짖으며 11 모세를 원망하였다. '에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 내어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 왜 우리를 에집트에서 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느냐? 12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에집트에서 에집트인들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더냐? 에집트인들을 섬기는 편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구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거를 믿음이라고 합니까? 생각해보세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기를 모르는 걸까요? 지금 홍해를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랬다구요. '야 애굽에서 우리가 애굽 시람 섬기는게 훨씬 낫다고 내가 너한테 얘기 했잖아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근데 날 왜 데리고 나온거야?' 라고 원망하구 있단 말예요.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이 믿음이 그들 안에 이렇게 사유되어 있던 거예요 아니면 밖에서 그들을 끌고가는 어떤 힘입니까?

 

믿음이라는 건 성도 안에서 발휘되는 어떤 능력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밖에서 그들의 됨됨이나 성숙의 정도나 자격이나 뭐 이런거 싱관없이 .....그 믿음이 목적하는 목적지로 끌고 가는 거예요. 그 믿음을 우리는 약속이라고도 하고 또 그렇게 우리를 끌고가는 그리구 우리를 그 약속 지점까지 보호하여 가는 그 분이 또 예수님이죠

그 홍해를 ....노아의 홍수 때에 그 광풍이 이는 그 풍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그 믿음은 예수는 곧 노아의 방주와 같은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방주 믿음 안에 들어있는거죠. 그래서 안전하다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뭐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는 이스라엘과 똑 같애요. 여전히 지금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은 지금 하느님의 은혜의 손 그 장중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잖아요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 약속에 의해.... 지금 가나안으로 가고 있는 중이란 말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원망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나머지만 데리고 간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합의하여 하느님을 원망한 거예요 우리 모습예요 이게.

 그런데 하느님이 참 재밌죠? 이런 이들의 실체를 ...하느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쫓아가게 만듦으로 말미암아....일부러 이렇게 유도해 내신 거예요. 당신이 구해내놓고 파라오를 쫓아가게..아니 구원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파라오를  거기서  죽이던지 아니면 막아주던지 편안하게 건너게 해야 되는데 ...과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오게 했으면서 ...하느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시켜서 쫓아가게 시켰단 말예요 그래갖구 막다른 골목으로 그냥 넣어버리고 포위해 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렇게 그랬더니...그들이 어떻게 폭로가 돼요? '도저히 얘네들은 구원하면 안 될 놈들이었구나'가 또 폭로되는거죠 거기서. 그런데 하느님이 이런 이들을 그냥 홍해를 가른 다음에 건너게 하세요 왜? 436년 전에 아브라함이란 사람과 약속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하느님은 약속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믿음이라는 힘을 보내어 그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을 하시는 거지 우리가 뭔가 다른 이들과 다르고 어떤 차이를 보이고 이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인정해 주시고 이런게 아니란 걸 보여주는 거란 말예요.

그걸  아브라함이 극명하게 보여줬죠?  아브라함이 약속의 후손 그러니까 약속의 열매예요 그 약속이 성취된다 라는게  약속의 후손으로 보시면 돼요. 약속의 성취라는 의미죠 그것이!  

그러니까 약속의 성취는 약속의 후손 ..예수 안에서 언약이 성취되죠 그 이야기 하는거죠.

그런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약속을 이제 약속의 성취 즉 그 열매를 내어 놓는데 어떤 상태에서 내어 놓냐면 하느님이 약속을 주시는데 그걸 비웃는 상태에서 약속의 후손을 받아요. 이스라엘의 모습과 똑같지 않아요? 이스라엘은 지금 '내가 너희를 가나안으로 반드시 들여보낼꺼야 여기서 탈출 시킬꺼야' 란 약속을 받고 나왔는데 그 약속을 신뢰를 안해요. '하느님은 우릴 죽일려구 그러나봐...' 이렇게 ..늘 그러찮아요.

 

우리가 대적들이 우리를 공격해 오거나 아니면은 뭐 ....정말 광풍이 이는 바다 같은 이 세상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어 ..정말 야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무슨 뜻이 있는거야 ....금방 이렇게 되든가요? 원망스럽죠?

