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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2.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6 조회수1,458 추천수5 반대(0) 신고

(원주교구 순례지, 대안리 공소)

20201216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7,18-23

그때에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어느 예비신자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성당에는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고만 하니

오히려 마음에 평화가 사라집니다.

제가 계속 다녀야 할까요?”

주님의 말씀을 속박이나

간섭 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법은 이 세상을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건너는 신호등을

보고서 누가 나를 구속하려는 거야?”

라면서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커다란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힘없는 사람은 더 큰

아픔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속박이나 간섭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따르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서 함께 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속박이나

간섭으로 생각하면서 거부하게 되면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토록 얻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도 내게서 사라질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을 확인시켜 주려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제자들이 힘을 얻어,

목자 잃은 양들처럼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내가 메시아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당신이 오실 분임을 보여 주는

기적들을 일으키십니다.

루카는 기적들을 강조함으로써

이사야가 예고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람이

어떤 이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속박이나 간섭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기적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까요?

놀라운 기적을 한두 번 목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또 다른 표징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적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버리고 믿었던 사람은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손에 든 찻잔이 뜨거우면

그냥 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뜨겁다고

괴로워하면서도 잔을 놓지 않습니다.

(법륜스님)

재미난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공감에 가네요.

판단력이 부족하면 결혼을 하고,

이해력이 부족하면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부족하면 재혼을 한다.”

“30대 교수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40대 교수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50대 교수는 아는 것을 가르치고,

60대는 기억나는 것을 가르친다.”

첫사랑이 잘 산다고 하면 배가 아프고,

첫사랑이 못 산다고 하면 가슴이 아프고,

첫사랑이 살자고 하면 골치가 아프다.”

웃긴데 공감이 가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첫 번째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 자체를 해보지 못해서.

그러나 두 번째는 크게 공감이 갑니다.

세 번째는 약간의 공감이.

아무튼 이 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라고 했던 것도 집착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겸손을 강조하셨나 봅니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원주교구 순례지, 대안리 공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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