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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 (마르4,1-2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7 조회수92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27일 수요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씨 뿌리는 사람 (마르4,1-20)

 

   

 

1독서<그리스도께서는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히브10,11-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나이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 주님이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 네 권능의 날에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거룩한 빛새벽 품에서나는 너를 낳았노라

○ 주님은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복음<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르4,1-20)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들어 보아라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어떤 이는 서른 배어떤 이는 예순 배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10,11-18)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1-12)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장 5-10절에서 당신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대해 언급한 뒤, 히브리서 10장 11-18절에서 그리스도의 제사는 더 이상의 제사를 불필요하게 만든,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임을 진술한다.

 

히브리서 10장 11-19절은 히브리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주장해 온 여러 구약적 요소들에 근거한 예수님의 우월성에 대한 논증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더 이상의 제사를 필요없게 만든 완전하고도 영원한 그리스도의 제사에 대하여 간단 명료하게 논증한다.

 

히브리서 10장 11절 본문의 요지는 레위 계통 사제들의 자주 반복되는 제사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 대한 지적이다. 그 제사의 문제점은 결코 어떤 죄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없애지 못합니다'로 번역된 '페리엘레인'(periellein)은 '페리아이레오'(periaireo)의 부정사이다. 동사 '페리아이레오'(periaireo)는 '주위', '둘레'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peri)와 '빼앗다'(마태25,24), '치우다'(요한19,31)라는 뜻의 동사 '아이로'(air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주위에서 발견되는 것을 치워버리다','철저하게 없애버리다', '완전하게 제거하다' 등의 매우 강한 뜻을 가진다.

 

만약 구약의 동물 제사가 인간의 죄를 제거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이 요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완전한 제사 곧 그리스도의 제사가 필요했다. 죄를 제거하지 못하는 희생 제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완전하지 못하다.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율법에 근거한 제사에 의존하고 있던 사람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여전히 죄중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주 반복되는 많은 제사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 있는 죄는 결코 씻겨지지 않았다.

 

구약의 사제들이 드리는 제사는 날마다 반복되었다. 성막 혹은 성전이 존속하는 한,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민수28,3-8).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의 제사는 죄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러한 제사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약의 제사 제도로 되돌아가려고 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말할 수 없이 잘못된 것이었다.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구약의 사제들이 매일 반복하여 같은 제사를 드린 것과 대조된다. 히브리서 10장 11절의 구약 사제들이 드린 '제물'에 해당하는 단어는 '튀시아스'(thysias)로서 복수형인 반면에, 본문의 '한 번 제물'에 해당하는 단어는 '미안 튀시안'(mian thysian)으로 단수형이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의 제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한 '바치시고'로 번역된 '프로세넹카스'(prosenengkas)도 '바치다','드리다'를 뜻하는 '프로스페로'(prosphero)의 과거분사로서, 앞의 히브리서 10장 11절에 나오는 '프로스페론'(prospheron)과 대조를 이룬다.

 

'프로스페론'(prospheron)은 현재분사로서 반복되는 동작이나 지속적인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내며 이것은 구약의 사제들이 드린 제사의 특징이 반복에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프로세넹카스'(prosenegkas)는 과거 시제로서 현재 분사처럼 진행의 개념이 없는 일회적 차원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의 특징이 일회성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반복될 필요가 전혀 없는 일회적 행위였고 완전한 제사였다(히브12,18). 그분은 이 한 번 제물 즉 '미안 튀시안'(mian thysian)을 통해서 구약의 사제들이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죄를 없애시는 일을 해내셨다.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본문은 완전한 제사를 바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안식과 영광을 표현한다. 히브리서 10장 11절에 따르면, 구약 시대 레위 사제들은 제사를 다 드리고 나서 앉았다는 기사가 없고 오직 매일 서서 직무를 수행했다는 기사만 있다. 사실 그들은 제물을 바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앉을 뿐 아니라 눕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서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음날이면 또 다시 일어나서 성소에 들어가 서서 전날과 똑같은 제사를 반복적으로 바쳐야 했던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제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된 제사였던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완전한 제사를 바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심으로써 다시 제사를 바치시고자 일어나실 필요가 없다. 골고타 언덕에서 바친 단 한번의 제사가 영원한 효력을 지닌 제사였기 떄문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는 것은그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사실 및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거나 불완전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이행하였다면, 그는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후 안식을 취하신 하느님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구속사업을 완벽히 수행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그리스도에게 천지창조 이전에 누렸던 그분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준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그토록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참으셨는지를(히브12,2) 짐작하게 한다.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경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용서입니다사람의 눈으로 보면 심판입니다. 

