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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서묵상 *노아의 방주와 물위를 걷는 자들(창세6:1-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6 조회수1,00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2. 16독서묵상 (공동번역)

 

노아의 방주와 물 위를 걷는 자들

(창세6:110)

땅 위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느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여자들을 골라 모두 아내로 삼았다. 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4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한자리에 들어 그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던 그때와 그 뒤에도 세상에는 나필족이 있었는데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서 이름난 장사들이었다.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9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10 그리고 노아는 아들 셋곧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이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인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심지어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도 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그 정도로 이 노아의 홍수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심지어 고대 사회에는 신화나 설화 그리고 서사시 등에 이 노아의 홍수와 아주 흡사한 홍수 이야기가 300여 편이나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 할 수 있는 고대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 와 수메르 인들의 작품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The Epic of Atrahasis)입니다이러한 고대 바벨론의 홍수 이야기들을 잘 읽어보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사건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 바벨론의 홍수 이야기들을 보면 1)신이 인류를 홍수로 멸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2)신이 우트나 피쉬팀’ 같 은 그 홍수 기사의 주인공들에게 미리 그 홍수 사실을 알려 줍니다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도 하느님께서도 노아에게 미리 그 사실 을 알려 주시지요그리고 3)신이 주인공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홍수 기사에서도 4)주인공은 구원받지만 다른 모든 생물은 홍수로 인해 멸절 당합니다. 5)그리고 홍수가 끝 난 뒤 새를 내보내서 방주 밖의 상황을 알아봅니다. 6)주인공이 홍수가 끝난 후 방주 밖으로 나와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립니 다. 7)그 제사를 신이 받습니다. 8)그 제사를 받은 신이 주인공을 축복해 줍니다.

창세기 6장에서 8장까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지 않으세요중요한 것은 이 고대 바벨론의 홍수 기사들이나 서사시들이 성경보다 먼저 쓰여 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성경이 그 고대의 설화들이나 서사시들을 베낀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 안 드십니까성경보다 먼저 기록이 된 고대 설화에 노아의 홍수 기사와 거의 흡사한 내용이 있다면 성경이 그 설화를 베낀 것 아닌가요?

 

제가 종교 다원주의나 동양 철학불경 등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수십 권을 보았습니다심지어 불경에는 석가모니가 물위를 걷는 장면도 나옵니다그리고 제자가 그 것을 따라 하다가 물속에 빠지기도 합니다마치 복음서의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과 베드로가 생각나지 않으세요그런데 석가모니는 예수님보다 600년 앞서 태어난 사람입니다그렇다면 예수님이 석가모니를 흉내 낸 것입니까?

그러니 가뜩이나 의심이 많은 제가 얼마나 많은 회의에 빠졌겠습니까그 때 잠시나마 저는 지금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성경이 그냥 많은 고대의 설화를 짜깁기 해 놓은 좋은 교훈 책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그러니까 성경 이야기를 다 믿지 말고 그 속에서 성경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만 잘 받아서 도덕적 윤리적 올바른 삶 을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노아의 홍수 사건을 포함한 모세 오경이 기록된 시기는 대략 BC1,500년경입니다모세가 그 때 사람이니까요반면에 고대 바벨론의 홍수 설화들이 기록된 시기는 그보다 100년에서 많 게는 300년 전인 BC16001800년경입니다맞습니다성경이 고대 바벨론 신화보다 더 나중에 쓰여 졌습니다그러나 진짜 홍수가 일어난 시기는 그보다 수천년 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게 된 이후 저는 오히려 그러한 고대 바벨론의 홍수 기사들을 읽으면서 노아의 홍수는 진짜 일어났던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왜냐하면 성경이 노아의 홍수 사건을 기록하기 전에 이미 성경과 거의 흡사한 홍수 이야기가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고 기록으로 남아있었다면 그 홍수 사건은 틀림없이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수천 년 전에 일어났던 홍수 사건이 노아의 후손인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것이 설화로 서사시로 기록이 되었던 것이지요그 것을 BC1,500년경에 모세가 하느님의 감동하에 확실하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그러니까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세요흔들리지 마십시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내용 분석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제가 여러 차례에 걸쳐 아주 간단하게나마 이 노아의 홍수 사건에 등장하는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고 이 홍수사건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그래도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면 이 노아의 홍수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쉽게 연결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체적인 성경구절을 찾아드리면서 어떻게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동일한 주제로 예언서와 시가서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와 요한묵시록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쉽게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노아의 홍수 기사로 신구약을 하나로 뚫어 볼 것입니다오늘 잘 들으시면 성경의 전체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 이해하기 쉽게 노아의 홍수 사건을 하나의 드라마로 각색을 해서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의 머릿속에 텅 비어있는 무대를 떠 올려 보세요이제 그 무대에 등장인물을 집어넣으세요거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누구 입니까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께 선택된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 그리고 역시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짐승들입니다

