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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날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1 조회수1,911 추천수10 반대(0)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날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세배, 세뱃돈, 선물, 복 받으세요. 덕담, 떡국, 고향방문, 씨름대회가 떠오릅니다. 신앙인들은 연도를 바치고, 설날 미사에 참례합니다. 설날을 기억하는 것은 조상들에게 감사드리고,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서 안부를 전하고, 정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세배를 받으시고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건강을 기원해 주셨고, 수도자와 성직자의 길을 가는 동생수녀와 제게는 늘 겸손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손자들에게는 직장생활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께서 아버님이 계신 하느님 나라로 가셨으니 이제 덕담을 들을 수는 없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아버님과 함께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가슴이 찡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117일에 나온 미카엘의 순례일기입니다. 13세기 중반의 프라하에는 베드로라는 신부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사제의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는데, 고민의 한가운데에는 미사 중 변화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에 대한 의심이 있었습니다. 작고 동그란 밀떡과 검붉은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제의 축성을 통해 평범한 음식이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로 순례를 결심합니다. 베드로 성인의 유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족한 믿음을 채워주시기를 간구했는데도 여전히 성체의 거룩한 신비에 대한 의심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순례에 큰 기대를 걸었던 베드로 신부님은 크게 상심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로마에서 130km 정도 떨어진 볼세나에는 성녀 크리스티나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의 지하에는 열 명 남짓 둘러앉아 전례를 행할 수 있는 작은 경당이 있는데, 베드로 신부님도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깊은 의심을 버리지 못한 채 누룩 없이 만들어진 흰색 제병을 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양성체를 하는 순간, 갑자기 성체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붉은 피는 베드로 신부님의 손을 적시고 흘러내려 그 밑의 성체포까지 빨갛게 물들였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조사단을 파견하였고, 이 사건이 분명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기적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290년 사람들은 이 놀라운 기적의 성체포를 보관하고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으며, 300년 후 그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은경축을 맞이하면서 한국에서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온 사제가 있었습니다. 볼세나의 성체포 기적 성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순례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습니다. 성체포 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었고 말씀이 선포된 후, 강론대에 오른 신부님은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서 있기만 하였습니다.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신부님은 말을 하였습니다. 매우 짧은 강론이었습니다. ‘저 역시 베드로 신부님과 같은 의심을 떨치지 못한 채 은경축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하느님을 얼마나 의심하면서 살았는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신부님의 눈물과 신자들의 흐느낌이, 수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의 파동처럼 작은 경당 안에 천천히 퍼져나갔습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부족한 사제가 열심한 신자들 앞에 서 있습니다.’

 

저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지순례를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5처를 묵상하면서, 6처를 묵상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신자들은 기꺼이 시몬이 되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저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가식과 위선으로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신자들은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은총이 가득한 십자가의 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설날을 맞으면서 바라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를 알았다면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연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알아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설날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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