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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서묵상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창세2,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9 조회수1,20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2. 9. 독서묵상

<공동번역>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창세2,1-3)

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쉬셨다. 3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안식이라는 것은 하느님 쪽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과 지혜를 완전히 발휘하셔서 하느님의 계실 처소를 완성하셔서 그 처소를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그 속에 충만하게 계시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인간 쪽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처소 삼아 하고 계신 그 하느님의 영광에 정상적으로 반응을 하여 그분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상태를 安息이라고 하지요.

 창세기의 일곱째 날은 바로 그 완성될 하늘의 안식을 미리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 안식으로의 출발 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 완성될 하늘의 안식이 성경에서 어떻게 점진적이며 점층적으로 전개되어지고 설명되어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완성될 하늘의 안식을 창세기의 창조기사에서 안식일로그리고 안식일에서 안식의 땅인 가나안으로그 안식의 땅 가나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되는 참 안식으로점점 뚜렷하고 명확하게 陳述해 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의 창조기사 속에 숨어 있는 안식의 그림자부터 추적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창세기의 창조기사 속에 숨어있는 안식의 그림자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창세기의 셋째 날에 氣息하는 동물과 인간이 살 터전을 다 마련해 주십니다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물과 뭍이 잘 조화된 地球에 각종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로 먹거리까지 준비를 해 주십니다우리는 그 氣息하는 생물의 터전에 죄가 들어옴으로 해서 그 셋째 날의 창조가 다시 원래대로 저주의 물로 뒤덮이는 사건을 창세기 7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그 때 생물들의 터전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게 되고 氣息하는 모든 생물이 몰살을 당합니다다름 아닌 심판의 모습입니다그 것은 하느님께서 죄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그 분의 의지가 담겨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창세7:2123) 21 새나 집짐승이나 들짐승이나 땅 위를 기던 벌레나 사람 등 땅 위에서 움직이던 모든 생물이 숨지고 말았다. 22 마른 땅 위에서 코로 숨쉬며 살던 것들이 다 죽고 말았다. 23 이렇게 야훼께서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짐승들길짐승과 새에 이르기까지 땅 위에서 살던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셨다이렇게 땅에 있던 것이 다 쓸려 갔지만노아와 함께 배에 있던 사람과 짐승만은 살아 남았다.

이렇게 물과 땅으로 갈라졌던 셋째 날의 창조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또 다시 혼돈입니다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숨쉬는 생물들의 터전을 완전히 포기하셨을까요그럴 수는 없지요하느님께서는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그 분의 백성들에게 그 엉망이 된 셋째 날의 터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그래서 노아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창세기 1장의 명령을 그대로 주신 것입니다그 것 역시 재창조의 의지가 담긴 상징인 것입니다.

 

(창세9:12) 1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낳아온 땅에 가득히 불어나거라. 2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과 바닷고기가 다 두려워 떨며 너희의 지배를 받으리라.

그런데 그 회복될 셋째 날의 터전이 또 죄로 말미암아 저주의 물로 뒤덮이게 되면 안 되지요그래서 하느님은 그 회복될 셋째 날의 터전이 다시는 저주의 물로 덮이지 않도록 그 회복될 터전에 사는 자들을 모두 의인으로 만드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은 언제든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율성을 이용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그래서 하느님은 절대 죄를 지을 수 없는 당신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그 백성들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그들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넣어 죽이시고 다시 살리심으로 이제 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의인들로 만들어 버리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회복된 셋째 날의 터전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그 셋째 날의 터전을 회복해 내시겠다는 것을 우리가 言約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켜내시고야 마실 것이라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희망인 것입니다. 그 회복 될 셋째 날의 땅언약의 땅은 지금 罪惡된 인류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되어 떨어진 그러한 땅입니다그래서 성경에는 종종 죄악 된 세상과 구별된 하느님의 백성들의 터전과 사흘이라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이 거처하는 곳은 거룩하게 구별되고 회복되어질 셋 째 날의 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창세22:34)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은 데리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4 길을 떠난 지 사흘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4절에 사흘만에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단어가 쉐리쉬 욤입니다. ‘셋째 날에입니다. 창세기의 셋째 날과 똑같은 단어입니다하느님께서는 창세기의 셋째 날의 회복즉 숨 쉬는 생물들이 거할 터전의 회복이 죽어야 할 자를 대신해 죽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이곳에서 미리 예표 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그러나 그 회복 될 언약의 땅은 인간 의 노력으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창세30:36) 36 그리고 라반은 사흘길 갈 만큼 야곱을 멀리 떼어 놓고 나머지 양들을 치게 하였다.

