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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오로 6세가 사제에게 - 결정적인 전환기인 정화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9 조회수966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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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결정적인 전환기인 정화


쓰시오. 나 바오로 6세(1963년 6월부터 1978년 8월까지 재위한 제262대 교황 -역주)가 그대에게 말하고자 하오.

옷타비오 형제여, 그대는 신앙 위기에 대한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살펴볼 것이 없으리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소. 이는 얼마든지 고찰할 수 있는 주제라오.

여기 말하는 정화는 늘 일어나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중대하고 유일한 사건이오. 왜냐하면 한 나라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도 결정적인 전환기가 될 것이고, 그리하여 인류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사건이기 때문이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성의(聖意)로 개입하시어 "창조"사업을 이루신 것과 같이, "정화"를 위해서도 예수님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 그러나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기보다 허락하시는 일이거니와 - 인류의 타락과 무분별로 심히 손상된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실 것이오.

현재 진행 중인 정화는 머지않아 무시무시한 결말에 이를 것이며, 그 때에는 악마의 어두운 세력들과 싸우기 위해서 천상 세력들이 참전하게 될 것이고, 전투의 끝에 가서야 '하느님의 아들'과 그 분의 어머니께서 비로소 개입하실 터인데, 이 개입이 최종적인 승리의 결말을 맺을 것이오. 사탄 교회는 사라지고 승리의 깃발인 십자가가 지금 쇄신 중인 새 교회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펄럭일 것이오.


그 무엇 때문이건 믿음이 흔들려선 안된다


인류를 짓누르는 악의 무게는 인류를 마비시킬 정도로 무겁소. 인류는 그 때에 으스러질 지경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마어마한 전투의 표적이요 중심인 인류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오.

우리 '최고 목자들'이 끊임없이 이 문제로 돌아가곤 하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그 혹독하고 힘든 때에 대해서 그대들의 영혼과 마음을 준비시켜야 하기 때문이오. 설사 중대한 일이 터진다 하더라도, 그대들은 그 무엇 때문이건 믿음과 내적 평화가 흔들려선 안되오. 그렇소, 형제여, 그대들의 내적 평화 말이오, 믿음이 확고하면 영혼의 내적 평화도 보존되는 것이오.


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과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두 분께서는 서로 다른 역할로 개입하실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쳐부수고 잃어버린 인류를 그 세력에게서 빼내기 위한 접전에는 개입하시지 않을 것이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이미 개입하셨고, 사탄과 그의 군대를 영원히 이기셨으니 말이오. 이제 사탄의 사회적 집단인 프리메이슨과 교전해야 할 쪽은 인류와 특히 교회, 즉 '신비체'이니, 이 신비체가 그 자신의 머리이신 분의 운명을 재현해야 하는 것이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 피조물이시지만, 하느님 다음으로 '첫째"인 분으로서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시며, 승리를 거둘 때까지 예수님과 교회의 수위(首位)에 계시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한편 예수님의 개입은 인간이 저지른 악을 선으로 바꾸고, 인간 정신으로는 헤아릴 수 없도록 큰 파괴를 교회의 선익으로, 즉 완전히 쇄신될 교회의 선익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실 것이오.


"말하자면 제2의 창조가 되리라"


옷타비오 형제여, 이런 이유로 하느님의 기묘한 계획을 "판단하지 말고" 찬미하며 받아들이라는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악의 어두운 세력과 교만에 사로잡혀 눈먼 인류의 타락이라는 악으로부터 말하자면 "제2의 창조"라는 선을 끌어내셔서 하늘과 땅에 쇄신된 교회를 주실 것이고, 이를 보고 천사들과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않을 것이오.

그대들은 이제부터 이 확신과 굳건한 신앙과 사랑을 가지고, 이 묵시록적인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오. 이미 그러한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지금은 그 끝날이 임박해 있는 때이니 말이오.

그대에게 강복하고, 그대와 함께 그대가 특별히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강복하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1978년 9월 10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우리는 모를 수가 없소"


옷타비오 형제여, 쓰시오. 나 비오 11세(1922년 2월부터 1939년 2월까지 재위한 제259대 교황 -역주)가 그대에게 말하고자 하오.

내 일생에 걸쳐서, 특히 내가 교황으로 재임한 기간 동안, 내 '지도자'요 내 '도움'이시며 내 '위안'이셨던 성령께서 그대의 정신을 비추어 주셔서,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그대의 오늘과 마지막 날까지 그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 주시기를 비오.


형제여, 그대는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지당한 말이오.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활에 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대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오. 복음적 명령은 지혜롭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은 결코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판단해선 안되고, 판단할 마음을 품어서도 안되오. 마찬가지로 형제들과 그들의 행동을 판단해서도 안되는 것이오.

