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2.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3 조회수1,508 추천수5 반대(0) 신고

(전주 교구 순교 사적지, 전주 옥 터)

2021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기타 스포츠

경기를 보면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우리나라는

금12, 은10, 동11 이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그때의 순위는 자그마치 4위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것을 뛰어넘어서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에만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예산탈락을 했습니다.

홈경기에 강점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편파 판정 때문일까요? 그것보다는

승리를 염원하는 사람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지지해주는 사람 앞에서 능력을

더 많이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분명히 높여줍니다.

그러나 함께하기보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사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도 많을까요?

그래서 자신의 원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점을 우리 주님께서도 원하시는 바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특히 빈말만 되풀이하면서

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의 기도 모습을 보시고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처음부터 당시의 사람들은

의아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글쎄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훼’라는

이름보다 ‘아도나이’라는 주님이라는 뜻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다니요.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자녀뿐입니다. 자녀가 아닌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면, “당신은 내 자녀가

아닌데 왜 아버지라고 부릅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가까운 관계, 친밀한 관계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군가를 응원할 때, 가족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응원하겠습니까?

더 가까운 사람에게 응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편이 되셔서 응원해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지고 힘차게 또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 편이

없는 것처럼 온갖 불평불만을 간직할까요?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이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

(린 피터스)

한 번뿐인 선택

소크라테스에게 제자들이 “선생님!

인생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사과나무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 하나씩을

골라서 따오게. 단, 선택은 딱 한 번뿐이므로

지나왔던 사과나무밭으로

다시 돌아가서 바꿀 수 없네.”

제자들은 유심히 관찰하면서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후회합니다.

“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라고 소크라테스가 묻자, 어떤 제자는

“선생님! 저는 너무 늦게 사과를 따서

처음에 보았던 좋은 사과를 놓쳤습니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제자는 “저는 너무 일찍

사과를 따서 나중에 본 좋은 사과를 놓쳤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청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번뿐인

선택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 결과를 감당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때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전주 교구 성지, 전주 옥 터 안내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