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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법에 있어서 대 혼란(2)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0 조회수1,230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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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법에 있어서 대 혼란(2)


아들아, 나는 네게 현 시대는 큰 재난의 시대이고, 지옥의 은밀한 세력들이 그 권세 - 이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에 의해서 그들에게 허락된 권세이다 - 의 절정에 달했거나 달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또한 크나큰 진리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바른 길을 알게 되기를 원하기에, 그 길로 다시 들어서려는 착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을 도와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선택을 하기에 이상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남아 있는 삶의 여정을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오늘날 의심 때문에, 하고많은 의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빛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둠이라고 할수도 없는 안개 속에 살고 있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의 빛이 (선택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의 불확실성은 언제나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내 신비체의 곪은 상처들을 싸맨 붕대를 풀고 그 상처들을 드러내어야 할 때이다. 헐뜯기 위한 병적인 취미 때문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서이고,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깊은 구렁 속으로 당장이라도 빠질 위험이 있는 많은 영혼들이 그토록 역겨운 광경을 보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제다운 힘찬 내적 생활로 하느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먼젓번 메시지에서 너로 하여금 내 신비체를 괴롭히는 곪은 상처 몇 가지를 일별(一瞥)하게 했는데, 가정과 같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을 썩게 하는 상처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도처에, 심지어 내게 봉헌한 사람들인 사제들 사이에도 퍼져 있는 부도덕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착하고 거룩한 몇몇 사제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제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말하느라고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다. 또 사제의 품위와 권한에 대해서도 다시 말하지 않고 - 이에 대해서는 다른 메시지들 속에서 이미 말했으니까 - 오늘날의 사제가 벗어나지 못한 채 발버둥치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는 사제로 하여금 신앙과 은총의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들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힘들이 그들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옥의 어두운 세력에서 오는 내적 유혹. 아무도 이 어두운 세력을 피할 수 없지만 사제는 특히 그럴 수가 없다. 그가 받은 소명과 신적 사명의 성격상 자기 주위에 많은 영혼들을 끌어들이는 공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 부정적인 주목의 대상이라는 점. 이는 물론 "하느님 없이 사는 자들"의 시각(視角)이다. 그들은 적의를 가지고 사제들을 주시하는 것이다.

-  자칭 착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사제는 이해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를 받는 표적(루가 2,34 - 역주)이 된다는 점. 그런 사람들은 바로 그들의 형식주의로 말미암아, 사제는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사탄의 것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사제는 오늘날, 힘찬 내적 생활로 하느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인간적인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느냐 하는 양자 가운데서 그릇된 택일을 할 위험이 큰 것이다.


이토록 숱한 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제가 만일 인간적인 현실을 택한다면 점차 하느님에 대한 흥미를 잃고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상태가 되다가 급기야는 역겨움마저 느끼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을 배반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퇴양난의 궁지인 것이다.

인간적인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갈수록 그는 점점 더 밑으로 떨어져서 신앙을 잃고 따라서 은총의 생명도 잃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하강(下降)이 타락으로 변질되므로 그는 결정적인 악으로, 따라서 영원한 멸망으로 끌려가고 만다.

그런데, 이토록 위험한 인간적 현실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 (텔레비전, 영화, 신문과 잡지 따위) 위험하고 해로운 이데올로기에 젖은 현대의 사회 전달 수단들. 실상 출판물 대부분에 타락의 독기가 배어 있는 것이다.

- 흔히 여성들과 함께 기거하는 것. 사제도 다른 이들처럼 온갖 격정의 싹을 내부에 지닌 남성이므로, 신앙의 위기로 인한 공허 속에 있을 때면 필연적으로 사제 특유의 격렬한 욕정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험을 좋아하는 자는 위험으로 망할 것이다...."(집회 3,26 참조 - 역주)

이 비탈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 매우 많은 수의 사제들이 그만큼 많은 수의 영적 죽음의 중심부, 악한 표양과 타락의 중심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들아, 이토록 숱한 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목자들은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오, 그들은 자기네 양떼 속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모르지 않건만, 아무것도 모르는 체한다. 아무것도 못 본 체 못 들은 체한다..... 난처한 일을 겪거나, 떠안고 싶지 않은 큰 책임에 말려들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들아, 그럼에도 이것이 전체적인 면모도 아니다. 너로 하여금 단지 몇 가지만 언뜻 보게 했을 뿐이다. 전체를 다 보여 주면 네가 못 견딜 터이니 말이다!

