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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제1주일독서묵상/ 하느님의 언약과 노아의 반응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1 조회수99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2. 21. 사순제1주일독서묵상

공동번역성서

 

 하느님의 언약과 노아의 반응

 

(창세6:822 9:8~17)

6,8 그러나 노아만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 9 노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그는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 10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이렇게 세 아들을 두었다. 11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12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사람들이 하는일이 땅 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13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 버리기로 하였다. 14 너는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어라배 안에 방을 여러 칸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15 그 배는 이렇게 만들도록 하여라길이는 삼백 자나비는 오십 자높이는 삼십 자로 하고, 16 또 배에 지붕을 만들어 한 자 치켜 올려 덮고 옆에는 출입문을 내고상 중 하 삼층으로 만들어라. 17 내가 이제 땅 위에 폭우를 쏟으리라홍수를 내어 하늘 아래 숨 쉬는 동물은 다 쓸어 버리리라땅 위에 사는 것은 하나도 살아 남지 못 할 것이다. 18 그러나 나는 너와 계약을 세운다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에 들어 가거라. 19 그리고 목숨이 있는 온갖 동물도 암컷과 수컷으로 한 쌍씩 배에 데리고 들어 가 너와 함께 살아 남도록 하여라. 20 온갖 새와 온갖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온갖 길짐승이 두 마리씩 너한테로 올 터이니 그것들을 살려 주어라. 21 그리고 너는 먹을 수 있는 온갖 양식을 가져다가 너와 함께 있는 사람과 동물들이 먹도록 저장해 두어라.' 22 노아는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9,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9 '이제 나는 너희와 너희 후손과 계약을 세운다. 10 배 밖으로 나와너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들짐승과 그 밖에 땅에 있는 모든 짐승과도 나는 계약을 세운다. 11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 버리지 않을 것이요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 12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13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15 나는 너뿐 아니라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 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할 것이다.' 17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이다.' 하고 다시 다짐하셨다.

 

오늘 본문에는 계약(언약)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노아 계약과 그 계약에 반응한 노아의 행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메시지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계약은 우리가 지금 읽어본 바대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하나는 홍수전에 하느님께서 온 세상을 다 하실 것이지만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는 방주를 짓게 하고 방주 안으로 넣어 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또하나는 홍수 후에 무지개를 주시면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약속 두 가지입니다.

그 두 약속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하느님은 하느님과 당신의 백성들의 궁극적 안식을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죄악의 세력을 다 청소하실 것인데 그 중에서 창세전에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당신의 은총을 부으시고 방주 안으로 건져 내셔서 그 멸망의 홍수 속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절대 홍수 의 인간들이 홍수 보다 나아지거나 착해졌기 때문에 두 번째 계약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노아의 계약의 두 번째 부분은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계약인 것입니다.

 

(창세8:2021) 20 노아는 야훼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한 들짐승과 정한 새 가운데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 바쳤다. 21 야훼께서 그 향긋한 냄새를 맡으시고 속으로 다짐하셨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마련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다시는 전처럼 모든 짐승을 없애 버리지 않으리라.

 

하느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근거는 세상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했기에가 아니라 세상이 여전히 악해서입니다이 구절에는 두 가지의 아주 중요한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21절에 나타난 것처럼 하느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언약을 주시는 근거가 세상은 어떠한 경고의 나팔에도 절 대 스스로 선해질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어떠한 다른 방법을 쓰시겠다는 암시이고(은총), 두 번째는 20절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방주 안에 숨겨져 건짐을 받은 존재들은 정결한 제물의 희생으로 말미암게 되는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20절을 보면 애석하게도 부정한 짐승들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정결한 짐승이 제물로 제단에 바쳐집니다그 말은 부정한 것들이 정결한 것의 희생으로 살아나게 됨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이렇게 하느님은 창세전에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온전한 당신의 은총으로만 건져내실 것임을 노아의 계약 안에서도 반복해서 천명하고 계십니다.

