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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 (마르3,20-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3 조회수1,15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 (마르3,20-21)

  연중 제2주간 토요일(1/23)

 

1독서<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성소로.>(히브9,2-3.11-14)

첫째 성막이 세워져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제사 빵이 놓여 있었는데그곳을 성소라고 합니다.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화답송 시편 47(46),2-3.6-7.8-9(◎ 6)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 모든 민족들아손뼉을 쳐라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경외로우신 분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노래하여라하느님께 노래하여라노래하여라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복음<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마르3,20-21)

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집으로 가셨다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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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히브9,2-3.11-14)

 

"첫째 성막이 세워져 그 안에 등잔대와 제사 빵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을 '성소'라고 합니다.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2~3.11~12)

 

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암시이며 약속이고,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요 성취이며 실현이다.

탈출기 26장에 나오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들어 있는 '계약 궤'를 모시는 '성막' 혹은 '만남의 천막'에 대한 계시는 바로 신약의 교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성막의 울타리의 문은 동쪽에 있는데, 그것을 열고 들어가면 (번)제단 (탈출27,1~8; 38,1~7)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 바쳐지는 여러 가지 제사 (화목의 친교제사, 속죄제사 등등)에 바쳐지는 동물을 살라 바쳐지는 곳으로, 신약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갈바리아를 예표한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에 들어가기 전 물두멍(탈출30,17~21; 38,8)이 있는데, 만남의

천막 안에 들어가 봉사할 레위 족속들이 손과 발을 씻는 곳인데, 수족(手足)을 정화하지

않고 만남의 천막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죽게 된다.

 

말하자면, 번제단과 물두멍은 가톨릭 교회의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이 은총을 얻어입는 세례성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제 만남의 천막 안에 들어가면, 휘장을 사이에 두고 지성소와 성소로 나뉘어진다.

 

성소는 지성소를 모신 휘장을 앞에 두고, 왼쪽에는 등잔대(탈출25,31~40; 37,17~24), 오른쪽에는 제사상(탈출25,23~30; 37,10~16)이 있으며, 휘장 앞에는 분향제단 (탈출30,1~10; 37,25~28)이 놓여 있다.

 왼쪽에 금으로 된 일곱 촛대로 만들어진 등잔대는 시편119장 105절의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라는 말씀대로 영혼의 양식이며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는 계명을 상징하는 신,구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성막을 비추는 등불은 올리브 기름에 의해 유지되므로, 이스라엘의 주요 농산물인 올리브 나무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생계를 어느 정도 책임져 주므로, 그들의 생사대권이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계명의 실천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현세적이고 육신적인 생명도 계속 축복받음을 상징한다.

 

오른쪽에 있는 제사상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수대로 광야 생활에서 아침에 해뜨기 전에 수거한 만나로 만든 빵을 제일 먼저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여 제사상 위에 6개씩 두 줄로 올려 놓으면 일주일에 한번 씩 갈아 놓는데, 이것은 신약의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지성소가 모셔진 휘장 앞의 분향 제단(탈출30,1~10; 37,25~28)은 제사상보다 높은 데, 대사제가 바치는 '기도'가 피어오르는 '향'으로 상징된다.

 

바로 이것은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치는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부 하느님께 바쳐지는 기도를 의미하는데, 성막 밖의 번제단과 물두멍이 가리켜 주듯이 대죄의 사함을 온전히 받아 은총의 지위에서 바쳐지는 기도와 예배만이 무죄하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 하느님께 올려짐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휘장에 대해서는 탈출기 26장 31~37절(탈출36,35~38)에 나온다.

 1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대사제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잘못을 벗기 위해서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

 

이것은 레위기 16장 1~34절에 나온다.

 대사제는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하기 위해 휘장 안으로 들어가 황소의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속죄판 동쪽 위로,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속죄판 앞에 일곱 번 뿌린다(레위16,14).

 

그리고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될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와 황소 를 뿌릴 때와 마찬가지로 속죄판 앞과 위에 뿌린다(레위16,15~16).

 이것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상징하는 율법이 계약의 궤 안에 들어 있는데,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이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 대전에 나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십계명이 들어 있는 계약의 궤의 두껑(증언판 혹은 증거판) 위에 또 하나의 두껑인 속죄판을 씌웠는데, 속죄의 날에 대사제가 번제단에서 잡은 황소와 숫염소의 피가 바로 그 속죄판 위에 떨어져 율법으로 말미암아 지은 죄를 씻어 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속죄판과 그 속죄판 위에 뿌려지는 피는 신약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죄판 위로 양 옆에 만들어진 케루빔(한글 새 성경에는 커룹) 천사들이 그 피가 뿌려지는 속죄판을 바라보며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 속죄판 위의 케루빔 천사들 사이에서 당신의 현존과 임재를 드러내시며, 모세와 대사제와 대화하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데, 이 하느님  현존과 임재의 자리를 '셰키나'(shekinah)라고 한다.

 

바로 이 '셰키나'로 부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성막 천정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며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만남의 천막(성막)의 '계약의 궤'를 모신 지성소가 있는 곳이 서쪽인데, 여기 '계약의 궤'위의 '셰키나'로 부터 나오는 구름기둥(불기둥)을 보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진영에 함께 머물고 계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알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만남의 천막(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천막을 치고 초막(장막) 생활을 하다가,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만남의 천막과 자신들의 천막들을 거두어 구름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계약의 궤'를 모시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요르단강(죽음을 상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천국을 상징)을 향해 행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지상의 순례 생활을 상징하는 광야의 초막 생활은 무조건 제멋대로 사는 생활이 아니라, 구름 기둥(불기둥)의 안내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Go & Stop)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순종 생활이었던 것이다.