오죽하면 사도 바오로 같은 분도 '마치 하느님이 나를 죽일려구 작정하신 분 같애' 라는 원망을 했단 말예요. 죽일려구 작정하신 분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기쁘다가 아니였어요 힘들어 죽겠다 그랬다니깐요.

우린 너무 사람을 그냥 위인으로 올려놓고 그 사람에게서 어떤 대리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본능이 있어서 자꾸 사람들을 그냥 이렇게 높여 줄려구 기특한 생각들을 하는데.... 사도 바오로가 죽는 날까지 하느님을 하나도 원망 안 했겠어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정말 그거는 사십대 맞으면 죽는 맨데 ...

여러분 우리가 그 누가 그렇게 따귀래도 한 대 때리면 아주 미칠거 같죠, 그런데 자기는 뭔가 죄를 져서두 아니구 또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데 자기와 같은 편이었던 한 길을 가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와 반대편으로 돌아서서는 그냥 갈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 사람이 힘들고 원망스러웠으면 하느님이 나를 죽일려구 하는거 같다구.. 그리구 저 미말에 <그 포로들을 질질 끌고 오던 그런 미말, 미말이거든요. 전리품과 포로. 그래서 사람들이 어 우리 왕이 우리 장군이 어떤 승리를 했는가를 보기 위해항상 그 뒤에 관심을 갖고 보는 거예요. 구경하면서 조롱했단 말예요 야 니가 뭐 적국의 왕이였냐? 장군이였나? 이렇게 조롱하는 그게 ..미말이거든요.> 그런데 하느님이 당신의 일을 맡긴 사람을 그 지경을 만들어요. 구경거리 조롱거리... 언제든지 사람들이 하대하구 홀대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죽는 날까지 갖다 놓는 거예요. 왜 그러겠어요?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런 이렇게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걸 세례다 그러죠. 모세의 안에서(in moses) 그런단 말예요? 모세 안에서 그들이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그러면 모세 안(in moses) 란 그 단어 자체가 모세 밖으로 나가면 다 죽는단 뜻이죠?

 

보세요 지금 출애굽기 14장에 이들을 하느님이...그 모세 안에다 집어넣어서 건너게 만들지 않았다면 바로 그 출애굽기 148절이하에서, 거기서 다 죽어야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모습이예요. 구원 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그렇다는 거예요그 현실을 이렇게 경험하게 해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그래서 모세 안에서 세례를 받게 했다 그래요.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사되는 거구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다 그래요 골로새서에...로마서 6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죽임을 당하고... 예수 안에서 살아나는 게 진짜 할례다 마음의 할례받은 자다 이게 세례란 말예요 세례의 정신.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 이스라엘이 출애굽기 14장에서 이렇게 그냥 하느님을 원망하구... 여기서 구리뱀을.. 저 불뱀을 풀어두신 거예요 아무 문제 안되는 거에요 다 죽여도 되는 건데 ...이렇게 너희들은 이런 모습이지만.. 내가 약속으로 약속의 후손인 예수안에 넣어서 너희들을 살려낼거야

그러니까 그들의 율법 아래서의 그 선악과 입에 문 인간들의... 이 모습을 죽이는 거예요. 그걸 세례라 그래요. 우리는 이 고해 같은 인생 속에서 ...이 홍해를 우리는 지금 건너고 있는 중이잖아요 이 구원의 현재성이잖아요 현재성. 이 홍해를 건너면서 무슨 뭘 경험하냐 하면 나의 이 불가능하고 무력하고 보잘 것없는 육이 ...하느님에 의해 이렇게 부정당하는 경험을 겪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아 나는 큰일 날뻔 불가능한 거구나 이렇게.. 안되는거구나' 이게 죽는 거예요 세례를 받는거.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는 거.  믿음에 의해서.

