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0 조회수1,218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극히 자비하신 주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잘못을 참아 주시며, 주님의 계약을 세대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사순 시기에, 우리 모두 마음을 기울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참된 회개로 나아갑시다.

 

1독서(홍수에서 구원된 노아와 맺은 하느님의 계약)

창세기의 말씀 9,8-15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2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지 않겠다하시며,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2독서(이제는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베드로 13,18-22

사랑하는 여러분, 18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19-20ㄱ절은 죽었다가 생명을 받은분이 하신일을 말한다. 19절의 영들은 누구일까? ”(프네우마)은 천사로 알아들을 수도 있고 영혼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 전통적인 옛 가톨릭 해석에 의하면 구약의 의인들이지만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라 하나 의인들을 뜻할 수 없다. 창세 6,1-4에서 말하는 범죄한 하느님의 아들들”,즉 벌을 받은 천사들을 생각할 생각할 수도 있다.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에 이 구절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 이들은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고,또 인간들이 아주 큰 죄를 범하도록 유혹했기 때문에 하느님이 이들을 지하 감옥에 심판날까지 가두셨는데 ,에녹이 하느님의 명으로 파견되어 그들에게 평화를 얻지 못하리라는 판결을 전했다는 것이다. 신도들이 에녹에 관한 이 이야기의 뜻을 바꾸어 그리스도에게 적용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다시 말해,이제 그리스도께서 그런 천사들에게도 당신 고난의 효과를 미치게 하여 그들의 구원까지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에녹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천사들을 위해서도 유효하다는 말은 찾아 볼수 없고 오히려 그분은 천사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돌보아 주신다.”는 말이 있고, 여기 22절에서도 그리스도는 천사들을 복종시켰다고 했으니 그런 해석은 의심스럽다. 감옥에 있는 영들을 노아 시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랍비들에 의하면 노아 홍수 때의 사람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니그들 영혼들은 결정적으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희망이 하나도 없었던 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으니,“의로우신 분이실제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죽으셨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의 수난은 문자 그대로 모든 이들을 위한 대속적 수난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20-21 절에서 순종한 이들의 구원에 대해 말한다. 멸망할 위험성을 잊지 말라는 권고다. 20ㄴ절은 방주에 들어가 물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홍수의 물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었고물을 통과하여 방주에 들어가는그 과정 전체가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이다.

 

1고린 10,1-2에서도 바오로는 홍해를 통과하는 과정 전체가 구원을 가져온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필자는 이런 구약 사건들을 신약 시대의 예형으로 본다. 21절의 선한 양심을 청한다”는 것은 죄사함을 비는 것을 뜻한다.

 

필자가 이용한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고백문의 마지막 구절인 것 같다. “하느님 오른편에 계시다는 말은 로마 8,34ㄴ고 똑같은 표현인데, 시편 1101의 말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적용한 것이다. 로마 8,34에서는 오른편에 계시는분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는역할을 하는 데 반해, 여기서는 같은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종말의 우주적 통치자로 고백한다.

 

천사, 권세, 능력등의 존재들은 고대 우주관에 의하면 허공을 지배하는 세력들이다. 그리스도는 이 허공을 지나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이들을 복종시켰다는 것이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씨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마르코 복음 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사십은 상징적 숫자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사막에서 지냈고 모세는 40일 동안 시나이 산에서 단식했으며,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40일을 걸어 호렙 산으로 갔다.

 

-.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약하기에 앞서 실제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을까? 유혹사화를 일단 제외하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 사료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유혹사화는 사실보도가 아니고 서상적 서술이라고 보는 견해가 옳겠다. 무릇 위인들이 크나큰 시련을 극복한 다음에야 입신양명한 것처럼 예수님도 세상에 나서기에 앞서 사탄의 끈질긴 유혹을 물리쳤으리라는 생각에서 유혹사화를 꾸몄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연 사실무근한 사화라고 속단해서도 안된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공적으로 활약하는 동안 사탄을 물리치고 유혹을 뿌리치셨다. 유혹사화를 꾸민 전승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처신을 참작했을 것이다.

 

-. 유다인들은 악령들의 두목을 사탄,베엘제불 또는 엘리아르란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의 지배자라 한다. 사탄은 그리스어로 디아볼로스 우리말로 마귀혹은 악마란 번역한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40일 동안 계속하여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는데 그 유혹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어록의 유혹사화에서는 일단 40일이 지나고서 세가지 유혹을 받으셨다 한다.

 

이상적인 메시아 시대가 오면 사나운 들짐승들이 유순하게 되어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이 지내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때가 다 되어 예수 메시아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신다. 어록의 유혹사화에는 이런 말이 없다.

 

천사들이 40일 동안 계속하여 시중 들었다 한다. 시중은 주로 음식을 드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혹사화에서는 예수님이 40일 동안 내내 단식하였다고 한다.

 

-.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을 체포하여 사해 동쪽에 있는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다. 요한이 활동을 마친 다음에 예수님은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청중은 그분을 요한이 소생한 것인 줄로 착각할 수 있었다. 요한이 주로 유다지방 요르단 강 유역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주로 갈릴래아 지방 겐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활약하셨다.

 

복음이란 낱말과 더불어 하느님의 복음이란 표현도 초대교회에서 바오로가 맨 먼저 사용한 것 같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이 두 사건에 하느님이 깊이 개입하셨기 때문에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이라 했다. 이제 마르코는 바오로에게서 비롯한 표현을 빌리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바꾸었다. 하느님의 복음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전갈을 가리킨다.

 

15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약해 놓았다. 유다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한다. “때가 차서는 역사가 완성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임금으로서 자연계와 인류역사,특히 이스라엘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이는 은밀하고 잠정적인 통치다. 그러다가 역사가 완결될 때가 되면 하느님이 공공연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 왕도를 펴실 줄로 유다교,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고대했다.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말 통치라 한다. 이제 하느님께서 환히 그리고 힘차게 당신 왕도를 펴실 때가 다가왔다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종말 통치가 아직은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곧 실현될 것이다. 그 통치는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종말론적 통치의 미래성과 현재성인데 예수님은 그 통치의 두 가지 성격을 다 강조하셨다. ,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당신 인품과 업적을 통해 은연중에 종말론적 통치를 이미 실현하기 시작했고 오래지않아 완벽하게 실현하실 것으로 기대하셨다.

 

예수께서 강조하신 하느님 나라의 특징 두 가지만 더 지적한다. 묵시문학계나 요한 세례자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구원론적 성격을 강조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구원을 더욱더 열망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소외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셨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하느님 자신이다. “하느님의 나라”,직역하여 하느님의 왕정은 임금님으로서 환히 그리고 힘차게 선정을 베푸시는 하느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느님이 다가오셨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로 간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인간이 취할 태도는 회개믿음이다. 회개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라면 여기 믿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