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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신랑을 빼앗길 때 단식 (마태9,14-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9 조회수1,15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19일 금요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신랑을 빼앗길 때 단식 (마태9,14-15)

 

 

1독서<내가 좋아하는 단식> (이사58,1-9)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청껏 소리쳐라망설이지 마라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화답송 시편 51(50),3-4.5-6ㄱㄴ.18-19(◎ 19ㄴㄷ)

◎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하느님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하느님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당신께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하느님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복음<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제1독서(이사58,1~9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 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6-9)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단식은 1년에 1회였다. 유다력으로 7월 1일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로서 모든 백성이 화제(火祭)를 드리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단식함으로써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날이었다(레위23,26-3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의 규정 외에도 그들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자주 단식일을 정하여 단식하곤 하였다(판관20,26; 1사무7,6; 31,13; 즈가8,18-19; 에스4,16). 더욱이 예루살렘 성(城)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이래로 그들은 무려 칠십년 동안이나 오월과 칠월에 날짜를 정해놓고 특별 단식을 했다(즈카7,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형식적인 단식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는 단식은 유다 백성이 전멸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테르를 위시하여 전 유다 백성이 행했던 단식(에스4,16), 이방 니느웨 백성들이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듣고 했던 단식(요나3,5-10), 그리고 역시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들은 아합이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했던 단식(1열왕21,27-29)등과 같은 회개가 동반된 진실한 단식이었다.

 

반면에 이사야 58장 3절에 제시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단식은 마치 이방인들이 자신의 자녀를 불살라드려 우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 했듯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여 하느님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 의식적 행위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심령으로 통회하며 회개에 부합된 자세를 취하는 자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사57,15)을 깨닫지 못하였다.

 

죄에 대한 쓰라린 뉘우침과 진실한 삶의 변화를 지향함이 없이 하느님의 축복을 끌어내기 위한 단식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책망하셨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단식에 대한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밥을 굶거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것은 혹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속죄일에 하는 단식의 영원한 규정 (레위16,31; 23,26-32)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단식의 외적 규정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밥을 굶어 자신의 육체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본문에 제시된 것처럼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단식을 하는 목적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 위함인데, 자신은 정작 자신의 자비를 기대하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억압하고 학대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모습이며 그런 삶을 사는 자가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사야 58장 6~7절에는 바른 단식을 하는 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 각각 네가지씩 나열되어 있다.

이사야서 58장 6절 네가지 한 마디로 '자유'이며 이사야서 58장 7절 네 가지'실천적 자비'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경험한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탈출20,2; 신명8,2~4; 예레29,10; 이사53,1~12; 55,1~7).

 

이사야서 58장 6절 '불의한 결박'이란 주인 혹은 권세자가 종이나 백성들에게 부당하게 채운 족쇄나 결박 지칭한다. 그리고 '멍에'(mota; 모타) 소나 나귀의 목에 지운 멍에 혹은 소의 코뚜레 같은 것으로서 사람이 힘있는 짐승을 몰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힘을 지닌 자가 힘 없는 자들, 곧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하는 비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다 생생하게 전한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는 자들과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는자들 사이에 서서 그것을 중단시키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억압받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 '레추침'(retsutsim)의 원형 '라차츠'(ratsats)는 원래 강한 타격을 가하여 산산조각으로 박살내 버리는 것 의미한다. 권세자에게 압제와 학대를 당하고 삶의 모든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불쌍한 사람들 말한다(판관10,8; 2역대16,10; 아모4,1).

'자유롭게'에 해당하는 '호프쉼'(hopshim)이란 표현은 '펼치다','해방하다'등의 의미를 지닌 '하파쉬'(hapash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일반적으로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된 상태 의미한다(탈출21,2).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구조적, 제도적 부조리로 얼룩져 있었고, 기득권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착취를 합리화하던 상황을 전제 하고 있다.

