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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2.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3 조회수1,437 추천수5 반대(0) 신고

(마산교구 순교 사적지,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순교성지)

2021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독일의 철학자인 스베냐 플라스펠러는

그의 책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는 동시에 눈을

뜨게 한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한 인간을, 혹은 한 대상을 그토록

자세히 관찰하게 만든단 말인가?”

정말로 한 인간 또는 한 대상을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하게 만드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계속 보고 싶어지고, 계속 함께하고 싶습니다.

또 계속 말을 걸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얼마나 주님이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습니까? 또 기도를 통해 계속해서

말을 걸고 싶었습니까? 주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보고 싶고,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까? 또 기도하기를 힘들어하고

대신 세상과 소통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고향에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요.

고향 사람은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라면서 의심합니다. 예수님의 집안을 잘 알고

있으므로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기적을 마치

사기꾼의 행동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었던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정하려고만 합니다.

예수님을 보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과

함께하려고도 않으며, 예수님과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의심과 미움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 안에서만 예수님을 알아뵐 수 있으며,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 멀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은 홀로 설 수 없다.

스스로 사랑을 채우고 이를 베푸는 것,

그때 사랑이 사랑답고 세상은 아름답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랑해야 커다란 성장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전에 수영장 다녔을 때가 생각납니다.

매일 새벽마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수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을 때였지요.

어느 날, 새로운 회원 두 명이 왔습니다.

실력은 둘이 비슷한 것 같은데 성격은

너무 달랐습니다. 한 명은 잘하지

못해도 자신 있게 합니다. 그러면서

강사에게 잘했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수영을 아주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강사에게

자기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어쩌다 강사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잘하던

영법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 둘 중에서 누가 더 수영 실력이

늘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자신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요? 자신을 사랑해야

커다란 성장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산교구 순교 사적지,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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