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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2.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1 조회수1,213 추천수5 반대(0) 신고

(마산교구 순교 사적지,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2021년 2월 1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어떤 분의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려웠을 때 함께 해줬던 친구인데

지금 너무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없었던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해서 곤란할 때가

자주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리를 두려고 하면,

네가 힘들 때 내가 함께 해줬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라고

말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입니다. 물론 힘들 때 함께

해줬던 것은 너무나 고맙지만, 이것을 이유로

계속 간섭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이럴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준 그분을 외면하면

대역죄인이 된 기분까지 들 것입니다.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욕을 먹어도

충분한 상황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려웠을 때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자신과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아무런 이유 없이 주는 것에

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어렵고 힘들 때 있었던

나 자신과의 관계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가장 좋았을 때의 관계로,

일상의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 때도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만 주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평범한 일상 삶 안에서 먼저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 때도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과 만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끊임없이 반대했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신원을 정확하게 알면서 예수님 편인 것처럼

말했던 이 사람에게 고마움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탁대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지 않고, “그래,

나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니 내가 한 번

봐줄게.”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편인 것처럼 말했지만,

그 말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칭찬도 하지 않고 타협도

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사람에게

들어가 영향을 미칠까 봐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부탁을 허락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예수님께 자기 고장에서

떠나달라고 청을 합니다. 이들 역시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매 순간 사랑의 관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

제대로 바라보기

한 달에 몇 차례,

국내 성지순례를 다닙니다.

그런데 종종 저를 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빠다킹 신부님이시죠?

평화방송 통해서 신부님 봤어요.

그리고 매일 묵상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전라도 지역으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이번에도

알아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았고,

저를 기억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가 쓴 책을 드리고자

차에 싣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를 알아보는 분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알고도 모른 척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로만칼라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지요.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거울을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에서,

하얀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마스크로 제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것처럼, 다른 사람의 한 부분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인내와 정성이

우리 삶에 너무나 필요합니다.

(마산교구 순교사적지,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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