이들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부조리한 멍에를 벗겨내며 육체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단식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사야서 58절 7절에서는 단식의 참된 정신 가운데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열거법을 사용해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의식주라는 인간 생존을 위한 3대 필수 조건과 혈육(골육)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열거되고 있다.

 

'굶주린 이' 영적인 의미 보다는 문자적 의미가 더 강하다. '굶주인 이' 해당하는 '라라에브'(laraeb)의 기본형 '라에브'(laeb)는  단지 한두끼 굶어 배고픈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여러 끼니를 걸러 배가 고파 쓰릴 정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야고2,16).

 

'떠도는 이들' 단순히 집이 없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국가와 집을 잃고 떠돌며 방황하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부당한 채권 독촉 따위로 집을 전당잡혀 빼앗기고 쫓겨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고 간혹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부는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일이므로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에게 숙소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건져준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알아야 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돈이 없어서 옷을 사 입지 못하거나 또는 입고 있는 옷마저 빚을 갚지 못한 이유로 빼앗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탈출22,26).

겉옷을 이불삼아 사는 사람이 그것을 빼앗기는 날에는 잠을 잘 때 살을 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를 근동 지방에서는 맞이해야 한다.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7)

 

본문은 가족 및 친척이 어려움을 당했을 경우 그것을 모른체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하느님 앞에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은 인간됨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당시에 흔히 자행되고 있었다.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8)

 

마치 새벽의 태양빛이 온 땅에 자욱한 흑암을 순식간에 몰아내듯이 하느님의 축복이 사람들을 짓누르는 어둡고 고통스런 삶의 형편들을 뒤바꾸어주며 그야말로 광명한 삶, 복되고 은혜로운 충족한 삶이 되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8)

 

여기서의 상처는 파괴된 인간관계나 무너진 성읍, 실제적인 질병을 의미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하느님께서는 신속히 그 모든 것을 권능으로 치유하시고 회복해 주신다.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8)

 

진실하게 단식을 행하는 자의 영적 안전과 보호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행진할 때에 하느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을 호위해 주셨듯이 주님의 종의 대속적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의로움으로 말미암아(이사53,11; 54,17) 어떠한 영적인 적들의 공격도 안전하게 막아낼 수 있는 영적 갑옷과 방패를 말한다.

 

'주님의 영광'이란 하느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포괄하는 표현이다. 참된 단식을 실천하는 자들을 약탈자의 공격으로부터 막으시고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의미로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9)

 

'네가 부르면' 해당하는 단어 '레샤우아으'의 원형 '슈아으'(shuah)는 구약성경에서 21회 사용된 단어로서 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그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나 여기 있다'에 해당하는 '힌네니'(hineni)는 '보라! 나를' 이라는 의미인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백성이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에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 보이시며 그에게 도움과 소망과 위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20160212 재의 예식다음 금요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먹는 것이 단식의 완성입니다

