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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7 조회수94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시는지요? 사람이 태어나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게 당연합니다. 네 가지의 인생의 과정 중에서 세 가지는 누구에게나 다 공통적으로 적용이 되지만 하나는 조금 예외가 간혹 발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병은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있긴 하지만 거의 희박한 경우입니다.

 

병이 든 사람 중에서도 중병이 걸린 사람은 자신의 병이 낫고자 하는 그 마음은 간절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후의 순간에는 죽음만 기다려야 하는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현실성이 없는 경우라고 판단이 되어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것은 빈자나 부자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느덧 죽음의 그림자를 맞이해야 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날이 언젠가는 온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죽음의 시간이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를 누구나 바랍니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적인 본능을 거부하려고 한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육체에 병이 들게 되면 많은 걱정을 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낫는 방법을 강구하려고 합니다. 물론 육체의 병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병은 이렇게 신경을 써서 치유하려고 하지만 정작 정신의 병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물론 정신적인 고통은 힘든 건 사실이지만 육체적인 병만큼 피부로 크게 얼마나 중한지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실제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신적인 병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굳이 그건 복음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영원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땐 육적인 존재의 탈을 벗어난 영적인 존재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병자들의 심정은 참으로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지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청을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단순히 청이라고 하지만 영어 성경의 표현을 보면 같은 표현이지만 약간 뉘앙스가 다릅니다. 단순한 청을 넘어서 우리말 표현에 애걸복걸 같은 그런 느낌의 청입니다. 문맥상 의미를 따져보면 그렇습니다. 육적인 병이든 영적인 병이든 병든 사람의 마음은 힘겹습니다. 그나름 그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옷자락을 댄 사람은 다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번역된 구원의 의미를 실제 우리가 아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의미와 동일한 의미의 구원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성경 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다른 성경에 나온 다른 표현을 봤을 때 그 성경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때 구원의 의미를 치유와 회복의 의미로 표현한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유와 회복의 관점으로 묵상을 했습니다.

 

만약 지금 육신이 건강한 신앙인이 있다고 해도 그 자신의 영혼까지 건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누구나 죄성을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병을 떠나서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는 어쩌면 건강하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설령 육신의 병은 어느 정도 살면서 함께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병만큼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온전히 건강한 영혼의 상태로 다시 원상 회복시킨 후에 떠난다면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영혼의 세상을 맞이할 때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간이 침묵의 장기라고 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이 간과 같을 것입니다. 평소에 틈틈이 영혼을 잘 관리해야지 관리를 잘 못하면 그때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을 땐 정말 치유하기 힘든 중병으로 발전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병은 중병이면 중병일수록 설사 치유가 된다고 해도 그만큼 병이 진행된 시간만큼이나 치유의 시간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달리 표현하면 고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맛보지 않으려면 우리는 평소에 우리의 영혼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게 이 세상을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현명한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인생을 최종 정산하는 시점에서는 우리의 하루하루 신앙생활을 하느님께서 채점한 우리의 삶의 신앙 점수가 그대로 누적되거나 가감되어 최종 결산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금은 별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날에 가서는 엄청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오늘 병자들의 마음처럼 그때도 그런 심정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과 마주하는 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해본다면 아니 고민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답이 나오리라고 저는 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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