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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 한번 희생제물 (히브리9,25-2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5 조회수75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1 25() 연중제3주간 월요일독서묵상글 (공동번역)

단 한번 희생제물

(히브리9,25-28)

25 대사제는 해마다 다른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 가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번번이 당신 자신을 바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26 그분이 몸을 여러 번 바쳐야 한다면 그분은 천지 창조 이후 여러 번 바쳐야 한다면 그분은 천지 창조 이후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은 이 역사의 절정에 나타나셔서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를 없이하셨습니다. 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28 그리스도께서도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 주셨고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당신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아멘


'심판'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審判이라는 건 여기서는 재판하여 선고를 내린다라는 의미보다는 '구별'의 의미가 있어요. 성경에서 '심판' 그러면 '구별' 이렇게 정의가 되는데 마지막에 구별이 일어날 텐데 그 구별이'산 자 죽은 자' 이렇게, 그 마지막의 모형으로 구약에 나타난 게 출애굽사건이죠? 出埃及. 애굽이라는 건 열심히 종노릇만 하면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이죠. 애굽이 뭐의 모형이냐면 나의 욕망의 종이 되어 사는 자들의 나라 를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의 욕망에 (그래서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굳이 애굽에서 먹던 것들을 들이대면서 이거 이거 먹고 싶다고 그런 거예요) 그리고 우리를 죽이려고 데리고 나왔냐? 하죠. 그러니까 살려고 이 육의 몸이 살려고 애를 쓰며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곳을 애굽이라 그러죠. 그래서 출애굽 그러면 우리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걸 출애굽 이라 그래요.


단순히 우리는 '' 라는 존재를 너무 신뢰하고 가치있게 생각하니까 자꾸 마귀라는 존재를 내 밖의 어떤 객체로 밀어내고 그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되는 그 놈의 종, 걔가 나를 이미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모양이지 걔만 없어지면 나는 괜찮은 존재일거야 라고. 이게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마귀의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마귀관은 그게 아니예요. 마귀는 분명히 '실재' 하는 존재지만, 하느님은 원형을 설명하기 위해 항상 모형들을 두시듯 마귀도 실존하는 존재지만 바로 그러한 어떤 것을 모형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뭘 모형하려고 하냐면 하느님 앞에서 살아있는 자 인척! 하려고 하는 그런 없음인 존재들의 발버둥. 이게 마귀란 말입니다.

원래 없었던 이 자를 대우해 주시는 이게 찬송이란 말이에요. 그러한 찬송을 해야 되는 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자기를 찬송하는 자가 되는게 마귀란 말이에요. 그게 우리란 말예요 우리잖아요 그게 애굽이라고요. 내 몸의 종이 되어서 사는 것. 내가 찬송 받을 거야! 라고 하는 거요. 그런데 뭐 마귀가 찬앙대장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마귀가 문화로 세상을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도 문화로 마귀의 그 세력에 대적해야 된다고 지가 마귄 줄을 모르고 절대 이 세상은 인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귀가 자꾸 뭘한다고.. 그런데 관심 좀 갖지 마세요.

 

여러분 그 혹시 예전에 자명고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를 그린 자명고라는 드라마 보신 적 있으세요? 거기에서 사랑이 죄인가요? 라는 백지영의 노래를 보면 '아 나는 죄인이 되더라도' 낙랑공주가 낙랑국의 공주인데 호동왕자가 낙랑국의 자명고를 찢으러 파견되어서 가서 낙랑공주를 꼬셔가지고 니가 가서 찢어라! 그랬더니 찢잖아요 (자명고는 거의 수호신이죠? 위기 때마다 우는 스스로 우는 북이니까). 그러니까 나라를 팔아먹는 이.. 거시기가 된거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러니 가사가 '내가 죄인이 될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죄인이 되어도 좋아요'~ 이게 라합이거든요? 나라를 팔아먹는 죽을 죄인이 된다 할지라도 이 나라를 팔아 나는 당신에게 가야 비로소 살 수 있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나라를 팔아버린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보세요. 출애굽. 이게 이제 이 세상 종말의 모형이에요. 세상 전~체가 나만 나를 위해서 살잖아요 역사가. 인간만 위해서, 자기의 욕망만을 위해서 사는데, 거기에서 건져낸다라는 건 이제 니 맘대로 못 살게 하는게 구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그거를 성도의 이 역사 속에서의 삶을 이제 전체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에서 나만을 위해 못살게 하니까 이거 환란 이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고난이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그리로 끌고 가는 게 구원인데 그들을 하느님이 어떻게 마지막에 애굽에 있으면 죽음이고 거기서 나오는 게 구원이라면 무엇으로 그들을 갈라냈냐구요?