그러니까 믿음은 여러분을 죽이기위해 들어오는 거지...여러분을 여러분 안에 이렇게 능력으로 사유되어. 어떤 훌륭한 무엇인가를 이렇게 내어 놓게 하는 힘이 아녜요. 그런데 사람들은 야 저 사람 믿음이 참 좋아 훌륭해 믿음이 강해 저 사람은 믿음이 약해 이렇게 얘기를 해요. 믿음이라는게 어떻게 사람마다 달라요? 믿음은 하나예요. 그 한 믿음이 성도 각자를 편재하며 끌고가는 거예요 요렇게.

 

그런데 뭐 믿음이 약해 강해 그거는 그 믿음에 의한 이해 믿음에 대한 이해 정도를 그냥 사도들이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믿음이 연약한 자 무슨 뭐 강한 자 이야기를 하는거지 정말 믿음이 우리안에서 이렇게 ..여러분 믿음은 우리의 동의를 얻어서 그 동의된 만큼 우리의 것으로 이렇게 사유되는게 아녜요.

내가 그 믿음이 나를 밖에서 끌고 가는데 내가 얼마만큼 내 열심을 부려서 그 믿음에 동의하느냐 그래서 그 만큼을 아 .. 강한 믿음 약한 믿음 이렇게 되는게 아니란 말예요. 믿음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요.

보세요 믿음이 이들을 끌고 가는데 바로 홍해 앞에서 이들이 믿음에 동의 안했대니깐요.  아브라함 보세요 하느님의 믿음이 그를 끌고가는데 비웃었어요 믿음을. 동의 안했단 말예요 거기에.그런데 그게 믿음의 조상이래요.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 없음' 이라는 걸 이 세상에서 이렇게 인정하고 폭로 당해야 되는거지 그렇게 믿음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니란 말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역사 2천년이 항상 그런 믿음을 자꾸 율법으로 바꾸어 내는 시도들을 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 믿음을 율법으로 바꾸어 내버리면 그 믿음이란 걸 갖구 또 다시 나는 이 믿음으로 얼마만큼의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는가 라는 율법으로 또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진짜 그러니까 내게 필요 없는 거 나를 자랑할 만한 고 ..수준에서 뭔가를 해 놓구 우리는 그냥 나는 착해 나는 뭔가 했어 이런... 하느님 앞에서 떳떳해지고자 하는 열심과 노력을 부릴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건 죄예요이거요.

무엇을 해서 하느님 앞에 이렇게 떳떳해 질려고 하는 그거 자체가 죄래니깐요. 어떻게 피조물이 없음이라는 죽은 흙이 하느님 앞에서 떳떳해 질려고 하는 시도를 하냐구요. 그게 선악과 사건이었어요. 그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어요. 그게 다른 종교와 그리스도교와의 차이점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명기 28장에 보면 그 율법을 죽 이야기하면서 너희들이 이 율법! 이걸 명령과 규례라고 이렇게 풀어줘요 신명기 기자가.. 모세가 ..율법과 규례가 ..이 율법이 말씀이 명령과 규례가 되어버리면 ....너희들은 분명히 율법 아래에서 이제 복과 저주를 .....세상 것으로 계산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명령과 규례를 자알 지키면 ~^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에도 복을 받고 뭐 이렇게 나오고 15절이하 부터는 너희가 이 명령과 규례를 잘 안 지키면, 이 율법이 이렇게 명령과 규례가 되면, 인간들의 어떤 행함에 의해 복과 저주가 나뉘어져요. 그런데 100% 15절이하에 그 영역으루 들어가게 되요 저주의 영역으로. 못 지키니깐요 명령과 규례를 다 지키면 인데 안되니까.(못 지키니까)

그러니까 율법은 명령과 규례가 되면 안되고... 예수 안에서 완성되는, 그러니까 예수로 결론이 나야되는 그게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라고 하시는. 그러니까 또 그거를 갖구 또 혹자들은 거봐라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한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으니까 우리도 율법을 잘 지켜야 되는거 아니냐? 이런 식으루 되는거예요.

