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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월 23일(토) 독서묵상글 / 영원한 속죄 (히브리9,11-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3 조회수78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1 23() 독서묵상글 (공동번역)

 

영원한 속죄 

(히브리9,11-15)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제로 일하시는 성전은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2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3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도 그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면 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먼젓번 계약 아래서 저지른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유산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아멘

 

이번에는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리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큰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갔다 그래요. 창조에 속한 성전은 다 모형이다 가짜라는 뜻이죠. 창조에 속하지 않은 진짜 성전이 있다는 거죠 그게 어디예요. 하느님 나라에 완성되어 있는 창조에 속하지 않은 이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한 거예요.

창조에 속하지 않은 그 원형이 있고 거기에 대한 모형으로 성전이 주어진 거죠? 그 성전은 바로 우리자신, 하느님께서 임하시는 처소로 우리자신 하느님백성을 가리키는 거고 그 백성이 이미 하느님나라에 완료되어 있단 얘기잖아요 그죠. 우리가 하늘에 있다 없다 이런 간단한 얘기를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오로가 우리를 성전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히브리서 보면 그게 하늘에 있다잖아요.

그러면 분명히 우리가 하늘에 있고 이미 완료되어 있는 어떤 현실을 이 땅에서 그려내는 모형으로 사는 거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삶이 묵시 속 천국행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거 잖아요? 그런데 뭘 열심히 해서 상을 받고, 천국을 가네 마네 그런단 말이에요?. 원죄가 뭐예요? 니네는 그냥 '죽을 자였다' 란 뜻이에요~ 무슨 죄? 그러니까 자꾸 어머니 뱃속에서 무슨 죄를 짓고 나왔냐 자꾸 그러는데.. 설명도 되지도 않는 어린 나이에 아담이 죄. 그게 '아담이 흙인 것처럼 나도 흙이다' '원죄' 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십자가와 보혈 이런 얘기하면은 고리타분해 해요.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거를 이야기를 해~ 왜 이해 되지도 않는 거를 믿음이라는 걸 억지 그런 억지를 갖고 왜 우리에게 강요해?~ 이렇게 나온단 말이에요. 너는 이해되니?~ 이렇게. 이해되면 말로 설명을 해 봐~ 그거는 신을 인간의 언어와 이성으로 규정하고 한계지어 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야 이해가 갈 거 아니에요 예? 우리 이성에. 그런데 나는 믿겨지는데... 그 아이들에게 무조건 억지로 그러니까.. 설명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뭐 항상 얘기가 안 통하는 거... 그러니까 뭐 묵시 속에 이미 하느님이 이미 하느님 나라 완성하셨다 그러면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러고.

그러니까 다 이해시켜 달라는 거예요. 십자가 피 이런 거 말고 그리고 뭐 예수님의 부활, 동정녀 탄생, 아 이딴 소리하지 말고 이해를 시켜라! (그러는 거죠) 이해를 시켜라.. 그런데 믿음이 없이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이제 무시를 해버리면 꼭 그걸 할 말 없으니까 답변도 못한다고 공격하고.. 당신은 당신이 이해한 것만 설명하라고 저에게 충고를 하고 그러는데. 우리가 이 땅에서 무슨 단순히 세상에 대한 욕심이나 없애구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나 분열을 초래하지 않는 훌륭한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그런 것이 그리스도교의 목적인 양. 지금 더 이상 예수의 십자가 피 같은 건 그냥 고리타분한 그런 것이 되어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은 굉장히 괜찮은 가르침이고 교회인 줄 알아요.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예수의 공로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참 이 시대가 어떻게 이렇게 됐느냔 말이에요.

 

분명히 성경은 '하늘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완료돼 있다' 라고 그래요. 그리고 예수는 그리로 돌아 가셨다 그러죠. 그리고 뭐를 거기에서 씻어 내셨냐면 이 세상의 모형의 성전에서는 짐승의 피로 '육체' 를 정결하게 했다 그래요. 그러면 육체를 정결하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게 오늘날 율법주의잖아요. 육체를 사람들이 보기에 이 세상에서의 인간들의 그 됨됨이 이런 것들.. 그런데 율법은 진짜 율법은 뭐냐면... 마음을 다하고..란 말이에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잖아요? 그럼 육체가 깨끗하면 안되는거죠?

