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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제3주간 토요일 독서묵상글 /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히브리11,8-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30 조회수84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1 30일 연중제3주간 토요일 독서묵상글 (공동번역)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히브리11,8-10)

8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 9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도 같은 약속을 물려받은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나그네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머물러 살았습니다. 10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께서 설계자가 되시고 건축가가 되셔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 주실 도시를 바라며 살았던 것입니다. 아멘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까? 어디로 가는지 알았어요. 가나안으로 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그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해 간 건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라는 일차적인 의미가 있는 거고. 두번째 그가 가나안의 의미가 무언지를 모르고 갔단 뜻이에요 그 말은요

가나안이라는 눈에 보이는 땅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 가나안 땅이 도대체 뭐 길래 거기로 가라고 하지? 가 그게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어디로 가는 지가 아니라 내가 가는 그 곳의 내용이 뭔지를 몰랐단 그런 뜻이죠. 그런데 그 땅에 가서도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장막을 치고 살았다 그런단 말이에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죄에 가두어서 이 땅에 내려 보내시죠? 그거를 아브라함과 그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그 내용에서 우리는 미루어 추측할 수 있어요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백성을 애굽의 종으로 보낼 것이다 그랬단 말이에요.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그게 이제 역사라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권세 잡은 자, 권세를 잡았다라는 건 우리가 그 밑에 있단 뜻이잖아요. 죄의 종으로... 선악과 입에 문 채 우리가 이 땅에 오게 된다는 그런 뜻이죠. 그래서 이 땅에 우리가 죄의 종으로 오게 되면... 어떤 중보자가 우리에게 오게 돼 있어요 그게 이제 모세죠? 그래서 모세가 가서 애굽에 있는 그 종 되었던 하느님의 백성을 불러내는 거죠? 불러낸다라는 것은 그곳에 있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의 행위나 이런 걸로 자꾸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착한 사람이 없겠어요~아니면 그중에 살인자가 없었겠어요~ 그들은 여러 종류의 삶을 살았단 말이에요 이 땅에서. 도덕 윤리 잘 지킨 사람도 있었고, 개차반인 사람도 있었고, 여러 종류의 사람인데... 나라를 옮기는 걸 구원이라 그러지 그들의 어떤 됨됨이나 자격조건을 근거로 하여 옮겨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걸 잘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구원이라는 건 ....하느님의 부르심에 촛점이 있는 거지 그들의 어떤 됨됨이나 자격에 촛점이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2디모1,9) 9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죠.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란 말이에요. 여러분과 나의 조상이란 말이에요 그게. 그런데 어떻게 부르셨냐면 그들의 행위나 이런 걸 보고 부르신 게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불러내는 거예요. 믿음으로 불러냈어요. 믿음으로 끌고 나온거죠.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이해를 하냐면 믿음을 하느님이 나에게 주시면 그 다음에는 그 믿음을 내가 관리하고 지키고 더 이렇게 풍성하게 키워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믿음을. 하느님이 믿음을 나한테 주시면 그 이후부터는 믿음의 주체가 내가 되어야 된다고 착각들을 하는 거예요. 믿음은 내가 사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왜 16장에서 이스마엘을 낳냐고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사유되어 그를 의롭게 하는 거라면 어떻게 16장에서 하느님이 그렇게 진노하시는 일을 해야 되냐고요.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사유되어서 아브라함을 근사한 존재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게 믿음이란 말이에요. 믿음이 혼자 일을 해요. 그래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들어갔더니 이제 '너는 의로운거야.'라고 시작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에 보면 '하느님이 부르신 자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러죠. 로마서에 보면 '부르신 자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는 건 부르시면 이미 그 속에 완료하게 되는 거예요 완료라는 개념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얘는 이렇게 부름받은 자야~ 라는 게 폭로가 되는 거예요 뭐에 의해서 믿음에 의해서.

믿음이 그를 붙들어서.... 세상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시켜서 ....죽여버리는 거죠.