이제 무대 세트를 세워야지요이 노아의 홍수 사건의 무대배경은 어떻습니까홍수로 창일한 바다와 커다란 나무 방주입니다아주 간단한 무대장치 입니다그렇게 간단한 무대장치와 등장인물에 심오한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그러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지금부터 그 등장인물들과 무대장치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주제를 찾아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무대 장치인 홍수가 무엇을 상징하는 지부터 보겠습니다여러분 성경에서 물 혹은 바다 하면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지요죽음저주심판 등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이사57:20) 20 그러나 악인들은 요동치는 바다와 같아 가만히 있지 못하니 그 물결들은 오물과 진창만 밀어 올린다.

(시편32:6) 6 그러므로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모두 곤경의 때에 기도드립니다큰물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미가7:19)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이렇게 성경에서 물바다홍수는 죄악 된 세상과 그 죄악 된 세상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심판 혹은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따라서 그 물홍수에 빠지면 모두 하느님의 저주의 심판 아래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온 땅에 창일한 홍수는 바로 인간의 죄악과 그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저주의 물 위로 방주가 떠 있고 그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은 그 방주의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무대 장치인 방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오늘 본문에서 방주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테바 는 사실 배가 아닙니다. 최근에 나온 Evan almighty 같은 영화에 보면 노아의 방주가 커다란 배 모양으로 나오지만 사실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5m X 폭 22 m X 높이 13m 직육면체 상자입니다구약에는 그 테바’ ‘방주라는 단어 가 또 다른 곳에 한군데 더 나옵니다.

(출애2:23)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모세가 애굽에서 태어났을 당시는 애굽 왕 파라오가 히브리 사람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히브리 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입니다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고 석 달을 숨겨서 키우다가 모세를 역청을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 물위에 떠다니게 만들었습니다그 모세 가 탔던 갈대 상자가 바로 테바’ ‘방주입니다.

노아의 방주도 역청을 칠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역시 모세의 방주도 역청을 칠합니다그러니까 모세는 노아처럼 테바’ ‘방주를 타고 죽음의 물에서 건져진 자입니다모세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처럼 히브리 사 내아이들과 다 함께 저주의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자였습니다애굽에서 모두 죽어야 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의 운명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죄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것입니다그 속에서 모세라는 아이가 방주에 의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가 어떻게 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인지 조금 이해가 가시지요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 중에 서 어떤 선택된 소수의 무리를 방주가 품어 안고 그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가보지요이제 선택받은 자들을 품에 안아서 그들의 생명을 건져낸 방주가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여러분이 잘 아시는 홍해 사건입니다.

홍해 바다는 하느님 앞에 범죄 한 모든 죄인들이 빠져 죽어야 하는 저주와 심판의 바다입니다그래서 그 홍해 바다에 세상의 죄인들을 상징하는 애굽 군대가 모두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그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넌 사람들이 있습니다바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스라엘입니다성경은 그 사건을 가리켜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10:12) 1 형제 여러분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과 모세의 구출 사건에서는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품어 저주의 물로부터 구원해 낸 것이 테바’ ‘방주였습니다그런데 여기 홍해 사건에서는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을 품에 안고 그들을 구원해 낸 것이 방주가 아니라 모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모세의 품에 안겨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그러니까 방주와 모세는 어떤 한 가지를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그런데 성경은 그 모세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명18:15)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세가 이야기하고 있는 자기와 같은 예언자가 누구입니까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6:14)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을 품에 안고 그들을 구출해낸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성경은 친절하게 모세가 홍해 바다에서 행한 그 일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날 것인지를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통해 한 번 더 그림으로 설명해 줍니다.

