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슴으로 체험한 복음 말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들 건강하십시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8 조회수1,34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은 제가 수도원을 준비하면서 그간 고민하고 느낀 것 중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을 하나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런 걸 글로 표현을 하려면 엄청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하다 보면 장황한 설명이 될 것 같아 아주 간결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설교’ 3절에서 12절의 내용인 참행복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하니 당연히 믿어야 되는 그런 정도의 복음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니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 특히 산상설교말씀은 머리로,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실제 가슴으로는 잘 이해하기 힘든 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어쩌면 가슴으로 이해 불가한 내용이라고요. 저 역시 개신교를 포함해서 오랜 세월 이 복음은 정말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최근 근 6개월 동안 아니 실제로 본격적으로 수도원 문을 노크한 것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러니 이제 거의 3년이 된 것입니다. 실제 지금 강론이 올라오고 있는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을 근 6년 전에 경남 고성에 있는 올리베따노 수도원에서 제가 면담성사를 한 적이 있는 인연으로 어떻게 경기도 파주에 계실 때 성소를 문의하곤 했습니다만 그당시는 어머니가 투병중이라 제가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 상황에서는 성소 식별을 위해서 어머니를 도외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고성에 있는 올리베따노 수도원에 아빠스님을 찾아 뵙고 기회를 얻었지만 본의 아니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성소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서 그 이후로는 완전 뜻을 굽혔지만 올해 다시 어떤 계기가 있어서 다시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외국 수도원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수도원은 성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제가 되려면 그 길도 있었습니다. 근데 최종 결론은 한국에서 죽는 걸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마산 근교에 있는 진동 가르멜 수도원에서 새벽미사 때 강론을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5년 전쯤 됐을 겁니다.

 

사실 그 신부님이 어떤 신부님이셨는지는 제가 지금 정확히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타 지역에 계셨던 신부님이 아마 손님 신부님으로 오셔서 강론을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으로는 자기도 수도생활을 하지만 경북 상주에 있는 카르투시오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이 올해 초부터 강렬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워낙 그런 말씀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많은 수도원을 노크를 했지만 모두 다 노였습니다. 단 하나의 이유는 나이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카르투시오가 그토록 힘든 곳이라면 아마 성소자가 극히 드물 것이라 혹시 그렇다면 나이가 많아도 받아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문의를 드렸고 메일을 보냈습니다만 처음엔 역시 노였습니다. 그러다가 3일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한번 면담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극적으로 길이 였렸습니다.

 

그 이후는 그간 몇 차례 올린 글을 보시면 대략은 아실 겁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거의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6월 달에는 22일 수도원에 들어가서 29일인 제 축일에 일주일 체험을 하고 제가 살 수 있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그때 실제 약속 시간 보름 동안 피정을 하지 않고 일주일 만에 결정을 내리면 오히려 수도원에서 더 좋은 반응을 하실 거라고 추측을 했는데 제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 그때 원장님께서 다른 길을 가라고 했고 실제 글을 쓰는 달란트가 있으니 그 달란트를 발전시키는 게 수도자의 길보다 더 낫지 않을까 하셔서 그만 고배를 마시고 그냥 그 길을 접었습니다. 돌아온 후에 다시 한 번 더 찾아갔습니다.

 

한 번만 더 피정을 하면서 지켜보시고 결정을 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사실 제 의도를 잘못 이해하신 부분도 있었습니다. 문화가 다르니 문화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일 겁니다. 그때 수련장 신부님과 원장 신부님, 크로티아 출신 신부님 세 분이 고민을 하셨습니다.

 

30분쯤 지나서 제 암자로 오셔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좋은 소식을 먼저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겠다고 했고 나쁜 소식은 지금 당장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고 3개월 후인 10월 달에 피정을 다시 보름간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땐 마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기분이었고 수도원을 나오자마자 바로 잘 아는 수도원 신부님께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정말 기회를 얻은 건 기뻤지만 그때 3개월은 정말 시간이 하루가 한 달 같았습니다. 결국은 10월 달에 메일을 보내드렸고 수도원과 조율을 해서 통과를 했고 최종 입회를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사실 처음에 무슨 일이 있어서 나오려고 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근데 그때 오히려 수도원에서 여름 때 같았으면 바로 성소가 아니다라고 하시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을 텐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잡았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이왕 마음먹은 것 약속 기간을 한번 완성하는 방향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식의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실 한 차례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기도중에도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힘든 고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제가 그래도 참고 한번 견뎌보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녁기도를 평소엔 430분에 시작합니다.