애굽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못되게 사는 사람들 다 악마 머리에 뿔난 악마들이고 거기서 건져낸 이스라엘은 다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마지막 종말의 모형인데 그게 뭐예요? 어린 양의 피란 말이에요.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려져 있는 그 집에 있는 사람은 다 살았는데, 그 생각을 해 보시라고요.

그 이백 만이 넘는 그 사람들의 집에 그날 저녁에 술 처먹고 꼬장피우는 놈 없었겠어요? 남의 것 도둑질하는 놈이 없었겠어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피가 발라진 집 안에 있었단 말이에요. 다 착한 사람들 집에만 발린 게 아니라 이걸 바르면 산다라는 걸 믿은 사람의 집에 발린 거란 말예요 그게요. 그런데 그 집안에 들어있는 자는 그 집안의 내용물이 어떤 내용물이 어떤 거라 할지라도 그 피를 보고 넘어간 거란 말이죠. 그러면 지금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이 심판의 근거가 뭐냐고요. 피란 말입니다 피! 그래서 지금 어린 양의 피 대제사장의 피를 쭉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심판의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란 말예요. 그 히브리서 보면 아브라함이 갈 곳을 알지 못했는데 두려워하지 않고 갔다 그러죠. 믿음에 의해 그랬다 그래요. 고대시대에는 거의 뭐 씨족사회 부족사회 이런거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지역에서 떠나는거라는거 자체가 죽음이에요 죽음. 그리고 그 무리를 떠나 울타리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울타리 밖의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죽이거나 빼앗거나 해도 법적으로 제재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고요. 그런데 거기를 늙으신 아버지와 조카 하나 데리고 떠나가는데 두려움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런데 왜 성경에 그런 말을 하냐면 믿음에는 두려움이 있어선 안된다라는 요한14장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나를 자꾸 보면 내가 진짜 과연 애굽에서 나갈 자격이 있는 잔가 없는 자인가로 자꾸 돌아가게 돼요 나의 자격을 그런데 내가 나는 가장 잘 알잖아요. 불완전하고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두려운 거예요 이렇게. 그 죽음(死亡)이라는 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 라는 존재를 근거하지 않고 구별, 심판이 오직 나에게 발려진 그 피에 의하여 구별이 된다라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 내 삶의 경험을 통하여 끊임없이 알게 되면 결국 예수의 피에 의지하고 면목 없지만 그 두려움 다 날린 상태에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두려움이 있는 자는 율법주의잖아요? 두려움이 있다라는 거 자체가. 그래서 그 자는 멸망에 처해질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내가 지금 이꼴이 되고 내가 진짜 믿음이 있다면 지금 내 모습을 근거로 해서 자꾸 하느님 앞에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이리로 가면 안되는 거예요. 아빠가 지켜줄게 가 아빠만 믿어~ 그런데 믿는데 똑바로 안하면 죽여버릴 거야 이게 믿음이냐고요. 아빠만 믿어~라는 그 믿음의 내용은 아빠가 다 지켜줄게 너는 아빠 뒤에 서 있어 이거란 말입니다. 이게 십자가란 말입니다.

그 믿음을 우리는 엉뚱하게 자꾸 행위로 다시 되돌려 놓고 있는거죠. 그러니까 자꾸 '하느님 진짜 저 사랑해요?' 또 쪼금있다 '진짜 저 사랑해요?' 아니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한다는데 삼십 분에 한번씩 자기 진짜 나 사랑해? 그러면은 처음에 대답해주다가 나중에는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이게 진짜 내 사랑을 뭘로 보고 계속 물어봐? 그럴 거 아니예요. 우리가 하느님한테 그렇게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깐요? 그렇게 이 세상 애굽에서 건져내 버리는 그게 뭐냐면 율법주의 안에서 건져내는 거죠 그래서 보세요.


구약의 옛 계약은 아브라함의 계약이죠? 아브라함의 계약이 뭐냐면 내가 니 백성들을 사백삼십 년만에 애굽에 넣었다가 다시 뽑아낼거야.’ 그런데 어떻게 뽑아 낼거냐? '내가 쪼개짐으로 말미암아 뽑아낼거야. 너희들은 분명히 오해할거다. 왜 내가 어린 양의 피 내가 쪼개짐으로만 구원해 내는지 너희들은 모를거야' ? 그냥 황망하게 멍하니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온거기 때문에 모를 거란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왜 어린 양의 피로만 이렇게 구원을 받아야 되지? 이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니들은 니들의 힘으로 여기서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걸 가르쳐주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게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율법'이란 말예요.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니들은 왜 어린 양의 피로만 구원 받아야만 하는지를 내가 가르쳐 줄게 하고 율법을 주셨는데 그러면은 '아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거를 절대 지켜낼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아 우리는 스스로 존재성을 챙겨 가질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만 어린 양의 피로만 거저 구원받을 수 없는 거구나' 를 배우는게 율법이죠. 그게 옛 계약이라면 나중에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요한복음에서,