 

복음서를 보면 죄인들이 모두 빠져 죽어야 하는 저주의 물에 빠지지 않고마치 방주처럼 그 물위를 걸어 풍랑에 빠져 죽어야 할 제자들을 건져내시는 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르6:4552) 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잘 보세요어떻게 노아의 방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고 있는 것인지그리고 모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지가 여기에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은 마태오마르코요한복음 공히 오병이어의 기적 뒤에 붙어 있습니다그 뜻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은 오병이어의 사건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읽으신 마르르코복음 6 52절에도 보면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라고 예수께서 빵을 떼셨던 오병이어의 사건과 이 물위를 걸으신 사건이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오병이어의 사건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모르면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성경은 지금 제자들도 오병이어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물위를 걸으신 사건도 이해하지 못하고 놀라고만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의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면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는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겠지요오병이어의 사건을 오늘은 대충 그 전체적인 윤곽만을 짚어 보자고요.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티베리아 바다 건너편입니다티베리아 바다는 갈릴리 바다를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도를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리면 팔레스타인 지방은 요르단강으로 동서로 갈라집니다성경은 요르단강 동편을 광야라고 부르고 요르단강 서편을 가나안이라고 부릅니다그리고 요르단강 북쪽에 갈릴리 바다가 있고 정확하게 남쪽에 사해가 있습니다사해 남서쪽이 예루살렘입니다그런데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 곳을 성경이 티베리아 바다 건너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동쪽일까요서쪽일까요?

 

(마르6:35)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여기서 외딴곳 이라고 번역이 된 에레모스가 광야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곳은 광야입니다그러니까 그 곳은 티베리아 바다 동쪽이라는 말이 됩니다머릿속으로 그림을 잘 그려보세요먹을 것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 남을 만큼의 음식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무슨 그림이 떠오르세요?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모세에게 불평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만나 사건이 떠오르지 않으세요금 복음서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바로 출애굽기의 광야 만나 사건과 연결시키기 위해 일부러 에레모스’ ‘광야라는 무대장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그대로 두면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그 어떤 식량도 찾을 수 없는 광야에서 하느님의 은혜로 생명의 만나가 하늘로부터 떨어졌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서에서는 음식을 마련할 수 없는 광야 외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굶고 있던 자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그 두 사건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빵이 주어져 그 빵을 먹은 자들이 살아나게 될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6:3335,51)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지요하늘에서 내린 빵만나와 방금 광야에서 맛보았던 오병 이어의 빵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두 사건은 단순히 꿀 과자 만나와 오병이어로 부풀려진 물고기와 이 땅의 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표적을 보면서 오로지 이 땅의 빵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세상 것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며 주님을 좇았습니다그래서 주님은 그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당신을 좇아온 사람들을 나무라십니다.