(마르4,1-20)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들어 보아라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그가 씨를 뿌리는데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저 바깥사람들 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ㄱ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의 뜻 그 길이 아닌 사람들의 뜻 그 길입니다.


15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 들으면다시 죄의 덮으심을 위한 대속 그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사람의 말로 들으면 심판이 따를 것이니구원의 씨말씀에 의한 구원을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다 하십니다하느님의 말씀 그 계명을 사람의 계명으로 속여 먹고 하고 또 말하게 하는 그 뱀(사탄)의 거짓말 때문에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1데살2,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하느님의 뜻그 분의 길로 받아 구원의 활동그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예수님을복음을 처음 만났을 때 기쁩니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뿌리깨달음이 없으면~입니다대속의 기쁜 소식그 복음그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시련과 박해에 넘어집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랬습니다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기뻐~

(요한1,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러나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시련이 오자 주님을 의심하게 됩니다.(마태11,2-6참조요한은 분명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 선포했습니다그러나 그 자신이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게 되자온갖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시는 그 능력의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실 기미가 없자 의심하게 됩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 예수님’ 그 죄를 없애시기 위해 그 죄에 속죄 제물로 당신의 목숨을 바치려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려는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하늘의 진리로 깨닫지 못했기에자신의 뜻을 모른체들어주시지 않는 예수님을 의심하게 되는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생수가 나오지 않는 행위의 신앙그 돌 신앙 때문입니다깨달음으로 나오는 생명수를 위한 참 신앙으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 하느님의 뜻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귀, 그 뜻으로 들은 또 다른 사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창세3, 17-18)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자신의 뜻그 욕망대로 살고 싶어 뱀의 유혹을 먹은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사람의 수고 희생의 의로움 등 그가 맺는 그 모든 것은 가시덤불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사57,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라 하십니다말씀의 일하심말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무시해 버리는 그 행위의 신앙 때문입니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어떤 이는 서른 배어떤 이는 예순 배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어떤 땅이 좋은 땅일까요하느님의 뜻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땅입니다그것이 좋은 거름으로 다져진(채워진) 땅입니다그 거름을 받아들이는 땅좋은 땅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비유에서 봅니다포도 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려라하셨을 때~

(루가13,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냥 두시지요(아피엠-용서)- 용서 하시지요하십니다왜요그 대신 거름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배자 이신 예수님 당신 대속의 죽음썪어 짐그 거름으로 열매를 맺겠으니 그냥 두시지요용서 하시지요하신 것입니다그러면 당연히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거름그 예수님의 죽음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결론입니다. 성경을내 뜻을 위한 사람의 길사람의 말로 받는 것버리고 하느님의 길그분의 뜻인 구원의 말씀으로 듣고받아들이면그 말씀으로 내가 좋은 땅이 되는 것이지요.

♡ 아멘 -*^^*- 

 

 

 

 

 연중 제3주간 수요일 복음(마르4,1~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20)

 

마르코 복음 4장 3~8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는 '씨'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단어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 4장 3절에도 '씨 뿌리다'라는 동사만 나오며, '씨'라는 명사는 없다.

이것은 '씨 뿌리는 사람' 같은 자루에서 나온 '씨'의 '동질성'(homogeneity)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이다.

 

 '씨 뿌리는 사람'이 '예수님'을 상징하고, 뿌려진 '씨'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천국의 말씀'을 상징한다면(마르4,14; 마태13,19), 같은 선포자이신 예수님께서 전한 동일한 말씀들이 어떤 이에게는 열매를 맺고, 어떤 이에게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씨'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나라 농사법과 팔레스티나의 농사법이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이 비유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밭을 경작하고 좋은 땅에 씨를 뿌리지만, 팔레스티나에서는 씨를 먼저 뿌려놓고 밭을 고른다. 그러니까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는 씨가 있는 것이다.