믿음으로 아벨은 첫번째 사람이요. 세상에서 죽었어요. 믿음으로 에녹은 세상에서 아버지나라로 옮겼어요. 그 말은 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단 뜻이에요. . 우리도 지금 믿음으로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그러잖아요. 이게 에녹의 이야기예요. 우리가 산 채로 지금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며요. 그러니까 에녹을 부러워하시면 안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된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상태로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냐면, 산 채로 남들 구백살씩 살 때 삼백살에 요절한 거란 말이에요. 이거는 여러분이 부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환란이 숨어있는 거예요. 세상에 대하여 죽고, 남들 구백살씩 살 때 세상에서 얼른 데려가 버리는 거예요. 살아 있는데. 그러니 살아있는 상태에서 세상에 대하여 죽으면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냐고요. 죽여가는데.. 나는 죽기 싫어 죽겠는데 하느님이 동행하더니 끌고 가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녹이 무슨 대단한 믿음으로 그렇게 살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에녹이 자식새끼 놔두고 마누라 다 놔두고 자기혼자 하느님에 의해서 하느님과 동행하면서, 하느님이 동행하면서 어떤 일을 하시냐면 질투를 하신단 말이에요. 자식한테 정도 못주게 해~ 마누라도 사랑하지 못하게 해. 이 동행이 여러분 쉬운 거 같으세요?

성경이 하느님이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 그랬겠어요. 여러분이 돈을 사랑할라고 그러면 그거 끊어버려~ 자식 사랑할라고 그러면 그거 끊어버려~ 명예 사랑할라고 그러면 그거 끊어버려~ 이게 하느님의 동행이에요 질투하시는 하느님의 동행. 의부증이 있는 어떤 여자가 남편 옆에 붙어갖구 아무도 못오게 하는 그런 거. 이게 하느님의 동행이라니깐요? 그러면서 하느님이 팍팍 끊어내는 거예요. ‘그 동행이 그렇게 산채로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는 것이다를 보여주는 게 에녹의 삶이란 말이에요. 이 땅에서 열심히 잘 착하게 살면은 죽음도 안보고 그냥 불말 불兵車 타고 하늘나라로 그냥 올라간다더라.. 제발 그 유치원 수준에서 벗어나세요.


그리고 세번째가 노아예요. 믿음으로 노아는 노아는 뭘 했어요. 세상에서 바보된 거예요. 여러분 보십시오. 베드로서에 보면은 노아가 를 전파했다 그래요 의를 전파했다. 신약의 의는 뭐예요. 예수님의 의란 말이에요. 그러면 노아가 의를 전파했다고 베드로가 이야기할 때에 노아가 어떤 의를 전파했겠어요?

베드로전서로 가면은... 예수께서 노아와 함께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 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죠. 어떤 복음이겠냐구요? 착하게 살아라. 그럼 세상 안 망한다 이랬겠어요? 성숙해야 돼 야 도덕윤리 잘 지켜 그랬겠어요? 뭐라고 전했겠냐고 복음을.

예수님이 영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데. ‘니들이 아무리 여기서 착하게 살든 뭐하든 아무 것도 아니야. 저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돼를 전하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라니깐요. 니들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느님이 여기를 홍수로 멸망시킨다고 했으면 이건 멸망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니들의 그 행위 이런 거 돌아보지 말고... 니들의 꼬라지 보고선 뭐~ 니들 칭찬하거나 절망하거나 그러지 말고 무조건 방주 예수 안으로 들어가 이게 복음 전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은 그 방주를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이 멸망당할 세상에서 가치있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게 건강한 교회가 되어버린 거예요 지금. 다른 종교하고 뭐가 다르냐고요 이런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하고 뭐가 다르냐고요.

노아가 그렇게 예수를 믿어야 돼 라고 했을때....... 어휴....저런 놈 저거.... 아니 노아가 그렇게 자기가 먹을 농사도 다 지어야 돼요 왜냐면 그 식량 니가 준비해라 그랬단 말이에요. 홍수가 오는 동안에 그 짐승들이랑 먹을 거 ....그 소를 백 마리만 키워두요 그 먹이를 겨울동안에 그 소들이 먹을 먹이를 준비하는데 여름부터 그 가을까지 내내 그것만 준비해요 먹을 거만, 한 겨울 나는데. 그런데 이 세상에 있던 모든 짐승들이 한 쌍씩 다 들어갔다고 거기에.

그 먹이를 노아야 네가 준비해라 그랬어요. 배짓는 것보다 아마 시간이 더 들었을지도 몰라요. 코끼리같은 거 좀 많이 먹어요? 거기다가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지 배 지어야지 그러니까 백이십 년이나 걸린 거예요.