(요한6:26)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그 오병이어의 기적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알지 못하고 그저 먹고 배부른 빵만을 위해 주님을 쫓는 자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쫓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주님은 당신의 살과 피로 죄인들을 살리러 이 땅에 오신 분이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의 빵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켜주는 물질적 축복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인 영생이었습니다광야의 만나 사건과 오병이어의 사건은 바로 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시자 주님을 쫓아 왔던 많은 사람들이 많이 물러가고 다시는 주님을 쫓아오지 않았습니다죄인들은 예수로 말미암는 영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땅의 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6:66)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오늘 날 교회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 치유나 물질적 축복이나 소원성취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을 하면 많은 이들 이 떠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 땅에만 있기 때문입니다바로 이 이야기를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사건이 메시지로 담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해 드리면 이러합니다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당신을 쫓아오자 산으로 피하셨습니다왜 주님은 주님을 쫓겠다고 따라온 사람들을 기쁘게 품어 안아 주시지 않고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피하셨을까요그렇게 세상 것을 원해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다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피해 도망가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티베리아 바다를 건너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주님이 시키신 것입니다그리고는 산 위에서 그 제자들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주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 상황을 잘 그려보세요제자들은 지금 티베리아 동쪽 광야에서 서쪽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그런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납니다그 풍랑에 빠지면 모두 죽습니다제자들은 열심히 자기들의 힘을 의지하여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풍랑은 더욱 거세졌습니다그 때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 나타나셔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제자들은 그 즉시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이게 주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입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 제자들은 요르단 동편 광야에서 요르단 서편 가나안으로 향해가고 있습니다성경은 이곳에서 세상으로부터 가나안으로 향하는 하느님 백성들의 새로운 출애굽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풍랑을 통과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홍수와 바다에 빠져 죽게 될 자들이 어떻게 해서 생명력을 회복하고 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되는지를 친절하게 물위를 걸으시는 사건으로 부연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물바다홍수는 인간의 죄악과 그 죄악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오병이어의 사건에서는 그 것이 백성들의 굶주림으로 그려진 것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 모두가 빠져 죽어야 할 그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그리고는 그 물에서 당신의 제자들을 구해 내셨습니다주님께서 물을 밟으시고 당신의 백성들 을 구해내시는 사건은 이미 구약에 여러 모양으로 예언이 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시편77:17,2021) 17 하느님물들이 당신을 보았습니다물들이 당신을 보고 요동치며 해심마저 떨었습니다. 20 당신의 길이 바다를당신의 행로가 큰 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1 당신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습니다.

(시편18:17) 17 그분께서 높은 데에서 손을 뻗쳐 나를 붙잡으시고 깊은 물에서 나를 끌어내셨네.

이렇게 구약에 예언된 대로 모두가 빠져 죽어야 할 바다와 홍수즉 하느님의 저주의 심판을 주님께서 밟고 올라서시니까 풍랑이 잔잔해 지고 제자들이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6:1821)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들이려고 하는데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그 풍랑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잘 안되었습니다그런데 저 쪽에서 주님께서 그 물 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제자들은 놀랐지만 얼른 그 주님을 모셨습니다그랬더니 그 풍랑이 잔잔해지고 자신들이 탄 배가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20절에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에고 에이미입니다영어로 는 ‘I am who I am' 바로 출애굽기에 나온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주님은 지금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으로 제자들에게 오셔서 물을 밟으시고 그 백성들을 구원해 내고 계신 것입니다.

다른 그림으로 그려드리면 이러합니다홍수로 다 죽어 가는 세상에서 노아의 여덟 식구가 주님을 상징하는 방주로 들어갔더니요한복음의 표현대로 하면 맞아들였더니’ 그들이 안전하게 그들의 가려던 땅에 도착하여 죽음을 모면하게 된 것입니다따라서 노아의 홍수 사건에 무대 장치로 등장하는 방주‘’테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빵을 먹고 세상 것으로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달라고 쫓아온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나를 먹는 길밖에 없다 다른 말로 나를 믿는 자들만이 영생을 얻고 진정한 안식과 행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그 것은 바로 우리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풍랑을 헤쳐 가며 노를 저어 가려던 땅에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너희들의 힘으로는 절대 약속의 땅 에 도달할 수 없으니 나를 의지하고 나를 믿어라오직 그 길만이 너희가 가려는 안식의 땅행복의 땅평화의 땅에 들 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것을 교회들에게 친히 알려 주고 계신 것입니다

두 사건 다 굶주림에서풍랑 속에서 살아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너희가 너희들의 힘을 발휘하여 세상의 것들을 차지하고 쌓음으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의 자랑이나 육신의 정욕의 충족이 아닙니다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 봐도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와서 이 땅에 또 다른 다윗 왕국을 세우면 자신들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오매불망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자신들에게 육신을 살지게 할 세상의 빵을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만일 실제로 그러한 용사가 이스라엘 에 와서 또 다시 화려한 다윗의 왕국을 세웠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진정한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매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이 땅의 왕국에서만 찾고 있는 것입니다아닙니다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우리는 저주의 물심판의 홍수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노아의 홍수이야기는 바로 그 복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은혜로 영생을 주시겠다는 예수를 원하지 않습니다영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영생을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그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의 정욕이생의 자랑만을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너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그런데 왜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나에게서 원하느냐? 하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바로 그러한 우매한 인간들의 대표로 나섭니다.

