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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루카5,27ㄴ-3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0 조회수1,35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루카5,27-32)

 

제1독서<안식일을 존중한다면 >. (이사 58,9-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화답송 시편 86(85),1-2.3-4.5-6(◎ 11ㄱㄴ)

◎ 주님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

○ 주님귀를 기울이소서제게 응답하소서가련하고 불쌍한 이 몸이옵니다제 영혼 지켜 주소서당신께 충실한 이 몸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당신은 저의 하느님당신을 신뢰하나이다

○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오니주님이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주님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주님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애원하는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복음< 당신은 죄인을 회개시키러 오셨다> (루카5,27-32)

예수님께서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제1독서(이사58,9ㄷ~14)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13~14)

 

안식일 계명이 주어진 것은 안식일이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으로 제시될 만큼 중요한 규정으로서 이를 거룩하게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를 너무나 쉽게 어기고 거룩한 날을 속되게 하는 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날에 하느님 안에서 육신적영적 안식을 취하면서 즐거워하기보다 자신의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고 사사로운 일을 하여 거룩한 날을 불경한 날향락의 날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이같은 유다 사람들의 죄악상은 예레미야서 17장 21~23절에도 암시되어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목숨을 잃지 않으려거든 조심하여라안식일에는 짐을 지거나 예루살렘 성문으로 그 짐을 들여오지 마라안식일에는 너희 집에서 짐을 내가지도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마라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그러나 너희 조상들은 내게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은 목을 뻣뻣이 한 채 내 훈계를 듣지도 않고 받아 들이지고 않았다.'"

 

안식일 계명 준수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창조사업을 마치고 안식하셨던 것(탈출20,11)을 기리며 자신의 일 즉 세속적인 필요를 위한 노동을 일시 중단하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실상 농업과 유목을 주된 산업으로 하던 고대 세계에서 일주일 중 하루를 쉬는 것은 산술적으로 생산과 소득에 있어서 7분의 가량이 감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측면만을 생각하는 자들은 하루를 쉬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안식일에도 일을 하고 또 종들까지도 일을 시키기를 서슴치 않았다(레위26,35; 2역대36,21).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의 백성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보아라주님이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그래서 엿샛날에는 너희에게 이틀치 양식을 준다.그러니 이렛날에는 저마다 제 자리에 머무르고아무도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지 마라." (탈출16,29)

 

이러한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안다면마땅히 그날은 하느님 앞에서 안식해야 했으며 그 종들이나 자신들에게 속한 모든 이들과 더불어 안식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에 오직 눈에 보이는 경제적 유익에만 마음이 팔려 그날에도 종을 부리며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세속적 탐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여기서 '거룩한'이란 의미를 지닌 '코데쉬'(qodesh)는 안식일이 다른 6일과 구별되는 날이라는 사실과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바쳐야 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날에는 여기서 '네 일'로 번역된 것을 행해서는 안 되었다이에 해당하는 '하파체카'의 원형 '헤페츠'(hepets)는 원래 '소원', '', '기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사44,28; 48,14; 2역대9,12).

 

이러한 단어의 의미를 통해 거룩한 날 곧 안식일에 '네 일'(오락)을 행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표현은 단지 세속적 여흥을 즐기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운 소원자신의 육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다른 모든 날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날만큼은 더더욱 온전히 하느님께 구별하여 하느님을 위해서만 드려야 함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기쁨'에 해당하는 '오네그'(oneg)는 원래 전능자 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즉 이 단어에는 안식일은 인간의 육신적인 쾌락을 멀리하고 구원자 주 하느님을 즐거워하며 그를 기뻐하시게 하는 날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존귀한 날'에 해당하는 '메쿱바드'(mequbad)는 기본적으로 '무겁다'란 의미를 지니며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과 관련해 '영화롭다영화롭게 하다'란 의미를 지닌 '카바드'(qabad)의 강조 수동 분사형으로서 '영예로운'이란 의미이다.

 

이날을 이처럼 영예로운 것영광스러운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이 날을 제정하신 시원(始源)과 관련해서 '안식일은 하느님의 영광스런 창조가 완성되었음을 분명히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 안식일 준수 명령을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최초로 명하셨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이스라엘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모든 민족들 가운데 사제들의 나라로 세움 받은 이스라엘(탈출19,5~6)에게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기억하며 하느님께 예배하는 이 날은 존귀한 날영화로운 날이 아닐 수 없다.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을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이런 일들을 안식일에 행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을 찾는 것이란 표현은 세속적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일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놀러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13절 앞의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와 같은 의미이다.

 

'말하는 것을 삼가고'는 여기 말고는 신명기 18장 20절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는데거짓 예언자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거짓말을 지껄여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이것은 경건치 않고 속된 말을 함부로 쏟아내면서 지껄여 대는 것을 의미하는데안식일 준수에 방해가 됨으로써 단호히 금한다.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안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세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가 받는 세 가지 축복 중에 첫번째다.

