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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봉헌 축일] 아기를 주님께 바쳤다. (루카2,22-4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2 조회수88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2일 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아기를 주님께 바쳤다. (루카2,22-40)

2020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1독서<너희가 찾던 주님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말라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너희가 찾던 주님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그는 제련사의 불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화답송 시편 24(23),7.8.9.10(◎ 10ㄴㄷ)

◎ 만군의 주님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성문들아머리를 들어라영원한 문들아일어서라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힘세고 용맹하신 주님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성문들아머리를 들어라영원한 문들아일어서라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만군의 주님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루카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 봉헌 축일 독서(말라3,1-4)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1ㄷ,ㄹ)

 

하느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님이 홀연히 그의 성전에 올 것을 예고하신다.

여기서 '주님'과 '계약의 사자'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 '계약의 사자'가 동의어로 됨으로써, 계약의 사자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느님은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같은 사실은 요한 복음 1장 1절과 필리피서간 2장 6절에서도 유사하게 제시되지만, 삼위일체의 진리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사자'에 해당하는 '우말르아크 합베리트' (umallak habberith;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로 표현된 것은 그가 성부 하느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자, 곧 하느님의 계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파견된 분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이란 옛 시나이산 계약(옛 계약; 구약; 舊約)과 대비되는 '새 계약'(the new covenant)이다.

 새 계약(신약; 新約)에 대해서는 과거 이사야 예언자(이사55,3; 61,8), 예레미야 예언자(예레31,31-34), 에제키엘 예언자(에제16,62; 37,26)등에 의해 이미 예언된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 자신이 흘리신 피가 바로 새 계약을 이루시는 피임을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선언하셨다(마태26,28).

 

그런 점에서 말라기 예언서 1장 1절ㄷ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한 피를 흘려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를 새 계약으로 일치시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너희가 찾던'에 해당하는 '앗템 메바크쉼'(athem mebaqshim)은 히브리어에서 사용을 안해도 의미가 통하는 2인칭 복수 대명사와 '구하다', '추구하다', '찾다' 등의 의미를 지닌 '빠케쉬'(bakesh) 동사의 강조 분사형이 사용되어, 직역하면 '바로 너희들이 간절히 구하고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너희가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앗템 하페침'(athem hapetsim)은 '바로 너희가 몹시 기뻐하는'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사실 동의적 대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메시야를 갈망한 것은 메시야가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은 영광을 누리는 시대를 도래케 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 하느님께서 계약의 사자, 곧 메시야가 '홀연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실 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피트옴'(pithom)은 '갑자가', '놀랍게', '예기치 않은 때에'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메시야가 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온다는 의미,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메시야가 오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차 메시야의 재림 때의 상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야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의 사자가 '자기 성전'에 오실 것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해당하는 '헤칼로'(hekallo)는 '그의 성전'(his temple)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의 궁전'(his palace)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가 머무는 처소인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전이 바로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탄생하신 지 여드레 만에 성전을 방문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지 40일 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었고(루카2,22-39), 마지막 수난 주간이 시작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던(마태21,12-17)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헀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메시야가 오시는 성전을 '그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자리, 곧 메시야께서 당신 스스로 자원하여 이루실 구원사업으로 말미암아 세우실 당신의 몸인 교회, 당신의 인류구원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 한 가운데 영신적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통치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3)

 

'깨끗하게 하고' 해당하는 '웨티하르'(yethihar)의 원형 '타헤르'(thaher)는 어원상 육체적, 도덕적으로 불결하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나타낸다 (창세35,2; 레위12,7; 민수8,21; 에례33.8).

이 단어는 구약에서 78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정결례 의식을 주로 다루는 레위기에서 무려 35회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제사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합당한 백성들로 세우기 위해서 그 선택한 백성들을 영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 즉 성화(聖化)의  의미 사용되었다.

 

그런데 말라기는 이러한 사실을 보다 힘주어 강조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마치 금과 은을 정련하듯이 그들을 정련하신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정련하여'(단련,연단)에 해당하는 '웨직자크'(yeziqaq)의 원형 '자카크'(zaqaq)는 광석을 정련할 때에 불순물을 용해시켜 버리고 순수한 금속만을 추출해 얻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욥28,1).