그 동안에 노아가 무슨 취급을 받았겠냐구요 세상에게. 노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착하다고 칭찬받았다 성실하다고 칭찬받았다 이런 얘기 없어요. 그냥 하느님의 약속 믿고 바보처럼 그냥 이 땅은 멸망하는 거지.... 이거 하나 믿은 거예요.

뭐 배를 산꼭대기에 짖고, 말고 이런 거에 촛점두지 마세요. 그냥 이 세상은 멸망하는 거지 ....그래 니들 열심히 착하게 살아서 멸망 한번 면해봐~ 나는 알어. 분명히 멸망할거고.... 나는 저 예수 안에 들어가야 산다는 걸... 나는 알아 어떻게. 믿음으로! 아는 거예요. 믿음으로. 그게 그리스도교예요.

여러분 노아의 이야기가 성경에 어떻게 기록돼 있어요?. ‘너희들의 마음의 뜻과 생각하는 것이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해서 내가 멸망시킨다그러죠. 그런데 우리는 뭐라 생각하냐면..... 어떻게 항상 악해? 그리고 어떻게 모든 이가 악해?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우리가.

그럼 내 안에서 나오는 착한 이 일이 뭐야? 아니~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었대매요. 그럼 여러분의 행위는 이미 무가치한 게 되는 거예요. 어느(?) 존재가 하는 행위가 뭐가 가치가 있냐고요 이게요. 아니 그 기본도 이해 못하면서 무슨 교리를 이야기하냐고요. 죽은 존재는 이미 그가 내놓는 모든 행위를 무가치한 것으로 차압당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에 의해 끌려가며 그들의 모든 사고와 그들의 모든 행위를 하느님, 예수를 믿는 방향으로 해체당하고 부정당하는 삶을 사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베드로서에서도 물은 곧 세례니, 수의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한테 떨어진다니깐요? 그 저주의 물...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건 아의 홍수에 빠져 죽는단 뜻이란 말이에요. 그게 베드로전서 3장에 나오는 얘기란 말이에요.

그 물은 세례니 라고 이야길하니까.. 세례는 우리가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노아의 홍수의 물이 왜 우리와 관련이 있냐고요 왜. 세롄데 ...뭐냐면 육체를 깨끗하게 하는 게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거, 거기서 선한 양심이라는 건 뭐냐면 아가또스 토브란 뜻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선한 일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걸 예수님이 향유를 부은 마리아에게 '저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라고 또 그 말을 하신단 말예요.

좋은 일이 뭐냐구 선한 일이 뭐예요. 원래 창조된 그 상태.. 죽은 흙의 상태로.. 그 마음으로 하느을 바라보는 게 ....바라보게 하는 게 세례란 말이에요. 그게 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노아는 이 세상을 홍수가 내리기 전에 벌써 방주에 들어가기 전에 홍수를 맞았던 거예요....120년동안.

노아만 홍수를 겪지 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서 편안하게 살았다가 아니예요. 노아는 세상 속에서 홍수를 맞은 거예요 벌써. 그래놓구 너희들의 행사가 항상 악하다라는 걸 뭐로 설명하냐면?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하는 거(창세6,1-8)

근데 하느님의 아들들은 그 분리, 거기서 남자를 이야기하구 사람의 딸들 여자 내 안에 공존하는 거란 말이에요. 이것들이 계속 낳는 게 뭐냐면... 용사 유명한 자 네피림 거인 이런 거란 말이죠. 우리의 추구.... 세상 속에서의 인간들의 추구..... 성도들이 그걸 낳는단 얘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한 거예요. 홍수로 죽이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래놓구 하느님의 아들만! 남기는 거예요. 그걸 우리의 인생이라고 한다구요.

우리의 인생은 그냥 홍수예요. 홍수여야 되는 거예요, 그냥 계속해서. 거기서 살아날 생각을 하시면 안되는 거란 말입니다.


보세요. 믿음으로 모든 이가 죽어요. . 그리고는 아브라함이 등장하는데,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믿음이 끌고 간거죠. 당시에는 나그네는 그냥 죽은 목숨이었어요. 자기를 유일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게 마을사람이고 부족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나그네는 아무나 때려죽이고 묻어도 법으로 제재를 할 수가 없었어요. 죽으라는 거예요.