 

(창세7:2,8-9) 2 깨끗한 짐승은 종류를 따라 암컷과 수컷으로 일곱 쌍씩부정한 짐승은 암컷과 수컷으로 두 쌍씩, 8 또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그리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도 암컷과 수컷 두 쌍씩 노아한테로 와서 배에 들어 갔다노아는 모든 일을 야훼께 분부받은 대로 하였다.

 

여기보면 하느님께서 노아의 방주 속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모두 태우게 하십니다도대체 부정한 짐승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부정한 짐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요그 반대로 정결한 짐승은 뭘 그렇게 잘 했기에 정결한 짐승이 되었나요그냥 하느님께서 너는 정결한 짐승너는 부정한 짐승 이렇게 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짐승들을 분류할 때 그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별이 있나요지금은 없지요그럼 왜 하느님께서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또 제사의 규례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가르셨을까요거기서 부정하다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타호르로는 결코 깨끗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그러면 그토록 더러운 것들은 그냥 방주 밖에 두시면 되잖아요그런데 왜 그토록 더러운 것들까지 방주 속에 넣어서 구원을 하십니까?

하느님은 거기에서 구원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힌트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한 가지는 정결하고 부정한 것은다른 말로 구원받을 자들과 구원에서 유기된 자들은 하느님의 기쁘신 뜻대로하느님 마음대로 정하신다는 것이고(정결하고 부정한 것들을 하느님 마음대로 정하셨으므로또 하나는 너무 너무 더러워 다 홍수 속에 넣어서 죽여 버려야 할 것들이 정결한 제물의 희생으로 살아나게 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분류 속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가 끝나자 정결한 짐승들이 죽임을 당하고 하느님은 그 정결한 짐승이 제단에서 불타는 냄새를 기쁘게 흠향하신 것입니다이렇게 노아의 홍수 사건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내용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지요노아의 이름이 안식입니다.

 

(창세5:2829) 28 라멕은 백 팔십 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고 지어 주며 '이 아들은 야훼께서 땅을 저주하시어 고생하며 일하던 우리를 한숨 돌리게 해 주리라하고 외쳤다.

 

여기서 한숨 돌리게(안식’)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노아입니다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생의 내용 등의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했지요?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뜻이 列國의 아버지이지요그 이름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입니다말라기의 내용이 뭡니까?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리라입니다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입니다그래서 나훔서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심판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하께는 축제잔치절기라는 뜻입니다따라서 하께서는 성전이 재건되고축제와 잔치가 열리며 성전에서 절기를 지키는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즈가랴는 하느님이 기억하심이라는 뜻이고요나는 어리석은 비둘기라는 뜻입니다이렇게 고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요약한 것이기도하고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그 사람의 정체성을 총칭하고 요약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노아의 이름이 안식입니다.

하느님은 노아와 홍수 사건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안식에 대해 성경의 수신자인 교회들에게 설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그 안식은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심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그게 홍수입니다.

우리가 몸이 고단할 때 집에서 푹 쉬고 싶은데 집 안이 너무 더러우면 푹 쉴 수 있나요침대위에는 개털이 가득하고 이불은 몇 달을 빨지 않아서 냄새가 진동하고 베개에는 땀 냄새가 배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제대로 쉼을 얻을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위로와 안식이 온전하게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들과 지저분한 것들이 싹 청소가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심판입니다따라서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세상 심판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안식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그 것을 아는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의 날을 오히려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세상은요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우리는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을 바라볼 때 두려움 보다는 이제야 우리 주님이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다 청소 하시려나?’하는 기대의 마음이 더 커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최종적인 위로와 안식을 약속하시면서 그 약속을 당신의 약속이라고 표현을 하십니다본문 17절과 18절을 보세요.

 

(창세6:1718) 17 내가 이제 땅 위에 폭우를 쏟으리라홍수를 내어 하늘 아래 숨 쉬는 동물은 다 *쓸어 버리리라땅 위에 사는 것은 하나도 살아 남지 못 할 것이다. 18 그러나 나는 너와 계약을 세운다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에 들어 가거라.