주님을 즐거워하며(기뻐하며그로 인해 그분 안에서 누리는 기쁨(즐거움)은 영원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축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소유가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거룩하신 하느님을 추구하며 그분을 즐거워할 때 진정한 기쁨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는 자가 받게 될 두번째 축복인데여기에 쓰인 '내가 너를 ~달리게 하며'에 쓰인 동사의 원형 '라카브'(rakab)는 낙타나 말이나 나귀나 수레나 전차 등에 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이것은 공간적인 이동의 의미가 아닌 주변의 적들을 정복한다는 의미그들 위에 이름을 떨친다는 의미다른 이들의 칭송을 받게 될 것이란 의미를 함축하는 축복이다.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주리라'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는 자가 받게 될 세번째 축복인데하느님께서 그들을 야곱의 자손 즉 계약의 백성으로 인정하고 계약의 백성들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기업,유산,상속)을 다 공급해주시며 누리게 해 주신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우리는 매일 실패하는 죄인이지만 대속의 주님이 계시니 희망(용서)이 있습니다. 

 

(루카5,27-32)

27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 예수님 밖- 세상입니다. 세리, 앉아있는- 그 모두가 죄인을 뜻합니다. 세상이 주는 재물과 명예에 만족하는, 앉아있는 죄인입니다. 그 죄인에게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 하느님의 이름 - ‘있는 나입니다.(탈출3,14)

예수님께만 하느님의 생명(구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2베드1,3-4참조)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 레위가 알아들었습니다. 세관- 세상의 돈과 명예의 그 자신을 버리고 그 헛된 것에서 일어나 따랐다입니다.

그 따름의 결과가 잔치(축제)입니다. 그 말씀을 알아듣고 따르는 이의 삶은 잔치라는 것을 성경은 독자들에게 알아들으라, 보라.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하늘의 생명, 곧 구원(용서)을 받는다는 그 희망 속 기쁨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옥문 앞에 여기 들어오는 이는 희망을 버려라 라고 써있다지요?(단테의 신곡 중에서)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는 것이 죽음이며 지옥인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제단)에 앉았다.

= 예수님께 큰 잔치를? 잔치(카니발)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입니다. 고기 곧 제물(제사)없이 기쁘다는 뜻입니다. 제물없이 죄인들이 앉을 수 있는 식탁입니다.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신 그 속죄의 양식이신 예수님의 식탁이니까요~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 죄인들이 그냥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없으면 투덜거리게 됩니다. 죄인은 먹을 수 없다는 ~ 죄가 있으면 먹고 마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에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양식으로 오셨으니까요.’(루가12,12참조)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죄로 인한 죄의식과 죄의 삯인 죽음의 두려움, 그 모든 것을 치료하시는 의사 예수님 이십니다. 그리고 그 치료약은 소금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계약 그 말씀입니다.(레위2,13참조)

 

(민수18,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 그 계약(스타오로스 기둥)- 십자나무입니다. 그 십자나무 하나, 쓴물()이 단물(하늘)이 되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명입니다.(탈출15,25) 곧 세상()속으로 들어와 죽으신 하늘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성령의 법을 믿는 것, 하느님의 법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또한 그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요한5,3-4)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믿는 삶)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 그는 사람의 계명을 버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 맞습니다. 구원의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코린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우리는 매일 실패하는 죄인이지만 십자나무의 예수님으로 매일 승리하는 의인이 됩니다.

아멘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루카5,27-32)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31ㄴ-32)

 

루카 복음 5장 31절 이하는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를비난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침을 가하시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메시야이신 당신의 사명이 바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이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건강한'에 해당하는 '휘기아이논테스'(hygiainontes; healthy; whole)는 '건전하다', '바르다', '참되다'는 뜻을 지닌 '휘기아이노'(hygiaino) 현재 분사로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다'는 뉘앙스를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이것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9장 12절 마르코 복음 2장 17절에서 '육체적으로 건강한'이라는 뜻을 지닌 '이스퀴온테스'(ischyontes)가 쓰인 것과  비교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건강한 이들'이란, 종교적, 윤리적으로 올바른 이들이 아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스스로 올바르다고 자부하면서, 인간의 영적 악함을 깨끗하게 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불필요하다고 하며 거부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바로 당시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모두 지칭하며, 그 외에도 예수님을 필요하지 않다고 거부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병든'에 해당하는 '카코스'(kakos; sick) 육체적으로 병들고 허약한 것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에, '병든 이들'이라는 표현에도 '죄인들'이라는 뜻이 있다.

 

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정해 놓은 종교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하느님 대전에 진실로 구원자를 필요로 하여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을 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

 

'의사'에 해당하는 '이아트루'(iatrou; a physician; a doctor)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위해 오신 분이며, 마태오 복음에서 잔치에 초대되어 온 모든 죄인들도 그 중에 포함될 것이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이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은 예수님께 선택 받을 수 있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계속해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율법주의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선택에서 영원히 제외될 것이다.

 

한편, 루카 복음 5장 32절의 '회개시키러'에 해당하는 '에이스 메타노이안'(eis metanoian; to repentance)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9장 13절과 마르코 복음 2장 17절에는 없는 루카 복음사가만의 특별한 표현이다.

 

'회개시키러'로 번역된 '메타노이안'(metanoian)의 원형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을 고치다'라는 동사 '메타노에오'(metanoe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이다.

 

루카 복음 5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막연히 죄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님을, 루카 복음 5장 32절에서 죄인들을 선택한 목적을 분명하게 언급하시면서 밝히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를 인식하고 참회하는 죄인들의 마음을 고쳐서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부정하게 여겨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죄인들과 함께 친교를 나눔을 밝히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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