너혼자 나가라, 그 잘 살고 있던 갈대아 우르, 바벨론이요 갈대아는. 바벨론에서 끄집어 내는 거예요. 누가? 믿음이요. 끄집어 내더니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으로 가게 만들었어요. 근데 아브라함이 거기가 뭔질 몰라요. . 어떻게 아냐면 가서도 수시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거기가 왜 소중한지를 몰라요. 그리고 하느님이 또 그렇게 살게 하세요. 장막을 치고 살게 하세요. 거기서. 그게 뭐냐구요. 우리는 분명히 거기를 약속의 땅으로 알고 있죠? 그리고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니까.

근데 보이는 땅이에요.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상의 교회. 하느님 나라라 그러죠. 광야에서 겪는 일이 뭐예요. 야곱의 후예들, 야곱의 식솔들, 칠십 명이 들어가서 애굽에서 그렇게 이스라엘이 되서 나오는 거니까 야곱이란 말이에요. 야곱.

이스라엘이 야곱이 나오는데 에사오의 후예들이 광야를 다 차지하고 있는데... 하느님이 에사오를 건드리지마! 그래요~. 내가 쟤네한테 줬어. 그런다구 이 땅을~.그러더니 니네는 밥이고 물이고 쟤네한테 사먹어!’ 그런다니까요? 하느님이 무슨 심뽀로,

하느님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취급하냐고요? 건드리지도 못하게 해요. 이 세상 주인은 에사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세상 속에서.

가나안에 들어갔어요. 약속의 땅이에요. 잘 살아야 돼. 잘 먹고 잘 살아야 되는데 거기에서도 또?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신명기에서 뭐라고 예언을 하셨냐면 니넨 들어가서도 나를 순종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아마 거기서도 굉장히 고생할거야. 이래요. 아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러면 거기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이어야 되는데 ...

거기서도 니네들은 둘로 또 갈라질 거라는 거예요. 아니나 달라요? 광야에서 에사오의 후예들이 한 역할을 가나안 사람들이 그대로 또 역할을 하죠. 어디서? 가나안 땅에서~. 교회 안에서요. 그게 가라지인 거예요.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져요. 그 교회 안이라는 건 바로 내 안이라는 뜻이에요~. 그거를 갖다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 로컬처치가 그림으로 이렇게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내 모습이란 얘기예요. 교회는 나니까.

그러니까 내 안에서 여전히 하느님의 나라, 약속의 땅, 하느님의 처소가 됐다고 하는데, 내가 하느님의 처소가 됐다고 하고 성전이 됐다고 하는 내가 내 안에 또 다른 전쟁이 또 일어나는 거예요. 근데 가나안은 몰아내고 싶지가 않아요~.

하느님의 약속은 들었어요. 말씀은 들었어요~ 그래서 알아요. 이스라엘도 알았어요. 쫓아내야 되는지를. 그런데 아이, 요것 정도는 뭐,,,,.하고 다 남겨놨어요. 부족마다 쪼금씩 다니면서. 근데 결국 그들에 의해서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죠.

가자의 후손이 삼손 죽였고, 가드의 후손들에게 골리앗이 나왔고, 아스돗에서 아스돗의 후예들에게 법궤를 뺏겼고. 남겨논 자들이 이스라엘을 아주 묵사발을 내요. 근데 이스라엘을 그렇게 묵사발 당하도록 놔두세요, 하느님이.


아브라함이 여기서도, 교회에서도, 약속의 땅에서도 장막을 치고 사는 건... '여기도 아니구나' 라는 것을 하느님이 가나안에서 가르치셨단 얘기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은 행복한 교회, 건전한 교회,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성취하려는 분들이 돼서는 안돼요.

눈에 보이는 가나안은 반드시 가나안의 행사를 해야 돼요. '교회만 가면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서 가기가 싫어~' ㅎㅎ 그러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 뭔가 인간적인 조류가 많이 들어갔단 뜻이에요. 교회는 그냥 말 그대로 이 역사 속에서의 가나안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계속 맞아 죽어요 거기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때에도, 분리가 또 일어나죠. 롯과 아브라함으로 분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롯은 승리자의 삶을 살아요 거뜬히. 눈에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는데 거기를 '야훼의 동산'이라 그래요. 동산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 해요. 굉장히 보기가 좋은 땅을 그렇게 묘사를 한다구요.


