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2.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25 조회수1,396 추천수4 반대(0) 신고

(의정부교구 순교 사적지, 성 남종삼 요한과 가족 묘소 입구)

202012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 낮 미사

복음 요한 1,1-5.9-14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어느 해 성탄 미사 강론에서

엘리 비젤이라는 유대인이 전한

비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셀이란 아이가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울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술래 친구가 자기를 찾지 않고

집으로 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아이의 슬픔에 공감이 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숨어 있어서 찾지 못한다고

좋아하고 있었지만, 한참을 숨어

있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밖에

나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억울함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 아이 역시

그런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눈물로 범벅이 된 손주의

호소에 랍비인 할아버지는

이 사실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깨달음을 담아서 이렇게 타이릅니다.

그랬구나. 그러면 안 되지.

그런데 얘야. 하느님도 마찬가지란다.

그분이 숨으셨는데 우리가 찾지 않는 거란다.”

술래가 숨어 있는 친구를 찾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리면 숨어 있는

사람의 입장은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데 찾지 않고

자기 편한 곳으로 그냥 가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성탄에 마구간에 태어난 한 아이 안에

하느님이 숨으셨습니다. 그리고 숨은

하느님을 발견한 사람만이 성탄의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때에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성모님, 요셉 성인, 동방박사, 목동. 그들

모두 큰 기쁨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초라한 마구간의 말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큰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숨어 계십니다.

내 이웃 안에 특히 고통과 시련 속에

힘들어하는 이들 안에 숨어 계십니다.

이 하느님을 발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당연히 큰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큰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이웃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올 것이다.

(M.A. 베레).

주님을 보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세뱃돈으로

받은 돈을 들고서 동네 문방구에 가

망원경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에서 본 하늘에 떠 있는 많은 별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동네 조그마한 문방구에서 파는

오천 원짜리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볼 수 없었습니다.

너무 흐릿해서 아무 별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별을 보려면 고가의 천체 망원경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책에서 본 것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오천 원짜리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보겠다고 한다면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주님을 완벽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뜻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자기 뜻을 다 이루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해주세요.’

라면서 끊임없이 청원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로 주님을

설득시켜야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한다는 것은 그것을

주시도록 하느님을 설득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주신 그분의 선물을

알아차린다는 뜻이 아닐까요?

(의정부교구 순교 사적지, 성 남종삼 요한과 가족 묘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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