이젠 어린 양의 피가 아니라 빵과 포도주를 갖고 이게 내 피다! 그러면서 이게 새 계약의 피다 그러죠. 새 계약의 피! 그러면 이제 새로운 과월절이 예수님에 의해 재정이 되는거란 말이죠. 이게 원형이다 라고 그래요. 그럼 옛날에는 과월절을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반드시 지켜야 된다라고 했는데 이제 새로운 과월절이 그들에게 주어지면서 이제는 어린 양의 피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의 피가 뿌려졌다는 걸 믿는 것이 새 계약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들을 율법주의에서 하느님의 나라로 끌어내는 새로운 출애굽이란 말이에요. 애굽에서 광야로 끌어내어 가나안으로 들여보내는 게 첫번째 출애굽이라면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그들을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자유의 은혜의 복음으로 끌어내는 걸 새로운 출애굽이라 그래요.

그래서 변모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예수님의 엑소더스 출애굽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별세' 라고 했잖아요. 別歲..이게 출애굽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의 출애굽! 이란 말을 하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니까 계~속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무슨 증거를 만들어 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이게 약속이 성취될까? 불안해 가지고......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인들이 성경을 봤을 때 윤리 도덕 지켜서 잘살자 예요. 그러니 보세요. 석가모니가 성경을 봤을 땐 자비한 마음 갖고 세상을 품어 안으며 열심히 가난한 이들을 돕고 보시에 힘써서 그리고 열심히 너희의 공덕을 쌓아 성숙하고 변화하여 너희 내생에 유익을 얻어라그럴 거 아닙니까. 이게 오늘 성화론 아닙니까? 부처가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본다니깐요? 여기서 예수를 못 발견한단 말입니다.

공자가 성경을 보면 '윤리 인의예지신' 이게 중요한거야. 그게 회복되면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살어. 도덕 윤리 잘 지키고 부모에겐 효도하고 상위 권세에 복종해.” 이게 유교 아닙니까. 공자가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볼거라구요. 그런데 우리는 공자나 석가가 성경을 보는 그 관점으로 오늘날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다니까요? 그리스도교인이란 사람들이......... 그러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시라고요. 나는 진짜 예수 믿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시라니깐요?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듣는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율법주의는 기복주의를 항상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 거죠. 율법이 떨어질 때마다 복준다, 복준다그랬단 말이에요. 하느님 거기다 미끼를 던져놓으신 거라구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그 복을 위해서 율법을 아주 목숨걸고 지켜요. 뒤에서 칼을 들고 쫓아오는데 뛰지를 않아. 율법 지킨다고. 목숨걸고 지킨거죠 그야말로. 목숨걸고 지켜서 뭐하겠다는 거예요. 내 천국 내 구원 내 자존심 내 체면 내 선민됨의 확인 뭐 이런 거 이게 복이란 말이에요. 인간이 추구하는 복.

내 가치나 명예훼손이 되는 거는 절대 못참아요. 그건 진짜 목 매단다니깐요 인간들이.. 그런데 하느님이 거기서 끄집어 내어갖구 우리의 주체성과 존재성을 아주 박살을 내고 말살을 시켜버려요. 아니라고 니들 아니라고. 내가 피로 덮지 않으면 니네는 죽은 거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니엘과 세친구가 풀무불 안에 들어갔어요. 십자가입니다 고난이에요. 그랬더니 그 안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 들이 풀무불 밖의 사람들을 보면서 뭐라 그랬겠어요. '어유.. 저기서 살 뻔했네?' 그럴 거 아닙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풀무불 안에 있는 그들을 보고 뭐라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임마 똑바로 왕의 말을 들었어야지 으이그 불쌍한 것들..'이게 갈라디아서 614절이에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성도가 서로 죽었다 라고 손가락질하는.

