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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그의 나병이 가셨다. (루카5,12-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8 조회수1,09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8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그의 나병이 가셨다. (루카5,12-16)

 

1독서<성령과 물과 피>(1요한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

◎ 예루살렘아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주님을 찬미하여라시온아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복음<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루카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 공현 후 금요일 제1독서 (1요한5,5-13)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5~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5)

 

'누구입니까'로 번역된 '티스 에스틴'(tis estin)에서 의문 대명사 '티스'(tis)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매우 구체적이며 개인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원리와 수단이기는 하지만(1요한5,4),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니콘'(ho nikon)에서 '니콘'(nikon)은 현재분사로서 계속적으로 '쳐부수는 자','정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속임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나감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인 메시지와 함께 당시에 있었던 이단들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6)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1서 5장 6~9절에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물' 번역된 '휘다토스'(hydatos)와 '피'로 번역된 '하이마토스'(haimatos)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첫째는 물과 피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써 수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절의 물과 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세째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실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이라는 견해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물세례(수세; 水洗)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인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활 활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활 활동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행하신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성경은 '오신'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오신 분'(호 엘톤; ho elthon)이다.

 '엘톤'(elthon)의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는 기본적으로 '오다'(come), '가다'(go)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부정 과거 분사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이미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이 세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not~but' 용법과 같이 전자를 부정함으로써 후자의 긍정적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우크~알르'(uk~all)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만이 아니라'에서 '만'(only)에 해당하는 '모논'(monon)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물' 단 하나와만 연관시키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잠시 동안만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사도 요한은 '단 하나 그것만'이란 매우 강한 배타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이단 사상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우크'(uk)란 부정어를 사용하여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특히 후반절의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번역된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en to hydati kai en to haimati)에서는 '토'(to)란 정관사와 더불어 '~안에' 뜻이 있는 전치사 '엔'이 '물'과 '피'란 단어 앞에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 아니라 '피'도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둘 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됨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증언하시는 분'으로 번역된 '토 마르튀룬'(to martyrun)의 원형 '마르튀레오'(martyreo)는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사도22,5; 1코린15,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곧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튀룬'(martyrun)은 현재 분사이므로, 그 증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요한15,26; 16,13.14).

 

'성령은 진리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테이아'(hoti to pneuma estin he alletheia)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Spirit is truth)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며, 그가 진리 자체이시므로 그가 증거하는 내용 역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역시 진리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다(요한14,17).

 

한편 본문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그리스어에서 직설법 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변치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이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치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2019년 1월 11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나병 환자를 치유. (루가 5,12-16)

 

루가 512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살이 썩고뼈가 잘려나가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입니다곧 죄로 영이 죽어가는데도 그 죽음의 고통을 모르는 죄의 모형입니다그러나 오늘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을 고쳐주실 분을 찾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이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지도아니 관심도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그 병죄를 드러내시려고~

히브4,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드러내심입니다.


12ㄴ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땅흙의 존재임을 인정고백하는 또 자신의 병()을 치유(용서)해 주실 주님이심을 아는 병자입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의 손덮으심의 재창조의 손입니다깨끗하게 재창조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일치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1요한3,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인 나무 하나의 희생(탈출15,25) 곧 대속의 십자가를 믿는 것계명지킴입니다.

 

요한16,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청하여라받을 것이다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니~

마태6,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치유하시어 구원하러 오셨습니다그 치료약이 당신의 죽음 깨끗한 피 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의 의로움 그 열쇄곧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3,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하신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요한17~) 하느님과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나병환자 악성피부 환자가 바치는 예물입니다.

 

레위14, 11 정결례를 거행하는 사제는 정결하게 되려는 사람을 이것들과 함께 만남의 천막 어귀주님 앞에 세운다. 12 그리고 사제는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끌어다 기름 한 록과 함께 보상 제물로 올리는데그것들을 주님 앞에 흔들어(기쁘게바치는 예물로 드린다.

흠 없는 어린양의 죽음곧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 피로 깨끗해짐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우리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 예물만이 용서구원의 증거가 됩니다그 그리스도의 피로 받는 용서구원이 아님 보이는 예수님의 육의 치유만을 전할까봐간증이라는 것을 할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 하십니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말씀도 듣고병도 고치고예수님의 말씀으로 병의 치유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병고난 그 시련 속에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일하심이 있기에 그 육의 치유를 위한 것은 신앙의 목적방법이 아닙니다.

 

로마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喜怒哀樂)이 함께 작용하여 선(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떠가십니다.

 

탈출20,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1계명)

=직역하면 나를 다른 신으로 있으면 안 된다.’니다요즘 받는 요한1서 말씀의 결론이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5,21)로 끝납니다.

믿는 대상이 잘못된 것이 우상’, 믿는 방법이 잘못된 것을 미신이라 합니다그래서 예수무당 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로 올바른 방법으로 새 생명곧 구원용서를 위한 올바른 신앙을 삽시다.

 

요한14,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생명(용서구원)의 올바른 방향방법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올바른 기도)

마태6,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멘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 루카 5,12-16 † 지금 그리고 여기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복음 (루카5,12-16)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3)

 

루카 복음 5장 12절부터 15절까지는 나병환자 치유 기사이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산상설교를 마치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의 제1차 갈릴래아 활동 기간 가운데 산상설교가 주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다(마태8,2~4; 마르1,40~45).

그리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라고 되어 있고(마태8,2), 마르코 복음 역시 '와서'라고 되어 있다(마르1,40).

 

이것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서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레위13,45.46)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본문은 마치 나병환자가 동네 안에 있다가 예수님을 보고 다가와 엎드린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서와 같이 그 정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 있다가 예수님이 계시는 동네에 들어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당시 사회적 통념이나 정결례법으로는 나병환자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은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병환자에게 몸소 손을 대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셨다는 것은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마르1,41), 즉 측은지심(연민의 정)과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그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동 가운데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깨끗하게 되어라'에 해당하는 '카타리스테티'(katharistheti; be clean)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 '카타리조'(katharizo)의 과거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런데 '깨끗하게 되다'라는 말 속에는 깨끗하게 되는 대상의 상태가 불결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 불결함의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병'이 전염성이 강한 불결한 병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이러한 표현가운데에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병은 레위기의 정결에 대한 규정(레위기13장과 14장)과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나병(악성 피부병)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죄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카 복음 5장 13절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셨다는 뜻과 더불어 그 나병환자의 영적 질병인 죄의 문제까지 해결하셨다는 뜻까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만이 이러한 전인적 치유가 가능하며, 예수님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온전한 치유를 베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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