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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월 6일 토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5 조회수882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떤 조직이나 단체든지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한 국가를 경영하는 곳에는 대통령이 있고 또 가정에는 가장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은 예전에는 아버지로 한정됐지만 지금은 그 대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장이라고 일컬어지곤 합니다. 리더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리더는 조직이나 단체에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는 것입니다. 무수히 높은 건물과 고층빌딩도 그 건물이 건축이나 토목공학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공학적으로 그 건물이 잘 서 있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이론에 바탕을 둔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온전하게 튼튼히 내구력을 갖춘 채 잘 서 있을 수가 있을 겁니다. 설계를 할 때 무게중심이 잘못 설계되었다면 오랜 세월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그 건물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아주 밀접하게 적용되는 원리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나 조직, 가정 이 세상 모든 시스템에는 그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수장이 있지 않으면 마치 건물이 무게중심을 잘못 잡으면 허물어지는 것처럼 조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세월호 사건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때 선장의 행동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수장의 한 순간 판단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걸 우리는 실제로 보고 경험했습니다.

 

1997년 여름에 지리산 수해가 났을 때 수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재난봉사를 했습니다. 제가 그 당시 취미생활을 아마추어무선 햄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해 항공기 사고 때는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참여할 수가 없었지만 우리나라 대형 재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노력봉사도 곁들여 하곤 했습니다. 그때 그런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는 반드시 그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구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리더가 있지 않으면 일처리가 원활하게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과 다른 여타 제반적인 손실이 많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을 바라보실 때 눈이 어떤 눈일 것 같습니까? 한없이 가여운 시선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 이유를 마르코복음사가는 목자 없는 양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양이라는 동물은 원래 시력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근거리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가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목자를 잃지 않으려면 목자의 소리를 잘 들어야 했고 목자의 소리를 잘 듣지 않으면 자기 안전에 위험이 닥칠 것이라 그래서 그런지 자기 목자의 소리는 아주 잘 구분을 합니다. 아무리 비슷한 소리로 유인을 해도 요즘 말로 성대모사를 해도 자기 목자의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목자도 아무리 자기가 치는 양이 많이 있어도 그 양이 그 양 같아도 목자의 눈에는 다 다른 양처럼 보여 잘 식별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잘 구분할 수 있는 건 사람도 여러 사람 백이면 백 다 성격이 다 다르듯이 양도 양 나름 각자에게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가령 성격장애라든지 그런 것일 것입니다. 목자는 그런 걸 잘 안다고 합니다. 그 양 각각의 그 양만의 취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취약점도 각기 개성이 다르듯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양들을 잘 구분해 자기 양들을 잘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양과 목자가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오고가는 정이 얼마나 따뜻하겠습니까? 우리는 양이 온순한 동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양은 온순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놀라웠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성경에 나오는 양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어떨 땐 더 잘 가슴에 와 닿는 경우도 있었고 복음이 더 잘 이해가 될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이렇게 비유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목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회나 조직에서 인격체로 살아가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멀리 볼 수가 있어야하고 또 사회라는 건 자기 혼자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남의 의견도 잘 들을 수 있고 잘 포용하며 이해를 하지 않으면 살기는 살더라도 힘겹게 살아갈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식하는 사실일 겁니다. 이걸 역으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본다면 예수님께서 군중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바로 이런 양의 모습이 바로 군중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그런 양을 보호해줄 목자가 없다고 한다면 그 양이 애처로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묵상글의 주제를 생각하고 저녁에 잠시 마트를 갔다 오면서 목자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문득 제가 개종을 한 후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닥쳤을 때 한 신부님의 도움으로 잘 이겨서 지금까지 그나마 잘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도록 잡아주신 신부님 생각이 났습니다. 순간 도로가에 짐을 내려놓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히 그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 신부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제 신앙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냉담을 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한 영혼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우리의 존재도 나침반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에 영적인 지도자 역할을 해 주시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게 등대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성직자, 수도자분이 될 것입니다. 그분들의 가르침으로 가장 위대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이고 목자이신 예수님께 잘 인도될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이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분들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애정 어린 관계인 것처럼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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