스테파노를 보세요.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러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었네요?' 그런거죠.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테파노를 보면서 유대인들이 뭐라 그랬을까요? '그러게 왜 율법주의를 공격해~ 안 그랬으면은 입다물고 앉아 있었으면은 그렇게 돌에 맞아 안 죽었을거 아냐' 그런단 말예요. 스테파노가 한 말은 딴 거 없어요. '예수 믿어라' 였어요. 율법 열심히 지켜서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아니야~ 예수 믿어! 니들이 그 예수 죽였잖아 예수 믿어' 한 마디 했는데 돌로 막 때려 죽였어요. 그러더니 에유~ 율법주의 공격하더니 참~ 꼴좋다 그랬단 말예요. 그런 걸 보시라구요. 올바른 복음을 전했더니 율법주의자들이 때려 죽인다고.~~~~

 

이 시대가 이게 큰일 난 거예요 지금. 예수님이 그래요 '나 곧 간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죠? 두번째 나타나실 때, 나 곧 간다. 그런데 지금 똑~같이 예수님 첫번째 오셨을 때와 똑같이 모든 하느님을 목숨 걸어 섬긴다고 하는 모든 교회가 바리사이인이 되어 있는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회개하라! 그랬어요 그들한테. 아니 우리 살았는데 왜 죽었다고 그래요? 사르디스 교회처럼 아니야 죽었어 회개해! 나를 믿어! 그래보세요. 뭐라 그러겠어요 우리가 그동안 한 거 예수님 하늘에서 졸다가 못 본거 아녜요? 이럴 거예요. 너무 해놓은 게 많아서 지들끼리. 너무 해논 게 많아서 지금 예수님 뭐 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 아녜요? 너무 연로하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게 예수 죽이는 거예요. 우리는 그러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거죠.

여러분 하느님은 우리를 은혜로 보라 그래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어떻게 이 세상이 끝나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제자들에게 뭐라 그랬어요. 두 사람이 같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리고 가고 한 사람은 거기 있을거다. 두 사람이 같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불려가고 한 사람은 남아 있을거다 그랬어요. 잘 보세요. 두 사람이 뭘로 갈라져요. 그들이 한 일로 갈라집니다. ? 예수님이 함께 밭을 갈고 함께 맷돌을 돌린다고 했겠어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하느님이 선택한 예수 믿는 자는 데려간단 뜻이에요. 열 처녀가 똑같이 등불을 준비했는데 그 신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똑같이 졸고 있었다니까요. 그니까 신랑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기름을 준비 안한 거예요. 행위는 똑같이 했다고. 열심을 부렸어요. 나와서 기다렸다니깐요? 그리고 잤어요. 그런데 이 육이 여전히 옛 몸을 갖고 있으니까 졸 수 밖에 없어요.

나는 그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너무 부러워....어떻게 한데서도 이렇게 졸죠? 나는 집에서도 그렇게 잠을 못 자는데....너무 부러워요 잠 잘자는 사람들.. 웬수들이 거기서도 자냐 밖에서? 똑같이 조는데 다섯 명만 살짝 끌어 들이더니 문을 콱! 잠궈 버렸어요 이게 선택이에요. 기름을 준비한 게 뭘 잘해서가 아니라니까요? 그 신랑에게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런 비유를 갖다 붙이신 거예요 오히려 똑같애 니네는 다 똑같애 그런데 내가 하나만 데리고 갈거야 내가 택한 자 그들만. 그런데 그들만 알아요 우린 예수 안 믿으면 큰일나는구나. 그런데도 성당(예배당)에 전부 부처 공자 간디 슈바이처가 가득해요 ㅎㅎ

예수 믿는 성도는 없고 전부 그냥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슈바이처들과, 산상수훈을 목숨걸고 지키겠다라는 우리 간디들과, 자비한 마음으로 세상을 건져내겠다는 지옥에까지라도 가서 하느님이 버린 자들을 구원하여 내겠다라는 이 법정들과, ..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 여기서 00동교회가 커지면 안돼요 아니 어느 정도까지 하느님이 만드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게 진짜가 아니다 라는 걸 하느님은 반드시 보이실 거예요 여기가 진짜교회가 아니다 라는걸 그런 걸로 기뻐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주 예수를 믿어라 그랬어요.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지 뭐 하면은 내가 영생줄께 안그랬어요... 우리가 '' 라는것을 규정할 때 항상 우리는 '' 이외의 어떤 대상이 없잖아요? 이 죽은 흙들이 '' 이외의 대상이 없으면 '' 를 규정할 수가 없어요. 죽은 흙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들은 반드시 이 죽은 흙은 반드시 어떤 대상과 관계가 맺어져야 비로소 '' 가 돼요.

아들이 있어야 나? 엄마. 내 직장이 있어야 나? 과장 나 사장 이렇게. 일이 있어야? 나 청소부. 뭐 이렇게 나라는건 항상 외부의 나 이외의 내 밖의 어떤 것에 의해 규정이 되게 돼 있다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나를 강력하게 '' 라는 것을 규정하는데에 가장 강력한 힘을 작용했던게 그게 그 사람의 '' 생명이 돼요. 그래서 내가 내 아들의 엄마 이게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으면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여자는 살 희망이 끊어지죠. 그걸 '생명'이라 그래요.