 

(창세9:910) 9 '이제 나는 너희와 너희 후손과 계약을 세운다. 10 배 밖으로 나와너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들짐승과 그 밖에 땅에 있는 모든 짐승과도 나는 계약을 세운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가 안식을 취하게 하시겠다는 계약을 하시면서 내 계약이라 말씀하십니다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면서도 그 약속을 가리켜 내 계약이라 부르십니다.

그 말은 그 하느님의 계약은 인간이 그들의 열심을 보태거나 도와서 이루어지는 언약이 아니라 하느님이 혼자서 이루어 내시는 하느님의 계약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그래서 내 계약입니다그 계약이라는 단어 베리트는 원래 자르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계약을 할 때 항상 고기를 쪼개놓고 그 사이로 언약 당사자가 지나가는 의식을 행했기 때문에 계약이라는 단어가 베리트가 된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언약을 가리켜 나의 계약이라고 하십니다그 말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시면서 쪼갠 고기 사이로 하느님께서 홀로 지나가셨던 사건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당신의 계약(언약)을 인간의 도움이나 인간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당신 홀로 세우시고 완성하실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그 사실은 방주의 구조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방주는 삼층으로 되어 있습니다그 방주는 삼층 천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모형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방주의 조감도를 하느님이 그리십니다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에 의해 계획되고 하느님에 의해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하느님의 나라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됩니까방주의 문은 안에서 닫을 수 없는 문입니다방주의 문은 하느님이 밖에서 닫아 주셔야 합니다구원은 하느님에 의해 계획되고 하느님에 의해 완성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의 창문은 단 하나인데 16절을 보면 그 창은 위에서부터 한 규빗 깊이로 내야 합니다그런데 16절에서 위에서부터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마알은 70인 역에서 아노뗀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우리가 전에 요한복음 공부 할 때 배웠듯이 그 헬라어 아노뗀은 예수님이 잘 쓰시던 단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고 답을 하신 장면이 기억나세요거기서 쓰인 단어가 아노뗀입니다그러니까 방주의 창문은 유일 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창이었는데 그 창이 하늘을 향해 나 있었고 위로부터 나 있었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은 오직 하늘만을 희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창이 위로부터 난 것이라는 어구 속에서 그 하늘 희망은 오직 하늘에서부터 선물로만 주어 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하느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하느님이 주시고 싶은 자들에게 은총으로 거저 주시는 것이지 우리 인간 측에서 무언가 공로(功勞)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을 신학에서는 계약 안에 있는 자라 표현을 하기도 하고그 은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자들을 가리켜 계약 밖에 있는 자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방주는 하느님의 계약이다라고 도 이야기 합니다맞습니다.

하느님의 언약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서 완성이 되는 것이므로 방주는 하느님의 계약이다라는 명제는 참인 것입니다그런데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지요따라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노아의 계약(言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세전에 당신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 택한 백성들을 당신의 진노(震怒)로부터 구원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넣으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는 천국의 현실을 완성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수단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느님은 역사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의 모형에 해당하는 작은 약속들을 끊임없이 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내십니다이 역사는 하느님의 언약의 성취의 현장인 것입니다그 언약 안에 우리 성도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이고 그 하느님의 언약은 반드시 지켜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안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을 믿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우리가 서두에 살펴본 것처럼 하느님은 이 땅의 모든 숨쉬는(氣息것들을 다 쓸어버리시겠다는 공포(公布)와 함께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 방주(方舟)를 지으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 방주 안으로 넣으셔서 살려 내시겠다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언약을 믿고 그 때부터 방주를 지었습니다따라서 노아에게 있어서 방주라는 것은 하느님의 계약이었습니다그리고 노아가 방주를 짓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노아가 그 계약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세7:23) 23 이렇게 야훼께서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짐승들길짐승과 새에 이르기까지 땅 위에서 살던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셨다이렇게 땅에 있던 것이 다 *쓸려 갔지만노아와 함께 배에 있던 사람과 짐승만은 *살아 남았다.