그러나 가끔 예외적인 경우가 있소. 이를테면 고해성사를 베푸는 사제들의 경우이오. 여기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잘못일 수 있는 계제들이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우리가 모를 수 없는 사실이나 일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과 그것을 확실히 기억하는 일은 서로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 사람의 지향을 판단하면서 양심의 은밀한 곳을 꿰뚫어보려 하고 우리의 잣대로 책임을 재려고 하면 그 판단은 잘못이 되오. 죄가 되오. 그러니 그대들이 들었던 대로, 판단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오!


갈수록 엄청나게 커지는 어둠


오늘날의 교회를 괴롭히는 심각한 신앙 위기와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대는 무질서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소? 하지만,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책임을 단지 이 세대에만 돌리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 것이오. 비록 이 세대가 위기를 고조시키고 엄청나게 조장했다는 중대한 잘못이 있고 따라서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 거의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의 근원은 과거 시대에 있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특히 세속적인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연구를 소홀히 해 왔고, 그 바람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교회 안에 텅 빈 자리들을 양산(量産)하고 말았으니, 기도가 없고 내적 생활이 없는 빈 자리들, 그 결과 교육이 없는 빈자리들이 엄청 늘어갔고, 따라서 오류와 이단이 증식하게 되었소. 그러니 일부 경건한 주교들이 사목하는 곳 외에는 어둠이 갈수록 엄청나게 커지면서 만연하게 된 것이오.


그때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가 아니리라


형제여, 항상 날카롭게 대치해 있는 하느님과 사탄 교회의 싸움이 가장 치열해질 때에, 그대들은 쇄신될 교회의 정예 부대를 이루도록 이미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니, 터무니없는 생각에 잠기거나 소극적으로 방관만 해선 안되오. 그리고 이 일이나 저 일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느라고 멈춰 서 있지 말고 전투에 참여하면서 기도하고 하느님께 그대 자신들을 봉헌하며 형제들에게 봉사해야 하오. 이 세기적인 전투에서 "위대한 승리"는 가장 강하신 분과 그분의 어머니인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 예비되어 있음을 굳게 믿고 신뢰하면서 말이오. 사실 "가장 강하신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정화의 때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가 아니라,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때요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의 때일 것이오...... 그대들은 이를 굳게 믿어야 하오!


옷타비오 형제여, 내가 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소?

그것은 그대들을 정화기에 대비시키는 임무가 '최고 목자'인 우리들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오. 그대들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 때를 맞이해서는 안되는 것이오.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들임을 자각하여 기도하고 봉헌하며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을 존중하면서 그대들의 직무와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도와 주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해 주시기를 비오!

(1978년 9월 8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인생은 하나의 시련이오"


옷타비오 형제, 나는 비오 10(1903년 8월부터 1914년 8월까지 재위한 제257대 교황. 성인 - 역주)이오.

그대는 인간의 세상살이를 실제 그대로, 즉 하나의 시련으로 보고 생각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이 주제에 대해서 그대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시련의 성질에 관하여 천명한 것 역시 어쩌다가 우연히 던진 말이 아니라오. 성녀는 이 시련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를 "믿음에 대한 충실"과 "하느님의 법에 대한 충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충실"이라고 하였소.

비오 12세도 이 시련의 종국인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아무도 이를 피할 수 없다고 하였소. 그러나 엄청난 수의 천사들을 휩싸고 있는 오늘날의 어둠은 심야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오. 사실, 세상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일체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오. 창조된 만물은 사라질 수가 없기 때문이오. 게다가 인간은 이 모든 피조물의 중심에 위치하고, 따라서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완전한 존재인 것이오.


과연 인간 안에는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어떤 피조물에도 없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소. 곧

1) 불사불멸에 대한 강한 열망. 죽음은 인간에게 반감을 일으키므로 인간은 죽지 않기를 바라오....  죽음에 대한 그러한 반감은 인간보다 못한 하등동물에게는 보이지 않는 점인데, 그 이유는 무엇이겠소?

그것은 인간이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처음에는 충만한 삶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니 말이오. 죽음은 인간이 하느님께 반역한 결과일 따름이오. 이 과도기적인 사건을 이해하고 믿는 것은 은총 지위에 있는 인간의 영혼이며, 이는 믿음으로 변화되는 직관이오. 믿음은 두려움을, 더 심하게 말하자면 공포를 없애버리는 것이오! 이 두려움이나 공포는 물질주의적인 인생관에 빠져서 정신이 흐려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니, 무덤 저쪽에는 단지 무서운 허무의 심연만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오.

