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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 예언자의 표징. (루카11,29-3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4 조회수1,03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24일 수요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요나 예언자의 표징. (루카11,29-32)

 

1독서<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요나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화답송 시편 51(50),3-4.12-13.18-19(◎ 19ㄴㄷ)

◎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하느님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하느님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하느님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하느님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 (루카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사순 제1주간 수요일(요나3,1-10)

 

3장의 내용은 요나가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니네베에 전하자, 니네베 사람들이 임금을 비롯하여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모두 회개하고,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니네베의 회개는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임금부터 용상에서 일어나 용포를 벗고, 자루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단식'(촘; tsowm; fast; fasting)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데,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곧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도 좋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하느님 앞에서 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악을 크게 회개한다는 표시이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자 행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니네베 사람들 역시도 죄악을 크게 회개하였고, 장차 철저한 멸망에 이를 수 있는 현실적 정황 앞에서 하느님의 용서와 보존의 은총을 구하여 위기를 타개하고자 단식을 단행한 것이다.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5)    

 

여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니네베의 왕을 지칭하며, 가장 낮은 사람은 사회적 신분이 비천한 자들, 아마도 노예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일 것이다.  

'자루옷'(굵은 베옷)에 해당하는 '삭킴'(saqim)의 원형 '사크'(saq)는 조직이 매우 거친 삼베 말한다.

이것은 장례식에 입거나(창세37,34; 2사무3,31) 국가적 재난을 당할 때(에스테르4,1), 극심한 심적 고통을 표현하고자 할 때(2열왕21,27) 입었다. 

 

이처럼 평상시 입는 옷을 벗고 거친 베를 몸에 걸친다는 것은 일체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거부하고,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진심으로 회개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6)  

 

당시 니네베 왕은 아시리아 제국 전체를 통치하던 샬만에셀 4세(Shalmaneser IV, B.C. 782-773),  혹은 앗슈르단 3세(Asshurdan III, B.C. 772-755)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니네베 왕이 주 하느님 앞에 철저히 낮아져 진실로 겸비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하느님 대전에 더 이상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왕좌에서 일어나 왕의 권위를 겉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왕복까지 벗고, 대신 자루옷을 입었다.

 

그는 왕좌에 앉는 대신에 잿더미위에 앉았다. '재'에 해당하는 '하에페르'(haeper)의 원형 '에페르'(eper)는 흩어 뿌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물질이 완전히 연소되고 남은 매우 가벼운 분말 상태의 찌꺼기인 재(ash)를 의미한다(민수19,10).

고대 근동에서 사람이 재 위에 앉거나 재를 뒤집어 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극심한 육체적, 심적 고통을 나타내거나(2사무13,19;욥2,8),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의 은총을 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닌 행동이다(다니9,3). 

 

당시 세계 최강의 권세를 자랑하던 아시리아 제국의 최고 통치자가 자루옷을 걸치고 잿더미 위에 앉았다는 것은 아시리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 누구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서쪽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서 온, 이름없는 한 선견자의 선포를 듣고,  그렇게 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시리아 왕은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비천함과  하느님의 심판 대전에 무기력함을 절감하고, 그 모든 권세와 권위를 하느님 대전에 내려놓고,  오직 주 하느님만을 최고의 신으로 인정하는 가운데,그에게 은총을 구했다. 

이러한 아시리아 왕의 태도는 실로 하느님 대전에 은총을 구하는 자, 회복을 간구하는 자가 취해야 할 합당한 태도라 할 수 있으며, 좀 더 근본적으로 하느님 대전에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 누구나

마땅히 창조주  하느님 대전에 취해야 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실제로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온 국민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 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으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3,7-8)

 

고대 근동에서는 나라에 매우 큰 위기가 닥쳤거나 최고 통치자가 서거했을 경우 사람들 뿐 아니라 이성이 없는 우매한 가축들 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는 관행이 있었다. 

니네베 성읍 전체의 모든 생명체가 멸망의 위기를 벗어나 다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단식을 통해 철저한 회개의 모습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7-8절은 니네베 읍성 백성들이 하느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한 방법 네 가지가 제시된다. 그것은 음식 뿐만 아니라 물까지 입에 대지 않는 완전한 단식, 자루옷(굵은 베옷)을 입는 것, 하느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각기 악에서 떠나는 행위이다.

여기에서 네번째 사항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즉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8)

바로 이것 때문에 심판이 닥쳤으므로, 백성들에게 악과 폭행을 버리고 선한 길로 돌이키라고 촉구했던 것이다.

'돌아서야 한다'에 해당하는 '웨야슈브'(yejashubu)의 원형 '슈브'(shub)는 어원적으로 가던 방향을 돌이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행위를 의미하는 동사이다(창세8,12).

 

본문에서는 악한 행위와 폭행을 버리고, 과거의 그러한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회개란 단순히 악을 버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데까지 나아가야 완전한 회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폭행'에 해당하는 '훼하마스'(hehamas)의 원형 '하마스'(hamas)는 어원상 강한 힘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약한 사람들을 압제하고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죄악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당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죄악이었다(창세6,11.13)

어떤 예언서에도 니네베 사람들 처럼 이토록 진지하게 회개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학계 지도자들이 권력과 돈과 지위와 명성을 가지고, 악한 법과 구조와 제도를 가지고, 얼마나 하느님의 신법과 자연법을 거스리며 나쁜 짓을 하고 하고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 하느님의 의노를 초래하고 있는 나라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높은 데서 권력과 돈을 이용해 불볍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낮과 밤의 다른 생활, 아니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이 완전히 다른, 철저한 이중생활, 야누스적 생활을 하면서, 감히 서민들이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맛있는 것들을 먹고 마시고, 최고의 사치와 향응과 쾌락과 스포츠를 즐기며, 하느님과 백성들 무서운 줄 모른고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통탄할 일이다. 참으로 이 시대는, 임금부터 저기 보이지도 않는 잡초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속속들이 썩어 버린 것을 도려내야 하는, 온갖 부패와 불법과 불의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하느님의 벌을 받지 않고 망하지 않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하느님께서 남겨두신 이들 때문이다.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보속하는 몇몇 의인들과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회개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회개가 정말로 필요한 때이다.

