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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6,7-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3 조회수1,22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주님의 기도 (마태6,7-15)

 

1독서<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이사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화답송 시편 34(33),4-5.6-7.16-17.18-19(◎ 18ㄴ 참조)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주님을 바라보아라기쁨이 넘치고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55,10-11)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죄인은 제 길을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6~7)

 

오늘 독서 이사야서 55장 10~11절의 말씀은 55장 6~7절의 말씀이 천지가 개벽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예로 들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서 55장 6~7절은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바로 그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며이 말씀에 따라 죄인이 돌아올 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땅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않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이러한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주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야 만다하느님께서는 한 번 뱉은 말씀이 성취되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리 있으랴이야기만 하시고 실행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비가 내리면 그 중에서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늘에서 한 번 내린 비는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땅은 생산력을 갖게 되어 있다.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데 있으며하느님의 말씀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자연 법칙을 통해 비유하는 데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촉촉히 적셔서 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인간에게 양식을 준다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인간 영혼을 살리며 삶을 풍성하게 하는 영적 양식이 된다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 영혼을 살리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판단력과 완전한 지식과 총체적 계획과 영원한 경륜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헛되이 사라지거나 허망한 것으로 끝맺는 일은 결코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 것이다.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이유 접속사 ''(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헛되이 그냥 돌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그것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가 뜻하는바'에 해당하는 '아셰르 하파츠티'(asher hapatsthi)는 문자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혹은 '내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사실인데이것은 당신의 의롭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속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절대 주권에 근거해서 반드시 성취되며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그분의 성품에 부합된 것으로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축복이 되고 아름다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그의 마음속에서 계획하신 뜻을 표현한 것이다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하느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재창조의 능력이요 치유하는 광선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제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영육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절대적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매일 말씀을 읽고 곱씹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살아서 참으로 말씀이 주는 기쁨과 평화행복과 자유를 누리자그럴 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의미가 있게 되고 가치롭게 된다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4장 4, 8, 12절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세번 다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물리치신다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번역된 '게그라프타이'(gegraptai; It is written)는 원형 '그라포'(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루어진 동작이 현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과거에 기록되어 이미 완성된 구약 성경의 그 말씀이 기록된 그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효력을 지님을 나타내는 것이다또한 수동태가 된 것은 그 말씀이 사람이 쓴 문자로 남겨져 있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비록 외형적으로 인간 저자나 필사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그 배후에 특별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마태 6,7-15)

 

우리는 (자유를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땅의 재물건강명예 그 다른 민족이 청하는 것빈말 기도라 하시며 그 기도 담지마라하지마라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런데 다른 민족이 청하는 것우리 청하지 않나요우리도 똑같이 빈말 기도 합니다미사까지~

그래서 ~

(요한16,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예수님께 받을 수 있는 올바른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화테르) - 어린아이가 부르는 단어입니다. 그 아버지 창조주께서 그분의 피조물인 어둠인 우리를 덮으시는 그 거룩한 빛을 드러내 주시길그러면 그 거룩한 빛()으로 하늘의 아들 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창세1,2참조)

우리가 아들로하늘의 존재성으로 바뀌는 상황입니다.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땅인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올바른 기도입니다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러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6,39-40)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7절에서 청하지 말라 하셨던 그 다른 민족의 양식은 아니겠지요?

 

(마태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일용할(에피시우스)- 꼭 필요한위엣 것으로 존재하는아람어로는 마헬’ 그 뜻은 내일의다가올 날다른 차원의 그 내일을 뜻합니다하늘에 있는하늘을 위한 양식입니다.

 

(마태4,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요한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루가복음에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 빵 세 개(직역하면 셋이라는 빵)와 성령을 구하라찾으라말씀하십니다.(루가11,5-9참조(3) 빵 곧 예수님의 사흗날(3)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죄인들의 용서 구원(생명)의 진리임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증언해 주실 성령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다가올 날의 양식으로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요한14,6 15,16참조한마디로 노후 준비가 아닌 영생(永生준비를 위한 양식입니다.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 빵 셋과 성령의 증언

 

(골로2,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로 모든 죄가 용서 받았음을그래서 나에게 잘못한 이 또한 그 십자가의 용서 받았음을 인정하는 그 용서로용서했으니 저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입니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그러나 우리는 자주 나에게 잘못한 이를 십자가의 진리가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스스로 의롭다 하며 선악의 법으로 잘못한 이를 판단하려 합니다그리고 꼭 필요한다가올 날들을 위한 하늘 양식이 아닌 현세의 삶을 위한 양식만을 구하고찾는 그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그래서 우리는 매일 그 악의 유혹에서 구해 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진리임을 믿는다면다른 이에게 사흗날()의 대속의 죽음그 십자가의 용서 그 말씀으로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죄의 용서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하심입니다용서는 의 단어이지 사람의 단어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거기까지는 알았지만~

(마르2,5-7)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느님을 모독하는군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사흗날의 대속으로 죄를 용서해 주신 그 성자 하느님이심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다른 이의 허물도 용서 못하고 자신들의 허물도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늘의 양식을 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말씀을 먹어야 하느님께서 홀로 거룩하신 분으로 알 수 있고 말씀을 알아야 하느님의 뜻인우리의 구원인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고 말씀을 깨달아야 세상의 악법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신학자가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교회 교리서)

 

(요한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아멘.