2) 행복에 대한 욕망. 이는 인간 내부에서 강렬하게 끓고 있는 욕구이니, 사람들은 사방으로 행복을 찾아 다니는 것이오. 얼마나 극성스럽게 찾아 다니는지, 앞서 간 모든 세대의 체험들을 다 동원해도 세상에서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지경이오. 그러나 세상에서는 아무리 행복을 찾아보았자 헛수고일 것이오. 인간은 세상의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고, 따라서 인간이 열망하는 행복은 하늘의 행복, 영원한 행복인 까닭이오.

3) 평화에 대한 욕구. 이 욕구도 세상에서는 충족시킬 수가 없소. 인간이 필요로 하는 평화는 오직 '높은 데서'만 올 수 있는 것이고, 인간보다 낮은 어떤 것도 이토록 높은 선물을 인간에게 마련해 줄 수 없기 때문이오.


인간은 기만당한 피조물인가?


이제까지 언급한 것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이겠소? 인간은 기만당한 피조물이어서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열등한 존재들과는 달리, 충족시킬 수도 실현할 수도 없는 열망과 욕망과 욕구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겠소?

그것은 잘못된 결론이 될 것이오. (그러한 인간 본성을, 즉) 자연을 오류로 여기지 않는 이성의 올바른 추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오. 자연의 조화도 침해되어 손상을 입을 수 있지만, 이는 인간의 악의와 어리석음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자연이 그 자체로 스스로를 손상하여 상처를 입는 일은 결코 없는 것이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자연"이라는 말을 우주와 우주 속에 포함된 일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즉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소. 그것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불사불멸과 행복과 평화와 빛에 대한 갈망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점이오. 따라서 그 갈망들은 이 세상의 산물이 될 수 없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겠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인간 존재에 깃들인 그 고차적인 욕구들은 자연 외적인 기원, 다시 말하자면 초자연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과 믿음으로 이를 분명히 엿볼 수 있다는 점이오. 실상, 더 높거나 다른 본성은 더 열등한 것에서 올 수가 없는 법이오.

그런데 이러한 고찰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그것은 악하고 믿음이 없는 이 세대 사람들이야말로 어둠이 그들을 온통 뒤덮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대나 그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것이오. 인간이 그 본성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간 내부에 밝혀 두신 자연적인 빛을, 즉 이성의 빛을 꺼버리고 말았으니, 징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오.

이 가공할 책임에다 '계시'에서 나오는 빛인 믿음의 빛을 배척한 책임도 보탠다면, 인간은 결국 깊은 어둠에 잠기고 말아서, 그 어둠에서 빠져 나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오.


그들은 휩쓸려 가고 말리라.....


옷타비오 형제여, 그러므로 위대한 영적 실재들에 관한 이성의 빛과 믿음의 빛을 일생 동안 항상 거부한 사람들은 - 그래도 사실은 그러한 영적 실재 속에서 살며 참여하고 있었지만 -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들처럼 지옥의 어둠 속으로 휩쓸려 가고 말 것이오. 이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에 대한 가책과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에 의해서 빈번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기권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심을 품을 수 없었고 또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었으니 말이오.


옷타비오 형제여, 이런 이유로 비오 12세가 그대와 그대들에게 정화의 때에 일어난 일을 두고 하느님을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오.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로마 5,12 참조 -역주), 죄로 말미암아 '생명'과 '죽음', '선'과 '악', '빛'과 '어둠'이 대립하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기억해야 하오.

오늘이나 그 언제나, 그대들은 결코 판단하지 말 일이오!

형제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강복하오. 그대들은 그대들의 '섬김과 순종과 사랑"의 계획에 굳건히 일치하시오. 그러면 어떤 난관도 극복하게 될 것이오.

(1978년 9월 7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영원이란 결코 흘러가 버리지 않는 순간이오"


 

옷타비오 형제여, 쓰시오. 나는 비오 12세(1939년 3월부터 1958년 10까지 재위한 제260대 교황 -역주)라오.

교황이 그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그대에게는 어찌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세상에서나 우리 사이에 먼 거리가 가로놓여 있었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엄밀한 의미로나 비유적 의미로나 거리란 것이 존재하지 않소.

죽음에 의해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크고 깊기 때문에 거의 새로운 창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소. 영혼은 그 자체의 영적인 본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이는 변할 수가 없는 것이오. 그 반면에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물질과 시간과 공간의 법칙에서 벗어난 영혼의 생명이고, 이 생명이 세상에서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원 속에 잠기는 것이오.

 

죽음으로 사람은 영혼은 물질과 분리되오. 이 순간, 영혼과 다만 하나를 이룰 정도로 긴밀히 결합되었던 육신이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오. 이와는 반대로 영혼은 육신에서 해방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의 무한하신 '아름다움'과 '엄위'를 대하게 되오.