그래서 오늘날 뭐라 그래요.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의 피는 양심을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요. 그러면서 어디서 구한다고 그러냐면 죽음의 행실에서 구한다 그래요. 이 말은 우리가 행하는 그런 더러운 행위 도둑질이나 무슨 뭐 살인이나 이런 거에서 건진다는게 아니라 인간이 행함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행위로 도달하려고 하는 그 모든 행함 행위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행위'를 갖고 하느님 나라의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한 게 뭐예요? 바벨탑이죠. 그런데 에제키엘서에 보면 성전에 계단이 있어요 분명히. 그래서 율법의 그 모형으로서의 계단은 그렇게 모형으로서의 성전은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게 돼 있어요 성전이 이렇게 올라가게 돼 있다고 3층으로 돼 있단 말이에요 성전이...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아버지하고 형 속이고 도망가다가 완전히 작살난 거예요 이제.. 완전히 빈털털이 돼 가지고 광야에 누워 있는데 사닥다리가 나오죠. 그 사닥다리가 사다리가 아니예요. 성전의 계단과 똑같은 단어거든요? 바벨탑의 계단도 똑같은 단어예요. 그러면 인간이 쌓아대는 바벨탑의 계단과 모형으로서의 성전의 계단이 같은 거고 이게 율법주의란 말이에요. 이거를 바벨론 바벨탑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하늘의 성전은 뭐냐면 하늘에서 계단이 내려와서 하느님이 그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거예요. 이걸 그리스도교라 그래요. 그런데 이 왜곡된 그리스도교는 항상 여기에서 우리가 계단을 타고 성화하여 올라가요. 성경은 창세기에서 부터 그걸 부수고 있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은 자꾸 계단을..우리가 역청과 벽돌로 쌓아 올리자..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바벨탑 쌓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못 알아먹는 거예요 인간이..

여러분 人本으로 가게되면 절대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걸 안다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오르락 내리락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했다 라는 건 그 하느님의 보좌가 (항상 그룹들과 나타난) 우리에게 임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 '성전' 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뭐라 그러냐면 1장이죠 인자 위로 층계가 나오구.. 그러니까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겠다라는 건 그 성전이 예수란 말이예요 예수! 예수가 나에게 내려와서 나를 당신의 신부로 꼬~옥 끌어안고 옷자락을 덮구서 나를 꼬~옥 끌어안은 게 구원이지 우리가 기어 올라가서 예수를 붙드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항상 물어보는 게 그러면은 '막 살아도 돼요?' 왜 인간의 행위에 그렇게 가치를 둬요? '막 살아도 돼요?' 라는 말은 내가 하는 행위가 굉장히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 이 가치있는 행위를 안해도 돼요?' 이런 뜻이란 말예요. '막 사는 건' 또 뭐예요

성도는 아니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막! 못 살아요. 모든 게 성령의 장중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존재 땅 속의 미생물도 막! 살 수 없게 되어있는 거예요. 이 세상은요 하느님에 의해 움직이는 거란 말이에요 다~! 하느님의 성령의 장중에서. 그런데 뭐가 막 사는 거냐고. 그리고 어떻게 막 살아요? 하느님이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데...우리가 그 하느님 나라 안에 완료되어 있는 하느님 나라 그것을 진짜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렇게 예수가 우리에게 내려와서 하느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우리가 구원이 된다라는 것을 알면 이 세상에서의 그 나의 가치와 나의 명성과 나의 인기와 나의 평판 그리고 이 땅에서의 나의 소유 이런 것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 질 수 있어요.

 

우리는 돌아갈 집이 있다면서요. 그런데 이 시대의 교사들이 그걸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하늘에 완료되어 있는 내가 돌아갈 우리 아버지의 집에 대해서 안 가르치고 그냥 이 땅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해서 여기에서 나를 만족시키고.. 그러니까 어차피 내 인격적 성숙이나 도덕적 진보나 이게 다, 나에 대한 평가 나에 대한 인기 내 감정 여기에 관한 문제들 아니에요 다 이게? 그걸 아무리 느껴봐야 뭐하냐고요 이 모형인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찾아야죠.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거예요. 끊임없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를 자랑할 "꺼리" 를 찾는 게 이 세상 이예요. 그런데 '율법' '행함' 이라는 게 거기서 사용되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갖고 멋드러지게 자랑을 하면서 그게 왜 잘못된 건지를 모른단 말예요.

아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이라는 게 얼마나 이게 독선적이며... 굉장히 싫더라구요 제가. 그런데 성경은 그게 사실이래니... 예수를 안 믿고 아~ 세상에서 따뜻하고 평화롭고 착하게 살아도..결국에는 그게 하느님이 미워하는 삶이라고 그러니...! 하느님도 답답하다... 아 나도 그런 삶을 이야기해 주면서 우리 그렇게 좀 삽시다 이렇게 따뜻하게 남들을 사랑해주며...그런 거 고민해 보세요... 안 믿겨지거든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면서..재미나게 사세요. 괜찮아요 괜히 이 고생하구 예수도 올바로 믿지도 않구 그러면서 죽을 고생 할 필요 없어요.

 

고민하세요. ..내가 왜 예수쟁이 인가.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이런 고등 종교들...그 사람들도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 난 왜 예수만 믿어야 되는가..고민해 보시라구요. 그게 아닌거 같으면 차라리 난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고생들 하지말구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어차피 지옥갈 거면 먹고 싶은 거 다 먹구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너무 답답하니까. 왜 예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구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가...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그러잖아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하는 말이 그거거든요? '세상.. 율법'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이 말을요 제가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왜 율법에 대하여 죽고 왜 율법이 죽었다고 그럴까....