 

여기서 이 단어는 메시아께서 레위 자손으로 표현된 신약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거룩한 고난, 시련과 환난 등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의 불로 그들의 죄악을 사를 때에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들의 인격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고 연마할 때 아픔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정금같은 순수한 면모를 갖춘 참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 성도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거룩한 신앙의 인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욥23,10; 야고 1,4)  

 

특별히 오늘 2월 2일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하고 있기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들의 거룩한 정결, 봉헌된 정결, 성결(聖潔)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중요한 단어들을 묵상해 보았다.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 복음 (루카2,22~40)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23~24)

 

루카 복음 2장 23절은 탈출기 13장 2절, 12절, 15절에 나타나는 내용인데, 복합적으로 인용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이 맏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규정 및 관습의 시작은 출애굽 때 마지막 재앙이었던 이집트의 맏아들 재앙때 부터였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맏배 및 맏아들을 죽일 때 히브리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상인방에 바름으로써 재앙을 면했고, 그 결과 히브리인들의 모든 처음 난 맏배 및 맏아들은 하느님의 것으로 여기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바쳐져야 했다.

그 가운데 동물의 처음 난 맏배는 다 희생 제물로 주 하느님께 바쳐야 했고, 사람의 맏아들은 다른 것으로 대속하면 되었다(탈출13,13.15).

 

이것이 후에는 사람의 맏아들 대신에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민수3,41), 레위 지파는 개인적인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로지 주 하느님만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여야 했다.

또한 인구 조사시 레위인의 숫자는 22,000명이었고, 다른 모든 지파의 맏아들의 숫자는 22,273명이어서 레위인으로 대속하지 못한 273명에 대해서는 5세겔의 성전세로 대신 속죄하게 하였다(민수3,43.46.47).

 

그러나 그 후 5세겔의 대속 값은 모든 맏아들에게 적용되었고, 이스라엘 맏아들들은 이것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께 봉헌된 자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출애굽의 구원을 베푸신 주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께 대한 봉헌과 헌신과 섬김을 다짐하는 율법적 관례로 이어져 내려왔다.

 

'아기를~주님께 바쳤다'(22)

 

이 구절은 한글 새 성경에서는 루카 복음 2장 22절과 23절을 중첩되게 번역했으나, 원문은 22절의 맨 끝에 나온다.

'아기를 바치고'에 해당하는 '파라스테사이'(parastesai; to present him)의 원형 '파리스테미'(paristemi)는 '곁에 두다'(to place beside),'보이다'(to show), '성별하여 드리다'(to consecrate)의 뜻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 바치는 것'은 맏아들을 하느님께 드리고, 대신 속죄를 위해 대속 값을 치르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민수3,13; 18,15.16).

 

그러니까 무죄하신 예수님 개인으로는 속죄 값을 바칠 필요가 없었지만, 그 부모의 입장에서는 모든 맏아들에게 규정된 그 속죄 값의 규정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속죄 값은 예수님께서 장차 중재자로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사무엘의 경우처럼(1사무1,11.22.28)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짐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자리에까지 나아감을 뜻하고 있다.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이것들은 출산 후 산모가 지켜야 할 정결례에 바쳐야 할 제물이다(레위12,6~8).

나자렛 성 가정은 가난하기 때문에 일년 된 어린 양이 아니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29)

 

루카 복음 2장 29절부터 32절까지는 일반적으로 '시메온의 고별 노래'라고 불린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데스포타'(despota; Sovereign Lord)는 기본형 '데스포테스'(despotes)의 호격이다.

'데스포테스'(despotes)는 '주인', '소유주'라는 뜻인데, 동일한 의미로 성경에서 749회나 사용된 '퀴리오스'(kyrios)와 달리 10회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데스포테스'(despotes)는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분'에 대해서 사용하는 상대방을 매우 높이는 강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사도4,24; 묵시6,10).

 

시메온은 하느님을 '데스포테스'(despotes)라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당신 종', 즉 '톤 둘론 수'(ton doulon sou; your servant)라고 분명히 말하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야'라고 번역된 '뉜'(nyn; now)이 문장의 처음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시메온 개인에게도 구원자를 기다리는 영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뒤이어 나오는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아폴뤼에이스'(apolyeis; depart; dismiss)는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하는 '아폴뤼오'(apolyo)의 2인칭 단수이다.

이 단어는 완곡어법으로 쓰여 '죽을 수 있도록 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셨으므로 아무런 미련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시메온이 매우 늙었으며, 지금까지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명과 희망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사명과 희망이 완전히 성취되고 끝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평화로이'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 '레마'(rema; word)는 루카 복음 2장 26절에 나오는 '성령의 알려주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메온은 '레마'(rema) 앞에 '토'(to)라는 정관사를 붙였을 뿐 아니라, 뒤에 2인칭 단수 소유격 대명사 '수'(sou)를 덧붙여서 '성령의 알려주심'을 '성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시메온은 자신이 바라던 바가 성취됨으로 인해 참 평화를 얻었다.

이 평화는 시메온 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도 구원자의 오심의 결과요 선물이 되었다.