하느님의 심판은 인간의 말로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대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그 무엇을 보탤 것도 없소. 물론,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같지는 않소. 하느님께서는 심판 받을 사람의 영적 상태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니 말이오. 은총을 통해 하느님과 결합해 있지 않은 영혼들에게는 심판이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이를 한 번 더 받기보다는 차라리 으스러져서 사라지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길 지경이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관심을 가졌던 그 무엇도, 가장 애정을 쏟았던 것이나 다른 무엇도 더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 이 '전부'일 뿐이오. 하느님 외에는 일체가 '허무'이고, 허무보다 더 못한 것이어서, 하느님 외에는 단지 영원한 고통이 되는 것이오....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그 무엇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들

 

옷타비오 형제, 그대는 아직 내가 이 메시지를 주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 것 같구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과 나보다 먼저 다른 이들이 말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오. 그렇지 않소! 분명히 관련이 있어, 있어도 이만저만 있는 것이 아니오!

무신론적이고 비뚤어진 이 세대의 천박함은, 더 심하게 말해서 그  악의는 더 이상일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오. 그들은 더없이 단순하고 분명한 사물을 설명할 수 없어지면,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그 무엇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들을 지어내곤 하오. 무신론자인 정신과 의사가 사람이 선행을 행한 후에 느끼는 기쁨과 악행을 저지른 후에 느끼는 양심의 가책에 가책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해 줄 수 있겠소? 그러한 기쁨이나 심한 가책은 어디서 오는 것이오? 그런 것이 몸의 어떤 부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겠소?

우리가 편지나 전화로 받은 모욕, 혹은 제삼자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일으키며 가해 온 모욕은 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 상처를 입혔겠소, 아니면 우리 영혼에 상처를 입혔겠소?

오관 곧 육신의 구미를 충족시키는 사물들이 있는가 하면, 육신과는 관계없이 영혼에, 즉 우리가 영혼이라고 일컫는 영적 요소에 기쁨이나 고통을 주는 사물들도 있소. 바로 이 영적 요소가 육신을 형성하고 육신에 생명을 주는 요소가 아니겠소?

 

무신론적인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얼토당토 않는 말을 지어내어 사물을 복잡하게 만들고, 본디 분명하고 단순한 것을 애매 모호하게 만들어 종잡을 수 없게 하오.

어둠에 속한 자는 어둠일 수밖에 없고, '빛'에 속한 자는 빛일 수밖에 없는 것이오.

 

하느님의 행동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말 일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루르드와 파티마와 라살레트와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게 경고하시면서 속죄하고 회개하라고 당부하셨소.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셨으니, 이는 사람들이 회개에 필요한 자연적 초자연적 수단을 넉넉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쓸 수 있음을 뜻하는 말씀이오. 그러니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은 탓으로 (지옥에 간가면), 그 영원한 멸망의 책임은 단지 그들 자신에게 있을 따름이오.

보통 사람들은 아주 단순한 고찰들의 일정한 결론에 이를 수 있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만 그의 의지 - 타락한 의지 탓이니, 진리보다는 오류를 선호하고, 선보다는 악을 보며 자진해서 악을 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하느님께서는 결코 악을 원하시지 않고, 원하실 수도 없소. 악을 원하신다면 하느님이 아니실 것이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숭고한 계획에 따라 악에서 선을 이끌어내시기 위해서 악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소. 이는 아주 흔히 악을 저지른 그 사람의 선익을 위해서, 어쨌거나 항상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허락하시는 것이오.

물질적인 악이건 정신적인 악이건 악은 언제나 죄의 결과이오. 죄로 말미암아 재난이 오는 것(propter peccata veniunt adversa)이오. 하느님께서 악을 응징하신다면 악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임에 분명하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공의롭지 않으신 분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이는 자명적인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소?

 

정화의 때가 임박하였소. 그것은 정화의 때가 되리니, 인류가 고의로 저지른 악은 모조리 불타고 말 것이오. 옷타비오 신부, 내가 이 메시지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으니, 그 무서운 때가 시작되면 하느님의 행동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말 일이오! 그렇게 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고, 하느님께서 너무 엄하시고 어쩌면 불공평하기까지 하시다고 비난마저 하고 싶겠지만, 거듭 당부하는 말이니 절대로 그렇게들 하지 마시오. 그대들이 그런 짓을 한다면 중대한 죄가 될 것이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강복이 끝까지 그대와 함께 하시어,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그대를 떠받쳐 주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빌겠소!

(1978년 8월 3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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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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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2월 12-14일, 12월 17-19일, 2021.1.2. / 2020.12.18. 장원 GOOD! (이정순로부터 연락받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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