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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봉헌 축일(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1 조회수859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봉헌 축일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2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봉헌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

 

 

 1독서

히브리서     2,14-18

 

14 이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예수님께서도 그들고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 2,14-18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운 분인가를 그분의 강생,특히 수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스 철학이나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겉으로만 사람처럼 보이신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피와 살을 지닌 완전한 사람이셨고, 육체적으로 온갖 고통을 다 겪으신 연약한 사람이셨다. “피와 살은 유다인들이나 초대교회가 사람”,“인성등의 의미로 쓰던 단어다. 가끔 하느님과 상반되는 뜻으로 쓰이며 살과 피의 순서가 바뀐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악마는 후기 유다이즘에서 악과 죽음의 근원,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지혜서에서는 악마의 질투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러한 악마를 파멸시키고 승리하신 방법은 더 큰 힘을 사용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죽음 자체를 통해서였다. 그분은 스스로 희생됨으로써 죽음의 원인인 죄를 이기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켜,죽음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악마를 무력하게 만드셨다.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 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누가 빚 때문에 노예가 되었으면 그 빚은 갚아야 자유를 찾는다. 인류는 죄를 지어 악마의 노예가 되고 죽음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공포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되시고 그들과 똑같이 죽고 묻혀 죄의 빚을 갚고 사람들을 해방시키셨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 창세 12-22장 등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신약에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아가 이 말은 신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9절과 관련되어 모든 사람을 뜻한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대사제라 부르는데 이 대사제를 하느님 앞에 성실하고 자비로운 분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것임을 명시한다. “자비로운가엾게 여기는또는 동정심이 많은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자비로운 대사제이심을 매우 강조하며, 이에 대해 4.15-5.10에서 다시 상세히 설명한다. 또 자비에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은 성실한이다. 이 단어는 신뢰할 만한또는 충실한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성실한 대사제에 대해서는 3.1-4.14에서 길게 설명한다. 시편도 자비롭고 성실한이라는 합성어를 가끔 사용한다.

 

속죄하다는 구약 속죄제사 용어로 희생제물을 바쳐 사람의 죄를 보상하고 잘못을 기워갚는다는 말이다.

 

18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 그리스도와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의 결론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과 똑같이 시험과 고난을 받으신 분임을 강조한다. “시험을 받다유혹을 당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이 겪는 온갖 시험과 유혹을 가리킨다. 따라서 굳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분은 연약한 사람으로서 시험,고난,유혹 등을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아파하시며 그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신다.

 

 

 

 

 

 

복음(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루카 복음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출애 13.2.12.15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싸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 레위 12.8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 즈가리야와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처럼 시므온도 의로웠다고 한다. 여기 의롭고 경건하다는 다같이 율법을 잘 지킨다는 뜻이다. 위인 탄생에는 흔히 시므온 같은 사람이 나타나 아기의 장래를 예언하는 법. 불교의 원시 경전 숫다니파아타를 보면 석존이 탄생하자 아시타라는 선인이 나타나 아기를 안고 샤아카 족에게 이렇게 예언했다 한다.

 

이 왕자님은 정각의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이분은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청정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하고,불쌍히 생각하는 까닭에 법륜을 돌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뜻과 행동이 널리 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제 여명은 길지 않고 중도에 저에게 죽음이 찾아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위로받기를은 직역하면 이스라엘의 위로들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뜻한다.

 

주님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뜻이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 여기에서의 주님주재자라고 번역이 되는데 그리스어 데스포테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생사 대권까지 쥔 절대 지배자라는 뜻이다,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는 쉬게 하다.죽게 하다. 두 가지 뜻이 있다.

 

해외 유다인 그리스도교에서 부른 노래에서는 쉬게 하다는 뜻이었으리라. 즉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학수고대하느라 몹시 긴장한 유다인들에게 그 일을 이룩해 주시어 이제 쉬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주인이 수직 임무를 마친 종을 쉬게 하듯, 그러나 현재의 문맥에서는 시므온이 자기 심정을 토로한 셈이다. 늘그막에 예수님을 뵈었으니 이제 편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구원”, 곧 하느님의 구원은 해외 유다인 노래에서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읊었으나, 현재의 문맥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뜻한다.

 

이방인들도 구원의 혜택을 입는다는 보편적 구원관이 루카복음에는 여기 31-32절에 처음으로 명백히 나온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시므온의 예언은 유다인들 가운데 더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대부분은 배척한 역사적 체험을 참작하여 루카가 창작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 유다인들은 구원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멸망 할 것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배척당하는 표징이 되셨다.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암시하는 상징이셨다. 불행히도 유다인들 절대다수는 연약한 상징만 보았지 상징의 크나큰 뜻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마리아가 혹독한 고통을 겪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멸망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숨은 생각, 곧 믿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 예언자 시므온에 이어 예언녀 안나가 나오는데 루카는 종종 남녀를 차례로 등장시키곤 한다.

1세기에는 교회에서 공인한 과부단이 있었는데 루카는 안나의 삶을 그 과부들의 귀감으로 세시한 것 같다.

과부 된 지 여든네 해일 수도 있고 처녀생활,결혼생활,과부생활을 다 합쳐 여든네 해일 수도 있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를드리며,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직역하면 예루살렘의 속량을”, “예루살렘의 속량이스라엘의 위로와 같이 메시아의 구원을 뜻한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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