 

이렇게 방주라는 하느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자들만 살아남습니다그런데 언약이라는 단어는 약속과 계획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 들어 있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느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을 의로운 자라 부르고, ‘거룩한 자라 부르는 것입니다마치 하느님 마음대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어서 이러한 종류는 정결하다고 해라그리고 저러한 짐승들은 부정한 짐승이라 해라고 하느님 마음대로 정하신 것처럼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도 하느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하느님의 계획과 약속을 따라 그냥 정결한 자거룩한 자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로마9:1113) 11 그 아들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따라서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선행을 보시고 불러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불러 주시며 선택의 원리에 의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13 그것은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오는 미워하였다라고 기록된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이지요이 십자가로 말미암은 은총의 선택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방주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노아는 자기가 뭘 잘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의인이 된 것이고 완전한 자로 간주(看做)가 된 것입니다그 은총의 교리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아와 일곱 식구가 방주 안으로다른 말로 언약 안으 로 구별되어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쓰레기처럼 더럽게 패괴하고 강폭(强暴)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부은 어떤 자들을 구별해서 건져 내시는 것을 가리켜 의로움이라하고, ‘거룩이라하는 것이며 완전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잘 구별해야 합니다. ‘나 거룩이나 하느님 앞에서의 완전함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구별하셔서 방주에 넣으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서운 명령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 하라는 말씀에 겁을 먹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꼴을 보면 절대 난 완전함에 이를 수 없는 자인데 어떻게 그 하느님의 말씀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하느님께서 구별시켜서 계약 안에 집어넣은 자들은 노아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로 여겨 주시는 것이고 반드시 새로운 몸 안에서 그렇게 만들어 내실 것이니까요따라서 여러분은 이미 운명적으로신분적으로영적으로 하느님처럼 완전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우리는 저마다 방주 속에언약 속에 들어와 있는 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그렇다면하느님의 언약 속에 들어 있던 노아가 방주를 짓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함으로 그가 하느님의 계약 속에 들어 있던 자라는 것을 증명했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언약 속에 들어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우리에게서도 분명 세상과 구별되는 어떤 증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고 방주로 들어가는 노아의 그림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어야 합니까노아가 방주 속으로 들어간 것은 비가 아직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을 때입니다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비가 안 오면 바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아는 방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객관적인 정황으로 볼 때 충분히 내가 바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을 행위로 보여주는 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도 똑같이 이 세상에 믿음을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은 나의 죄를 속()하시고 나를 구원하셨으며 이제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방주를 탄 이 시대의 노아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마치 나에게는 보이는 분처럼분명히 내 안에 살아계신 것처럼믿음으로 사는 모습이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언약은 분명 완성이 되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지금 우리 세대에서 방주를 짓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하느님은 지금 우리의 세대에도 노아의 홍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경고의 메시지를 똑같이 주셨습니다아니 더 무시무시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베후3:12) 12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경고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베후3:36) 3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고 말할 것입니다. 5 그들은 아득한 옛날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땅이 물에서 나왔고 또 물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6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조롱거리로 삼습니다정말 그렇다면 왜 지금 아무런 징조가 안 보이냐는 것이지요거기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베후3:79) 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오래 참으심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그러니 지금 회개의 기간 동안에 얼른 회개하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에 올라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불타는 종말을 눈으로 보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며 그 종말을 보는 자들로서 그 종말을 준비하는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으로 방주를 짓는 자들이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그들은 아직도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하느님께서 완전한 자로완전한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3:2124)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 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노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으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값 없이 완전한 자로 간주(看做)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5:1)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확실하지요우리는 노아처럼 세상이 바보라고어리석다고 조롱하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완전한 자의로운 자가 되어 하느님의 방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믿는 길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당(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치고 예수를 안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느님은 분명 예배당(성당안에 가라지들이 무수히 많다고 하셨습니다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무엇으로 구별이 될까요다른 말로 방 주 안에 들어 있는 자와 방주 밖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베전2:68)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귀중한 돌 하나를 골라 머릿돌로서 시온에 두었다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이 믿는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입니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며 8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요 장애물이 된 바위입니다그들이 걸려 넘어진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탓이며 또한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보면 예수를 믿지 않는 자를 가리켜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그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변화를 반드시 수반하게 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다른 말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하던 자들이 너는 죽고 하느님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믿는 자의 행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물론 실수나 실패는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여전히 삶의 전 영역에서 세상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라고 우기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저 예수는 하느님이고 그 분이 실제로 존재하셨으며우리를 위해 골고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는 사실에 대한 知的 동의에 불과하다면 귀신들도 전부 의인이 되어야 하고 그들도 전부 천국에 가야 합니다.

