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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4주간 수요일]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6,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3 조회수1,178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1년 2월 3일 수요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6,1-6)

연중 제4주간 수요일 강론

 

1독서<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히브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103(102),1-2.13-14.17-18(◎ 17ㄱㄴ)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복음<예언자는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1-6)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야고보요세유다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히브 12,4~7.11~15)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6)

 

주님의 훈육은 영적 자녀가 된 성도에 대한 진정한 부성애의 표시이다. 

그분의 훈육은 사랑하시는 이에게만 내리기 때문에 누가 주님의 훈육을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이다.

 

여기서 '훈육하시고'로 번역된 '파이듀에이'(paideuei)의 원형 '파이듀오'(paideuo)는 본래 '어린이와 함께 있다'라는 뜻이었는데, 여기에서 '양육하다', '가르치다', '습관을 들이다' 등의 의미가 추가되었다.

 

구약 그리스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는 주로 '응징하다', '교정하다', '훈계하다' 등을 뜻하는 히브리서 '야싸르'(yasar)의 역어로 나온다.

따라서 70인역에서는 '파이듀오'(paideuo) '가르치다'라는 의미보다는 '훈육하다'라는 의미에 보다 가깝다.

 

이 단어가 본절에서는 하느님의 훈육을 통한 교육이라는 개념을 나타내어 쓰였다.

유대 사상에서는 훈육 '최후의 심판에서 보호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행동'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히브리서의 저자도 이러한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의 훈육이 성도들로 하여금 심판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이기 때문에, 고난 중에 있는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실망하지 말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녀가 된 당신 성도들을 멸망하는 악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고 교정하시는 일시적 하나의 과정 뿐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으로 인한 고난으로 침체에 빠졌을, 당시 히브리서 일차 독자인 히브리 출신의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릇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부모는 실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나 불의에 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전혀 상관하지 않으신다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내버려 두셨다는 것과도 같다.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되면 계속해서 훈육하심으로써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신다.

가르침이나 교정에는 꾸짖음이나 훈련이 불가피하다.

언제든지 그분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면서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교육하며 훈련시키신다.

  

'채찍질하신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영적 자녀들에게서 허물이 발견될 때에 나타내시는 반응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채찍질하신다'로 번역된 '마스티고이'(mastigoi) 현재 시제로서 '계속해서 매질하다' 혹은 '계속하여 응징하다'라는 지속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마스티고이' 원형 '마스티고오'(mastigoo) 끝에 납덩어리가 달려있는 '채찍'을 의미하는 명사 '마스틱스'(mastiks)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살점이 떨어지도록 심하게 '채찍질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육체적 폭력 행위를 뜻하는 여러 그리스어 단어들 중에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내는데, 후기에는 중대한 범죄에 뒤따르는 로마의 징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의 명령으로 이 형벌을 받으셨고(요한19,1),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사도5,40) 역시 채찍질의 형벌을 받았다. 

그 채찍질은 참으로 가혹한 형벌로서 본문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무엇때문에 인정하시는 아들, 즉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아들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채찍질하시는가?

그 이유는 그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또한 그 아들을 상속자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본절의 '아들'에 해당하는 '휘온'(hyon)의 원형 '휘오스'(hyos)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하는 아들이라는 법적 개념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내려지는 주님의 채찍이 아프다고 생각될 때, 이것은 그분이 나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그 채찍은 바로 아들된 우리를 향한 아버지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인 것이다.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내가 기적입니다. 

 

내가 기적입니다땅의 존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의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마르6,1-7)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그 지혜와 모든 것예수님은 어디서 받으셨을까요나자렛에서 요~~

 

(루가2, 39)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 나자렛-초소망루라는 뜻이라 했습니다전쟁을 위한 건물의 의미보다 아름다운 동산을 보고 즐기기 위한 건물을 뜻한다 했지요아름다운 동산곧 하느님 나라를 누리기 위한 모든 지혜를 그 나자렛에서 배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리그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 낸다면喜怒哀樂의 그 모든 삶 안에 하느님의 뜻그 구원의 지혜를 우리 또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8, 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 세상은 구원을 위한 교육의 현장일 뿐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야고보요세유다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리아의 아들당시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어머니(여자)의 이름을 들어 아들이라 함은 큰 모욕 이였습니다예수님을 무시하는 호칭 이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올림픽 우승 등세상의 명예를 얻은 이들은 고향에서도 환영을 받습니다그러나 하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하늘의 관심사는 생명인데 말입니다모든 이가 곧 끝나버릴 세상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집회37, 25) 25 사람의 삶은 이미 날수가 정해져 있지만 이스라엘(하늘)의 날수는 헤아릴 수 없다.

