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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9 조회수1,267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태 9, 14-15(재의예식 후 금)

 

오늘 <말씀 전례>는 ‘참된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릇된 단식, 곧 당시의 유대인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단식을 질타하면서, ‘참된 단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7)

 

이는 ‘참된 단식’이란 곡기를 끊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말해줍니다.

그것도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곧 단식의 참된 정신이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입당송>에서는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하고,

 <화답송>에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주소서.” 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단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식으로 모은 곡식을 모아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자비의 특별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자비”를 “복음의 뛰는 심장”(12항)이라고 또,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핵심”(25항)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는 이를 알려야 할 사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단식이란 <레위기>(16,29-3)에 따르면, 잘못을 속죄하고 정결해지기 위해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깨끗한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단식을 배척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재의 수요일’ 복음에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기도와 자선과 함께 경건한 생활의 핵심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단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단식을 배척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이는 오늘날의 우리가 단식을 해야 할 이유를 밝혀줍니다.

곧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주님의 수난에 감사드리며, 다시 오실 신랑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사랑의 단식입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의미의 단식입니다.

곧 구약의 ‘속죄의 단식’이 아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와 자비와 희망의 단식’이야말로 새 시대에 행하는 새로운 단식이요,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새 포도주가 됩니다.

결국, 단식은 이미 베풀어진 주님의 자비에 대한 우리 자비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자비의 얼굴]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자비를 입었으므로,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9항)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으십니까?”(마태 9,14)

 

주님!

몸으로는 단식하면서도 마음은 다투고 주먹질하지 않게 하소서.

제 마음 속 부자유의 멍에를 풀고 불의의 결박을 부수소서.

당신의 선물인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식하지 않게 하소서.

생명을 내어놓음으로 생명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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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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