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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1 조회수912 추천수0 반대(1) 신고

 

오늘 복음을 보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나가 치유가 되는 과정의 스토리입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더러운 영이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복음의 내용만으로 봐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내용만을 가지고 보면 더러운 영의 특징을 하나 알 수가 있습니다. 일단 자기가 사람에게 들어가면 들어갈 때는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었지만 나올 때는 쉽게 나올 수가 없는 특징을 가진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쉽게 나올 수가 있었다면 예수님께 자기를 돼지 무리에게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하지 못했을 겁니다.

 

더러운 영은 또한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온전한 사람 안에 있을 때 자기들을 그 사람 밖으로 쫓아낼 수가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예수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간파를 한 모양입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사는 장소는 무덤이었습니다. 무덤은 죽은 사람들을 묻고 봉분으로 덮은 곳이 무덤입니다. 더러운 영이 사는 곳을 무덤으로 설정한 내용을 묵상해봤을 때 왜 무덤일지를 상상해봤습니다. 무덤은 갇혀있고 또 무덤은 봉분이라는 특성상 뭔가를 덮어야 하기 때문에 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더러운 영 자체도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싫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복음에선 상대적으로 비유적인 기법으로 선한 영에 대해선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이 내용을 토대로 저는 신앙생활에 한번 접목해보겠습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신앙인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음에서처럼 원래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도 그런 영에 사로잡히면 복음 서두에 나오는 것처럼 괴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저는 천주교로 개종한 지 9년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을 더러 본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악인이 없고 또 선천적으로 선인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중국 고전을 인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현대 심리학을 토대로 보면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주 클 거라고 저는 봅니다. 저는 일반적인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신앙인에게도 좋은 면을 많이 가진 사람도 그 사람에게는 아주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병과도 같은 속성을 가진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한마디로 이건 신앙생활의 악습일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아무리 좋은 여러 모습의 외적 조건을 갖춘다고 해고 자기에게 작은 부분이지만 고질적인 악습이 있다면 이 악습을 없애도록 고군분투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그 잣대는 동일해야 자신이 올바르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가 있을 겁니다.

 

사람은 두 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악습이 있다면 이걸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걸 오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사는 장소인 무덤처럼 감추고 숨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감추고해서 사람들에게는 숨길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다면 그 방법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나그네 길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여관입니다. 우리가 살게 되는 집은 이 세상이 아니고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곳에서 장차 살게 될 곳을 동경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곳에 살게 될 사람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절대 적응해서 살 수가 없는 곳일 겁니다. 아니 적응이 아니라 이미 그것에 갈 수도 없을 겁니다. 이미 입구에서 차단될 것입니다. 이 현세만을 보는 사람은 이 상황을 보지 못할 겁니다. 저는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이 참으로 가엽고 불쌍합니다. 이건 비단 신앙인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해당합니다. 더군다나 신앙인이라면 더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잡아둔다고 해서 잡혀서 이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시간은 언제나 변함없이 강물 흐르듯이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가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점점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아주 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글을 통해서 공포심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신앙을 가진 이상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고 그 죽음 뒤에는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심판대를 늘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을 아주 현명하게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겁니다.

 

심판대라는 말이 두려운 말처럼 들릴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으로 산 사람은 나중에 그 심판대가 두려움의 심판대가 아니라 영광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천하만민 앞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 말입니다. 우리는 그때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현세에서 부족하지만 빛의 자녀답게 살도록 부단한 노력과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그런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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