(마태14:2731)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나다두려워하지 마라’ ‘에고 에이미’ ‘내가 바로 너희를 구원할 하느님이다그러니 두려워 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런데 베드로는 이생의 자랑육신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 주님 저도 물위를 걷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를 했습니다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물위를 걸어보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일단 살아야지요그런데 베드로는 주님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가 아닌 주님 저희도 폼 나게 물위를 걷게 해 주세요하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부와 명예를 얻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 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저는 주님 아니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더럽고 추악한 죄인일 뿐입니다저 좀 살려 주세요하고 자신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혜의 장중으로 숨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자신을 증명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그리고 거기에서 행복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그건 뉴에이지 사상이 지향하는것이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아닙니다그건 저주의 바다풍랑의 바다에 빠지는 것입니다보세요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이용해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물위를 걷던 베드로 가 어떻게 됩니까바다에 빠집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심판의 바다저주의 바다에 빠지는 것입니다말씀드렸다시피 베드로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을 좇은 오병이어의 현장에 있던 자들과 배 위에서 여전히 세상의 빵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제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 자들은 모두 저주의 바다심판의 홍수에 빠지게 될 것임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노아의 홍수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그 곳에 네피림과 용사세상의 왕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그들 때문에 저주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진 것입니다하느님 앞에서는 네피림과 용사와 세상의 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유일한 목적은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용사가 되어 자신을 자랑하는 것 뿐입니다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삽니다그게 아담이었습니다내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위에 진노의 물을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그들은 모두 저주의 홍수분노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그리스도교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그리스도교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약속이 있기에 그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네가 믿음이 없어서 빠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물위를 걸으려 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자신을 과시함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는 자들은 모두 다 그렇게 저주의 바다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우리가 살아나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다를 밟고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그게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다른 길은 없습니다오직 예수를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노아는 비도 오지 않는 산꼭대기에서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만을 믿고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그리고 비 한방울 오지 않는 그 때에 방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만일 눈에 보이는 세상 부귀영화와 체면과 자랑을 챙기는 자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세상 모든 이들이 그를 조롱했습니다그런데 그 조롱을 참으며 그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그게 믿음입니다우리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에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조롱할 것입니다. ‘네가 믿는 하느님이 지금 살아있다면 너를 그렇게 만들 수 있겠느냐?’ ‘왜 네 가 믿는 하느님은 너를 도와주지 않니?’ ‘왜 네가 믿는 하느님이 네 병을 고쳐 주지 않아?’ 세상은 우리를 조롱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그들에게 말해 주십시오우리 하느님은 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신다그래서 난 눈 에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내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감사해노아가 120년 동안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홍수를 대비했듯이 나도 우리 하느님의 약속을 믿기에 세상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이 뭡니까?

(2베드3:1013)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24:3739)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는 물이 아니라 불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불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노아처럼 세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인생 동안 다른 짓 안하고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를 그 저주의 불바다 위로 끌어올려 방주처럼 물위를 걷게 하실까요하느님은 공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용서하실 수는 없습니다어떻게 그 구원의 방주는 물위에 뜨게 되지요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홍수 속에 우리 주님께서 대신 빠져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불바다 위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루가12:50)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주님께서 당신이 지실 십자가를 가리켜 받을 세례라고 표현을 하십니다여기서 세례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단어는 밥티조입니다. 밥티조는 물에 잠그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침례교에서는 세례를 줄 때 물에 푹 넣었다가 빼는 것이지요그게 바로 세례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저주의 물홍수 속으로 푹 빠져 버리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분 이 그 홍수 속에서 죽으셨습니다바로 저주의 물을 맞고 죽는 방주의 모습입니다

방주는 저주의 물에 맞아 죽고 그 안에 들어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가 살아나는 것입니다예수께서 십자가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물위를 걸어가려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요나서에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주님께서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당신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들을 가리켜 요나의 표적이라 하시지요요나의 표적이 뭡니까?