그니까 에덴에 있는 동산,...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 동산이잖아요. 아담이 범죄한 곳이.. 동방의 에덴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거고 묵시를 상징하는 거고... 거기에 동산을 창설하셨다 그래요. 그 동산이에요.

거기에서 롯이 성전 앞에 앉아있다 그러죠. 그거는 재판관이죠? . 선악과 따먹은 선악의 주체로서의 모형으로 서는 거예요. 롯이~. 그리고는 개차반으로 살어. 어떻게 알아요? 천사가 들어와서 천사가 와서 손을 잡고 나가자고 그러는데 미적미적..못나가, 여기가 좋사오니... 그래서 천사가 끌고 나간다니까요? 근데~! 롯을 베드로가 의인이라 그런단 말이에요. 뭔 의인이 그러냐구.

아브라함은 그냥 가나안에 머물러요. 가나안은 어떤 땅이에요? 소돔과 고모라는 애굽같은 땅이다. 애굽은 너희들이 물을 한 바가지 갖다 부으면 쌀 한 가마니 나오고 두 바가지 갖다 부으면 두 가마니 나오는 땅, 이거는 인간들이 하는 만큼 소산이 나는 땅이란 뜻이에요. 근데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머문다는 건 가나안은 신명기에 나오잖아요. 거기는 하느님이 비 뿌려줘야 먹고 사는 곳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인간이 자기들의 행위로 자기들의 소산을 얻을 수 있는 땅이 롯이 거한 땅. 하느님이 굶어 그러면 굶고, 먹어 그러면 먹고 해야하는 땅이 가나안 땅이에요. 아브라함은 이 땅에 머물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로 간다. 근데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박살이 나죠? 롯은 뭘 잘했다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거예요? 하느님이 뭐라 그래요. '아브라함을 기억하시어' 롯을 데리고 나왔다.

 

그러니까 의인이라는 건 뭐예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 아니예요? 요한묵시록에 가면~. ‘우리가 맞아 죽는 곳은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과 고모라라고도 한다라고 그러잖아요. 거기가 예수의 십자가가 못박힌 곳이다 그런단 말이죠?

그럼 여기에서 의인으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런 자들은 중보자 예수를 생각하여 의인으로 여겨주는 거예요. 성경이 왜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그래놓구 또 어디서는 의인 누구 이렇게 이야기를 하냐면... 의인은 하나도 없다가 진리예요 진실, 근데? 하느님이 그렇게 롯처럼 의인으로.. 여겨주는 자가 있는 거예요.

여기에서 드디어 이제는 믿음이 무엇이고 하느님의 구원이 무엇인지가 아브라함 때 부터 설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거죠.

 

왜 딴데서는 전부 에사오 유기되죠? 이스마엘 유기됨 아니 이건 후죠. 그 전에 남자, 여자. 아담. 하와, 카인, 아벨 이렇게 분리를 설명했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여자가 다 이렇게 망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제 아브라함 때에 가서는 롯이라는 요 인물이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구약적인 관점에서 분리를 설명한다면, 아브라함 때부터는 믿음이 설명되기 시작하면서 구원이 뭔가를 설명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너희들 안에 분명히 이런 분리가 있는데 ...이런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라면 반드시 맞아 죽어야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십자가를 보시고 너희를 살리는 게 구원이야를 설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점점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나는 예수땜에 살았습니다.' 이 진리가 점점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지는 그런 사람이,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겠냐고요.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하겠어요? 저 사람도 저 상태이지만..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면, 하느님은 분명히 저 사람을 구원하실거야. 그걸 그렇게 우리 눈에 세상적인 어떤 도덕이나 윤리나 사회법이나 아니면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바라봤을 때.. '저 뭐야 도대체?' 이걸 '小子'라 그래요. 이 소자 하나를 내가 영접을 한다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인정을 해주는 거예요.