여기도 보면 하느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 야곱의 거처와 세상을 상징하는 외삼촌 라반의 거처가 사흘’ ‘솨로쉬 욤만큼 떨어져 있습니다하느님께서 회복하실 셋째 날의 터전언약의 땅은 죄악 된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고 떨어진 그러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창세40:13,19) 13 앞으로 사흘이 되면 파라오께서는 당신(시종장)을 불러 내어 복직시킬 것입니다당신은 전날 술잔을 받들어 올리던 관습대로 파라오의 손에 그의 잔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19 앞으로 사흘이 되면 파라오는 당신을 불러 내어 나무에 매달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당신의 고기를 새들이 쪼아 먹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사흘이라는 날이 새 생명을 얻거나 혹은 목숨을 잃는 것과 관계되는 날로 등장하지요심판과 구원입니다술 맡은 시종장은 사흘째에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빵 굽는 시종장은 사흘째에 목숨을 잃게 되고 그 시체의 고기를 새들이 뜯어먹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해몽입니다창세기에 요한묵시록의 언어들이 등장하지요?

 

(출애8:2324) 23 우리는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 우리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려야겠습니다.' 24 그러자 파라오가 '너희가 나가는 것을 허락한다광야로 너희의 신 야훼께 제사를 드려도 좋으나 멀리 가면 안 된다어서 가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라하고 허락을 내렸다.

여기도 보면 사흘 길 떨어진 곳은 죄악이 관영(貫盈)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과 구별되어 떨어져서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출애15:2225) 22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느리고 홍해바다에서 수르 광야로 진을 옮겼다그들은 사흘 동안 가면서도 물을 만나지 못하다가 23 마라에 다다랐으나 그 곳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 고장을 마라라고 불렀다. 24 백성들은 모세에게무엇을 마시라는 말이냐고 하면서 투덜거렸다 25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자야훼께서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 물이 되었다야훼께서는 바로 여기 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주시고 그들을 시험해 보셨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마라의 쓴 물 사건입니다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뒤 사흘 길을 가서 만난 것이 마라의 쓴 물입니다그 쓴 물에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한 나무를 던졌더니 그 쓴 물이 단 물이 되었습니다그 한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쓴 물에 불과했던 마라‘’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단물로 변하는 사건인 것입니다이 마라의 쓴 물 사건은 마로 그 마리아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한 나무인 십자가와 사흘 점점 제가 어디로 여러분을 끌고 가려하는지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요?

 

그러면 이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요르단을 건너는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여호1:11,3:2) 1,11 '진지 가운데로 돌아 다니며 전군에게 이렇게 일러 주어라. '양식을 준비하여라사흘만 있으면 너희는 이 요르단강을 건너게 된다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의 것으로 주시는 땅을 차지하러 들어 간다'.' 3,2 사흘 후에 장교들이 천막 사이를 돌아 다니며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하느님의 택한 백성들이 요르단을 건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역시 상징입니다.

어김없이 11절에 셋째 날’ ‘쉐리쉬 욤이라는 창세기의 단어가 똑같이 등장합니다그리고 32절에도 똑같이 셋째 날이 나오지요여기서 삼일 후에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삼일 째 끝자락에라고 번역을 해야 맞습니다이렇게 성경에서 사 흘 째 날과 회복될 언약의 땅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언약의 땅그 회복 될 셋째 날의 터전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셋째 날‘’쉐리쉬 욤에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닌 사흘 만에 부활을 하셨는지 아시겠지요제가 지금 설명해 드린 그 전체의 내용이 일곱째 날의 안식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의 안식을 보면서 하느님은 그렇게 언제든지 타락할 여지가 있는 그 어두움과 빛그리고 뭍()과 바다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도 반드시 안식을 완성해 내시고야 마는 분이시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지금까지는 창세기의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을 통해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참 안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이 참 안식의 그림자가 율법의 안식일 속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창세기 일곱째 날에서부터 시작 된 그 율법 속의 안식일이 어떻게 참된 안식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자고요오늘 본문 3절로 가보겠습니다.

