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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마르6,53-5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8 조회수99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8일 월요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마르6,53-56)

[매일미사(나해) 21-02-08]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1독서<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렇게 되었다.>(창세1,1-19)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뭍이 드러나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낮과 밤을 가르고표징과 절기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화답송 시편 104(103),1-2.5-6.10과 12.24와 35(◎ 31)

◎ 주님은 당신이 이루신 일을 기뻐하시리라.

○ 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주 하느님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 땅을 기초 위에 든든히 세우시니영영 세세 흔들리지 않으리이다바다로 땅을 옷처럼 덮으시니산 위까지 물이 가득 찼나이다

○ 골짜기마다 샘물 터뜨리시니산과 산 굽이굽이 흘러내려하늘의 새들은 그 곁에 깃들이고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나이다

○ 주님당신 업적 얼마나 많사옵니까그 모든 것 당신 슬기로 이루시니온 세상은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옵니다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2015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1~19)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1~19)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1~2)

 

'한 처음에'로 번역된 '뻬레쉬트'(bereshith)는 천지 창조의 시점, 곧 하느님께서 우주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無)에서 유(有)로 동시에 섬광처럼 생겨나게 하신 원천적 창조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뻬레쉬트'(bereshith)는 '뻬'(be)와 '레쉬트'(reshith)의 합성어이다.

먼저 '뻬'(be)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reshith)는 '근원'(창세2,10), '머리'(창세3,15), '꼭대기'(1열왕18,42)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ros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창세10,10), '근본'(시편111,10), '으뜸', '우두머리'(욥기40,19)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뻬'와 '레쉬트'의 합성어인 '뻬레쉬트'는 직역하면 매우 단순하게 '시초에', '한 처음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뻬레쉬트'가 말하는 '시초'(처음)는 시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원점,  시간(時間; the time)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결국 '뻬레쉬트'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  

즉 인간 역사(歷史)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 창조는 다름아닌 모든 우주 만물의 존재와 그들 사이에 발생할 모든 사건의 기원을 이루는 원초적 사건이다.

 

이런 천지 창조의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뻬레쉬트' 천지 창조 사건이 일어났던 '때'가 시간 자체도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기원', 곧 '시간의 원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실로 천지 창조는 시간 자체도 이제 막 시작한 때에 바로 그와 동시에 섬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유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계시는 그리고 만유를 뛰어넘어 계시는 유일한 절대 자존자(自存者)요, 초월자(超越者)이시다.

이러한 하느님께서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계신다(시편90,4).

 

반면에,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오직 공간(空間; the space)안에서 시간(時間; the time)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즉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시공에 얽매인 차원(dimension)에 존재하지만, 이 우주 만물 각각은 물론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인 시간과 공간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곳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얽매여 있는 인생을 포함한 피조물과의 관계만 아니라면 하느님께 시간은 의미가 없다.

심지어 하느님 자신의 실존에만 국한해서 볼 때에는 천지 창조 이전과 이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시간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시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계시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천지 만물은 오직 시간의 시작과 함께, 곧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또한 역으로 말해도, 시간도 오직 그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만 그 존재 양상이 전개되어 가는 만물들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無)로부터 유(有)로의 천지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 또한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함께 창조되었고, 또한 그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우리는 '한 처음에'로 번역된 창세기 1장 1절의 '뻬레쉬트' 새 성경에서 그 역시 '한 처음에'로 번역된 요한 복음 1장 1절 '엔 아르케'(en arche)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뻬레쉬트'는 하느님의 천지 창조로 이제 막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고, 반면에 '엔 아르케'는 시간이 아예 흐르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뻬레쉬트'가 무로부터 유가 시작되어 시간이 출발했던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만을 가리킨다면, '엔 아르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 전반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이 구절은 앞서 '한 처음에' 창조 시점에 제시된 것에 이어서 이제 천지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앞서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 밝힌 데 이어서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힌다.

 

여기 '하느님'에 해당하는 원어 '엘로힘'(ellohim)은 제1위 성부 하느님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을 경우에는 모두 다 '하느님'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권세있다', '힘세다'라는 뜻을 가진 '울'(ul)에서 유래한 것 (2열왕24,13; 시편73,4)으로서 '권세있고 힘있는 뛰어난 분'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elloah)의 복수형이다(탈출12,12; 신명32,15).

 

하느님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것은 그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 단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수형으로 표기함으로써, 그 대상의 권위와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고대 근동 전반의 수사법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천지 창조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만물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내는 모든 역사의 유일한 원초적 기원이다. 

따라서 결국 천지 창조의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역사의 궁극적 기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기원이시다.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욥기1,21; 시편90,3; 코헬렛12,7; 로마11,36).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우리 인생의 궁극적 관심 수밖에 없다. 또한 천지 창조 기사 전체가 오직 하느님만이 온 천지를 모두 다 직접 창조하셨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 전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전 우주의, 특히 전 우주의 대리 통치자인 우리 인간들(창세1,26)의 하느님께 대한 복종과 경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한 주체가 어떤 사물을 만들거나 사거나 이를 소유함에 있어서 그 주체 자신이 요구되는 의무를 다하는 것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되는 완전하고도 정당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천지 창조 기사는 거듭해서 전 우주가 스스로 생겨났거나 다른 그 무엇에 의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엘로힘 하느님'에 의해서 지어진 것임을 그토록 강조한다.