 

바로 오늘 히브리서 독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운명하셨을 때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처럼, 무죄하신 예수님의 단 한번의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인류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아버지의 옥좌가 계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다.

 

참고로, 번제단의 짐승이 태워지는 속불판과 만나가 놓여진 제사상과 계약의 궤의  속죄판의 높이가 같다는 것은 엄청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희생과 사랑의 신비를 계시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계약의 궤'(The Ark of Covenant)에는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십계명이 세겨진 돌판', 그리고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만나가 들어있는 금항아리', 그리고 '사제직과 성사 은총'을 상징하는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은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있다.

 

이것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체험하는 세 가지 방법인 '말씀'과  '성체성사', '사제직과 성사은총'를 계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성체'가 모셔진 '감실'(Tabernacle)을 예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의 궤'는 우리가 몸담고 사는 신약의 '감실'을 의미하고 있다. 

 

 

[매묵]2018년 1월20일 [(녹) 연중 제2주간 토요일]매일미사 묵상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3,20~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1)

 

'예수님의 친척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르 아우투'(hoi par autou; his family) '그에게 속한 자들' 또는 '그와 함께 한 자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구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마르코 복음 3장 31절 이하의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오는 문맥과의 조화를 생각하면, 이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붙잡으러' 해당하는 '크라테사이'(kratesai; to take charge of; to lay hold on)의 원형 '크라테오'(krateo)는 '체포하다'라는 뜻이라서 (마르6,17; 12,12참조), 예수님께 대한 그의 가족들의 태도가 얼마나 무지하고  살벌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 대해 영적인 의미에서 가족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신 반응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보인 이런 부정적인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에 빠져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

 

이제 예수님께 대한 평가의 하나인 '그가 미쳤다'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예수님께서 미쳤다'에 해당하는 '엑세스테'(ekseste; he is beside himself; he is out of his mind) 원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의 밖으로' 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어떤 상황이나 관계 속에 있다'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현재의 상황이나 현상들에 대하여 정상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대한 이런 단정적인 소문은 예수님의 가족들로 하여금 그를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미쳤다'는 말은 곧 '마귀가 들렸다'는 뜻이었다(마르1,23). 


이 구절 이후에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대해 베엘제불이 들렸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마르3,22).

특히 마르코 복음 3장 30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6장 1절 이하를 보면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일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고요한 복음 7장 5절에는 예수님의 형제들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마르코 복음 3장 21절과 3장 31~35절의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판단하고 그를 붙들러 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 3장 22~30절에서 예수님을 향해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 학자들과 예수님의 논쟁을 앞뒤에서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마귀를 내쫓는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마귀들려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멀리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 뿐만 아니라(마르3,22), 그의 일을 지켜본 갈릴래아의 사람들이나(마르3,21 후반절) 심지어 자신의 친척들과 가족들까지(마르3,21 전반절)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마귀에 들려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예수님께 대한 비난에 가까운 배척과 오해, 영적 무지와 불신이 더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21년 1월23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 주님께 미친 행복한 사람들 ♣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가시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3,20). 그분의 새로운 가르침을 듣고, 병을 고치시며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능력을 본 이들이 치유와 해방의 샘물을 찾아 몰려든 것입니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가시는 예수님께로 방향을 튼 것이지요. 


한편 예수님의 친척들은 소문을 듣고 미쳤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붙잡으러 나섭니다(3,21). '예수님의 친척들'을 직역하면 '그분에게서 오는 이들' 또는 '그분 곁에 있는 이들'입니다. 이 표현은 추종자들, 친구들, 가족들, 친척 등으로 옮길 수 있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분을 ‘미쳤다’고 판단하여 붙잡아 데려가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가는 길에 묶어두려 한 것입니다. '미쳤다'는 말은 '~의 밖에 서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정신이 나가 있음을 표현한 고전적 그리스어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열두 제자의 조직에 부름받지 못했지요. 그 결과 친척들은 예수님을 자신들과 무관한 저 밖에 있는 사람, 곧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가고 있는 인생길을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고향, 친척, 직업을 저버리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3,20) 세리들, 죄인들과 어울리고 배척받으며 정처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시는 비정상적으로 비친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들의 삶과 생각과 행동의 범주 ‘밖에 서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친척들이 정상이라고 여기던 그 길은 실은 선과 생명과 자유와는 거리가 먼 길이었습니다. 그 들은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적이며 심지어 하느님과 무관한 그런 길로 역주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은 자신들이 제정신이 아니면서 정상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생명과 자유의 길이신 예수님께서는 역주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유턴하도록 초대하러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정상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그 길에서 벗어나 창조 때의 생명의 숨결과 영 안에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자유와 참생명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십자가를 지고 '미친듯' 걸어가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강력한 도전과 유혹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의 영과 복음가치를 추구하는 우리는 오해받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자유와 기쁨을 모르고 원하지도 않는 이들의 눈에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은 죄다 미친짓으로 보일 테지요. 그럼에도 하느님께 미친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생활방식에 따라 선을 추구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며 함께 불의에 맞서며 해방의 길에 투신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세속의 가치와 인연, 고정관념과 편견, 하찮은 판단의 잣대와 굳어진 사고의 틀과 묵은 습관에서 벗어나, 주님께 미쳐 생명을 호흡하는 행복한 우리이길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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