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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학자 기념일](요한1,19-2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2 조회수1,14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2일 토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학자 기념일](요한1,19-28)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 01월02일 화요일

 

<독서>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1요한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3ㄷㄹ)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복음>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요한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 학자 기념일 제1독서(1요한 2,22-28)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5-26)

 

'영원한 생명'으로 번역된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ten zoen ten aionion)에서 '영원한'으로 번역된 '아이오니온'(aionion)의 원형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시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펼쳐질 영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생명은 미래적 약속일 뿐 아니라 현재적 약속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영생이 주어지게 되고 또한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약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드님과의 일치이다(1요한2,23). 아드님 없이는 생명이 없고,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요한3,36; 1요한5,12).

 

한편 '생명'으로 번역된 '조엔'(zoen)의 원형 '조에'(zoe)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가지게 될 생명을 뜻한다.

이 생명을 소유한 자에게는 부활의 약속과 천국의 희망이 주어지게 된다.

 

'속이는 자들'로 번역된 '톤 플라논톤'(ton planonton)에서 '플라논톤'(planonton)의 원형 '플라나오'(planao)는 '길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명사 '플라노스'(planos)에서 유래하며 바른 진리의 궤도를 걷고 있는 자를 이탈시켜 탈선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유혹하다', '탈선시키다' 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정관사를 동반하여 현재분사형으로 쓰였는데,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 활동하고 있었던 특정한 '적 그리스도'적 인물과 집단으로서 사도 요한 당시에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을 속이는 무리들로서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거짓된 교리를 주입시킴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되심을 믿지 못하게 하며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도록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의 특이한 점은 불신자들보다는 성도들을 속이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27)

 

27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기름부음'(토 크리스마; to chrisma)은 20절에도 나오지만 성도에게 임하는 성령을 지칭한다.  그 성령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본절에서 '주님께'에 해당하는 '아프 아우투'(ap autu)는 '그분에게서'(from Him)라는 의미로서 성령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나타낸다.

 

그런데 요한 복음 14장 16절, 26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주는 분은 '성부 하느님'인 반면에, 요한 복음 16장 7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요한 복음 15장 26절에 따르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도들에게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아프 아우투'(ap autu)는 일차적으로는 '성부 하느님으로부터'라는 의미이며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는 의미가 된다.

 

초대 교회 교부들이며 신앙의 옹호자들인 성 아타나시우스, 성 바실리오와 성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이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 주장하면서 동시에 성자에게서도 왔다는 사실을 반대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서방 신학자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렇게 해서 성도에게 임하신 성령은 성도의 영(심령) 안에(엔; en) 지속적으로 머무른다(메네이; menei).


사도 바오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1코린12,3). 그러한 성령은 성도의 영 안에서 슬퍼하기도 하시며(에페4,30), 탄식하기도 하시며(로마8,26),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도록 거룩한 열망을 일으키기도 하신다(갈라5,16.22.23).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27)

 

성도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몸소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요한14,26), '그리스도의 적'(적 그리스도)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르칠'로 번역된 '디다스케'(didaske) '디다스코'(didasko)의 현재 가정법이고, '가르치십니다'로 번역된 '디다스케이'(didaskei)는 '디다스코'의 현재 직설법이다.

 

여기서 사용된 '디다스코'는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시간과 기간 동안 다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가르쳐주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들은 성령의 가르침보다는 사람의 가르침을 중요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가르침을 지적인 기름부음으로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영지(靈知)라는 지적 기름부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속이고 유혹하였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이단을 염두에 두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십니다'의 '디다스케이'(didaskei)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성령이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 14장 26절의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와같이 진술하였을 것이다.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 기념일 복음(요한1,19~28)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7)

 

여기서 '뒤에'로 번역된 '오피소'(opiso; after)는 장소에 관한 부사가 아니고 시간 부사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자 요한보다 시간적으로 뒤에 오셨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출생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6개월이 늦으셨고, 활동을 시작하신 것도 그렇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도록 파견된 일꾼이므로, 언제나 그분보다 시간적으로 앞서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오시는 분'으로 번역된 '호 에르코메노스' (ho erchomenos; one who comes; He who comes)이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오시는 분'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요한의 문헌들에서는 예수님의 오심에 관한 언급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요한 복음 7장 28절의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요한 복음 8장 42절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요한 복음 5장 43절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요한 복음 10장 10절의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복음 12장 47절의 '나는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라는 구절들이 있다.

 

또한 그분의 오심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각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심판하시는 주님으로 재림하실 때까지는 끊임없이 각 사람을 찾아오셔서 구원의 초청에 응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여기서 '오시는 분이신데'로 번역된 '에르코메노스'(erchomenos)가 현재 분사인 것은 예수님께서 계속 우리에게도 '오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오시는 분'의 개념은 주님의 재림과도 관련된다.

 

요한 복음 14장 3절의 '내가 ~다시 와서'라는 표현에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분께서는 약속대로 다시 오신다.

어느 누구도 그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지만(마태24,36), 오로지 하느님께서 정하신 그때에 다시 오실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도둑같이 오실 주님의 재림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그분의 생명과 복락의 나라에 결코 참여할 수가 없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라는 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죄와 불의를 멀리하고, 거룩하고 흠없으며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비유하는데, 자신은 유대인 가정에 있는 종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종이 하는 일인,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의 신을 벗기고 발을 씻어 주는 자격조차 없음을 '나는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표현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종보다 더 못한 존재로 극진히 낮추는 것은 바로 이어 등장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기 위함이다(마태3,11; 마르1,7; 루카3,16참조).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1월 2일 목요일 제1독서 (요한1서 2,22-28)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것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것(요한3,16) 믿지 않는 것 그렇게 우리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오셨다는 것(1요한 2,2) 부인하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불리한 죄의 조항들그 빚 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버리셨다는 것(골로2,14)그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그 깨끗해짐그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다는 것(히브10,18.22) 믿지 않는 것홀로 그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임을(요한17,3) 깨닫지 못하는 것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거짓말쟁이입니다많은 신앙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리3,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죄의 덮음을 위한 대속그 사랑 그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십자가입니다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곧 하느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 처음입니다.

 

창세1,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는 그 어둠의 상태인 죄인들 위를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라하프-덮음)계심참 빛이신 영이 어둠을 덮으시기 위한 품으심입니다그 말씀(약속)이 영원한 생명입니다그러나 어둠이 자신의 그 어둠의 빛을 부인할 때 그렇습니다.

 

루가13, 34 “예루살렘아예루살렘아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라하프),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윤리의 그 자기의 의로움을 빛으로 착각하면 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아니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그러니 인간들의 빛을 하늘의 빛으로 가르치는 그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기름부음,-성령 받음입니다.

 

요한14, 26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십시오사람의 교리 규정 그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그분의 규정 법규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나무 하나의 약속 그 규정 법규(탈출15,25), 곧 십자가의 길이 영원한 생명구원의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23, 8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림(파르지아)옆에 나타나다드러나다 라는 뜻입니다나무 하나의 약속그 십자가의 대속그 피로 양심까지 깨끗해져 있을 때 그 주님의 뜻이 드러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들의 계명으로 깨끗하다고 자신했다가는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인간의 희생노력 그 의로움으로는 죄가 씻기지 않아 더러운 죄가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참조~

히브9, 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태5,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로마8,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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