(1978년 11월 16일 ③)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법에 있어서 대 혼란(1)


'법'에 있어서의 대혼란이라고 말했거니와, 과연 이만저만한 혼란이 아니다! 왜냐하면, '법'은 '신앙'에 의거하고 신앙은 '계시'에 의거하므로 계시와 신앙이 위기에 처하면 법도 위기에 처하게 되는 만큼, 법에 있어서의 대혼란은 교리상의 대혼란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설명은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3 참조 - 역주)"고 한 첫째 계명으로 일체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법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겠느냐?

이 법은 법 전체의 기초로서 주어졌다. 법 전체의 기초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이렇게 내보이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나 홀로 너희의 하느님이다. 너희는 홀로 나만을 공경하여라. 나 외의 다른 신은 없다. 나 홀로 일차적이고 유일 절대한 '실재'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만물이 이 실재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사람은 이 유일한 실재 앞에 엎드려야 한다. 이 유일한 실재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실재를 피해 달아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징벌을, 따라서 영벌을 받게 될 무서운 반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가공할 사실이다. 어두운 지옥 세력의 반역의 소산이니,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주 주님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에게는 끔찍한 운명이 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하느님만 빼고 모든 것을 신(神)으로 삼았다


이 숭고한 실재로부터 당연한 결과로서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 이 두려움을 짓밟고 물리친 후 하느님을 제거한 체계화를 도모해 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주님께 대한 존경심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일부러 입밖으로 내뱉거나 고의로 남들에게 가르치거나 칭찬하고 상을 주기까지 하면서 홍수같이 쏟아내는 신성 모독적인 말들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어떤 기회에도 네게 말한 적이 있지만, 사람들은 하느님만 빼고 모든 것을 신(神)으로 삼았다. 돈, 더없이 추악한 정욕, 과학 따위 모든 것을! 그러니, 아들아, 이것이 대혼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대혼란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 -역주)고 했건만, 사람들이 오늘날 안식일을 어떤 모양으로 거룩하게 지키는지를 너는 알고 있다! 그들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고 특전미사를 생각해 내었다.... 주일(dies Domini).... 이 날은 과연 주님의 날이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데......


그러나 이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영과 신앙의 가치, 만물과 만인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께 대한 충성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물질이 하느님을 대신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물질이 영보다 우세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주일이면 경기장이 만원이고, 해수욕장이나 산에도 도시처럼 사람들이 붐빈다. 그들은 즐겨야 하는 것이다. 쉬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쓰든지 재미있게 놀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일을 주신 것은 일상적인 일에서 손을 떼고 피곤을 풀며 쉬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그의 품위와 운명과 영원한 참 행복을 잊지 않고 휴식과 기도로 스스로를 성화시키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님의 계획을 물질주의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빚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의 짧은 메시지가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쓸 수도 있을 터이니, 다른 말은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고의로 죄의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내 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대대적인 공작에 대해서 너에게 했던 말은, 단지 사람들이 핑계를 대며 변명하는 내적이고 외적인 큰 파괴 공작 고유의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 그 쓸데없고 사소롭기까지 한 핑계는 영혼 속에 신앙이 질식된 이들에게만 먹혀들 뿐, 올바르고 위대한 신앙의 통찰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도무지 먹혀들 수 없는 것이다. 이 통찰력은 물질과 시간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한없는 '빛'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아들아, 고의로 죄의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교회의 또 다른 기초 단위인 가정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기에도 대혼란이 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으니, 한창 해체 과정에 있는 가정에도 위기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은 가정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교국 국민이 이혼과 낙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에 대한 엄연한 확증이다......

가정이 한창 해체 과정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현대의 가정에서 영성을 앗아 가기에 이른, 참으로 악마적인 계획을 살펴보아라. 영적인 해이로 말미암아 여러 세대 전부터 기도를, 특히 가족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를 소홀히 여기게 된 것이다.


어떤 생명도 양분을 받지 못하면 유지될 수가 없다. 은총의 생명도 양분을 받지 못하면 소멸한다.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 신자 가정이 이처럼 되고 말았다. 일단 은총의 생명이 사그라지자 죄가 들어온 것이다. 결혼이 흔히, 너무나 흔히, 쾌락의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고, 그러니 모성을 거스르는 죄, 범죄 행위가 저질러지는 것이다....

악의 세력이 그들의 파렴치한 사업을 성취하려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신문 잡지며 영화나 텔레비전이 나머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 그만 하자.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어디든지 계시고, 악의 모든 세력보다 더 강하시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보속하여라!

(1978년 11월 16일 ②)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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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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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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