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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2.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8 조회수1,538 추천수4 반대(0) 신고

(전주 교구 순교 사적지, 나바위 성지)

2021년 2월 18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복음 루카 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코로나19 장기화로 하던 사업을

접게 된 친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너무 힘들다면서 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를 했더군요.

한참 동안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어려움도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 이 친구로부터 또 전화가 왔습니다.

힘들어서 다시 전화를 한 줄 알았는데,

제가 걱정하고 있을까 봐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업을 그만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힘을 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는데, 자기에게는

가족이라는 큰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들, 딸이 있는데, 실패한 것에

계속 매여 있어 봐야 뭐하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아는 선배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거의 평생을 사장으로만 있었던 친구가

누구 밑에서 직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족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행복하여지려면 회복 탄력성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인데, 이를 경험한 뒤에

다시 회복하는 힘이 얼마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높다고 합니다.

, 자신의 가치와 목적에 근거해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 탄력성을 높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의미 찾게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는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도 될 수 있으며,

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그마한

어떤 것도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삶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의미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지만,

수난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님께서는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이야 십자가가 주님을

따르는 길임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커다란 중죄인이 당하는

사형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형

형벌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은

이 말씀이 그저 하나의 은유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삶이 아닌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이 아닌 주님의 사랑을 채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의미 있는

모든 행동이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옳은 행동을 하고 남보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순자)

노력의 문

일생을 문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문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다가 죽을 무렵이 돼서야 문지기에게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은 당신이 먼저 열어 달라고 해야 열리는

당신의 문입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열어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아서

또 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 우리가 아닐까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또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던 것이지요.

시도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높이지 않을까요?

(전주 교구 순교 사적지, 나바위 성지 김대건신부님 동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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