여러분이 잘 생각해 보세요. 小子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왔다구요. 창녀랑 맨날 술이나 먹어~ 안식일도 안 지켜~ 그렇게 오신 예수님을 이 율법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도대체 저건 뭐예요. 율법도 안지키고 왜 죄인들하고 저렇게 어울리고 왜 저래? 작은자란 말이죠. 그래서 율법주의가 때려 죽였단 말이에요, 예수님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적, 율법주의, 인본주의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렇게 보일 수 있다니까요 성도가.

그때에도 믿음으로 ....'아니야!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은 은혜로 구원하시는 거니까 ...저도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면 저도 하느님의 백성이 맞아'.라는 게 작은자를 영접하는 거죠. 그 작은자를 영접할 수 있다라는 건 예수를 믿는다는 얘기니까 하느님께서 그러는 거예요. ‘작은자를 영접한게 나를 대접한 거다.’라고 이야길 하는 거예요.

윤리로 받아들여서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내가 했는데 아니 성경에서 하라 그래서 내가 했는데... 그럼 그게 예수라며요~근데 왜 그걸 인정 안해줘요?! 이게 되는 거예요. 아니, 당신이 얘기했잖아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게 나한테 한거라고 ~ 그래서 내가 했는데 왜 안했다 그러냐구요. 이렇게 따지는게 염소라니깐요? 그런데 오늘날 그 일을 그대로 하고 있잖아요. 이 교회가.

아니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게 나한테 한거라 그래서 나 세상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봤겠어요? 못봤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냐면 성경 말씀을 도덕과 너무 홀리해서 (?) 나도 해야지? 그날 그지들 횡재하는 날이에요 아주. 그날만! 다음날에 가면 또 잊어버리죠. 여러분, 어떻게 그게 우리의 상벌의 근거가 될 수 있어요. 예수 믿는게 그리스도교입니다. ... 답답해요..

성경말씀을 여러분이 보면 되잖아요. 다른데서 어떤 지지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이 말씀이 사실 진짜 그런지. 여러분이 판단하시면 되잖아요?.. 성경 어디에.. 난 아~무리 봐도~..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인간들에게 그런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 자꾸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떤 업적과 공로를 자꾸 자랑하려고 하고 그걸 치장하려고 하니까 교회가 점점 이렇게 무당이 돼 가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에 1년 무당 점집에서 1년동안 왔다갔다 하는 돈이 십조 원이에요. 교회 헌금보다 훨씬 많죠. 근데 나는 그 무당집에서 거래되는 돈에다가 교회에서 왔다갔다 하는 헌금도 보태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 이십 조 될거예요. 왜냐면 무당집에 가서 점보는 사람의 심리나 교회를 가갖구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의 심리나 똑같애요.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유익하게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까요? 를 물어요.

난 무당집에 가서 그 사람들 요즘은 고학력자 무당들도 많이 생겼지만 옛날에는 다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 아니면 중학교 졸업한 사람 그런 분들이... 욕지거리 해가면서 방울 흔들면서 쌀 촥 흩뿌리면서 그냥 그렇게 무례를 범하는데.... 국회의원,대학교수, 이런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가지구 그걸 다 수모를 당하고 심지어 돈까지 바치고 절까지 하고 나오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야!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붙들고 있는 거는 마귀가 맞구나~!

아 그러니까 박태선이니 아니면 뭐 문선명이니 안상홍이니 이런데에 그렇게 훌륭한 세상에서 존경받는 이들이 가서 앉아 있는 게 이게 생경한 일이 아닌 거예요 이게. 아니, 어떻게 자기가 하느님이고 자기 마누라가 장길자인가? 마누라가 여자하느님이다 뭐 엘로힘이 복수라서 하느님은 부부래나?

그래갖구 안상홍이 남자하느님이고 와이프가 여자하느님이고 또 죽으면서까지 이 인간들의 추악함, 사실은 저 여자가 하느님이었다고 또 이러고 유언까지 남기고 죽었고 ㅎㅎ 아직도 그걸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국회의원, 대학교수들이 즐비하게 앞에 앉아 있다니깐요? 돈 다 갖다 바치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이큐 오십만 넘으면 그 일을 하겠나 이러잖아요? 어떻게 예수님이 실패했기 때문에 내가 다시 예수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라는 문선명의 말을 믿고 어떻게 그가 태어난 곳을 성지순례를 한다고 전세계에서 그렇게. 월가에서 뉴욕 투자자 자문을 하는, 그런 사람들까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 어떻게 문선명하느님, 예수님 이러믄서 부산으로 성지순례를 오기를, 그런 세상 속에서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믿어지고 예수가 믿어진다라는 게 이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아세요?

