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마르4,35-4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30 조회수1,19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30일 토요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마르4,35-41)

   연중 제3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독서<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히브11,1-2.8-19)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화답송 루카 1,69-70.71-72.73-75(◎ 68 참조)

◎ 찬미받으소서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우리를 위하여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힘센 구원자를 세워 주셨네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하셨네

○ 우리 원수들에게서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그분은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네

○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우리가 원수들의 손에서 풀려나아무 두려움 없이한평생 당신 앞에서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게 하셨네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이미지 자세히보기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히브11,1-2.8-19)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2)

 

히브리서 11장 1~3절은 '믿음이란 무엇인가?'인지 믿음의 정의에 대한 서론적 설명이다.

'믿음은 ~이다'라는 표현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동사 '에스틴'(estin; is)은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시제는 항구적으로 항상 그러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라는 사실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11장에서 핵심어인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 faith)는 고전 희랍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혹은 신에 대하여 갖는 '신뢰또는 '진실성'이나 사업상의 '신용', '보증', '증명'등을 의미하여 다양하게 쓰였다.

원래 이 어군의 단어들은 '계약이나 약정을 존중하는 행동'을 나타냈지만헬레니즘 시대의 회의론과 무신론이 난무하는 시기에는 '피스티스'가 신들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신념'(conviction)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고 번역된 '엘피조메논 휘포스타시스'(elpizomenon hypostasis)에서 우리는 '보증'으로 번역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substance; realization; assurance; guarantee)에 주목해야 한다.

이 단어는 '밑에 놓다', '기초를 두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휘피스테미' (hyphistem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문자적으로는 '아래에(hypo; 휘포서 있는 것(stasis; 스타시스)', 즉 '토대','기초'라는 의미이다.

이런 뜻 외에도 '본질', '실체', '확신', '확고성', '보증'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① 일부 파피루스에서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는 '보증'이라는 의미에서 소유권을 입증하는 문맥에 쓰였다.

이런 차원에서 본문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권리 증서이다', 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천상의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즉 믿음이라는 보증물을 내보일 때 천상의 것들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② 초대 교회 몇몇 교부들은 이 단어를 '현실화'(realization)의 개념으로 보았다. 믿음이 장래의 바라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해준다고 본 것이다.

③ '실체', '실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믿음이란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바라는 것들을 실질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붙잡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④ 초대 교회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부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하는 견해로서 '토대', '기초'(foundation)라고 보는 견해이다. 말하자면믿음이 없으면 희망('바라는 것들')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면'믿음이란 희망을 지탱해 주는 토대로서 희망하는 것이 허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 주는 실체'라는 의미가 된다.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번역된 '프라그마톤 엘렝코스 우 블레포메논' (pragmaton ellengchos u bllepomenon)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의 증거라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에 해당하는 '우 블레포메논'에서 '블레포메논'(bllepomenon)은 '보다'(see)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블레포'(bllepo)의 수동태 분사이다.

따라서 '우 블레포메논'은 인간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실체들의'로 번역된 '프라그마톤'(pragmaton)의 원형 '프라그마' (pragma)는 고전 희랍어에서는 '행위', '사물', '사업', '논쟁'등의 의미로 쓰였으며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사도5,4), '사실', ''(루카1,1) 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란 '보이지 않는 사실들'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일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등은 믿음이라는 장치를 가져야만 신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확증'에 해당하는 '엘렝코스'(ellengchos)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납득시키다등을 뜻하는 동사 '엘렝코'(ellengch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고전 희랍어에서는 '증거', '확인'등의 의미를 지닌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겉으로 밝히 드러내주는 것확실하게 하는 것 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누가 못 믿는가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을 누가 못 믿는가그리고 관찰실험검증에 의해 과학적으로 이미 사실(fact)로 밝혀진 것들을 누가 못 믿는가?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음의 어두운 차원을 뛰어넘어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태양이 어두운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어두운 먹구름 넘어 태양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차원인 것이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

 

여기서 '옛사람들'로 번역된 '호이 프레스뷔테로이'(hoi presbyteroi)에서 '프레스뷔테로이'의 원형 '프레스뷔테로스'(presbyteros)는 '늙은', '나이 많은'을 의미하는 '프레스뷔스'(presbys)의 비교급으로서 '나이가 더 많은', '노인또는 '장로', '원로라는 의미이다(마태26,3; 사도2,19).

고전 희랍어에서는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더 늙은'(older) 이라는 뜻을 나타냈지만후에는 '더 존경받는'이라는 의미가 첨가되었다.

 

본절에서는 신약에서 흔히 쓰이는 '원로'의 의미가 아니라(1베드5,1), 히브리서 저자와 독자들의 공통된 조상즉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구약 시대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살았던 모든 조상들'을 말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11장 4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대별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며동시에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증거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인정을 받았습니다'로 번역된 '예마르튀레테산'(emartyrethesan; were well attested; were commended) '마르튀레오'(martyreo)의 과거 수동태이다.

 '마르튀레오'동사의 뜻은 '증언하다', '어떤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다',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사실을 확증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동태로 쓰인 것은 거명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증인이 바로 하느님 자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하셔야만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속임을 당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는 진리의 근원이요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직접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셔야만 진정한 신앙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연중 제 3주간 토요일 미사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여러분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인가요? 

