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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 (마르8,14-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6 조회수1,06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 (마르8,14-21)

 

 

1독서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창세6,5-8; 7,1-5.10) <26/35-36>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이제 이레가 지나면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화답송 시편 29(28),1과 2.3ㄱㄷ과 4.3과 9-10(◎ 11)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주님께 드려라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주님의 소리는 힘차고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르8,14-21)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6,5~8; 7,1~5.10)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5~6)

 

창세기 6장 5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와야르'(wayar)에서 '보다' 해당하는 '라아'(rah)는 '조사하다', '주목하다', '진단하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셨음을 뜻한다.

 

창세기 6장 5절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창조 때에 사용된 문장과 대조를 이룬다. 

창조 때의 하느님의 시선에는 기쁨과 만족, 충만감이 있었는데, 지금 여기서 비추어지는 주 하느님의 시선에는 의노와 아픔이 서려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사람들 앞에서는 감출 수 있으나, 눈동자처럼 이 세상을 살피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예레17,10).

 

여기서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에 해당하는 '랍바 라아트'(rabah raath)에서 '라아트'(raath)는 '라아'(raah)의 연계형으로서 '깨트리다', '악하게 되다' 뜻을 지닌 '라아'(raah)에서 유래하여 외형적 범죄라는 범위를 넘어 '해로움', '불행', '슬픔'을 가져다 주는 모든 '잘못된 것', '나쁜 것', '사악한 것'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세상에 많아지고'로 번역된 '랍바'(rabah)는 '라브'(rab)의 여성 형용사이다.

 

이것은 창세기 6장 1절에서 '늘어나다', '번성하다'로 번역된 '라바브'(rabab)에서 유래한 말로 '풍성한', '큰', '넓은', '강대한', '범람한'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닌다.

 

이것을 볼 때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에는 하느님의 심판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외부적인 범죄와 부조리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심성 안에 온갖 악함이 흘러 넘치는 등 사회가 온통 부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히브리어로 '마음'(heart)을 가리키는 용어는 여기 나오는 '레브'(leb)와  '레바브'(lebab)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여기에 처음 등장한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마음은 지, 정, 의(知情意)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마음은 지식과 지혜의 자리이며, 감정의 자리이기도 하고(탈출4,14;  판관16,25), 양심과 도덕의 자리로 간주되기도 한다(욥기27,6; 2사무24,10). 

따라서 마음은 인간 자신을 대표하기도 하며(잠언4,4), 모든 사고, 욕망, 말과 행동의 원천으로 간주된다(창세20,5; 잠언17,9).

 

그런데 노아 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이 오염되어 죄악으로 가득찼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 역시 오염되었고, 말이나 행동도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마하샤바'(mahashabah)는 '숙고', '책략', '계교' 등의 뜻이 있으며, '뜻'에 해당하는 '예체르'(yatser)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거나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조각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모양으로 만들다', '꼴을 이루다'에 해당하는 '야차르' (yatsar)에서 나온 단어로서 심사숙고하여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 사람들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세밀하게 뜻을 세워서 악한 일을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모든'에 해당하는 '콜'(kol)은 뒤이어 나오는 '언제나'와 동일한 단어로서 모든 개체 전부와 모든 시간 전부를 가리킨다.

 

이것을 볼 때,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래 원죄(原罪)아래 있는 모든 인간 전체가 예외없이 타락 가운데 있으며, 아담의 타락한 인간성과 원죄성이 계속됨을 지적한다.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원래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대표하는 단어가 '창조하다' 해당하는 '빠라'(bara)이다. 

이 단어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형상과 산물에는 결코 쓰이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표현할 때만 쓰인다.

 

이 단어는 '만들다'에 해당하는 '아사'(asah)와 '짓다'에 해당하는 '야차르'(yatsar) 동사를 동반하기도 한다(창세1,26; 2,7).

 

비록 인간 창조의 장엄성과 하느님의 개입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단어가 '빠라'(bara)였지만(창세1,27), 본래 인간 창조의 의도를 얘기하실 때에는 '아사'(asah)가 쓰였다(창세1,26).

 

창세기 6장 6절에서 '빠라'(bara)가 쓰이지 않고, '아사'(asah)가 쓰인 것 인간 창조의 과정이나 결과보다는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의도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따라 만들 것을 의도하고 창조했던 인간이 하느님께서 만드셨던 그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제 마음대로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 '아사'(asah)가 쓰인 것이다(에페2,10참조).

 

여기서 '후회하시며' 해당하는 '와인나헴'(wainnahem; was grieved; it repented)은 '나함'(naham)의 단순 재귀형으로서 '뉘우치다', '후회하다', '슬퍼하다', '애도하다' 등의 뜻이 들어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스스로 후회하셨다거나 슬퍼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다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라 행하신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실 일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소중한 피조물인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벌받아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간적인 측면에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복음(마르8,14~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조심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15)

 

마르코 복음 8장 15절의 두 동사는 모두 현재 2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명령임을 드러낸다.

 

'너희는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 be careful)의 원형 '호라오'(horao)는 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보고 실체를 알고서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조심하여라'에 해당하는 '블레페테'(blepete; beware; watch out)의 원형 '블레포'(blepo) 역시 사물이나 현상을 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통찰하는 것과 어떤 것에 유의하고 조심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한 문장에서 동일하게 비슷한 뜻의 동사가 함께 연속해서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자세히 살피고 주의해야 할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누룩'에 해당하는 '쥐메스'(zymes; leaven)의 원형 '쥐메'(zyme) 밀가루 반죽에 넣어 부풀어 오르게 하는 '효모'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침투성과 영향력이 강한 악(惡)의 상징적, 비유적 매개체로 성경에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누룩'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가 타인에게 강하게 미칠 수 있는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바리사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분명한 표징을 보아야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불신과 악의를 가지고 있었고, 형식주의에서 비롯한 그들의 독선과 위선을 가지고 있었다.

 

헤로데는 그를 추종하는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불경건과 불신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바리사이들처럼 예수님께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6장 11절에서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 으로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사이에 '사두가이들' '헤로데'라는 차이가 있다.

 

사두가이들 천사, 영적 존재와 영적 세계 그리고 부활을 부정하는 등 비신앙적이고 세속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이며, 성전 중심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헤로데 당원들도 역시 정치적이며 불경건하고 비신앙적인 삶을 사는 세속주의자, 현세주의자들이므로, 두 집단이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바리사이, 사두가이, 헤로데 모두를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서 마태오 복음사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강조하여 기록했고, 마르코 복음사가는 헤로데를 강조하여 기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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