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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주간 금요일] 하늘나라는겨자씨와 같다. (마르4,26-3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9 조회수90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29일 금요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마르4,26-34)

1월 27일 (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

 

 

1독서<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히브10,32-39)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화답송 시편 37(36),3-4.5-6.23-24.39-40(◎ 39)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주님은 사람의 발걸음 지켜 주시며그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주님이 그 손을 잡아 주시니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복음<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마르4,26-34)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처음에는 줄기가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히브10,32~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본문은  하바쿡서 2장 4절의 인용이다. 하바쿡서 2장 4절은 '보라, 뻔뻔스러운 자들,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이다.

본래 메시지가 핍박하는 적대자의 마음이 교만하며 정직하지 못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의인은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다.

 

본절 외에도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티아서 3장 11절에서 하바쿡서 2장 4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본문을 인용하기는 했어도 사도 바오로와 히브리서 저자 사이에 강조점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도 바오로는 교리적인 차원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데 반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실천적인 차원에 강조점을 두고 인용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 히브리서 11장에서도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어떤 이유로든지 믿음을 버리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는 이들에게만 미래와 희망이 있다.

 

히브리서 맛소라 본문에는 '나의'라는 단어는 없고, '차디크'(tsadiq) 즉 '의인'으로만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나의'('무'; mu)라는 인칭 대명사를 첨가하였다.

이것을 통해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는 의인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계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을 가리킴을 명백히 보여 준다.

 

한편, 본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살리라'로 번역된 '제세타이'(zesetai)이다.

이 단어 원형 '자오'(zao)동사는 '살다', '생명을 유지시키다'라는 의미 뿐 아니라 '영원히 살다', '질병, 절망, 죽음 등으로부터 되살아나다' 등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통해 히브리서 저자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게하는 삶의 원천이자 수단이라는 것이고, 둘째, 믿음이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믿음의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믿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11,6)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본문 역시 하바쿡서 2장 4절의 인용인데, 구약 희랍어 번역 성경 70인역 (LXX)에서 인용했기 때문에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과는 차이가 있다.

 

맛소라 본문에서 '보라, 뻔뻔스러운 자들,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70인역(LXX)은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로 번역하였다(하바쿡2,4).

 

'뻔뻔스러운 자들'로 번역된 히브리서 '음펠라'(umphella) '들어 올려졌다'(be lifted up)라는 뜻으로, 이것을 적용하면 '교만','완고','고집에 센 자'가 된다. 뒤로 물러서는 것과 교만하고 완고한 것 사이의 공통점은 믿음의 부재이다.

믿음이 없는 자가 뒤로 물러서고, 믿음이 없으므로 교만하게 되며, 믿음이 없기 때문에 제 고집대로 행동한다.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본절의 역사적 배경 바빌로니아의 남부 유다 침공과 관련된다.

하바쿡 예언자가 지칭하고 있는 '그'는 바빌로니아인들(갈대아인들), 특히 그 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이 없는 이방의 통치자를 의인과 대조시킨다. 결국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믿음을 좇아 행하지 않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제 고집대로 행하는 이방인들의 태도를 가리킨다.

바빌론은 사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유다를 징계하시는 몽둥이였는데,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임의로 행동하고 분수를 넘었던 것이다.

 

'뒤로 물러서는 자는'으로 번역된 '에안 휘포스테일레타이'(ean hyposteilletai; if he draws back; if he shrinks back)에서 '휘포스텔레타이'의 원형 '휘포스톨레'(hypostole)이다.

이것은 '물러나다', '뒷걸음질하다'를 뜻하는 '휘포스텔로'(hypostell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움추림', '겁냄'등을 뜻한다.

 

앞으로 전진해야 할 상황에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것은 믿음의 부재에서 오는 자연스런 현상인데, 이것을 기다리는 것은 심판과 멸망 뿐이다.

고난에 직면하여 뒤로 물러서는 자들은 본절과 더불어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성도는 항상 믿음을 따라서 행하고 실천해야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랑, 믿음으로 드러나지 않는 예물 봉헌, 믿음을 따라 실천하지 않는 생활 등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들이 아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만일 핍박과 박해가 두려워서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된다면, 이전에 그들이 신앙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히브10,32~34)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 및 미래의 영광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상당히 부드러운 어조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자신의 독자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견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장차 잠깐 후면 사라져버릴 시험과 시련 앞에서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떠난다면, 이방인들과 동일하게 되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잘 죽어야 (자야살아날 수 있습니다.

 

(마르 4,26-34)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성경에서 잠은 죽음을일어남은 생명을 뜻합니다밤에 잘 자야 낮에 거뜬하게 잘 일어날 수 있습니다그러나 사람은 그 밤과 낮 사이의 일을 모릅니다.

