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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뼈아픈 신앙체험담, 판단의 오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9 조회수9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신앙적으로 아주 큰 죄악과도 같고 예전에 수많은 은수자들이 이 교만을 떨쳐버리기 위해 얼마나 심한 고행을 했는지는 그들의 금언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교만 가운데 하나가 영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저는 이 영적인 교만을 통해서 하나 절실하게 피부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판단과 정죄의 구분도 혼동하면 오히려 그 자체도 크나큰 죄가 될 수 있고 남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순시기입니다. 그래서 사순시기에 나오는 강론 중에서 회개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내용 중 하나가 교만입니다. 제가 5년 전에 아주 유명한 가톨릭 모 카페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유명한 신부님의 카페입니다. 지금 굿뉴스처럼 이렇게 평소 체험과 묵상글을 올렸습니다. 그 카페는 댓글 문화가 나름 좋습니다.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윈윈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어느 날 제가 한 번은 제가 올린 글 하나가 화근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오늘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될 수가 있습니다. 그날 제가 올린 글은 본당에서 저녁미사를 참례했고 마침 그때 보좌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셨습니다. 서품받고 처음 본당으로 오신 것입니다. 강론을 들었습니다. 강론을 들으면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 없는 강론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메모를 할 수가 없어서 들으면서 최대한 집중을 하려고 했습니다. 강론 소재가 아주 좋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 강론은 일반 고령의 신자들에게는 고리타분한 내용일 겁니다. 왜냐하면 용어 자체가 영어와 헬라어를 사용한 개념의 강론이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저한테는 다른 느낌으로 전해졌습니다.

 

강론을 듣고 난 후에 신부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강론 내용을 제가 활동한 카페에 올려서 소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만 알고 있기엔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 이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부탁하니 그날 강론 원고를 그대로 주셨습니다. ,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강론의 내용은 언급하되 어느 신부의 글이라는 것은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막간을 이용해서 그때 고등부 애들이 야자 수업 마치고 오기 전에 학원에서 빠른 속도로 신부님의 강론 내용의 핵심만 타이핑을 해서 그 카페에 올렸습니다.

 

저는 그 글을 올렸을 때 어떤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글로 인해서 카페를 탈퇴해야만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도 확실한 내용은 정확하게 잘 모르지만 나중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은 사실입니다. 그 내용 자체가 보통의 평신도가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글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신부님의 강론이었고 그건 약간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내용이라서 질적으로 수준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그 카페를 탈퇴해야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그 글을 올리면서 이 내용은 한 신부님의 강론의 글을 제가 발췌해서 올린 글이라는 걸 알렸더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글로 통해서 제가 나름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 모습처럼 보여졌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뭔가 그런 지식이 있어서 남에게 뽐내고 싶어하는 영적인 교만과 같은 모습으로 우쭐하고 싶은 마음에서 올린 글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부 운영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가 없는 내용이라 그냥 그 운영진의 결정에 따라 탈퇴하게 된 것입니다. 강퇴보다는 자진해서 탈퇴하는 모습을 취하게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 어떤 해명도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뜻으로 강론을 들으면서 이 내용을 카페 식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강론의 내용을 머리에 담아 복기하려고 혼신을 다해 집중을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신부님께 부탁을 드려 저녁도 먹지 않고 그때 저녁을 먹지 않으면 고3 수업이 자정 무렵에 끝나기 때문에 자정이 지나서 먹어야 합니다.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좋은 의도로 했는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살지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 그 진실을 그곳에서는 모릅니다.

 

하느님만 그 진실을 아십니다. 그때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엄청 컸습니다. 그때 그 충격이 얼마나 컸냐면요 다시 개신교로 돌아갈 생각까지 고민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수도원에서 한 신부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개신교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그 상황을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저는 배웠습니다.

 

판단과 교만은 쉽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본다면 판단과 교만은 가령 당사자인 저의 경우에 있어서 제가 어떻게 해서 그런 내용의 글을 올렸고 또 왜 신부님의 글이라는 걸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그런 오해는 사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부터 제가 가진 소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때 판단과 단죄에 대한 개념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확실한 개념을 나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나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판단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이 판단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판단이 아니고 단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판단이라고 하는 말에서 신앙 안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판단 속에 단죄하려는 의미가 있을 땐 그 판단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과도 같은 성질의 판단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이건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생각 자체를 판단이라는 영역으로 몰고 간다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가령 말해서 길을 가는데 불쌍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서 측은지심을 가진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이런 걸 보고 어느 누가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회의 비극적인 패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을 향해서 어떻게 저런 패륜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고 분개하는 것을 보고 우리 신앙 안에서 말하는 판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건 누가 봐도 공감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사고의 한 방식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런 사람의 내부 사정을 모른 채 겉모습의 현상만을 보고서 그 사람을 단죄나 정죄를 한다면 그때의 단죄나 정죄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말하는 판단이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말하는 판단의 개념을 일반적인 판단의 개념으로 확장시킨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부칠 수 있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우려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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