세상 名譽財物 등을 위해 세상 법의 행실을 산 사람은 죽었다 살아나 영원한 땅의 복(地獄)을 받을 것이고, 하늘의 명예재물 등을 위해 하늘의 법의 행실을 산 사람은 살아나는 영원한 (하늘)으로 살 것입니다.

 

(마태16,26-27)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하늘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심판)들과 함께 올 터인데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루가12,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심판)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자신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갚아주신 용서구원의 주님으로 안다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도 맞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병을 고쳐주심곧 죄를 용서하심이 奇蹟입니다그것을 깨닫고 믿는 것이 또한 기적입니다인간들의 죗값을 하늘께서 대신 당신의 죽음으로 갚으시고(代贖하늘의 생명을 주셨으니 그것이 어떻게 기적이 아니겠습니까그 진실을 진리로 믿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1코린2, 14) 14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이가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어찌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믿지 않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그들에게 예수님은 왜 계속 가르침을 주실까요?~ 믿지 못하는 그 어리석은(세상그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어린양(아기)으로 오셨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아직 있다고성경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태12,20)  20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구원)에 희망을 걸리라.”

 

(2베드3, 15) 15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오로 형제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써 보낸 바와 같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생명입니다땅에 목숨이 붙어 있는 이곳이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곧 기적이 일어나는 기회인 것입니다기적은 나에게 달려있고 내가 되는 것입니다내가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무시와 모욕을 당하실 줄 아셨습니다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무시와 모욕을 보여 주시려가르치시려고 고향에 데려 가셨던 것입니다.

마르코복음 5장에서 하혈병을 앓는 여자를 고치시고죽은 소녀를 살려내신 그 힘능력 그 힘능력을 기적으로 보고 사람들의 환대영광을 기대하지 마라버려라 하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후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 하십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사람들의 환대환영을 기대하지 말라고~~~

사람들의 뜻을 만족시키는 땅의 가르침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위한 구원(생명)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라고요그래서 하느님의 일 그분의 말씀으로 살려 내라고요~~~

♡ 아멘 -*^^*-

 

 

2021년 2월 3일[(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복음(마르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4)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자주 사용했던 격언으로 보이는 말씀으로서 그들이 당신을 배척한 이유를 밝히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친숙한 사람에게서 특별한 것이 발견되면 잘 수용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통해 당시 나자렛 사람들의 닫혀진 마음을 질타하셨다.

 

여기서 '예언자'로 번역된 '프로페테스'(prophetes; a prophet) '앞에'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pro) '보여 주다',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 '페미'(phemi)의 합성어로서 '앞에서 말하는 자', '미리 말하는 자'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문으로는 '미리 예'(豫)자가 아니고 '맡길 예'(預)자를 사용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 '예언'이라고 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 '예언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예언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미래의 일을 미리 앞당겨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자렛 사람들은 자신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자신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들추어내고 비판하는 등 예언자의 역할을 하는 데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여기서 '존경받지 못한다'로 번역된 '아티모스'(atimos; without honor) 부정 접두어 '아'(a) '위엄', '존경'을 뜻하는 '티메'(time)의 합성어로서 '덜 귀하게 여기는'이라는 뜻 뿐만 아니라 '비천한'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표현은 단지 존경받지 못하는 소극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고향 사람들로부터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받음을 의미한다.

 

마르코 복음 6장 4절의 내용은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친숙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나자렛 사람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마르코 복음 6장 5절은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불신하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일어날 수 없음을 계시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6장 6절의 '믿지 않는 것'으로 번역된 '아피스티안'(apistian; unbelif; lack of faith)의 원형 '아피스티아'(apistia)는 부정 접두어 '아'(a)와 '믿을 만한', '신실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피스토스'(pistos)의 합성어로서 '불신앙', '불충실', '불성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볼 때 '믿지 않는 것'의 의미는 단지 온전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 대한 충실과 성실함이 결핍된 것까지를 포함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놀라셨는데, 여기서 '놀라셨다'로 번역된 '에타우마젠'(ethaumazen; he was amazed at; he marvelled)의 원형 '타우마조'(thaumazo)는 '놀라다', '이상히 여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여 당황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일반적인 기대치하고는 다른 반응을 보임에 대한 심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리하여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그의 공생활을 통해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로부터 도리어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시고, 결국 동족의 고발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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