구약은 우리가 그렇게 뭐를 하면 복을 주는 그런 식으루 설명이 되어 있지만 ....그거는 맞아요 우리가 다 하면 복이 와요. 그런데 그거를 예수가 다 (인간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예수가 다해서 ...그 복을 예수가 완료된 율법이 되어서 그 복을 우리에게 거저 주는 거지 우리가 그걸 열심히 하는 만큼 차등이 있는 그 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게 아니란 말예요.

그러니까 오늘날 그 예수를 믿으면서,,, 이 세상적인 어떤 복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떤 보상 우리의 기도의 내용들이 그거잖아요 하느님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렇게 보상을 해주세요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이만큼의 성과와 열매를 허락해 주세요.

뭐 이런 식의 이 접근은 ...여러분이 만약에 그렇게 기도를 하실라면 지금도 여러분은 구약의 율법을 다 지켜야만 그걸 명령과 규례로 지켜야만 그걸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이래니까요... 이게 성경 말씀예요 그것이 그러니까 여러분은 미사 드리러 올 때 지금도 소나 양을 잡아 갖구 와야돼요 그걸 요구할라면. 그 세상적인 복인 복을 요구할라면 그 구약의 율법 아래로 다시 들어가야 그래야 세상적인 복이 여러분에게 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다 없어졌다 그러면서 ...'야 뭐 무슨 제사를 지내 무슨 뭐 안식일이 어디있어~' 말은 이렇게 하면서 그걸 지켜서 주겠다고 하는 그거는 못 놓구 있는 거죠.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어떤 일이 경험이 되냐면 남들보다 훌륭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열매라든지 아니며는 뭐 그런 소위 세상이 말하는 보상이라고 하는 그러한 것들이 안 주어지는 경험들을 하게되요 성도는요.

 

인과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인과응보) 기도한 만큼 응답받고 그래서 뭐 기도를 몇 시간을 했느니 이걸 갖다가... 기도에 대해서 나오는 책들이 대부분이 그런 거 아녜요? ^

그러니까 너희들도 그런 걸 본 받아서 낙타 무릎을 만들으라는 둥 무릎을 왜 괜히 낙타 무릎을 만들어요? 방석 깔구 하세요 무릎에 굳은 살 안 배기게.

그러니까 그런 거를 그러한 것들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구 왜 이렇게 칭찬을 받구 사람들에게 이렇게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냐하면 그게 사람들에게 자기 가치를 챙기는데 아주 이렇게 좋은 재료들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콱 콱 붙드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를 해주면. 그러니까 야베스의 기도 이런 것도 결국은 기도 많이하여 지경을 넓히고 뭐 뭐 복에 복을 받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신앙생활을 그렇게 맞게 독려해주구 거 암묵적 강요예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럼 열심이 있어야 교회가 문제가 없고.. ? 착한 척 해야되거든요 나는 예수 잘 믿는 척 해야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그거 강요해버리면 여러분 그런 열심을 부려서 우리가 복울 얻어 낼려고 하는 거라면 하느님을 그냥 이용하는 거지 하느님을 믿는게 아니예요. 그게 무슨 예수 믿는 겁니까?

열심히 한 만큼 복을 준다면 그리구 그만큼 지경을 넓혀주고 한다면 아 지금 제가 땅이 제일 많아야 돼요 여기서 한 평도 없어요. 무슨 지경을 넓혀줘요?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을 준다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가면 안돼요.....

그런데 이렇게 가는 게 맞아요. ? 믿음이 우리를 끌고 가는  거라는 것을 ...하느님이' 그러니깐 약속과 믿음이... 그 예수가 너희를 사는 거지 너희 안에서....예수가 빠져버리면 ...니네들은 그냥 그날로 그냥 쓰레기라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해줘요. 그게 홍해를 건너며 그들이 세례를 받는 거. 죽는 거예요 예수 안에서  죽는다 라는 건 우리의 육적 생명자체가 이렇게 차압 당하는 거잖아요. 예수 안에서 사니까. 그 밖은 죽음이란 말예요.