그런 세상, 항상 모든 행사가 악하고 마음의 뜻과 계획이 다 악할 뿐인 이 세상 속에서 ...그렇게 예수와 십자가를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고 욕바가지를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그게 여러분이 믿겨져서 새벽에 잠도 안자고 나오는 게 이게 미친 짓이지 뭐예요, 이게~. 근데 왜 여기 나와서 이렇게 앉아 있냐구요. 뭐가 어떻게 도대체가 뭘 여러분을 이렇게 끌고 가냐구요. 믿음이 여러분을 끌고 가요. 그러면 보이지 않는 믿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라는 거 여기서 감동이 안되냐구요. 나에게 예수가 믿겨진다라는 게 진짜 감동이 안되세요?


 오늘날은 언론도 그렇고 그리스도교언론 마찬가지예요. 다들, 교회가 이 세상에서 뭘 해야된다 그러구 정치에도 참여하구 사회에도 참여하고 그래서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되고 이 세상에서 불공평에 처해서 그런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게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일어나서 촛불 들고 광화문으로 나갑시다!' 그래놓고 선동으로 끌려가서 감옥에서 한 3년 살다 나오면 영웅이 돼갖구 두레마을이니 뭐니 이런 거 만들어서 여전히 정치에.. 아이 나 그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이해가 안가.. ^

목자는 예수를,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이지 여러분을 어떻게 잘먹고 잘살게 해주기 위해서 혼자 다 뒤집어 쓰고 감옥가고 이러는 사람 아니라구요. 그건 세상에 나가서 하는 사람 많잖아요, 그거는~ 근데 전부 그런 사람이 돼 주라는 거예요. 말씀을 전해 달라고 얘기를 하지 않고 말이죠.

여러분은 예수만 믿고 그 하느님 나라가 진짜 존재하며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그 곳이다. 이 마음이 없는 사람은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이에요. . 부르심 안에는 이미 믿음이 함유돼 있는 거,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벌써 완료를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함부로 부르심 받았다 부르심 받았다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부르심, 여러분을 부른 그 믿음이 이 세상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사악, 야곱 다 데리고.. 같이 살았어요. 한 장막 안에서..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같이 살았어요 삼대가. 그래서 성경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어떻게 살았냐면, '얘들아 텐트쳐라~' 쳤단 말이에요. '거둬라 가자 ' 하면 또 가고. '텐트쳐라~' 그러면 또 치고. '거둬라 가자' 하느님은 이 땅에 절대 기둥하나 못박게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옮겨다니는 게 맞는 거예요. 사제가 교회부임 했으면 꼭 여기만 있어야 돼요?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아, 한군데 이렇게 계속 안전하게 있으면 안정되고 사람들이 존경해주고 좋겠지만. 또 가서 텐트 거둬서 가갖구, 또 텐트치고 가서 또 하다가 텐트 걷고 텐트 치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한 군데서 어떻게 그냥~~ 뭉갤려고 하지 마시고, 성도도 똑같은 삶이에요. . 역할을 맡은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자꾸 가족^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눈에 보이는 가족이 여러분 가족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늘에 가면 여러분의 아버지는 하느님이고 여러분은 다 형제예요. 자식도 여러분과 형제예요. 여러분의 아버지도 여러분과 형제. 그분들이 천국에 있다면. 없으면 아무 것도..이거 뭐야.. 허상이었네? 이거. 왜 없음으로 돌아갈 거니까..이게 지옥이라 그러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끔찍이 위하고. 그렇게 목숨까지 주려고 했던 내 자식이 사실은 신기루였네? 하느님 나라 갔더니 안 만져져. 그게 흙이란 말이에요.