그렇듯 밤의 존재들은 자신이 어둠(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죽음그렇게 잘 죽으면낮의 존재빛의 존재로 잘 일어날 수살 수가 있습니다(죽음)에서 일으키시는살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땅의 존재는 없음임을 잘 깨닫는 자는 하늘의 있음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땅속에서 말씀()이 일하심입니다씨가 죽어 거름이 되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그 열매로 땅 그 없음의 존재가 있음의 존재가 됩니다하느님께서 그 열매를 땅이 맺었다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8, 32)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이신 예수님의 죽음이밤과 낮 사이에어둠과 빛 사이에서 일하신 것입니다그러니까 땅의 존재사람들은그 땅사람의 법명예의로움 등 그 모든 것들이 있음의 존재로 해 줄 수 없는가치 없음의 그 否認그 자기 부인으로 잘 죽는잘 자는 일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 땅의 부인자기 부인으로 비워졌을 때 채워집니다채우시는 분은 물론 하느님(말씀)이십니다. 밤이 있어야 낮이 옵니다저녁이 있어야 아침이 옵니다어둠의 시간이 있어야 빛의 때가 옵니다저녁이 지나 아침이 오는 것하루입니다그 것이 우리 인생한 생애의 완성입니다죄인(어둠)이 의인()의 존재로어둠인 아담에서 빛이신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1고린15, 45.47)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나의 본질 그 죄인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죄인에서 시작해야 완성될 수 있습니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처음에는 줄기가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앞에서 씨의 죽음이 열매를 맺는다.’했습니다그 씨의 대속으로 땅이 저절로 맺었다.’해 주시는 겁니다믿었을 때 거저받는 빛 곧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입니다.(로마3,24참조)

성경을말씀을 처음에는 줄기의 수준으로 읽게 되고 시간이 지나 이삭그 다음엔 낱알열매로 깨닫게 됩니다.

열매란씨의 죽음으로없음의 존재가 거져 있음의 존재가 되는 그 진실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그래서 땅이 저절로 맺었다고 인정해 주시는 그 하느님의 자비사랑으로 내 삶을 의탁 하는 것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단계인지~


사도는 모두가 그 열매를 먹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1고린3,2참조)

(히브5,12-14)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14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그들은 경험으로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고 나쁜 것의 훈련저녁어둠의 시간들 그 시련고난의 시간들말씀 안에서 살아내는 것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그렇게 많은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그 시련고난의 사건 속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일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잊게 되면놓치게 되면 시련이 그냥 시련고난으로 끝납니다.

시련은 구원의 희망믿음이라는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그럴게 인생이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수확의 때입니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확구원의 때입니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씨 말씀이 뿌려질 때 곧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의 어떤 말씀보다 작아 보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일하심그 말씀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사람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일하심 ,그 말씀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1고린2,14참조)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땅의 말씀이 뿌려지면 세상의 어떤 말()보다 더 커지는데 하늘의 새곧 구원의 법이 들어와 쉰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 부분을 신약이 구약을 먹는다.’ 하셨더라구유~~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제자들에게 따로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읽지 않고 (먹지 않고)하늘의 대속 그 진리로 먹어라!~ 하심입니다.

♡ 아멘 -*^^*-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6~27)

 

마르코 복음 4장 26~29절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말씀이다. 이 비유 말씀을 마르코 복음 4장 2~20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과 비교해 보면,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

 

첫째'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짐을 강조하고 있다면,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복음 또는 하느님 나라가 지니는 역동성과 은밀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나 하느님을 상징했지만,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는 인간 자체, 특히 복음 전파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비유가 공통점도 있다. 본문에 나오는 '씨'와 마르코 복음 4장 3절의 '씨'가 말씀을 상징한다는 점이고, 두 비유가 모두 하느님 나라를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한편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마르코 복음에만 나오는 특수 자료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비유는 이미 소개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4,2~20)와 중복됨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강조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심화,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강조점은 사람의 마음 또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미하는 '밭'에 있다. 그래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과는 달리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따라서 좋은 땅, 곧 밭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에서 이러한 밭의 중요성이나 심지어 농사짓는 농부의 중요성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 나고, 자라고, 이삭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 전 과정에서 오로지 강조되는 것이 '씨앗의 생명력'이다.

여기서 농부는 이러한 전 생장의 과정에 대해 전혀 무지한 자로 부각된다.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 익은 열매에 대해 추수의 은혜와 감격만을 누릴 뿐이다.

 

끝으로열매를 맺기 위한 중요한 변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는 '사람의 마음 내지는 영혼의 상태'였다면, 반면에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씨앗 자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열매를 맺고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 씨앗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이 계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마르코 복음 4장 27절에서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는 데 따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하루가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질 무렵에 시작되어 다음 날 해질 무렵에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묘사하면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창세1,5)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27절의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는 말씀은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번역하면 좋다.

 

'알지'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의 원형 '오이다'(oida)는 완료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알다', '감지하다'등의 의미를 가지며, 시제는 완료이나 알고 있는 시점은 현재이다.

 

부정어 '오크'(ouk; not)과 더불어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밭에 뿌려진 씨앗이 자라는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씨를 직접 뿌린 농부가 알지 못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씨앗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또는 어떻게 발생하는지 지식적으로 알거나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마르코 복음 4장 28절 전반절이 말하는 '저절로', '스스로'이다. 따라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씨를 뿌리고 난 뒤에 그 씨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잘 자라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그 시작과 과정, 그리고 완성에 있어서 인간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따라 점진적으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씨 뿌리는 농부로 대표되는 인간은(?) 하느님 나라를 자라게 하는 힘이나 그 나라가 완성되는 때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식물이 끊임없이 자라난다는 것만큼 확실한 사실은 없으며, 또한 추수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농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처럼 믿는 이들 역시,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완성에 대해 본질적으로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그 기대와 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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