 

(야고2:19) 19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그것은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그런 종류의 믿음은 귀신들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마귀들도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줄을 압니다그리고 그 분이 언제 오셔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루가8:2728) 27 예수께서 뭍에 오르셨을 때에 그 동네에서 나온 마귀들린 사람 하나와 마주치시게 되었다그는 오래 전부터 옷을 걸치지 않고 *집 없이 무덤을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28 그는 예수를 보자 그 앞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예수님왜 저를 간섭하십니까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하고 크게 소리질렀다.

 

그렇지요그렇다면 우리 성도의 믿음과 귀신들의 믿음은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우리 성도의 믿음이 귀신들의 믿음과 다른 것은 우리 성도들의 믿음은 귀신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하느님의 성품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행위가 수반된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품과 하느님의 거룩한 것들이 우리 안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느님의 처소가 되어 질 때에 하느님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것이기에 귀신들은 절대 그러한 참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이렇게 성도가 하느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되어지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느님의 언약 안에 있게 된 자들의 삶 속에서는 노아처럼 순종의 삶이 보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자기 부인의 삶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신 도구요 방법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자기를 비우고 자신을 죽여 하느님과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에게서는 반드시 그 십자가의 삶과 자기 부인의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성도의 삶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자기 부인의 삶과 새로운 몸으로의 부활의 삶이 실재화(實在化, actualize) 되어지는 것이 반드시 보여 지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우리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그 삶이 곧 새로운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면 반드시 우리의 인생 속에서 그 십자가와 자기 부인과 부활의 actualize(실재화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십자가와 부활은 죄악된 옛 몸이 죽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이웃을 용서해 주고참아주고사랑해 주고평화롭게 해 주는 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 내가 죽는 것(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던 세상 왕으로서의 옛 몸이 죽고 자기를 죽여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는 새로운 부활의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성도의 믿음과 귀신의 믿음은 그렇게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악마의 도구로 쓰여 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예배당(성당안에서 예수를 믿는 척 할 수 있습니다예전에 어떤 이단 종파에서 나누어 준 dvd를 본 적이 있습니다그들은 자신들 만이 온전히 예수를 믿는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교회들은 전부 괴멸(壞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보니까 앞에서 교육을 하는 교육자가 자기 교회 교인들을 세상의 다른 교회들에게로 들어가서 그 교회들을 공중분해 시키고 오라고 파송을 하면서 그 파송(派送에서 이르는 주의 사항이 이러했습니다.

첫 번째가 교회에 잠입을 하거든 그 교회에서 가장 경건한 자라는 평판을 얻어내라였습니다그리고 두 번째가 그 교회 牧者와 가장 친해져라였습니다그리고 세 번째가 牧者와 친해지거든 교인들과 牧者와의 문제점을 파악해서 교인들과 목사(사제)와 싸움을 일으켜라입니다그렇게 해서 교회를 공중분해(空中分解시키라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출정(出征)식을 갖고 자기들이 깨야할 교회로 경건한 껍질을 쓰고 잠입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런 사람들이 수년 간 성당(교회)에 들어가서 호시탐탐 교회를 깰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교회 안에는 마귀의 가라지들도 경건한 탈을 쓰고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러한 마귀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그들은 절대 진심으로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절대 자기가 부인되고 다른 이들이 인기를 얻는 모습을 참아내지 못합니다이렇게 진짜 믿음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따라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낮아지고작아지고섬기고용서하고사랑하고자기 몸을 죽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들만이 진짜 언약 안에방주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얼마든지 하느님 앞에서도 연극을 할 수 있습니다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고요여러분은 과연 방주 속에 들어와 계신 분입니까아니면 여전히 방주 밖에서 방주를 짓는 노아들을 향해 비웃음을 보내는 분들이십니까?