 

(창세2:3) 3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여기에 안식일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나옵니다성경은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고 그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은 생물이나 물질 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그리고 거룩도 마찬가지이지요그런데 성경은 그 하느님의 과 거룩이 일곱째 날인 시간에 주어졌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인간들이 생각하는 과 거룩‘ 그리고 하느님의 복과 거룩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시간에 과 거룩을 주셨다는 말은 하느님이 복을 쏟아 부으셔서 거룩하게 구별시키실 참 안식의 땅은 물질과 공간의 감각 세계가 아닌 시간의 세계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헬라의 공간적 이원론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우리가 사는 이 땅과 하느님 나라는 공간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성경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공간적 이원론이 아니라 시간적 이원론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지 너무나 좋은 공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아직 하느님 나라라는 가시적 공간이 오지 않았음에도 이 땅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간은 나중에 가시적 공간과 합쳐지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나중에는 사람과 땅에 복과 거룩이 부어지는 장면도 나오 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희망을 그러한 감각적인 물질세계에 두시기 전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天國은 지금 내가 하느님과 관계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여러분의 천국이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복과 거룩이라는 단어가 안식일이라는 시간에 먼저 쓰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안식일이라는 시간 안에  거룩이라는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그 안식일은 복과 거룩의 실체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죄로 말미암아 엉망이 되어버린 셋째 날의 터전이 어떻게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셋째 날의 터전이 언약의 땅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두 번째 그림자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지요지금부터 찾아보지요.

출애굽기로 가면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언약의 표징이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31:1317) 13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안식일은 나와 너희 대대에 걸쳐 세워진 표이니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잘 지켜라그러면 너희를 성별한 것이 나 야훼임을 알리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안식일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이 날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그 날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겨레에서 추방당해 목숨을 잃을 것이다. 15 엿새 동안 일하고이렛날은 야훼를 섬기는 거룩한 날이니 철저하게 쉬어야 한다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16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야 한다. 17 야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은 쉬며 숨을 돌렸으니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가 된다.''

하느님께서 복을 부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은 하느님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그러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하신 언약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겠지요?

 

(창세17:78) 7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들었다고 해서 이 고장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했다고 해서 마싸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8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 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다.

하느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어떻게 이 언약의 표징이 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7days life cycle’을 가진 민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지금은 생활주기가 전 세계 공통으로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그렇게 ‘7days life cycle’을 가진 민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예를 들어 (을 섬기던 바벨론은 그 생활주기가 달마다 돌아갔습니다. ‘monthly cycle’이었습니다그리고 태양신을 섬기던 이집트의 life cycle 하루‘1day life cycle’이었습니다그리고 이시스나 오시리스 같은 계절 신을 섬기던 알렉산드리아 같은 나라는 한 계절이 그들의 life cycle 이었습니다그 가운데 유독 이스라엘만 이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게 됨으로 유일하게 ‘7days life cycle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days life cycle’로 살면서일주일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세상의 모든 잡신들은 다 가짜고 오직 야훼만 이 창조주이시고 오직 이스라엘만이 진짜 하느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증거하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언약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언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진노의 불 속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어기면 죽음으로 응징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잔인하게 돌 로 때려 죽였습니다그 것은 안식일이라는 날이 대단한 날이어서가 아니라 안식일이 담고 있는 언약’ 바깥에 머물게 된 자들의 종국(終局끝판)이 어떠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언약은 어떠한 방법으로 완성이 되었습니까어떻게 해서 죄인들이 언약의 백성들이 된 것이지요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완성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안식일에 복이 부어지고 안식일이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안식일 안에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될 거룩하고 된 하느님 나라를 씨앗으로 심어 놓으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그 안식일에 모형으로그림자로 심겨져 있던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 나라로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이제 모형으로서의 안식일은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실체가 왔는데 모형 이 왜 필요합니까?

그런데 지금도 안식일 운운하는 사람들은 뭐예요그 사람들은 안식일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 그 안식일이 담고 있던 모형이 어떻게 실체화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無知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골로2:1617)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도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 17 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는 그리스도입니다.

정확하지요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었고 ‘’소마‘’실체는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안식일을 완성하러 오신 주님이 일부러 안식일을 골라 병자들을 고치신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안식일에 담아놓으신 그 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고단한 영혼들이 회복되어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게 될 참 안식의 나라는 질병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안식일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그림으로 보여주신 사건이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영적 소경이요 귀머거리들이었던 유대인들은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에 일을 한 사람을 죽여 버리신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이 땅의 인간이 왜 일을 하지요타락한 인간은 땅과 함께 저주를 받아서 자기가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살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인간이 하는 일은 이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된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동반자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그 아름답고 위대한 창조를 하느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을 하고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을 잃어버린 자들의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그러나 안식일은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질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거기에서는 우리 하느님께서 먹여 주십니다그래서 그 영생을 상징하는 안식일에는 그 천국의 삶의 모형으로 너희의 배를 위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하느님이 먹이 시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은 광야에서도 안식일에 먹을 것은 미리 그 전날 다 주셨던 것입니다그런데 안식을 완성하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그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곧 안식이었습니다그리고 그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나의 배를 위한 일이 아니라 위대한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을 비벼서 드신 것입니다일을 한 것이지요그러나 그 일은 주님과 함께 하는 안식 속에서의 일이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를 거쳐 구약 전체와 복음서에서 안식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계속해서 demonstration(시위 시연 데모 표출)해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넘어갑니다성경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들어서도 완성될 안식을 설명합니다.