아브라함이 이사악에게 집착하고 있었을 때 이사악이 죽는 건 아브라함의 죽음이에요. 그게 나의 생명이에요. 돈이 나의 이 생명 '' 라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돈이 다 날라갔어 죽는 거예요. 명예! 아 재벌그룹 회장들이 뭐가 부족하다구 목매달아 죽어버려요? 명예! 나 옛날에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는데 야 이거 몇번 해 먹은 거 이거 들통나게 생겼네? 어떡하지?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내 생명이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줬는데 여기에 흠집이 가니까 그 '' 가 죽는 거예요. 그건 이미 그 사람들이 자살하기 전에 이미 죽은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하느님이 이걸 싸악 긁어내요 인생 동안에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 그걸 신앙생활이라 그래요. 그게 광야 란 말이에요. 그 요게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는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사랑했던 내 자식이 어느 순간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날 대면 대면해. 어 그러더니 뭐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밤마다 걔랑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화상통화하고 막 이러면서 엄마아빠는 본 척도 안해. 그럼 나는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얘 대학가고 기숙사가면은 끝나는 거예요 그건요. 뭘 대단하게.. 추석이나 설날 한 번씩 보는 거지 그래놓구 마음속으로 아니야 쟤는 날 사랑해 분명히 사랑하고 있을거야 ㅎㅎ 우리를 생각해보라구요. 우리가 진짜 그렇게 부모를 생각해요? 아니 근데 자기는 아냐 그래도 내 자식은 나를 생각할거야.

돈이 내 생명인 줄 알았는데 이거 갖고 뭘 대단하게 이뤄낼 수도 없고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굉장히, 그 돈으로 우대도 받고 존경도 받는데 뭐 이거갖고 날 별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이래요. 여기 어떤 마켓주인은 집에 큰 방을 현찰로 차곡차곡 쌓아서 살고 있다며요? ㅎㅎ 거기서 돈덮고 자고 깔고 앉고 막 그렇다는데.. ㅎㅎ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줘 난 그 사람 얼굴도 모르니까..내가 그 사람이야~ 그 소문의 주인공~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줘.

성도의 삶에 그게 나타난다니깐요? 그렇게 끊어져 나갔을 때 그럼 난 뭐야? 엄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위인도 아니고 그럼 난 뭐야. 그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느님이 (우리가 성도라면) 나를 '덥썩!' 붙드는 거예요. 그때 아!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하느님이 창조한 자! 가 되는 거예요. 그럴라면 반드시 내가 나를 규정하고 있던 걸 다 차압당하는 과정을 겪게 되어있다고요. 그래야 하느님이 창조한 '' 가 비로소 이걸 거!!!이라고 하는거에요. 그런데 그게 어느날 가치없는 게 될 때 그럼 나를 규정하고 있는게 다 하느님에 의해 배설물로 규정될 때, 나를 규정하고 있던 게 싹 사라지고 배설물될 때 그걸 '사망' 이라고 하는 거예요. 뭐 살려주는게 없잖아요 나를..

그런데 영원한 생명. 영원히 존재하는 예수가 나와 관계되어 있을 때 그 예수에게 내 마음이 가 있고 그 예수와만 관계있는 '' 로 이제 완전히 무장해제 당했을 때 그걸 '영생' 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관계하고 내가 생명으로 생각하는 그 분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래서 영생은 예수를 아는 거. 예수를 아는 거. 거기서 안다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에서의 그 '동침' 이에요. '신랑과 신부가 되는 거예요 한 몸이 되는 거' 그 삼위일체라는 말을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거지만 그거에 빗대어서 이야기하면 성도의 구원이란 '사위일체' 가 되는 거죠.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하느님이 창조하기 전에는 삼위하느님의 영광 밖에 없었어요 그죠? 그게 하느님의 처소요 하느님의 영광이고 거하시는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보고 처소가 되게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처소 내가 너희를 처소 삼겠다 그러죠. 그러면 그 삼위의 영광 안으로 우리를 끄집어 당기겠다는 거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는 원래 '그런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었다 이걸 알고 들어와라'가 역사의 역할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내가 다시 세상에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한거 라구요.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이들은 반드시 들어요. 예수를 믿어야 돼요. 심판은 십자가 피로만 구별되는 거예요. 예수의 십자가 그 보혈의 그 가치만 꼭~ 붙드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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