-굿뉴스에서 어느사제의글중에서- <‘신천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으면 된다모든 이단은 성경공부로 시작해서 성경공부로 끝난다아무래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개신교 신자들이 신천지에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다.-중략우리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리가 우선되어야 한다진리의 기둥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다.’ >

=말이 됩니까진리의 기둥이 성경이 아니라니요성경이 예수님을 진리로 말씀하셨고 그 성경말씀(반석)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에페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한 사도들예언자들입니다.

 

(에페2,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고 성경을 모르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성경 속에 꼭 필요한 구원의 양식이 있는데우리 이대로 따라 가도 되는 것인지요.

 성경 속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올바로 배워야깨달아야 잘못된 길그런 신천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한5,38-40)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참 답답합니다그러나 말씀을 오늘내일의 양식으로 깨닫는 이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아멘~~!!!!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 원형 '밧톨로게오' (battologeo) '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 '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은 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지만,  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해설은(루카11,1~4)을 참조하십시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ㄷ-4)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처음 등장하는 단어가 '아버지'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 하느님 아버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버지'에 해당하는 '파테르'(Pater; Father)는 당시 유대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아람어 '압바'(Abba; 마르14,36)를 번역한 것이다. 주로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이다.

 

구약에서 창조주로서의 두려움과 엄위를 전제한 전능하신 하느님의 호칭 '엘로힘'과 스스로 자존(自存)하시며 계약에 충실하심을 보여 주는 고유 명사 '야훼'를 사용한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을 '압바'(Abba)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가 얼마나 긴밀하고 친근한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제 나아가서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친밀함이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호칭 다음에 두 종류의 간구가 나온다.

 

하나는 하느님과 관련된 것이며(2절), 다른 하나는 인간과 관련된 것이다(3~4절).

하느님께 대한 첫번째 간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오노마'(onoma; name)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하느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운 속성 등 그 이외의 모든 속성이 그 이름 안에 들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거룩히 드러내시며'로 번역된 '하기아스테토'(hagiastheto; hallowed be) '거룩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 '하기아조'(hagiazo)의 부정과거 수동태 명령형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느님께서 공경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낸다(이사8,13; 29,23; 에제36,23).

말하자면,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서' 거룩해지기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거역해서 범죄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배할 수 있는 상황과 기회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영광과 존귀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두번째 간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이다.

여기서 '오게 하소서'로 번역된 '엘테토'(eltheto; come) '가다', '오다'를 뜻하는 '에르코마이'(erchomai)의 부정과거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부정과거 명령형 그 내용이 결과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열망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속히 도래하여', '결과적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강한 욕구를 포함한다. 또한 '나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basileia; kingdom)는 정관사 '헤'(he)와 같이 사용되어 '그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바실레이아'(basileia)라는 단어는 특정한 영토와 장소, 공간을 의미하지 않고, '하느님의 통치와 지배, 다스림'을 의미하는 역동적 개념(reign; govern)이다.

 

다시말해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으로서, 하느님께서 직접 왕이 되셔서 사탄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당신이 직접 다스리시는 그 마지막 종말의 때가 속히 올 것을 갈망하는 간구인 것이다(루카4,43; 마르9,1).

 

이제 기도의 내용 중에서 예수님의 관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필요과 관련된 '일용할 양식' '죄에 대한 용서' 그리고 '유혹에서의 구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신다.

 

첫째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간구에서 '일용할'로 번역된 '에피우시온' (epiusion; daily) '바로 오늘 필요한 것' '오는 날', 즉 '내일의 양식'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날마다'라는 '카트 헤메란'(kath hemeran; by day; each day)이라는 관용구를 사용해서 '일용할 양식'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그날그날의 실존적 삶에 필요한 실제적 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다'의 뜻인 '디도미'(didomi) 현재 능동태 명령형인 '디두'(didu; give)로 사용되어 계속과 반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보아야 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두번째 간구 '죄의 용서'에 관한 것이다. 새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가르'(gar; for) '왜냐하면 ~ 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 부사절을 이끈다.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청하려면, 전제 조건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이 기도는 아무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한'으로 번역된 '오페일론티'(opheilonti; that is indebted; who sins) '빚지다'는 의미를 가진 '오페일로'(opheilo)의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죄도 용서해 주시고'라는 뜻이다.

 

당시 유대 풍습대로 빚을 진 사람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되거나 옥에 가두거나 하지 말고,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18,23~35).

이러한 사실은 '용서하오니'에 해당하는 '아피오멘'(aphiomen; we forgive)에도 잘 드러나는데, 이 단어는 현재 능동태로서 계속해서 용서할 자세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마지막 간구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이다.

'유혹'으로 번역된 '페이라스몬'(peirasmon; temptation)의 원형 '페이라스모스'(peirasmos)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유혹을 뜻한다 (야고1,12; 1티모6,9).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과 거룩함으로 벗어나 타락하도록 하는 외적, 내적 유혹거리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빠지지'에 해당하는 '에이세넹케스'(eisenehkes; lead)는 '들어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원형 '에이스페로'(eisphero)의 가정법 과거형이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달라'(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는 뜻이 된다.

 

한편, 마태오 복음 6장 13절에서는 '다만 악에서 구해주소서'라는 말이 주님의 기도 끝에 더 붙어 있다.

여기서 '악'으로 번역된 '투 포네루'(tu poneru; from evil; from the evil one)라는 단어는 중성으로 볼 수도 있고, 남성으로 볼 수도 있다.

중성으로 보면 '악'(evil) 추상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남성으로 보면 '악한 자'(evil one)라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앞의 문장과 연관지어 보면, 우리로 하여금 유혹에 빠트리는 악한 자, 즉 마귀로부터 구하여 달라는 간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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