 

(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저녁의 호수입니다예수님께서 어둠의 세상으로 오셨음을 뜻합니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배는 교회라 했습니다교회 안으로 세상의 물이 들어와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그 세상의 물은 마셔도 또 마셔도 목마르게 되는끝내는 죽게 되는 물입니다.

그러나~

(요한4, 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 생명수,  말씀입니다

어제 사람의 지혜로는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의 어떤 말보다 작아 보인다사람의 눈으로는 하느님의 일하심그 말씀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린도1서 말씀을 인용해 묵상했습니다그 세상의 법사람의 물거의 찼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하늘의 진리를 깨닫기 힘들어 졌다는 것입니다주님의 구원의 말씀, (약속)이 세상의 법그 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르7, 7-8)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말씀이 죽음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배 안에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깨우는 것입니다그 예수님이말씀이 주무시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죽음인 것입니다. (잠은 죽음을 뜻한다그랬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말씀이 깨어나시면희망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예수님(말씀)을 모르면 두렵습니다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돌풍풍랑이 이는 호수입니다.

세상의 지혜과학문명 등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풍랑을 일으킵니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라도 속마음은 걱정근심불안초조 로 세상의 노예로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합니다.

그 풍랑의 물이 교회 안에 가득 들어찼기에 신앙도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습니다예수님께서 그 모든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우리 마음 안에 들어찬 세상의 말을 꾸짖으시니 풍랑이 멎고 고요해 집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풍랑이 없었다면 '살려달라'고 예수님을 깨웠을까요풍랑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몰랐을 겁니다우리 안에 돌풍과 같은 풍랑이 일어난다는 것은 주님(말씀)을 깨우라는찾으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그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17,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보내셔서 그분의 죽음으로 罪人인 우리들이 용서로 거저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는 것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분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영원토록 드리며 살게 되었다는 것거기까지가 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점입니다그보다 구원의 그 하느님 사랑그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43, 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에페1, 6)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그 하느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십자가의 승리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기에(1코린15,57참조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는 그 영광만 받으십니다.

교우 여러분우리는 흙의 먼지그 티끌의 존재입니다하느님은 그 티끌로 사람을 빚어 만드신 창조주 이십니다그것만 잘 받아 들여도알아들어도 우리의 구원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왜 더 중요한지를그래야만 되는 것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그것이 하느님을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사랑하는 것입니다.

 

♡ 아멘 -*^^*-

 

2020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복음(마르4,35~41)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39~41)

 

'꾸짖으시고'로 번역된 '에페티메센'(epetimesen; rebuked) 예수님을 주어로 하는 경우 베드로를 향해서(마르8,33), 더러운 영을 향해서(마르1,25; 9,25), 열병에 대해서(루카4,39), 그리고 여기서는 바람을 향해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경우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서 인간과 영계와  질병에 대해서까지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사탄의 권세가 미치는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원 사업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를 꾸짖으셨으며, 질병과 부마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령들을 꾸짖으셨고,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를 막는 풍랑을 꾸짖으셨다.


이처럼 '꾸짖는 일'은 예수님의 개인적이거나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표출된 감정 폭발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들을 효과적으로 이루시기 위해서 행하신, 권위있는 활동의 일종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교도들처럼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희생 제사를 바치며 달래거나 겁을 주는 방법이 아닌, 권위있는 말씀으로 꾸짖는 방법을 이용하셨다.

 

한편, '바람' '호수'는 특별히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여기서 '바람' '호수' 동시에 등장하는 점이나 마르코 복음 4장 39절 후반절에서 호수더러 잠잠하라고 했는데,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지는 을 보면 그렇다.

 

구약 성경에서 '호수' 또는 '바다' 욥기 38장 8~11절, 예레미야서 5장 22절에서 태고의 혼돈을 나타내며, 시편 69장 2절이하 이사야서 43장 2절에서는 의인이 당하는 시련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이 타신 배를 삼키고 그들을 죽이려 하는 호수를 굴복시키신 것은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깨뜨리셨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39절 '조용히 하여라'에 해당하는 '페피모소'(pephimoso; be still)의 원형 '피모오'(phimoo)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다', '묵상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명령 분사 '페피모소'(pephimoso)는 그리스 문학의 이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령 제압을 위한 문구로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루카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예수님 활동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부르짖음을 듣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역사는 오로지 주 하느님께 돌려지는 구약적 배경을 갖는다(시편107,29.30).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41절 '복종하는가?'에 해당하는 '휘파쿠에이'(hypakouei; obey)의 원형은 '휘파쿠오'(hypakouo)인데, 여기서는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으로 쓰였고, 어떤 곳에서는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형인 '휘파쿠우신'(hypakouousin)이 쓰였다.

 

복수로 쓰인 것은 '바람과 호수'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풍랑의 원인을 여러가지 자연적인 요소들로 간주했기 때문이고, 단수로 쓰인 것은 풍랑의 원인을 한 위격 또는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자연은 본래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달리 흉폭해져서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자연을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타락한 자연, 사탄의 세력에 의해 조종받는 자연도 이 모든 세상을 재창조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