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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9 조회수1,593 추천수5 반대(0) 신고

(전주 교구 순교 사적지, 서천교)

2021년 2월 19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복음 마태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제일가는 사람이 되려 하면

온 세상 사람이 경쟁자가 되지만,

유일한 사람이란 걸 아는 순간에

우리 각자가 소중한 존재가 된다.

넘버 원이 되기 위해 살면 1등의 왕좌는

하나뿐이라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행해지지만,

온리 원이 되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어느 책(전대진, ‘실컷 울고나니 배고파졌어요중에서)

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제일가는 사람, ‘넘버 원

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사실 제일가는 사람, ‘넘버 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제일

넘버 원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이 최고의 자리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넘버 원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수학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100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1~2

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괜히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또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1~2개만 틀려도 아주 잘한 것인데 말이지요.

이렇게 제일넘버 원은 피곤합니다.

유일한 사람인 우리입니다. 그리고 온리 원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 모두 소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사람이 단식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열심하다는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단식했던 것입니다. 특히 바리사이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아주 열심히 단식했습니다.

그들이 단식하는 이유는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단식이 아니라,

율법에 단식하라고 되어 있으니까 단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단식이 아니라,

자신이 아주 열심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짐짓 자랑하는

마음으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라며 비교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자기를 드러내는 단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래서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단식을 원하십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보속과 희생의 마음으로 단식을 몇 차례 하게 됩니다.

이번 단식은 형식적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나를 드러내기 위한 단식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단식,

희생과 보속의 마음에서 나오는 단식 등

참 단식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로또 같은 사람

아내가 남편의 눈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내게 로또 같은 사람이야.”

이 말에 남편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로또는 많은 이가 좋아하는 뜻밖의 행운이잖아요.

이렇게 자신을 뜻밖의 행운으로 여기는

아내의 말에 크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 어쩌면 이렇게도 안 맞는지.”

아내의 로또 같다는 말은 좋은 말일까요?

나쁜 말일까요? 처음에는 좋은 말처럼 생각했지만,

결국은 안 좋은 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도 나쁜 말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말도 좋은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좋게 했던 말도 상대에게 나쁜 말로 변할 수도 있고,

나쁜 말도 자신의 의도와 달리 좋은 말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 철저히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전주 교구 순교 사적지, 초록바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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