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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9 조회수1,092 추천수1 반대(0) 신고

 

견물생심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새옹지마에 관한 고사는 많은 분들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한자 시간에 이 성어에 대한 한자의 의미와 유래를 알았습니다. 사람이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를 다른 말로 하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 즉 소유욕으로도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식욕, 수면욕, 명예욕과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이라는 말이 접미사처럼 꼬리에 달려 있는 의미는 하나같이 다 욕망을 상징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욕심이 됩니다.

 

우리 가톨릭 성경 야고보서 115절에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라고 나옵니다. 25년 전에 개신교 성경에서 이 구절을 암기했을 땐 욕망을 욕심으로 그들은 표현을 했습니다. 다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 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게도 표현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화인데 이게 나중에 복으로 바뀔 수가 있고 또 지금은 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로도 바뀔 수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느 순간 부와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루어 얻어진 그 명예가 발목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 것을 우린 특정 누구를 말하지 않아도 정치권에서만 봐도 여러 차례 지켜봤을 겁니다. 만약 그들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후회가 막심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바로 이게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인생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삶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다 그런 것도 인생이라는 의미에서는 이내 사라지고 마는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양하의 나무라는 수필을 배웠습니다. 그 수필 속에 나무의 속성을 언급하며 인간이 나무에게서 배워야 하는 덕목이 나옵니다.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 수필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의 사자성어가 나옵니다. 바로 안분지족이라는 사자성어입니다. 쉽게 말해 분수에 맞게 만족을 하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내려도 말없이 우리에게 언제나 더위를 식혀주거나 또 생명 같은 산소를 내뿜어주는 이로운 존재로 늘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에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갑니다. 아무런 불평없이 말입니다. 나무라는 수필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름다운 수필입니다.

 

나무는 지나가는 사람이 홧김에 자신에게 발질을 해도 앙갚음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볼 수가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나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삶의 훌륭한 표양으로 삶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안 좋은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게 사람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리 시간에 이 모든 것을 죄라고 배웠습니다. 죄칠종이라고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서 나옵니다. 그것의 뿌리가 마음입니다. 결국 보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죄를 짓기도 하고 죄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영적으로 봤을 때 불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생과 다음생을 우리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하느님 나라에 갔을 때 복으로 작용할지는 어느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복음과 말씀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진리로 가르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사람만이 그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육안입니다. 육적인 것만 바라볼 수 있는 눈입니다. 육안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현상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분노, 시기, 욕망 이런 모든 게 다 그만 사라지고 마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동경하는 사람이라 이런 것에 인간의 몸을 입고 있어서 유혹에 끌릴 수는 있을지언정 넘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결국 그런 인간의 욕망을 거슬러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영예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예와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고 일찍이 바오로 사도는 말씀했습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워낙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현제의 삶에 나무처럼 안분지족의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그런 것은 다 우리 인간에게는 무취로 느껴져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온갖 악취를 풍기는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런 냄새를 자각하는 거룩한 몸이 되었을 때 그때 우리 몸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풍겼던 이 지독한 냄새를 맡게 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이 될지 생각한다면 늦었다고 했을 때가 빠르다고 지금부터서라도 이런 삶을 하루라도 빨리 탈피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짐해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전례력으로 사순시기가 다가옵니다. 사순시기의 대명사는 참회와 회개입니다. 올해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런 악습을 조금이라도 탈피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빛의 자녀로 다시 회귀할 수 있는 몸으로 변화기 위해서 다가오는 사순시기만이라도 이런 악습에서 벗어나는 생활을 하려고 절치부심 노력해서 좀 더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녀로 변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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