창세기의 일곱째 날에 처음 등장한 안식이라는 것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거쳐 어떻게 하늘의 안식으로 향하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신명3:20) 20 야훼께서 너희를 정착시켰듯이 너희의 형제들도 정착(안식)시키실 것이다그들이 너희의 하느님 야훼께서 요르단강 건너편에 마련해 주신 땅을 차지하게 된 다음에라야 너희는 나에게 받은 땅으로 각기 돌아 올 수 있으리라.'

 

(신명12:910) 9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정착지(안식)에 아직은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너희가 요르단강을 건너 들어 가서 야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물려 주시는 땅에 자리를 잡으면하느님께서는 너희로 하여금 주변에 있는 원수들에게 위협을 받지 않고 편히 살게 해 주실(안식것이다.

여기도 가나안 땅을 안식이라고 부르지요?

 

(여호수1:13) 13 여호수아는 르우벤 사람들과 가드 사람들과 므나쎄 반쪽 지파에게 일렀다. '너희는 야훼의 종 모세가 한 말곧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여기 이 땅을 너희에게 정착지(안식)로 주신다던 말을 기억하여라.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주신 안식의 땅 가나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될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던 것이었습니다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 식으로 발음을하면 헤수스‘’예수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건은참 하느님의 백성들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된 안식의 땅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그대로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시편 95편이 이러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95:711) 7 그는 우리의 하느님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끄시는 양떼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니 8 '므리바에서그 날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말아라. 9 그들은 거기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나의 속을 떠보고 나를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 세대에 싫증이 나 버려마침내 나는 말하였다.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구나나의 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구나.' 11 나는 울화가 터져 맹세하였다. '이들은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이 시는 다윗의 시편입니다그러니까 이 시가 기록된 때는 이스라엘이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지 440년 후입니다그런데 7절을 보면 다윗은 오늘날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 합니다이스라엘아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불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너희도 하느님의 음성을 외면치 말고 순종하여 안식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일 가나안 땅이 정말 안식의 땅의 실체였다면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간지 440년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해 또 다시 들어가라 말씀하시는 안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가나안은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 시편 95편을 히브리서 기자가 잘 설명해 줍니다.

 