 

우선 새들이 씨를 먹어버린 일차적인 이유 씨가 길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씨가 열매를 맺기는 커녕 바로 먹혀버린 일차적인 책임은 마르코 복음 4장 15절에서 '새들'이 상징하는 '사탄'에게 있다고 하기보다는, 길의 밭이 상징하는 굳어진 인간의 마음에 있다.

 

그리고 '흙지 많지 않은 돌밭'(마르4,5)에서 '있지 않은'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켄' (ouk eichen; it did not have) 미완료 과거 시제이므로, 흙이 거의 없는 돌밭 같은 불모지의 상태 이전부터 계속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마르코 복음 4장 5절을 해설하는 마르코 복음 4장 16절에는 '많은'을 의미하는 '폴렌'(polen; much)이라는 단어가 없이 '돌밭' 해당하는 '페트로데스' (petrodes; stony ground; rocky place)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흙이 거의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4장 6절에서 돌밭에 떨어진 씨가 죽은 이유가 나오는데, '뿌리가 없어서'이다.

돌과 바위투성이 땅에서 물은 금방 흘러 가버리거나 말라서 습기가 없었고, 아울러 돌과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릴 수도 없어서 죽은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4장 7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마르코 복음 4장 4절에 기록된 '길에 떨어진 씨'는 발아도 못하고 새들에게 먹혀 버렸고, 마르코 복음 4장 5절에 기록된 '돌밭에 떨어진 씨'는 겨우 뿌리만 내린 채 말라 죽은데 비해, 마르코 복음 4장 6절에 기록된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어느 정도까지는 자랐다.

 

그래서 길보다는 돌밭이, 돌밭보다는 가시덤불이 더 나은 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씨 뿌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밭이란 열매를 맺는 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4장 7절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라는 표현은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밭에 대한 결론이면서, 동시에 앞에 이미 언급된 두 밭에 대한 결론이다.

 

마르코 복음 4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당신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뿐만 아니라 이미 선포된 여러 가지 비유들의 뜻을 묻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4장 11~12절에서 인용된 이사야서 6장 9~10절의 말씀이 '저 바깥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있다.

 

'저 바깥 사람들' 오직 기적과 치유에만 목적을 두고 찾아왔다가, 정작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아무런 미련없이 돌아선 일종의 '불신과 배교의 무리'이다.

 

그러기에 마르코 복음 4장 12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구원의 길을 봉쇄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그릇된 목적으로 나아갔다가 사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면 쉽게 돌아서 버리는 '불신과 배교의 무리'를 그 사랑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구원의 길을 원천 봉쇄하실만큼 미워하신다는 것이다(마태7,6; 히브6,5.6).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라는 문제도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 자랐는가도 아니며, 또한 얼마나 많은 신앙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도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열매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뿌려진 말씀의 씨가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열매를 맺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좋은 신앙인으로 여기시는 것이다(마르4,28; 마태7,20).

 

마르코 복음 4장 20절에서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받아들여'에 해당하는 '파라데콘타이'(paradechontai; receive; accept)의 원형 '파라데코마이' (paradechomai)로서 '인정하다'(사도16,21; 1티모5,19), '환영하다' (사도15,4; 히브12,6)라는 뜻이다.

 복음을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성을 인정하고 깊이 받아들여야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받아들임은, 마르코 복음 4장 16절에 나오는 것처럼, 돌밭이 순간적인 기쁨에 도취되어 받는 것과는 달리, 생명을 잃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소유와 내주'로서의 받아들임을 말한다.

 

마르코 복음 4장 16절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에서 사용된 '받는다'에 해당하는 '람바노'(lambano) 일시적 소유물을 취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에, 마르코 복음 4장 20절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환영하는'의 의미를 지닌 '파라데코마이'(paradechomai)와는 다른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마치 우리 자신이 소유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 쉽게 망각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명처럼 여기고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좋은 땅'이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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