 

성전에서 합니다. 성전에서 모이는 건 미사, 저녁기도, 밤기도 세 번만 공동체 전체가 모입니다. 저녁기도 끝에는 항상 살베 레지나 라틴어 성모찬송을 합니다. 살베 레지나 라틴어 찬송이 어쩌면 저를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만 모인 곳이지만 이 찬송은 정말 음색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제가 유튜브로 찾아봐도 딱 수도원의 음색을 내는 곳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나오는 것만큼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성모찬송을 하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살면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로 성모님을 찬송할 수가 있는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수도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냥 한국말로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건 사실이지만 전통 라틴어로 하는 멜로디는 거의 천상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그렇게 해서 잘 이겨냈던 것입니다.

 

지금 산상설교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왜 이런 장구한 말을 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런 배경을 먼저 설명을 드려야 제가 드리고 싶은 내용의 말씀이 가슴으로 전달될 것 같아서입니다. 10월 피정을 끝낸 후에 집에 돌아온 후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세상에서 최장 1년 안에 결정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받아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1년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성소가 사라질 수가 있다고 수련장 신부님께서 주의를 주셨습니다. 실제 처음에 3개월이라는 유예기간도 어쩌면 하나의 판별을 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보통 3개월 후면 그냥 세상에서 살다보면 수도원 들어갈 생각이 없어지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았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렇다면 1년은 너무나 많은 시간 손실일 것 같아 6개월 안에 결정을 내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만 참 이상하게도 어떻게 나온 지 삼일 만에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지만 그건 생략하겠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전인 어머니 기일에 가족들에게 최종 공표를 하기 전까지 약 1개월 보름이라는 시간은 정말 저에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데에 포기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50년 세상에 살면서 펼쳐놓은 게 있는데 그걸 무 짜르듯이 짜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손실이 컸습니다. 그냥 하느님께 그게 돌아간다면 걱정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에 허공에 날아갈 자산을 생각하니 아까웠습니다. 어쩌면 이건 또 한편으로는 과감히 포기할 수도 있는데요 이것보다 더 포기가 잘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아니 좀 힘들다고 표현하는 게 낫겠습니다.

 

자산보다도 더 가치가 없는 것 평소에 제가 소유하고 정들었던 소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유하고 있는 책만 해도 15천 만원 상당의 책입니다. 제가 아끼는 책입니다. 그 외 지금까지 제가 필기로 기록을 남길 수가 있었지만 앞으론 기록을 노트북 컴퓨터로는 할 수가 없고 원초적인 방법인 노트에만 기록할 수가 있는 생활로 해야 하는 것 아무튼 수도원에 들어가면 거의 지금까지의 모든 자유롭게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스스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삶이지만 그 모든 걸 포기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느낀 게 바로 산상설교의 말씀이 정말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3절 처음에 나오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성경적인 말씀 속에 있는 여러 뜻이 들어 있겠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 단순히 마음 그 자체만을 의미하진 않을 겁니다. 실제 경제적인 부도 상징할 것입니다. 결국 어차피 하느님 나라 갈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인간은 그걸 알면서도 포기를 못하는 게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결국은 조금 일찍 포기하는 것과 조금 늦게 포기하는 것 차이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소유물이나 재물에 노예가 되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초월했을 때 얻는 하늘나라랑은 전혀 다른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는 이유가 확실한 말씀이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실 글로써 이런 느낌을 표현한다는 게 한계는 있습니다. 제가 표현력이 아마 부족해서 이 부분이 조금은 아쉽지만 모쪼록 부족한 체험담이지만 신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논스톱으로 글자 하나 수정 없이 타이핑했습니다. 나중에 오타나 한번 점검해보겠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느낀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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