 

(창세6:22) 22 노아는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보십시오은총을 입은 노아는 하느님의 은총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지가 믿어지자 하느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을 했습니다그렇다고 노아가 세상과는 담을 쌓고 120년 동안 방주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바로 위 21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120년 동안 식량도 저축을 하라고 하셨습니다따라서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그와 그의 식구들의 생계에 필요한 농사도 열심히 지어야 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하면서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그러나 노아의 그러한 일상생활은 방주를 짓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노아의 관심(觀心)은 온통 방주에 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우리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예수를 믿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수반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데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과 직업과 사회생활과 교회 생활에 최선을 다함으로 그 일상의 삶들을 우리 신앙 성숙의 도구로 잘 쓰면 되는 것입니다노아의 일상생활은 하느님의 명령인 방주를 짓는 일을 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인들의 삶은 노아가 그랬듯이 우리의 뜻이 아닌우리의 꿈과 비전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목적이 성취되는데에 기여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성도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잘 반사해 낼 수 있는 하느님의 처소로 아름답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사람하느님의 계약 안에 들어 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늘만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창문이 하늘을 향해 한 개밖에 뚫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약 안에는 세상으로 난 창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하늘만을 희망하며 바라보고 계십니까?

 

(골로3:13) 1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3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자들다른 말로 방주 안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은 자들은 세상 것땅의 것이 아닌 위엣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노아가 백 이십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온갖 세상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하느님의 약속만을 바라고 믿었던 것처럼창일(漲溢)하는 홍수 속에서 일년하고도 십칠일을 방주 속에서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며 하느님만을 희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방주 안에언약 안에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로서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과 하늘의 것을 희망하는 자로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유일한 증거여야 하는 것입니다.

 

(베후3:1014)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그 날이 오면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14 사랑하는 여러분여러분은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만큼 *티와 흠이없이 살면서 하느님과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 앞에서 티()도 없고 흠도 없이 평화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는 것이것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방주 짓기인 것이며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들은 반드시 세상을 향해 안타까움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경고의 메시지를 삶으로 입으로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후2:5) 5 또 하느님께서는 옛날 사람들이 당신을 배반했을 때에 홍수를 내리셔서 그들을 가차없이 벌하셨습니다그러나 정의를 부르짖던 노아의 일가 여덟 사람만은 살려 주셨습니다.

 

성경이 노아를 가리켜 정의를 부르짖는 노아라 부르고 있습니다그러니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正義가 무엇인지를 입으로 삶으로 전파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따라서 노아는 성경에 나오는 복음 전파자들 가운데 가장 긴 세월을 使役한 사람이었습니다그렇잖아요? 120년을 사역한 예언자나 복음 전도자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도 읽어보았지만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습니다하느님의 계약은 그냥 세상이 악해서 다 쓸어버릴 것이니까 너는 방주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라였습니다그런데 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하느님과 동행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따라서 그는 하느님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그 마음을 그대로 자신의 삶에 담아서 세상에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니까 노아의 복음전파는 하느님의 세상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느님과 동행하면서 6장 6절의 하느님의 한탄과 근심을 보고 느낀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그 사랑하는 하느님 의 마음을 자신의 삶과 입으로 대변을 한 것입니다그게 바로 오늘날 복음 전도자들에게 필요한 마음인 것입니다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로서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바로 나는 하느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나는 정말 하느님의 뜻과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있는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는 그들의 복음 전파가 악인들의 구원보다는 심판 예언의 성취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는 것입니다그 대표적인 사람이 요나 예언자였습니다.