(요나1:112:1) 11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12 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13 사람들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으나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져 어쩔 수가 없었다. 14 그러자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주님당신께서는 뜻하신 대로 이 일을 하셨으니저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15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 16 사람들은 주님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하였다. 1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

요나가 타고 가던 배가 폭풍을 만나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을 판입니다그 때 요나는 자신을 바다 속으로 던지라고 합니다선원들이 요나를 바다 속으로 던지자 바다가 이내 잔잔해 졌습니다예수를 상징하는 요나가 물속에 빠지는 것입니다요나가 물속에 빠짐으로 선원들이 살아납니다그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물속에 빠져 다른 이들을 구 해낸 요나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 밤을 죽어 있다가 살아나지요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홍수 속에 빠져 죽으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 저주의 홍수 속에 빠져 죽으심으로 우리는 물위에 둥둥 떠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그게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담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이 홍수와 풍랑을 피해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길밖에는 없습니다그 예수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반복하고 반복하여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설교는 세상에서 심리학이나 경영학 같은 것을 이용해서 이 땅에서 자기를 사랑하고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홍수와 풍랑을 피해 우리가 가려던 땅에 도착하는 방법인 복음만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예수를 믿으시는 많은 분들이 조금 의아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예수를 믿으면 풍랑이 잔잔해 진다고 하고 홍수도 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삶에 일어나는 이 풍랑은 무엇인가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 성도들에게서 그 풍랑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그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거기서 발휘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풍랑 속에서 잔잔하게 물위를 걸으셔야 하는 분들입니다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이 세상 속에서 하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내 삶 속에는 여전히 풍랑이 일고 있지만 나는 믿음으로 잔잔한 바다 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환경은 몰아치는 홍수 같은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나다 두려워 마라하고 말씀하셨기에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 반드시 나를 데리고 들어가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 까짓 거하면서 믿음으로 물위를 걷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시기 위해 하느님은 우리의 삶 속에 이러한 풍랑들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예수를 믿으십시오그러면 언젠가 이 모든 풍랑들이 가시적으로도 다 사라지고 우리는 영원한 행복과 안식과 기쁨만 있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묵시21:1)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보세요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이제 저주의 바다심판의 홍수가 없습니다그게 예수 믿는 여러분의 실존입니다그 땅을 바라보며 이 땅의 풍랑을 잘 이겨내십시오그게 믿음입니다그러나 여전히 이생의 자랑이나 육신의 정욕만을 채우려 혈안이 된 자들은 베드로처럼 풍랑 속으로바다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들 이 빠지게 될 바다는 여느 바다가 아닙니다그 곳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과 유황으로 타는 저주의 바다심판의 바다입니다.

(묵시21:8) 8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역겨운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그리고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뿐이다이것이 두 번째 죽음이다.

 

지금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면도대체 빠져 나갈 길이 없다하고 외치고 계신 분들이 이곳에도 계실 것입니다그게 정상입니다이 세상에서 성도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주님만이 길입니다주님 이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만일 돈이 우리의 행복의 길이 된다면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돈이 곧 길이요 진리요생명이라고 말씀하셨어야지요명예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면 주님은 명예가 곧 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 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성취가 여러분의 행복의 길이 된다면 주님은 너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길이다라 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나 만이 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오직 주님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요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면 이 세상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그 말은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모두가 낭떠러지라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지금 낭떠러지로 밀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예수라는 유일한 길을 찾아 올라오라고오직 그 길로만 들어서라고 주님은 여러분을 낭떠러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그 때 예수라는 길을 찾으십시오.

성도는 이 땅에서풍랑이 이는 바다 같은 이 땅에서홍수가 무섭게 창궐하는 이 땅에서 잔잔하게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만을 붙드셔야 하는 것입니다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삶 속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홍수와 풍랑이 일고 있는지 이제 아시겠지요예수를 붙드세요세상에서 이름 떨치고세상에서 자랑스러운 자들이 되려 하지 마세요그러다 보면 정작 붙들어야 할 예수를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힘내십시오여러분의 목적여러분의 계획여러분의 뜻을 하느님께 관철시키려 하지 마세요그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그 사람들이 저주의 바다에 빠질 사람들입니다하느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 세상에서 모든 계획과 비전을 이 순간 바다에 다 쏟아 넣으십시오그리고 여러분을 향한 하느님 의 비전인 하느님의 자녀로의 성숙을 여러분의 목표로 삼으십시오이게 노아의 홍수가 담고 있는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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