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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6 조회수97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 11-14절은 일반 제관이 드리는 제사와 그리스도의 제사를 비교하여 후자의 구원적 가치를 부각시킨다. 일반 제관은 서 있는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 서 있는 자세는 제관이 예배를 드리는 자세이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봉사하는 자세다. 일반 제관은 날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는 죄를 깨끗이 씻지 못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 시편 110.1의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한 번의 제사의 효력을 말한다. 그분은 단 한번 제사를 드린 후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영광을 받으셨으며, 그 영광이 완전히 드러날 때를 기다리신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제사는 일반 제관들의 제사와는 달리 한번만 봉헌되었지만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히 완전하게 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더 이상 옛 제사가 필요없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저자의 가르침이 단순히 개인적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임을 증거하기 위해 8,7-13에서와 같이 다시 예레 31,31-34를 축소하여 인용한다. 이 인용문의 핵심은 세 계약의 참 특징인 사죄에 있다. 예언서에서 예고한 죄를 사하는 완전한 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로 실현되었다. 이 제사로써 낡은 속죄 제사는 필요없게 되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적지 않은 개신교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제사로서의 미사 거행을 부인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미사가 십자가의 제사와 독립된 별개의 제사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성찬 반복 명령에 따라 십자가의 제사가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영속한다고 가르친다.

 

 

 

 

 

 

복음(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르코 복음 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 여기 원문에서는 호수대신 바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이스라엘에서는 10월 말경이나 11월 초순에 첫비가 내리는데, 그때 농부들은 보리와 밀을 심는다. 예수께서는 그 무렵에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이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곧 돋아났지만,

-. 이스라엘 땅은 대부분 땅은 대부분 덮였지만 속은 바위가 깔린 박토다.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 4월부터 10월까지 가시돋친 잡초만은 무성하게 자란다. ”가시덤불은 그런 잡초를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시대 사람들은 먼저 밭갈이해서 잡초를 없앤 다음에 씨를 뿌리지 않고 반대로 먼저 씨를 뿌린 다음에 밭갈이한 때문에 씨가 잡초 속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8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파종이 실패한 경우를 세 번에 걸쳐 길게 이야기한 다음 이제 파종이 성공한 경우를 짤막하게 이야기한다. 보리나 밀을 심어 잘 가꾸면 낟알 하나가 적으면 30,많으면 100정도로 불어난다.

말을 올바로 알아들으라는 외침이다. 주로 묵시문학적 소재에 자주 나오는데, 종말론적 계시를 올바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절망은 없다. 이것이 우리 비유의 본사상이다.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 편집사적 평가;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3,32.34에서나 여기서나 열두 제자보다 넓은 범위의 제자들을 뜻할 것이다. 그러므로 10절은 예수께서 따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는 제자교육기인데 마르코는 제자교육을 자주 강조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 11-12절은 마르코가 삽입한 단절어라 여겨지는데 그 낱말,구조,이사야 인용문을 검토해 보면 아무래도 예수 친히 발설한 말씀이 아니고 유다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만들어 전한 말인 것 같다.

 

13예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 마르코 이전의 비유집성문에서는 예수님의 반문이 제자들의 질문과 직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문의 내용을 보면 제자들의 무지를 탓하시는 말씀인데 여기에 처음으로 제자들의 몰이해사상이 나온다. 제자들이 무지에서 벗어나자면 예수님 친히 풀이해 주는 길밖에 없다.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 “씨뿌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풀이에서도 밝히지 않으나 뒤의 문맥을 보면 전도하는 사람이다.

말씀은 마르코복음의 예수님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낱말이다. 3,28-29의 경우.원전에는 이 없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바오로를 비롯하여 초대교회에서는 복음과 선포를 가리켜 흔히 말씀이라 한다.

복음선포가 실패하는 첫째 이유로 외적 원인을 드는데 그게 사탄이다. 귀신들의 두목 사탄이 복음선포를 방해한다고 바오로는 말한다. 복음선포를 받아들이는가 했더니 결국 물러서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 이제 말씀이 뿌려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뿌려진다고 한다. 매우 미숙한 표현임에 틀림없는데 18절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16-17절을 보면 복음선포를 듣고 선뜻 신도가 되었다가 신앙생활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냉담해 버리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에 많았던 모양이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나,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 18-19절을 보면 초대교회에도 세상살이 걱정과 재물의 매력과 기타 욕심에 짓눌려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신도들이 많았으리라.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 여기 열매를 맺는다는 원전에는 복합동사인데 이 복합동사는 네 복음서의 경우 두 단원에만 나온다. 그리고 로마 7,4-5;골로 1.10에도 있는데 그 용법을 보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뜻한다. 명사 열매는 신약성서에 66차례나 나오는데 영의 열매는 성령에 의한 삶을 뜻하고 빛의 열매와 포도나무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삶을 뜻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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