그 요나 예언자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니느웨이를 멸망시키셔야 한다는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진짜로 니느웨이가 하느님 앞에 회개를 하자 화를 내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땡깡을 부리지요여러분 전도자의 염원은 세상의 멸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전도자의 염원은 구원의 희망에 맞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왜 하느님이 시키지도 않은 의 복음을 전파했겠습니까하느님께서 세상의 호흡하는 것들을 다 죽여 버리시겠다고 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는데 방주를 딱 한개만 지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그 말은 심판의 홍수 속에서 살아 날 수 있는 생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하느님은 그 방주 안에 동물들이 더 많이 타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그런데 노아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였기에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안타까움과 그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노아는 그 하느님 의 안타까운 마음을 자신의 입과 삶으로 세상에 전한 것입니다.

제발 이 방주가 더 이상 필요 없게 어서 어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나는 이미 구원 받아서 괜찮은데 너희는 이제 큰일 났다아이고쌤통이다’ 가 아닌 것입니다여러분복음은 심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레18:78) 7 나는 한 민족 한 나라를 뽑아 뒤엎어 없애 버리기로 결심하였다가도 벌하려던 민족이 그 악한 길에서돌아 서기만 하면 내리려던 재앙을 거둔다.

 

(베후3:9)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요한3:17)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인 것입니다그러나 하느님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만 당신의 생명을 불어 넣으실 수 있습니다그래서 어떤 한무리를 택하셔서 그들을 당신께 순종하는 의로운 자들로 다시 만드셔서 방주 안에다가 넣으시는 것입니다.

노아가 바로 그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의를 전파하는 복음 전파의 사역 에 투신(投身)을 한 것입니다그러한 하느님의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난 곳이 요나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나3:4) 4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하룻동안 돌아 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고 외쳤다.

 

하느님의 경고가 이러합니다. ‘사십일 후에 니느웨이가 무너질 것이다가 하느님의 경고였습니다그런데 하느님은 그 니느웨이를 무너뜨리지 않으십니다.

 

(요나4:1011) 10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와하느냐? 11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이게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하느님은 변덕이 죽 끓듯 하시는 분이라는 둥 하느님은 일구이언 하시는 분이라는 그런 망발(妄發)을하면 안 됩니다하느님은 이러한 장면들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하느님의 마음을 꺼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노아는 그 사랑의 하느님용서의 하느님자비의 하느님의 안타까움을 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정말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계약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면방주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차원을 넘어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헤아려 하느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지 까지 고민하고 묵상하며 행동에 옮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향하여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혹은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여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로 그들에게 대응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은 이렇게 당해 주지만 심판 때가 되면 너희들 큰 코 다치게 될 거다’ 이렇게 그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고 계십니까아닙니다.

자신을 향해 바보라고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우리 하느님은 당신들이 회개하고 참회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와 이 방주에 모두 타기를 원합니다그러니 어서 어서 그 죄악의 자리에 서 돌이켜 이 방주로 오르세요.’라고 하느님의 의의 전파를 위해 몸을 던졌던 노아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 하느님의 심장으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원수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해 주며원수를 위해 그들의 발을 닦아주고원수를 섬겨 주셨던 우리 주님의 그 삶을 쫓아 우리도 이 땅에서 그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 보십시다성도의 삶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삶의 actualize(현실화현장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너무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 감당 할 수 없는 은총을 부어주신 우리 하느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원수임에도 사랑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계신 여러분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여러분 우리 그 하느님의 뜻과 심중을 좀 헤아려 이제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한 발 한발 경주해 나가십시다.

어떤 사람들은 성당에 나와서 종교 행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방주 짓기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노아가 120년 동안 3만 5천 톤에 육박하는 커다란 방주를 자기와 자기의 세 아들들과만 지었겠습니까그건 불가능합니다전문적인 목수들이나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을 임금을 지급하고 고용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아와 함께 방주를 짓기는 했지만 하느님은 노아만 방주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그 말은 진짜 방주를 짓는 것은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배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의 진짜 방주 짓기진짜 신앙생활은 성당안에서의 번지르르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여러분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이기적인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열심히 나를 죽이고열심히 하느님을 사랑하며열심히 우리의 이웃들을 섬겨 주자고요그게 진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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