(마태 9,13-15)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희생제물을 매일 바치는 그 의인이 아니라 그 희생 제물로죄의 대속을 위해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주님의 자비로 용서 받을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님 이시라는 말씀입니다.(1요한2,2참조)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제자들이 혼인 잔치의 손님으로 있습니다그 손님은 당연히 단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님으로 맞는 신랑 예수님을 빼앗겨야 손님이 아닌 그 신랑과 혼인할 수 있는 제자로신부로곧 손님(죄인)을 신부로 맞이하기 위한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 그 제사의 완성으로신부의 몸값을 다 치루신 그 그리스도 예수와 혼인하는 것입니다그러니 이미 다 이루신 그 희생 제물을 열심히 다시 바치는 그 행위의 제사를 멈추는그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 신랑과 함께 하나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상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자 하느님이라는 그 왕자의 자리를 떠나 우리(죄인)와 사랑을 하고자한 몸이 되고자 땅에 청혼하러 오셨습니다그러니 그 예수님과 사랑을 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명예나의 의로움그 모든 것이 가치 없음을 깨닫는 그 自己否認버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 대속의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받아들여 한몸이되는 혼인을 예수님과 하는 것입니다그래야 나를 진짜 사랑하신 그 아버지가 계신 영원한 나의 집으로 예수님과 함께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분의 신부로 하늘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이 땅에서 미리 그 하늘 살이를 위한 교육을 받을 때라는 것입니다하늘의 평화()를 연습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육의 습성이그리고 거짓 가르침이 어리석다 비난하기에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그러나 그것이 또한 연습이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훈련입니다그래서 매일 우리는 그분의 청혼(약속-말씀)을 되새기는확인하는 그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그 약속의 말씀으로 넘어졌다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지나온 절망()이 아닌 용서라는 희망을 늘 보게 하시니까요~~ 그래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제사)을 드리는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1014-18) 14 한 번의 예물로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한 번의 제사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죄를 용서받아 거룩해진 신부들입니다.(로마3,24)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주님께서 말씀하신다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하느님의 법 아시죠나무 하나(십자가)를 받아들이면 단물(의인)이 되는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탈출15,27).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죄 때문에 바쳤던 그 예물을 끊는 것단식입니다그리고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먹어야 합니다끊는 것에서 멈추면 안됩니다채워야 합니다그것이 단식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희생제물 그 예물에 묶이게그래서 짐이 되게 했다면 십자가를 진리로 올바로 알려주어 죄와 예물그 묶임에서 풀어주어 자유롭게 해 주는 것하느님께서 좋아하는 단식이라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사58,6-9)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 아멘 -*vv*-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복음(마태9,14~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신랑이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5~)

 

혼인 잔치 집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한다그래서 혼인 잔치 집 손님들이 상징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신랑으로 오신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지 슬퍼하며 단식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새 한글 성경이 '혼인 잔치 손님들'로 번역한 '호이 휘오이 투 뉨포노스'(hoi hyoi tou nymphonos; the guests ot the bridgegroom)은 직역하면 '신부 집의 아들들'(the sons of the bride room)인데다른 사본은 '신부 집의 아이들'(the children of the bride chamber) 이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이들이 잠시 왔다 돌아가는 손님들이 아니라혼인 집즉 하느님의 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즉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신랑이 있는 동안에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혼인 잔치 집의 아이들로 비유하신 것이다.

 

혼인은 기쁜 일이기 때문에 슬픔과 애곡을 나타내는 단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실제로 유대인들은 단식일인 월요일이나 목요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그날이 혼인 예식 기간 중이면 단식하지 않았다왜냐하면 혼인의 기쁨이 단식으로 말미암아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빼앗길 날'에는 제자들도 단식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랑이 빼앗길 날'에 해당하는 '헤메라이 호탄 아파르테 아프 아우톤 호 뉨피오스' (hemerai hotan aparthe ap' auton ho nymphios; when the bridegroom will be taken from them)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표현이다.

 

여기 '빼앗길'에 해당하는 '아파르테'(aparthe; will be taken)는 '~로 부터'(from)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아포'(apo)와 '들어 올리다', '가져 가다'는 뜻이 있는 '아이로'(airo)의 합성어인 '아파이로'(apairo)의 가정법 부정 과거이다여기서 부정 과거(aorist)가 쓰인 것은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을 읽었던 초대 교회 유대인 공동체는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였으므로이 단어의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A.D. 100년경에 쓰인 '12사도의 가르침', 즉 '디다케'(didache)를 보면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사이들이 단식했던 월요일과 목요일이 아니라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초대 교회 시대에 복음의 가르침대로 단식이 시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자신의 스승이 감옥에 갇히고 죽은 인간적인 슬픔으로 말미암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했던 단식과 비교해 볼 때이러한 단식은 단지 예수님을 잃은 인간적인 슬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의 죄악을 슬퍼하는 단식 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음성강론』2012년 9월 7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루카 5,33-39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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