 

우리 백성들이 아래에서 볼때, 각계 분야의 높으신 분들이, 하느님 대전에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자루옷 입고 잿더미위에 앉아 단식하며, 삶의 자세와 영성을 고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시대 이곳은 분명 또 하나의 니네베인데도, 아무리 눈 닦고 보아도 그런 분은 보이지 않는다. 회개를 외치는 예언자도, 하느님의 징표를 개닫고 회개하는 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디 슬프다.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을 기억(기도하고 의지하면서

 

전에 나의 못남아픔을 안아주는 자상한 아버지가 계시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생각했었습니다지금 그 아버지가 제 곁에 계신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나의 잘못을 덮어주시는 (나의 죄악 보다 더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아버지로 나를 온전히 책임져 주시고 계심을......

 

(루카 11,29-32)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소서.’ 그 주님의 기도 후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입니다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그 악한 세대입니다그 악한 세상은 요나의 표징밖에 못 받는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아시리아의 니네베는 요나의 민족을 끌고 간 악한 나라(敵國)입니다아시리아는 세상을 뜻합니다그 세상의 포로로 만드는 악한 나라입니다.

그 악한 나라에 그들의 구원을 위한 회개의 선포를 합니다.


(요나3,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요나의 선포에 모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입니다솔로몬의 지혜가 말합니다.


(코헬1,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허무한 나라가 아닌 인 나라하늘나라를 알려 주시려 그 지혜께서 이 악한 세상에 오셨습니다예수님 입니다.


3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요나의 설교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4-땅의 수. 40- 우리 인생을 뜻합니다.

요나는 땅의 무너짐-종말을 선포했습니다. 29절에 악한 세상은 땅의 종말의 표징만을 받는다 하십니다.


(마태4,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요나의 선포로 회개했다면곧 세상의 모든 것이 악한 것임을또 솔로몬의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면 참 지혜이신 예수님의 선포로참 나라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구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물론 세상의 것의 허무를 깨닫는 교육을 통해서 그렇게 하늘의 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느분의 가르침입니다우리는 십자가로 구원을 이미 받았지만 그 구원을 삶 속에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 세상적 엣 사람이 죽어야 하는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엣 사람을 우리는 절대 스스로 버릴 수 없기에 시련이라는 과정을 통해 버리게 됩니다그것이 이스라엘이 이집트라는 세상에서 나와 하느님의 약속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광야의 삶그 시련의 과정을 겪었단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그들은 이집트의 신관 그들의 말곧 세계관을 버리는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그들은 그렇게 약속의 나라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우리 또한 그 광야(시련)의 삶을 통과해야 합니다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도록~

당신 자녀들이 낙오되지 안토록,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광야의 삶입니다.


(히브12,7-8)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할 것입니다그럴 때마다 동행하시는 하느님의 약속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우리의 모든 악한 마음보다 더 크신 사랑의 아버지 마음입니다.(1요한3,20참조)


(시편119,114) 당신은 저의 피신처저의 방패 저는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

넘어짐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말씀에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계속 끝까지 그 신앙의 길을 함께 갑시다.

모든 것을 허락 하시고 함께 늘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기억(기도하고 의지하면서~~

♡ 아멘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1,29~32)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29ㄴ~30)


악한 의도로 표징을 구하는 자들(루카11,16)에게 예수님께서 진정한 표징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내용이 루카 복음 11장 29~36절에 전개된다. 

여기서 '세대'로 번역된 '게네아'(genea; generation)는 혈통 또는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라고 표현하고 있다(마태12,39). 

사실 표징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이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냈지만,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서도 또 다른 표징을 구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표징만을 구하는 것을 진실된 마음의 결여로 보고, 진실된 마음의 결여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신실함의 상실이기에 이것을 '영적 절개없음'으로 보고 악하다고 질책하신 것이다.

또한 '표징'을 뜻하는 '세메이온'(semeion; a sign)은 여기서 어떤 것을 구별해 주는 기적적인 '증거'(toke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했으며, 예수님께서 마귀의 힘을 빌어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판단하고 식별할 수 있는 '표징'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요구하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이'(zetei; they seek)는  '발견할 때까지 찾다'를 의미하는 원형 '제테오'(zeteo)의 현재 직설법으로 쓰여서, 이들이 예수님께서 표징을 보이실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구했다는 사실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신앙의 마음으로 메시야로서의 표징을 구하는 이들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보일 표징이 없다고 하시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마태오 복음 12장 40절에 나오듯이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나가 실제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후에 니네베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그리스도, 즉 약속된 구원자로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흘 만의 부활로서 명확하게 입증하겠다는 이다(사도1,3; 17,31).

즉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사건이 메시야되심을 보여 주는 결정적 표징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루카 복음 11장 30절을 본다면, 이것은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루카 복음 9장 22절의 첫번째 수난 예고에 이은, 또 하나의 간접적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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