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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복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8 조회수1,029 추천수0 반대(0) 신고

 

세상에서도 부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실제 경험은 없지만 주변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남남이 만나서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 다른 사람과 산다는 건 처음엔 사랑의 감정으로 살 수가 있겠지만 그 사랑의 감정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으로 심리학 학자들도 한결같이 말하곤 합니다. 일명 사랑의 유통기한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그 기간이 끝나면 아니 그 기간이 끝나기 전이라도 부부로 산다는 것은 이미 결혼 전부터 확고한 결혼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대를 위해 희생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말은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의식 속에 상대를 통해 무언가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런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자신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박탈감이 생기고 그때부터 서서히 사랑의 감정이 식는다고 한답니다. 하지만 정말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랑은 하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나름 한 사람의 희생으로 어느 정도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가 이런 마음이라면 그건 정말 우리가 말하는 천생연분 같은 그런 연을 맺은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 사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사순의 대명사 중에서 단식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단순히 묻는다기보다는 따지는 형식입니다. 이말인즉슨,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말씀을 하신 것과 배치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혼인잔치와 신랑을 언급하시면서 손님이 있는 동안에는 슬퍼할 수가 없지만 신랑을 빼앗기는 날에는 단식을 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은 성경적인 주석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와 다른 제 느낌을 묵상해봤습니다.

 

신랑을 빼앗긴다는 것은 아마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인하여 그들 곁을 떠나신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단식을 하게 될 거라고 하셨는데 이때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단식의 의미와 요한의 제자들이 의미하는 단식의 의미가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같다고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의미하는 단식은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재계를 지킬 때 하는 단식을 의미하는 단식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단식도 단식이지만 실제 단식의 의미는 다른 데 있다고 하시는 말씀일 것 같습니다. 단식도 넓은 의미에서는 회개의 표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개의 수단으로써 단식을 하는 것인데 실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은 무엇일까요?

 

신랑을 빼앗기는 것 즉, 예수님과 이별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별이라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 이별의 원인 제공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 우리에는 그 당시 예수님을 박해했던 사람들 모두가 바로 오늘날 우리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러 오신 분이고 심지어 생명을 바치는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전제된 희생입니다. 그 고귀한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였습니다.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이 백인대장이었습니다. 있을 땐 그분의 가치를 몰라봤던 거였습니다.

 

세상의 부부도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같이 살 때는 잘 몰랐는데 헤어지고 난 후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 말이 오늘 복음과 상황이 같을 것 같습니다. 미처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깐요. 그 어리석음은 다 우리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그 죄를 인식하고 회개한다는 마음의 표지가 단식일 겁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단식이라는 것을 오늘 제1독서에서 자세히 알려주고 있는 듯합니다.

 

단식을 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느냐고 질책을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것은 단식이 아니라고 하는 말입니다. 고행하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 이런 것은 하느님께서 요구하는 단식이 아니라고 우리에게도 들려주십니다. 이건 외형적인 모습의 단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 속에 단식의 진정한 의미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입니다. 희생이 수반된 사랑을 하게 되면 너의 상처가 바로 아물게 된다고 나옵니다. 또 주님께서 저희들 뒤에서 주님의 영광으로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감동적인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느님을 못 박았다는 사실을 알고 때늦은 후회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상처로 다가오면서 그 뉘우치고 참회하는 마음을 보시게 되면 그런 마음도 하느님께서는 저희의 상처로 보시고 그 상처마저도 아프지 않게 아물게 해 주신다고 하시니 이런 마음으로 저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감읍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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