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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30 조회수874 추천수0 반대(0) 신고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다.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에 쓰인다.

 

 

1독서(나는 예언자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신명기 18,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17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20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자신과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2독서(처녀는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7,32-35

형제 여러분,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 32-35절 단락에서는 세상에 대한 종말론적 태도를 결혼문제에 적용하면서 독신생활을 권장한다. “주 예수 안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바오로는 예수의 입장에서, 예수와의 일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권고한다. 동정자가 결혼하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걱정하다가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들은 어근이 같다. , 여기에는 언어유희가 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 “품위 있고 충실하게는 원문에서 35절 끝에 있는데 34절 머리에 있는 갈라져 있다와 대조를 이룬다.

 

 

 

 

 

복음(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마르코 복음 1,21-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마르코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를 엮으면서 먼저 당시 신도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구마사화를 채집,수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용어,문체,사상에 따라 더러 개작했는데 21-22, 27-28절에 편집요소가 뚜렷이 드러난다.

 

구마사화는 3.1과 비슷하게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그들의 회당에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 하나가 있었다.”유다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신앙고백,기도,모세 오경과 예언서 봉독,설교 순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다. 예수님도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셨다.

 

카파르나움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포구,거기에는 로마군 편제를 본뜬 헤로데 안티파스의 소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카파르나움에 관해 세 번 언급하나 어록의 불행선언을 보면 예수님은 그곳을 활동 근거지로 삼으셨다. 거기에는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어 예수님은 그 집에 묵으셨다. 마르코는 이런 사실을 상기하여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갔다고 했을 것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그리스 구마사화를 보면 귀신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구마자의 신분을 폭로하는 방어사가 있다. 우리 구마사화의 아야기꾼은 그 영향을 받아 방어사를 만들었는데. 사렙다의 과부가 엘리야를 상대로 항변한 말을 참고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당신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은 내 죄를 일깨워 주고 아들을 죽게 하러 오셨습니까?”(1열왕17.18)

 

방어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러운 영은 자신을 일컬어 우리라 하는데 귀신은 그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귀신들의 두목이 사탄이다. 예수는 거룩한 신계에, 자기네는 더러운 사탄계에 속하여 엄연히 소속이 다른데 무슨 상관이냐, 왜 자기네를 거세하려 하느냐, 당신 신분을 나는 파악하고 있다라고. 그런데 예수님을 일컬어 하느님의 사람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매우 드문 존칭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한다.

 

그 까닭은 이렇다. “나자렛 사람은 고행을 하기로 서원한 나지르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나지르를 의역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했다. 그래서 구마사화를 전한 이야기꾼은 나자렛 사람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풀이했던 것이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 우리 복음서의 첫 함구령. 이것은 구마사화에 흔히 나오는 소재다. 그러나 마르코는 자신의 메시아 비밀사상에 따라 그 함구령을 재해석하여.예수님은 평소에 당신 신분을 숨기려 하셨기 때문에 함구령을 내리셨다고 보았다. 귀신에게 내린 함구령이 1.34:3.12에도 있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면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구마사화와 치유이적사화는 으레 목격자들의 반응으로 끝맺는 법인데 여기서처럼 경탄사를 발한다. 다만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만은 마르코가 덧붙인 것 같다. 그는 구마행위를 가르침으로 평가했다. 즉 구마행위는 하느님의 왕정이 마력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드러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뿐 아니라 구마행위로써 하느님 왕정의 위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처사를 일컬어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 한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실제로 귀신들을 추방하셨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구마사화 하나하나가 죄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고 증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예수께서 구마행위를 하신 것만은 틀림없다.

 

그 논거를 세 가지만 제시한다. 1. 사료별로 보아 어록,마르코,마태오의 특수자료, 루카의 특수자료 등 모든 사료에 구마에 대한 말이 나온다. 2. 전승별로 보면, 그리스 구마사화 서술양식의 영향을 받은 구마사화전승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오래되고 역사적 신빙성도 더한 단절어전승도 있다. 예로 어록에 수록된 단절어를 들 수 있는데, 루카에 따라 인용해 보자.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3. 유다교 문헌에서도 예수님의 구마행위를 시인한다. 예로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 43a 항에는 예수가 마술을 부려 유혹하고 이스라엘을 오도했기 때문에 처형을 받았다고 한다.

 

끝으로 해석학적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귀신이 무수히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불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구마사화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병자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마행적은 정신력으로 환자를 고치는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할 수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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