즉 이것은 전 우주와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소유권(탈출18,5; 신명10,14; 에제18,4)과 통치권 (탈출15,18; 시편72,8; 다니엘5,21) 사상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본문은 창조의 시점, 곧 언제 천지 창조가 있었는지를 밝힌 '한 처음에' 창조의 주체, 곧 누가 천지를 창조하였는지를 밝힌 '하느님께서'에 이어서  이제 창조의 대상(對象), 곧 무엇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는 구절이다.

원문은 '에트 핫샤마임 웨에트 하아레츠'(eth hashamaim weeth haarets; the heaven and the earth)이다.

 

우리말의 '~을'(를)에 해당하는 것으로 직접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대격 전치사 '에트'(eth)와 '그 하늘을'이란 뜻의 '핫샤마임'(hashamaim), 또 '그리고'(과) 해당하는 접속사 '웨'(we)와 '에트'(eth)가 결합된 '웨에트'(weeth), 끝으로 '그 땅'이란 의미의 '하아레츠'(haarets)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현대 천문학이 말하는 지구의 대기권 및 그 너머에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으로서의 우주에 대해 과학적 개념이 없었다.

 

그 대신에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니는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서 해, 달, 별 등이 붙어 있는 거대한 금속판 소위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머물고 있는 셋째 하늘  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420여회 나오는 하늘 모두 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기서 '땅'을 말하는 '아레츠'(arets)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를 가리킬 뿐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성경에는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시편113,3),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2사무17,11) 등과 같이 양극단을 함께 말함으로써, 그 안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포함됨을 강조하는 용례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그 하늘들과 그리고 그 땅을'이라는 원어의 표현은 비단 하늘과 땅 뿐만 아니라 가없는 양자 사이의 공간 자체는 물론 그 안의 모든 물질들, 곧 하늘에서부터 땅 끝까지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창조의 대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셨다'

 

'창조하셨다'의 원어는 '빠라'(bara)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이 단어는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끝으로 '먹다'(eat), '양육하다' (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빠라'(bara) '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느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느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 (신명4,32; 시편89,12; 이사43,1; 예레31,22).

한마디로 '빠라'(bara)는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롭게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이같은 절대적 창조 행위는 오직 만물을 초월(超越)하여 자존(自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오직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즉 과거와의 연속 안에서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빠라'(bara)는 실제로 '만들다', '지어내다'의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때에는 오직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등장하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만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하셨다', 곧 '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섬광처럼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내가 사랑하는 그가 하늘의 존재(생명)가 되었으면

 

 (마르 6,53-56) 

53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았다?

병자-죄인을 뜻하기에 구원이라 하십니다먼저 옷자락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롯기3, 9) 9 그래서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그 여자가 저는 주인님의 종인 룻입니다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구원자의 옷자락입니다.


(에제16,8)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주 하느님의 말이다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알몸 곧 부끄러움()을 덮으시어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구원의 계약의 옷입니다.


(민수15,38-39)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그들에게 말하여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39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덮으심의 구원하느님의 계명입니다하느님의 계명을 뜻하는 옷자락의 술입니다.

사람의 마음눈의 계명은 하느님의 뜻을 배신으로 이끌어 구원이 없습니다.

 

(이사6,1)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성전(교회)에 하느님의 옷자락 그 계명이 가득합니다하느님의 계명은 구원의 힘입니다그 옷자락의 술구원의 힘뿔입니다.


(탈출27,1-2) 1 “아카시아 나무로 제단을 만들어라. 2 그 네 귀퉁이에는 뿔을 만드는데뿔과 제단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 청동을 입혀라.

제단의 뿔옷자락의 술입니다제단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탈출30,10)  10 아론은 그 제단의 뿔에 해마다 한 번씩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너희는 대대로 해마다 한 번씩속죄하려고 바치는 속죄 제물의 피로 그 제단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이 제단은 주님에게 바친 가장 거룩한 것이다.”

제단의 뿔이 속죄 제물의 피로 거룩한 것이 되었기에그 뿔을 잡으면 죄인이 용서를 받습니다.(1열왕1,50참조)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덮으심의 사랑자비의 옷으로구원(용서)의 계약의 그 옷자락으로 만졌다면 구원입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의로움의 옷입니다그 의로움의 깨끗한 옷으로 깨끗해 졌습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속죄 제물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으로 먹었을 때 자신이 알몸인 것을 알고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그때에~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덮어주셨다.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가죽옷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그 죽음의 옷을내 죄의 대속의 옷으로 입으면 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속죄하신 십자가임을 깨달으면 용서입니다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받아 드린다면 하늘의 생명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의사좋은 약을 알게 되면 이웃에게 참 잘도 전하고듣는 이도 아주 기뻐합니다그렇듯 예수님을 참 의사로말씀을 좋은 약으로 전하고 들을 수 있도록,  오늘 본문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만질 수 있도록그 덮으심의 사랑그 대속의 용서를 알려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님께 절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의 욕망이 아닌 의 구원곧 하늘의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아멘 -*^^*-


  2019년 2월 11일 (녹)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세계 병자의 날)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마르6,53~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시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56)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으로 번역된 '에이세포류에토'(eiweporeueto; he entered; he went)는 원형 '에이스포류오마이'(eisporeuomai) 동사의 직설법 미완료 과거 3인칭 단수로서,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를 계속적으로 이동하여 들어가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 6장 56절에서 직설법 동사가 다섯 개 쓰였는데, 그 중에서 네 개가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들을 계속해서 들어가고 계셨고사람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병자들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끊임없이 데려다 놓았다는 것 드러낸다.

 

또한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계속해서 청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를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계속적 동작을 가리키는 미완료 과거 시제 표현한 이유는, 마르코 복음 6장 56절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모든 반복적인 치유 행위들을 요약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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