그걸 여러분이, 그 묵시를 조금씩 조금씩 믿어가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거예요. 그때에 여러분은 세상으로부터 불효자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불효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마음속에 믿겨질 때 그렇게 내 존재의 확장으로 내 가족을 안 대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지금 가족을 사랑한다라는 건, 그 가족으로 말미암아 내가 확장되고 내 가치가 상승되기에 내 가족이지 솔직히 정말 내 유익에 요만큼도 도움이 안되는데 ....내가 내 가족을 사랑하냐구요. 우린 그런 존재가 못돼요. 그래서 세상에서 성도가 진짜성도가 되어가면 되어갈수록... 하늘의 묵시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이건 세상이 도대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거예요. 아니 예수를 믿기나(?) 하면 가족을 더 끔찍히 사랑하고 더 위하고 희생도 하고 해서 해야지.. 왜 어떻게 다른 교인들 대하는 거랑 비슷하게 대해주고.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감당하냐구요, 그걸.

우리 손톱 밑에다가 대나무 껍데기 하나만 일분 간격으로 쑤셔 넣어도 그냥 예수 안 믿을게요. 다 그럴 사람들이에요. 속으로는, "하느님 이렇게 내가 말로 이런다고 내가 뭐 진짜 하느님을 부인하겠어요?" 합리화시키면서. 다 그럴 사람들이라니까요? 고걸 안당해 봐 갖구 마치 자기는 그럴 수 있을 사람, 있을 줄 알아요. 영화 같은 걸 너무 많이 봐갖구.

"아휴.그러니까 예수님... 내가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살아요." 요 사람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라 그래요. 그러니 뭐 이걸 누가 이해하겠냐고... 다들 그냥 훌륭한 위인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이렇게 하는 마당에.

예수 죽인 자. 날마다 예수 배반하는 자라는 걸... 여러분 삶속에서 실감하지 못하고... 이야기만 하면 그건 여러분이 입으로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건 지식이에요. 지식. 진짜 여러분이 예수를 배반하고 살수 없는 존재라는 걸. 삶 속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체감하게 돼 있어요. 믿음은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이 악물고 주먹 불끈 쥐고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결국 하느님 앞에 가서, 불끈 쥔 주먹 거기까지 쥐고 가갖고 '보셨죠? 하느님.' 이렇게 된대니깐요. 이게 염소라고.

흐물흐물~해져 가지고 가 가지고 '아유 하느님 내가 진짜 당장 지옥가도 아무 할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이렇게 약속까지 해주셔서 참. 면목없지만 나 천국갑니다~^^' 그러고 가는 거예요. 이렇게 얄밉게 이걸 성도라 그러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아 어떻게 내가 이 모습으로 하느님께 가겠어. 어떻게 내 스승님을 보랴. 에이 목매달아 죽어버리자.' 내가 나를 벌주는게 유다. 고걸 하느님이 뱀이라 그랬단 말이에요. 왜 마귀라 그랬겠어요? 유다를, 예수님이.. 그렇게 멋지게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죄책감에 시달려서 심지어 그가 '회개했다' '메타노이아'란 단어를 쓴다고요.

내가 왜 우리 스승을 팔아 먹었지? 아니...은 삼십은 그건 돈도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 노예 한 사람 몸값이었는데

유다가 진짜 돈이 필요했으면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모의했는데 그거 협상한번 안했겠어요? '삼십냥 줄게' 그랬을때 '뭔소리야. 삼백냥.' '야 어떻게 삼백냥. 너 양심이 있냐 이백냥.' 뭐 이렇게 협상이 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아닌 양 '너 삼십냥 줄게' 그랬더니 '그래'. 이게 되냐구요. 돈이 진짜 그 사람의 목적이었다면. 근데 이 사람이 후회까지하고.

아니 그러면 예수님을 밟으면서 욕까지 하면서, 저주한 베드로랑  유다랑 도대체 누가 더 나쁜 놈이냐구요. 베드로는 회개도 안했어요. 어떤 죄책감에 가치있는 어떤 행위조차도 안했다니깐요? 유다는 목이라도 맸죠. 그래놓고는 뻔뻔스럽게 예수님한테 '에이 내가 사랑하는 거 알면서 왜 그러세요.' 이게 뭐냐구요. 근데 하느님이 그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니까? 그 놈에게. 뭐 하느님 나라가면 다 친구니까. 그 놈이라 그래도..ㅎㅎ^

여러분 신앙, 예수 믿는다는 게 뭔지 제발 잘 알아 먹으세요, 제발. 오늘 하루도 그 예수 때문에 행복 하라구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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