오늘 새 계약, 옛 계약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율법을 주면서 뭐라 그래요? '지키면 복 준다' 그러죠. 지키면 복 준다가 율법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행함은 반드시 '' '' 와 관계가 있어요. 하느님은 그걸 아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켜 복줄게' 라고 한거 거든요? 그런데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는 건 무슨 말이에요? 나의 복이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손에 있는 것이고 '~ 내가 어떻게 해서 얻어낼 수 있는 복은 없다' 라는 것을 아는 걸,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추구하고 내가 얻어내려고 하는 복이 죽는게.... 율법에 대하여 죽는 거란 말이에요. '지키면 줄게' 라는 그래서 대부분 착하게 살아요. 그래서 대부분 도덕과 윤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급하게 이 세상에서의 복이나 물질적 축복이나 이건 아니라 하더라도 '내 구원 내 천국' 위해서 그게 복이지 뭐예요 그죠? 그래서 율법을 행하고 도덕과 윤리를 지킨다고. 그런데 하느님이 그걸 미워한다니까요. 여러분에게서는 내 천국과 내 구원까지도 그런 개념까지도 없을 거예요.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고 예수에게로 돌아간다면서요. 그리고 예수를 위해서 창조됐다며요. 그런데 내 구원 내 천국이 어디 있냐고.

 

천국가기 위해 예수 믿으라 하고 그러고 구원받기 위해 예수믿는다 그래요. 아니 천국 없으면 어떡할 거예요? 그럼 예수님 괜히 믿었네? 이게 예수믿는 거예요? 혹시 구원 못 받으면 어떡할 거예요 여러분? 죽어라고 믿고 갔는데 구원 안해줘 나만.. 그러면 그 때 예수님 욕할 거 아니에요...

예수를 믿는 건 '내 천국 내 구원' 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나를 사랑한 그 분이 어떤 분인 줄을 알아 그 분을 사랑하는 거예요. 내 구원 내 천국이 없어도 그 분이 사랑스러워야 돼요. 그러려면 내가 누군지가 처절하게 나에게 체감이 돼야 되는데.... 그게 말씀으로밖에 안 된단 말이에요. 골수와 관절과 영혼까지 쪼개는 건 이것 밖에 없다니까요.

그런데 이 말씀이 어떻게 전해지면서 '야 여기에서 이 좀비같은 인생에 너희들이 의지와 노력을 곁들여서 이걸 좀 성숙시키고 발전시켜라~' 이게 말씀이 하는 역할이 맞냐고요. 왜 자유주의자 알미니언주의자 이런 사람들만 욕하냐구요. 오늘날 교회가 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예수를 사랑해야 된단 말이에요. 하느님을 붙들고 십자가를 붙들고... 이게 교회라니까요. 그 후에 착하게 살아요. 마치 목표치가 그게 다인 것 처럼 우리 歷史의 역할은 하느님만 이고 그 외의 모든 건 이구나를 드러내는 그 역할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부자청년이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이 그런 거예요. 하느님만 선이다 심지어 나도 선이 아니다 라고 얘기한 거예요.

예수님의 존재론적 평가를 하는게 아니라 하느님만 선인데 너희들은 니들이 선해질 수 있다라고 (왜냐면 그 이가 와서 뭐라 그랬냐면 무얼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라고 물었잖아요) 하느님만 선인데... 무얼 해야 영생을 얻다니 그러면 니들이 무얼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니들도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거 아니냐? 그거 아니란 말이야 를 가르쳐 준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만 선이고 우리는 모두 악이고 죽은 흙이구나를 드러내려면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되는건데, 그걸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이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강단에서 아니라 그러고 긍정의 힘이니 뭐니 하면서.......말씀 잘 지키고 종교행위 열심히 하면 복 받고 잘 살 수 있다고 이따위 얘기를 하는 거 아니냔 말이에요. 우리는 빨리 떠나야 돼요 여기를. 하루속히~ 이 좀비들의 세상에서 떠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지 않으면 아직 한참 멀은 거예요. 일이 안되고 지긋지긋해서가 아니라 그 하느님의 사랑만 가득 차있는 그 나라가 너무 너무 그리워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 세상이 이 역사가 참 너무 더럽고 추악하고 한 것을 내가 감지하고 아 그 나라 이 나라가 아닌 부활의 몸이 사는 그 나라 거기가 우리의 목적지구나 이렇게 알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고민 많이 하세요. 생각 많이 하시고. 짜 내가 예수 믿는 사람 맞나...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냥 종교행위로 추락해 버릴 수 있어요.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믿음에 의해 끌고 가겠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우리를 고민케 한단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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