(히브3:154:11) 3,15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 16 그분의 음성을 듣고도 반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에집트를 빠져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17 사십 년 동안이나 하느님을 노엽게 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죄를 지은 자들이 아니었습니까그들은 죽어서 시체가 광야에 널려 있었습니다. 18 하느님께서 결코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은 누구에게 하신 맹세였습니까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그들이 안식처에 들어 가지 못한 것도 결국은 믿지 않았던 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1 하느님께서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살아 있으니 우리 가운데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쁜 소식을 듣지 않았습니까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그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3 이것은 하느님께서, '내가 노하여 맹세한 대로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그러나 우리는 믿었기 때문에 그 안식처에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사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습니다. 4 이것은 일곱째 날에 관하여 성경 어디엔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기록된 말씀대로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들은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안식을 누릴 기회를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오늘이라는 날을 다시 정하시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앞서 인용한 대로 다윗을 시켜,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뒤에 하느님께서 또 다른 날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 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10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 간 이(그리스도)도 그의 일손을 멈추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니 우리도 그 안식을 누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옛 사람들처럼 순종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이 히브리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의역을 해드리면 이런 것입니다구약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안식과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안식은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그 안식들은 모두 우리 교회(하느님백성)가 들어가게 될 하늘의 안식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이며 영적으로 우리는 이미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적으로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이 땅에서 안식에 들어가고 있어야 하며들어가기를 힘써 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보면 이 히브리서 4장의 주어가 전부 우리입니다복수지요. 1절의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3절의 우리들은 저 안식 에 들어가는 도다‘ 11절의 ’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전부 복수입니다그런데 10절의 안식에 들어간 자’ 만 단수입니다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를 포함한 교회를 말합니다그러나 10절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하느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를 마치시고 7일 째 안식하신 것처럼 십자가를 지심으로 재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에 들어가신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라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에 들어가게 될 하느님의 백성들은 지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고현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식에 들어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다른 말로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간 성도들은 그 삶속에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식에 들어가고 있는 삶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41절에 보면 성도는 혹시 내가 안식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는 권고가 나옵니다이 말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중도에 탈락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이 구절의 진의는 안식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반드시 그의 신앙생활 속에서 영적 진보와 성숙에로의 열심과 분투가 있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열심과 분투와 조바심이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은 자칫 안식으로 초대되어진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1절의 놓쳐 버렸다에 쓰인 후스테레오라는 단어는 늦게 되다’ ‘열등하다’ ‘부족하다라는 뜻이지만 이 히브리서가 쓰여 질 당시에는 하루가 늦게 되다의 의미로 쓰였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 후스테레오라는 단어를 써서 너희들 그렇게 안일하게 신앙생활 하다가는 하루가 늦을지 모른다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능통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단어를 읽었을 때 어떤 장면을 떠올렸을까요구약에 하루가 늦음으로 낭패를 당했던 사건이 있었지요민수기 14장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러 가나안 땅으로 열두 정탐 군을 보냈습니다그런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 한 나머지 열 명이 하느님의 언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가나안 땅의 거민 들이 크고 장대한 것에 겁을 먹고 우리는 절대 저 땅 에 못 들어간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겁을 주었습니다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 이다겁먹지 말고 올라가자라고 외쳤습니다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때려 죽이려 했습니다그 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십니다.

 

(민수14:2630) 26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못된 회중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이냐이스라엘 백성이 투덜거리는 불평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너희는 이 백성에게 나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다 들었다내가 살아 있는 한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 너희의 시체가 즐비하게 딩굴 것이다너희 가운데 스무 살이 넘어 병적부에 오른 자로서 나에게 불평한 자는 그 누구도 30 내가 정착시켜 주겠다고 손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 가지 못하리라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들어 가리라.

히브리서가 이 민수기14장을 단어까지 똑같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모세가 이러한 하느님의 진노를 이스라엘에게 전했습니다그랬더니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가나안으로 진격했습니다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하루가 늦은 것입니다이스라엘은 그 다음날 아말렉에게 크게 도륙을 당했습니다.

 

(민수14:3944) 39 모세가 야훼께 들은 대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주자그들은 대성통곡하였다. 40 이튿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를 향해 치달으며 외쳤다. '어서 쳐올라 가자우리가 올라 가지 않았다고 야훼께서 꾸중하시는데이러고만 있을 터이냐?' 41 그러나 모세는 한사코 말렸다. '왜들 이러느냐야훼의 명령을 무시하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 42 올라 갈 생각을 말아라야훼께서는 이미 너희를 떠나셨다너희끼리 쳐올라 갔다가는 43 거기에서 적에게 패하리라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너희에게 달려들어 칼로 무찌를 것이다너희는 야훼를 배반하여 야훼의 눈밖에 나고 말았다.' 44 그들은 말을 듣지 않고 산꼭대기를 향하여 치달았다그러나 야훼의 계약궤도 모세도 진을 떠나지 않았다.

그냥 하루 전에 갈렙의 말을 들었을 때 하느님의 언약과 그 분의 능력을 신뢰하고 가나안으로 진격을 했다면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그런데 딱 하루가 늦는 바람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들이 모두다 광야에서 시체가 된 것입니다바로 이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 해다가 성도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마땅히 성도로서 해야 할 분투와 열심과 진지함과 성실함을 자꾸 뒤로 미루다 보면 하루가 늦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경고를 계속해서 무시하시면 하루가 늦을 수 있는 것입니다오늘아니 지금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성경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신 그 하늘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지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씁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에 한 눈을 파느라 정작 해야 할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놓치지 마십시오이 귀한 시간을 다른 사람 험담이나 하고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이나 하고자기의 배만을 불리기 위해 허비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늘의 안식을 희망하며 살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이 땅을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히브리서의 한 구절을 결론으로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11:1316) 13 그들은 모두 믿음을로 살다가 죽었습니다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 했습니다. 14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찾고 있던 고향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 온 곳을 고향으로 생각했었다면 그리로 돌아 갈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지로 그들이 갈망한 곳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었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자기들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로 여기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한 도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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