 

그 십자가와 은혜 예수, 우리 믿음 성경 이리로 돌아가자~ 하느님의 영광 왜 인간의 영광 우리의 구원 우리의 천국으로 그리스도교가 변질됐냐 아니 돌아가자그러나 이제 마지막 때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고 그리로 이제는 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지막 때가 되는거예요 된거예요 이제요. 그 예수라는 십자가 그 깃발이 이제 높이 들려 올려질 그 날이 온 거예요. 그 깃발 아래 기호 기표 아래로 이제 그 십자가 은혜를 받은 이들이 하나 하나 모이는 거예요.

 분명히 하느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세요. 그래서 성령이 끌고가는 흔적이 있어요. 그리구 이렇게 우리의 욕심대로 ...우리의 쾌락만을 쫓아 살면 어떻게 된다라는 걸, 하느님이 그 파이데이아 라는 도구를 써서 가르쳐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자괴를 겪으면서 또 한발짝 가구, 거기에서 또 이렇게 환희를 느끼고하는 그 삶을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가요. 그리구 실지로 변화돼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 인식이 전에는 야 이렇게 열심히 하구 우리가 했더니 되더구나 가 아니라 믿음이 나를 이렇게 끌고 가시는구나 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가게 된다는 거지 그게 없다는 게 아녜요.

 

여러분 제발 좀~

 우리는 그냥 그 하느님의 은혜 믿음에 의해서 그냥 끌려가는 거예요.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건 감사 밖에 없어요. 찬양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삶을 빛나는 보석처럼 이렇게 바꾸어가요 쪼끔씩...어떻게 우리가 뭐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렇게 살아요? 우리에게서 나오는 건 죄 밖에 없으니 그냥 계속 죄짓자 이게 뭘 무슨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해요? 그렇지 않아요!

진짜 그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인 사람을 주변에서 이렇게 한번 보세요.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진짜 요동 없어요. 일관성이 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이 이렇게 원망 하다가 홍해를 건넜어요.  홍해를 건너구 야 그때 우리가 그렇게 원망을 했는데 하느님이 홍해를 건너게 해주시다니 감사하다 이제 부터 잘 살아야지 그랬나요? 또 똑같이 그랬어요 금~방 돌아서자마자. 홍해 건너구 이 애굽 사람들 다 빠져 죽는 거 어이구 쟤네들은 우리랑 뭐가 달라서 이렇게 빠져 죽었어? .. 쟤네 조상 중에는 하느님과 약속한 사람이 없었구나.

애굽이 뭐가 달랐어요? 그들하고 똑같앴어 똑같애. 애굽이었단 말예요 이스라엘도. 그런데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얘네들은 뭐가 달라서가 아니라 ...약속이 건너게 했는데 그 약속 때문에 건넌 자들이 광야에서 또 똑~같이 그 홍해 앞에서 했던 원망을 계~속 했어요 가나안 앞에까지.

가나안에 들어가선 안 그랬나요? 거기서두 또 똑같애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계속 그걸 우리에게 확인 시켜주는 거예요. 아프고 고통스럽구. 그거 확인하는 시간이, 그렇지만 거기에서 여러분은 은혜를 배우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 인정하구 변하는 거예요

 

2020년을 보내구  2021년을 맞으면서 아 ...참 정말 ~ 했어요. 진심으루~

하느님 나라는 이 나라에 속한 거 아니니깐, 뭐 무슨 평가를 받든 또 어떤 모양으로 흩어지든 그런 거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구, 하느님 나라 바라보면서 정말 매일매일 그렇게 나의 모습으로 고통스러워 하구 힘들어 하구

때로는 그 모습을 쳐 가면서 허벅지를 찔러가며 왜 난 아직 이 모양이야 그런 고통의 시간 통과하면서 또 때로는 성숙이 주는 그런 보람도 맛보구  그냥 가는 거예요  끌려가면 돼요. 오늘 하루도 그렇게 끌려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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