이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네'(eirene; peace) 하느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주시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느님과 원수가 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구원이며(로마5,1.10),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일 뿐만 아니라(로마12,19), 염려와 근심, 격심한 감정의 혼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이다(로마8,6).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원문의 서두에 나오는 '호티'(hoti; for)는 본문에서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앞에서 말한 자신의 평화로이 떠나감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메온이 '구원'을 본 주체는 '나', 즉 '에고'(ego)라고 하지 않고, '제 눈이' 즉 '호이 옵탈모이 무'(hoi ophthalmoi mou; my eyes)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분명히 보았음을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여기서 '구원'이라고 번역된 '소테리온'(soterion; salvation)은 형용사인데, 명사처럼 쓰여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시편50,23; 이사56,1).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신 어떤 구체적인 영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 자체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했던 시메온은 사도 요한이 표현했던 그 기쁨을 맛보았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1요한1,1)

 

 

 

2017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의 사랑, 마음을 알기에 그리운 것이다.

(루카2,21-39)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할례- 남자(肉)의 힘, 능력을 잘라내고(죽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살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도 그 할례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뜻(힘)으로 일을 하지 않으셨다.

 

(요한6,38)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요한8,28) 28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5,30)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외 14,10 12,49- 5,19 등등)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 예수님의 대속으로 율법을 완성하실 것을 보여주심이다.

 

(갈라4,4)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 한 쌍(작), 두 마리(분열-무리) 예수님의 중재로, 곧 십자가(대속)로 둘을 하나로 완성 시키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善과 惡의 둘, 그 법으로 받아 죄와 죽음의 심판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 법을~靈이신 예수님께서 그 죄의 법을 품으시고 대신 죽으셔서 생명을 주는 그 구원의 진리, 그 사랑의 계명 하나로 율법의 여러 조목을 다 완성하신 것이다.

 

(에페2,15)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 갈망하는 이를 찾아가 함께 하신다.

 

(지혜6,13)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 우리는 얼마나 그분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가~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성령의 도우심, 이끄심으로 구원의 아기, 곧 구원의 말씀과 하나 된 모습이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성령에 취해, 말씀에 취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시메온은 늘 불안했다. 옛적(창세34장) 시메온 지파가 하느님의 계약, 그 할례를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이용했기에~(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그 지파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창세49,5- 참조)

그런데 구원의 아기 곧 대속의 말씀, 그 진리와 하나가 되었으니 무서울 것, 두려울 것이 없게된 것이다. 시메온이 자신의 그 죄의 정체성을 몰랐다면 구원의 아기(말씀)를 기다리며 갈망했을까? 자신의 그 죄의 본질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 자비, 용서이신 그분의 마음을 알았기에 늘 기다렸고 만났다는 것이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예수님은 먼저 쓰러지게 하신다. 곧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받아 스스로 의롭다 하는 그들의 그 자신의 가치가 구원의 힘이 없음을 깨닫게, 그래서 自己否認(죽음)의 그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십자가(대속)로 다시 세우신다는 것이다. 자기부인을 시켜서 새 사람, 새 창조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사람의 교만함을 부수시고 끌어 내리시고 내치시고 쓰러뜨리시어 하늘로 완성하시는 다시 세우시고 올리시기 위한 자비인 것이다. (루가,51~마니피캇 참조) 그러나 그 삶이 우리에게는 시련으로 올 수 있기에 하느님의 힘으로, 힘을 내라고 하신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입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힘 그분의 평화가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내가, 내 안에 말씀이 머무르시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서 일 하시게 하라는 것이다(1데살2,13참조)

 

(골로3,12-16)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칼-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가르고 속셈을 드러내시니, 말씀은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것입니다.(히브4,12)

 

(묵시10,10) 10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말씀)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 칼, 말씀으로 하시는 수술 이기에~ 그러나 그래서 산다 말씀으로. 다시 하늘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 갑자기 아세르 지파가 나온다. 저주의 시메온 지파(나)가 구원의 아기(말씀)로~ 축복의 아세르 지파로 넉넉한 양식(창세49,20), 곧 충만한 구원의 양식(제물-예수)을 드리게 된 것을 성경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분의 영혼과 신성을 구원의 제물로 드리게 된 것이다.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 남편과 일곱(7) 해를 살았고 혼자 일흔 일곱(77) 해를 살았으니(7+77=84) 전 생애를 7, 77로 하늘의 용서로 안식을 살았다는 것이다. 시메온(나)지파가 구원의 아기(말씀)로 아세르 지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18,22)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7)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77)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오늘 구원의 아기,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나자렛(망루), 나즈르인(하느님의 사람)의 삶으로~ 주님과 하나, 한 몸 되는 그 완성의 때, 그 날까지~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자세로, 하느님의 뜻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1코린7,24) 24 형제 여러분,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하느님(말씀)과 *함께 지내십시오.

= 말씀으로 자기 부서짐, 자기 부인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참 평화이다.~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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